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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의 제육볶음(12)···그녀의 쉼터가 된 남편의 산담

삶의 전환점으로 삼기 위해 환경을 바꿔봅니다. 책을 사서 보고 또는 여행을 해봅니다. 그러나 늘 이런 시도만 하고 계획만 짜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나를 포함한 이런 사람들이 ‘as well as’라는 영어를 떠오르게 합니다. ‘~와 마찬가지로 잘’ 어떤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한 사람이 변화를 꾀한 다른 여건에서도 충실함을 봅니다. 도피는 또 다른 도피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도피가 아니라 선택으로서의 전환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도피는 결정이 아닙니다. 따라서 자유의지가 될 수 없습니다.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으며 결정하는 순간 자유의지가 담겨집니다. 그 뒤에 성공이든 실패든 따릅니다. 도피는 성공도 실패도 애초부터 없습니다. 도피는 그저 도피의 연속으로 피해 도망가는 소인배적인 행동에 불과할 뿐입니다. 작은 것이라 해도 선택함으로써 자기에 대해, 자기 삶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해도 이것마저 내 것이어야 합니다. 실패를 전가시켜서는 안 됩니다. 이래야 먼 훗날 어느 때인가는 이를 비로소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의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Y씨에게 시련의 시간은 곧 고통이었습니다. 남편이 경영하던 회사가 믿었던 지인의 사기로 문을 닫게 되고 남편은 이를 한탄만 하며 연일 술로 세월을 보냅니다. 처음에는 위로한다며 아내는 남편과 술을 함께 마시곤 했습니다. Y씨는 중학생인 남매 자녀들까지도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고 이거 안 되겠구나, 하며 현실을 자각합니다. 과거를 붙들고만 살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며 남편을 설득해 보았지만 남편은 오히려 자기 때문에, 자기 때문이라며 더 술을 찾았습니다. 대학 때 공예를 전공했던 Y씨는 자기 공방을 꾸리며 살고 있는 대학동창을 찾아가 보았지만 불경기라 여의치 않다며 Y씨를 손사래를 치며 막았습니다. 대형할인마트의 계산대에서 일을 해보았지만 탁한 공기로 인해 알레르기비염이 재발해 채 한 달도 못하고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기웃거린 아르바이트가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경제적 압박감과 아이들의 교육문제 등등 노래방도우미까지도 Y씨를 유혹했습니다.

 

하지만 자기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가 있어 걷다오자 해서 제주도를 2박 3일 다녀오게 된 일이 제주도와의 인연의 계기가 됩니다. 그곳에서 숲해설가를 만납니다. 책을 사서 읽고 그 동안 소원했던 아이들과 서울의 산과 공원을 돌아다녔습니다. 이러는 동안에도 남편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술로써 탄식의 수렁에 더 빠져갈 뿐이었습니다. 숲해설가 자격을 얻은 Y씨는 제주도에서 일을 구했고 가족 모두 제주도로 이주해 와서 살게 됩니다. 아내를 따라온 남편은 연고가 전혀 없는 제주도인지라 혼자 술을 마셔대는 일이 더 잦았습니다. 숲으로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었지만 끝내 마음을 열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거의 매일 출근하자 그를 자극한 것은 자존심이었습니다.

 

열등감에서 비롯된 자존심은 실은 진정한 자존심이랄 수 없습니다. 근거도 없고 이유도 없는 헛껍데기 자기과시일 뿐입니다. 포장된 자존심입니다. 우리가 ‘자존심 상해’라고 종종 말하는데 대개 이런 경우입니다. 헛껍데기 자기과시일 뿐인, 말만 자존심은 허황하기 마련입니다. 자기부정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Y씨의 남편 역시 그랬습니다. 사업을 다시 시작해보겠다며 서울로 돌아간 그는 1년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도피는 도피를 양산할 뿐입니다. 한참 후에 남편의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남편이 행려병자로 시립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습니다. 폐결핵으로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Y씨는 공기 좋은 숲으로 가자며 제주도로의 귀환을 고집했지만 남편에게 그 사이 더 는 것은 단지 그 알량한 헛껍데기 자존심뿐이었습니다. 그대로 죽겠다며 몸도 마음도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직장을 포기할 수 없는 처지라 남편을 병원에 두고 제주도에 다시 돌아와야 했고 몇 달 뒤 남편의 사망소식을 듣게 됩니다. 폐결핵이 아니라 자살이었습니다. 그녀는 화장한 남편의 시신을 숲 속 나무들에게 뿌리면서도 눈물 한 점 흘리지 못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그녀는 눈물 대신 명상전문가와 공동으로 자연치유에 대한 책을 내기 위해 숲에 대해 더 공부하며 지금의 시련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제주도가 나는 살렸지만 남편은 죽였다.”

