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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아프리카 서신(6) ··· 우간다의 알렉스가 일깨워준 얘기

우간다에서 4년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은 바로 옆 나라 르완다(Rwanda)에 와 있습니다. 무엇을 이 나라에서 시작하면 좋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무엇인가 이 나라 사람들에게서 희망의 싹이 될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막연한 가운데서도 잊을 수 없는 우간다 한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우간다 동부 케냐와의 경계에는 엘곤 산(Mt. Elgon)이라고 하는, 해발고도 4,321m로 정상에 백두산 천지와 같은 칼데라 호수를 가진 높은 산이 있습니다. 3천m 이상 되는 높은 곳에 고위평탄면이 존재하는 아주 특이한 산입니다. 워낙 산이 높고 경사가 급해 접근하기 힘들고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오지입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Kapchorwa District 에 해당합니다. 산 속 이 곳 저 곳 흩어져 있는 마을들은 그 곳에 사는 주민들 외에는 찾아가기도 힘든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지역의 가장 잦은 자연재해는 우기마다 벌어지는 산사태입니다. 인명 피해는 물론 길이 매몰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너무 많이 베어낸 결과입니다.

 

Piswa 라는 마을도 바로 그런 마을 중에 한 곳입니다. 그 곳에서 미국 교회의 지원으로 아동후원사업이 시작되었고 바로 그 쯤에 제가 우간다에 지역책임자(country director)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지역 아동들을 후원하고 있던 미국의 교회에는 지역의 큰 어려움인 산사태와 토양 유실을 막기 위해 당시 미화 1만 달러의 기금을 나무 심는 일에 쓰라고 보내주었습니다. 저희는 계획된 대로 어린 묘목을 우간다 산림청 묘목장으로부터 구매해서 마을 주변에 심기 시작했습니다. 예산의 절반 가량을 묘목을 구입해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던 Piswa 마을까지 운반하는데 사용했습니다.

 

 

하루는 그 지역 책임자로 있는 데이빗(David)이 마을의 청년을 데리고 수도 Kampala 에 있는 제 사무실에 찾아왔습니다. 이마가 넓고 타부족보다 훨씬 더 까만 전형적인 사비니(Sabiny) 부족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이름은 알렉스였고 보기 드물게 케냐 나이로비 대학에서 임학을 전공한 보기 드문 인재였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마친 후 별 하는 일 없이 고향에 돌아와서 감자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중에 저희 단체에서 산에 나무를 심는 일을 본 것입니다.

 

알렉스가 제게 요청한 것은 나무를 심는 일은 전적으로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묘목을 사서 운반하는데 더 이상의 예산을 쓰지 말고 자기에게 맡겨주면 묘목장을 만들어서 적은 비용으로 훨씬 많은 묘목을 길러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봉급을 지불하지 않아도 좋으니 믿고 맡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 어깨에도 미치지 않는 작은 키, 더듬거리는 말투, 허름한 옷차림, 진흙이 잔뜩 묻어 말라붙은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나타난 알렉스를 쳐다보았습니다. 빛나는 것은 오직 그의 두 눈동자뿐이었습니다. 이 시골 청년의 말을 믿고 이미 전임자에 의해 본부에서까지 승인을 마친 계획서에 따라 진행되던 일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일이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새벽에 출발해도 밤에 간신히 도착하는 먼 거리를 찾아와서 봉급이 없어도 좋으니 일만 맡겨달라는 알렉스의 열정에 반해 결국 해 보라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미국 본부에 연락해서 계획을 수정하여 다시 허락을 얻어내는 번거로운 일은 결국 제 몫이었구요. 군대 용어로 '선조치 후보고'를 한 셈입니다.

