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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아프리카서신(2)

아프리카의 언어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가장 많이 알려진 아프리카 말을 꼽으라면 아마 ‘하쿠나 마타타’일 겁니다.

 

이 말은 동부 아프리카 200개 현지부족들 간에 오랫동안 통용어로 사용되어 온 스와힐리 어에서 온 말입니다.

 

스와힐리 어는 자체 문자가 없어 영어 알파벳을 차용해서 ‘Hakuna Matata’로 표기합니다.

 

Hakuna의 ‘ha’는 부정어미의 접두어이고 ‘kuna’ 는 ‘있다, 존재하다’ 즉, 영어의 ‘there is…’에 해당하는 의미이고 ‘matata’ 는 ‘문제, 골칫거리’ 정도의 뜻입니다. 영어로 굳이 옮긴다면 ‘There is no problem’ 이 되겠지요.

 

우리에게는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준의 단어와 다름없는 이 말이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월트디즈니사의 영화 ‘라이언 킹’ (Lion King) 덕분인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이 영화가 특별하죠. 이 영화가 나올 때쯤 저의 두 딸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차례로 태어나서 그들의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덕분에 저도 아이들과 함께 이 애니메이션 영화를 족히 50번은 보았기 때문에 제 영어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영화가 시작하는 첫 장면입니다.

 

하얀 눈이 덮힌 킬리만자로 산을 배경으로 태양이 떠오르면서 주위를 빨갛게 물들이면서 스와힐리어 합창이 웅장하게 흘러나옵니다.

 

코끼리·얼룩말·기린·사슴·홍학 등의 각종 동물이 자랑바위(Pride Rock)에 모여드는 장면이 펼쳐지면서 유명한 팝 가수인 엘튼 존이 작곡한 주제가 ‘The Circle of Life’ 가 흘러나오면 만화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큰 대자연의 스케일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그게 아니라 돼지 품바와 너구리 티몬이 도망 온 사자새끼 심바가 함께 경쾌한 곡조로 ‘하쿠나 마타타’ 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Hukuna Matata
What a wonderful phrase!
It means ‘no worries’for the rest of your days.
It is problem-free philosophy.
These two words will solve all your problems.

 

정말 이 가사의 내용대로 이 두 단어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지는 알 수 없지만 ‘하쿠나 마타타’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이 녹아 있는 철학임은 틀림없습니다.

 

이 ‘하쿠나 마타타’를 영어로 ‘No Problem’, 한국어로 ‘문제 없어’ 정도로 옮기면 그 뉘앙스가 충분히 살아나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恨’을 영어로 ‘sorrow, sadness, regret’ 등으로 번역하면 틀렸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뭔가 허전합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지 않고는 그 뜻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사는 외국인들이 일이 잘 안 풀리면 이 곳 사회와 사람들을 향해 한탄조로 하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빨리빨리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 성과지향적인 서구문화권에서 그리고 또한 현대의 한국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시간은 한정된 자원이다 보니 아프리카인들이 마치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는 듯이 느릿느릿한 태도는 좌절감을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 모르게 짜증이 쌓이기 시작하고, 이 곳 아프리카 사람들의 문화를 미개한 것으로 단정짓기 쉽습니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좀 더 알게 되면 그리고 좀 더 이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이전과는 다른 것이 보이게 됩니다. 저에게는 ‘하쿠나 마타타’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지금 내가 힘들어도 참고 견디다 보면 더 나은 미래가 온다”라는 식으로 사람들의 애환을 달래는 것이 서구인들의 생각입니다.

 

시간은 끝없이 전진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죠. 반면 하쿠나 마타타를 이야기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지금 내가 아무리 어려운 현재 속에 있어도 우리의 뿌리가 있는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미래가 있는 영원의 시간(Zamani)으로 회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영원의 시간에 비하면 너무 짧은 현재의 시간(Sasa)에서 너무 일희일비하지 않으면서 살아가자는 마음이 바로 ‘하쿠나 마타타’가 이야기하는 시간관념이고 철학입니다.

 

 

언젠가 모잠비크에서 오신 분에게 들은 황당하고도 우스운 이야기 한 토막 알려드립니다.

 

비행기를 입석으로 타고 왔다는 경우인데요. 아프리카 항공사의 비행기에 오르면 가끔 좌석번호 없이 그냥 비행기에 오르는 순서대로, 앉고 싶은 좌석에 가서 앉는 것이 허용될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느즈막히 올라탄 이 분에게 남은 좌석이 부족한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여러 명이….

 

스튜어디스들은 소위 ‘입석 손님’에게 자신들처럼 제일 뒤칸에 서서 앞좌석의 등받이를 잡도록 하고 이륙했답니다. 황당함이 지나쳐 아연실색한 이 한국인에게 검지만 예쁜 스튜어디스 아가씨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던진 말이…

 

“노 프라플레모. 하쿠나 마타타!!”’

 

이 이야기를 듣고 안전불감증이라는 단어를 연상하시는 여러분은 이곳의 문화장벽에 정면으로 충돌하신 겁니다.

 

제가 이런 황당무계한 상황을 안전하다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 매사 긍정적으로 보면서 나름대로 즉흥적일 수 있지만 성내지 않고 해결책을 찾는다는 점에서 하쿠나 마타타의 의미를 되새겨 보시라는 겁니다.

 

우리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채 걱정과 염려 속에서 매일을 전전긍긍하며 살아갈 때에 이 곳 아프리카 사람들은 비록 우리보다 가난하지만 오늘을 편안하게 품으며 풍요롭게 누리며 살아갑니다.
라이언 킹의 첫 장면처럼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오늘 하루를 다른 어떤 것에 담보 잡히지 않고, 즐겁게 쾌활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의 철학이 저에게는 더욱 큰 지혜로 보입니다.

 

그래서 하쿠나 마타타에 대한 언어적인 해석은 아니지만 제 개인적으로 “문제 자체가 없다기 보다는 너무 마음에 담아 문제로 만들지 않겠다는 삶의 태도”를 ‘하쿠나 마타타’의 진정한 해석이라 생각합니다.

 

자! 하쿠나마타타..세상은 마음 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이상훈은?=연세대 정외과를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국제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 연구위원으로, 우간다·아프가니스탄·르완다에서 국제구호기금 지역(보급)책임자를 맡으며 20년 가까이 생활했다. 현재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주민을 돕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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