 

어찌 제주도가 그랬을까요. 마음이며 자세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서울서 열심히 살아보려 했던 Y씨는 제주도에 와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달랐습니다. 한 사람에겐 ‘as well as’였다면, 다른 한 사람에겐 ‘as ill as’였습니다. 선택과 도피의 차이를 Y씨 부부에서 봅니다.

 

도피도 선택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을 종종 봅니다. 그들이 선택했다면 그것은 안일일 것입니다. 안일을 선택했을 뿐입니다. 어떤 선택이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이 따릅니다. 그들은 이래서 환경이 바뀌어도 안일만을 선택하기에 바뀔 수가 없는 것입니다. Y씨는 남편을 눈물 없이 가슴으로 보내고 나서 제주도의 민간신앙에 흠뻑 빠져 있습니다. 말하고 들려주는 해설가가 아니라 듣고 배우는 사람으로서 그는 제주도의 신당기행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합니다.

 

제주도 설화의 주인공인 ‘설문대할망’의 키가 무려 50km에 달한다는 데에 우선 놀라고, 이러한 거대설화를 지니고 있는 제주도에 또 놀랍니다. 제주도 어느 곳을 가도 무덤가에 네모지게 둘러싼 돌담인 산담이란 무덤양식이 한참 동안 발을 멈추게 하고, 제주도 곳곳에서 보이는, 지금은 박물관 입구에도 보이곤 하는 역시 돌로 쌓은 방사탑의 간결한 우아미에도 빠져 마음이 그 한 바퀴를 돌게 하고, 무속이야기는 곱씹고 더 곱씹게 해서 입에서 중얼중얼하게까지 하고 맙니다.

 

‘어서 가차이 들어옵서/허난/백조도령은 말을 하되/우리 서로 부배간 무어/고치 살자/그영허연/노늘 한거리’

 

뜻도 모르고 입이 이미 외워 술술 나옵니다. 아직 존재하고 있는 300여 개의 제주도 신당을 틈나는 대로 찾아보겠다는 게 40대 후반인 Y씨의 새 삶이 되었습니다.

 

“살아생전 돼지고기를 싫어했던 사람에겐 굿할 때 돼지고기를 올리지 않는다고 하네요. 다른 고기나 음식도 마찬가지랍니다. 하지만 죽은 자가 싫어했든 좋아했든 상관없이 올리는 게 있는데 바로 술이랍니다.”

 

술을 좋아한 남편 이야기를 꺼냅니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내가 더 참았어야 했다며 후회를 많이 합니다. 애들 아빠를 내가 너무 다그치기만 한 것 같아요.”

 

그녀는 바라보던 산담에 덥썩 기대어 그제야 눈물을 흘립니다.

 

“작은 무덤이라도 죽어서도 편히 쉴 남편 집 하나는 지어줬어야 하는 건데...”

 

한 줌의 가루로 변한 남편을 버리고 온 숲을 찾아 굵은 소나무 주변에 네모지게 돌을 둘러쳐 남편의 쉼터를 뒤늦게 마련했다고 합니다. 그 남편의 산담 안엔 술잔 하나를 넣어뒀다고 합니다. 신당을 찾아 돌아다니면서 얻은 것은 이승뿐만 아니라 저승도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이랍니다. 그녀의 희망이란 만남, 남편과의 재회일 것입니다.

 

“제주도에서 일거리를 찾긴 했지만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을 제주도는 내게 선물을 줬어요. 처음으로 남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하니 내가 더 많이 배워야했지요. 사십 평생 남이 알려주고 일러주는 것만 따라해 왔지만 숲해설가를 하면서 그 위치가 바뀌었다고나 할까요.”

 

그녀는 삶의 소비자에서 생산자가 되었다며 내 삶의 프로듀서가 되게 한 제주도에 감사해하며 산다고 합니다. 제주도 신당을 찾아가고, 제주도 문화를 하나씩 배워가고 있지만, 배우는 자세도 전과는 사뭇 달라졌다고 합니다. 배움 역시 생산적인 사고를 하게 합니다. 생산적인 사고란 다름 아닌 행동이며 실천하게 하는 지식이라는 것. 숲 속 소나무 옆 남편의 산담에 기대어 있으면 이곳이 그녀의 쉼터가 되어준다며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곳이라고 합니다.

 

“내겐 유일한 비비댈 언덕이지요. 말이 많은 제주도라 말이 넘지 못하게 무덤가를 돌로 쌓았다고 하는데, 나처럼 이렇게 가족들이 와서 편히 기대다 가라고 해서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하더라고요.”

 

종종 찾아가서는 남편이 좋아했던 소주를 부어주고 난 뒤 서너 잔 들이키고 온다는 그녀가 남편을 떠나기 위해 일어나면서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시간 같이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이 바보야!”

 

오동명은?=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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