 

알렉스는 먼저 물이 흐르는 계곡의 비탈을 계단식으로 깍아서 묘목장을 만들고 그 옆에 자기가 살 움집을 지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을 동원하여 아침 저녁 계곡의 물을 길어올려 나무 씨앗을 심은 밭에 물을 주는 일을 하고 낮에는 강한 햇볕을 가리는 가림막을 폈다가 해가 지면 걷는 그 일을 매일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틈틈이 산을 내려와 우간다 다른 지역을 다니며 다양한 수종의 씨앗을 구해 오곤 했고요. 식수 사업은 총 3년을 계획한 일인데 첫 해만 저희가 직접하고 2년차 부터는 알렉스가 맡은 셈인데 3년이 지나갈 때는 그 마을 일대에 묘목을 다 심은 것은 물론이고 밭의 둑에도 심어 토양유실을 막기 위한 작업도 끝냈습니다. 알렉스는 저희에게 약속한 일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엘곤 산 일대의 다른 마을에서도 알렉스가 일군 그 묘목장에 묘목을 사러 오기 시작했습니다. 묘목을 팔아서 얻은 이익금은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들어갔고 묘목장을 유지하기 위해 씨앗을 구하는 것 외에 알렉스의 급료를 지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제 임기가 끝났었습니다. 그 일은 저희가 시작한 일이었지만 저희가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높은 산의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묘목장을 돌보던 키 작고 새까만 알렉스의 모습은 제가 그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항상 그 곳에 있었습니다. 마을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하던 알렉스는 감자 밖에 먹는 것이 없는데도 늘 기쁜 마음으로 보수도 없이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제가 직원들과 함께 최초 계획대로 묘목을 구입해서 옮겨다 심는 식으로 일을 했더라면 묘목을 사는 일에만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심는 일 조차도 마을사람들을 고용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도 심은 나무들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살리지도 못했을 수도 있고요. 당시 심은 나무의 숫자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묘목장을 통해서 훨씬 더 많은 나무를 길러낸 것은 불문가지의 일입니다. 나중에 그 곳에 상주하는 직원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는 우간다 산림청(NFA, National Forest Authority) 직원들이 소문을 듣고 묘목장을 찾아와서 "이 정도 규모면 우간다에서 두 번째 규모의 묘목장일 것"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제게 더 인상 깊었던 일은 알렉스 한 명의 헌신으로 인해 바뀌었던 마을 사람들의 적극적인 태도였습니다. 그런 자발성은 그 이전 여러가지 사업들을 해 보았지만 본 적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모든 일을 저희 기구가 다 해야 하고 주민들은 끊없이 바라기만 했습니다.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 줘야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어떻게 하면 그게 아프리카에서 그렇게 될 수 있는지 누구도 자신있게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주민 회의 백번 해 보십시오. 주민들이 나중에 참석해 주는 대가로 교통비 및 점심값 지불해 달라고 할 겁니다.

 

흙투성이 장화를 신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제 사무실을 찾아와 준 알렉스야말로 미국의 국제개발대학원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큰 공부를 시켜주었습니다. 알렉스 그 청년이야말로 엘곤 산의 희망이었고 우간다의 희망이었습니다.

 

남에게 희망을 전해주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자신이 희망이어야만 합니다.

 

지난 주 이 곳 르완다의 농장을 다녀왔습니다. 저희가 기르고 있는 묘목장에서 동네 꼬마들이 손에 뭔가를 들고 나오다가 저한테 걸렸습니다. 다름아닌 묘목들이었습니다. 농장에서 일하는 저희 직원들에게 마을 사람들이 원하는 경우는 언제든지 나누어 주어도 좋다고 했더니만 동네 꼬마들이 먼저 왔나 봅니다.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 나무를 심는 사람들은 희망이 있습니다.
 

 

이상훈은?=연세대 정외과를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국제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 연구위원으로, 우간다·아프가니스탄·르완다에서 국제구호기금 지역(보급)책임자를 맡으며 20년 가까이 생활했다. 현재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주민을 돕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의 아내는 르완다 현지에서 유치원을 개원, 교육계몽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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