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반기성의 '기상천외-제주'(4) ··· 기후와 날씨가 만든 문명사

스칸디나비아반도에 본거지를 뒀던 바이킹 족들은 가장 험한 날씨와 싸워야만 했다. 북위 60도 이북에 위치한 이 지역은 강한 바람과 많은 눈·비, 그리고 다른 지역보다도 더 추운 날씨를 보이는 곳이다. 이들은 척박한 땅, 햇빛을 거의 보기 힘든 자연조건, 북해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으로 인해 애초부터 농사를 지어 풍족한 삶을 살 수 없었다. 그러기에 주변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거나 다른 지역을 침략해 식량을 약탈하며 살았으며 특히 바람과 파도를 접하는 게 비일비재했다.

 

그들은 늘 바다와 하늘을 관찰하며 살아왔다. 고위도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인 빙광(氷光·극지방과 같이 늘 얼음으로 덮인 곳에서 빛의 반사로 공중이 밝게 빛나는 현상)을 발하는 높은 빙하를 보며 살았고 오랫동안 수로를 항해 하면서 얻은 경험으로 얼음 상태의 변화를 예측하기도 했다. 지금도 전해 내려오는 날씨와 관련된 속담이나 징후가 가장 많은 곳도 바로 바이킹 지역인데 그들의 삶과 날씨가 매우 밀접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바이킹 사람이라면 어떤 해류를 이용해야 항해를 잘 할 수 있는지를 알았다. 또한 바다표범과 물고기 이동, 아주 작은 바람의 흐름과 냄새, 파도의 모양과 높이를 보고서도 날씨를 예측한 민족이었다. 그 지역 사람들은 하늘과 바다의 색과 모습을 보고도 폭풍의 악천우가 예상되는지, 바다안개가 낄지, 빙산이 다가오는지 등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온난기로 접어든 때부터 바이킹들에 의해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북미대륙까지 개척이 이뤄졌다.

그러나 추운 기후였던 시기에 북해의 거친 바다는 살을 에는 바람, 무서운 폭풍, 북쪽바다에서 내려오는 해빙, 사람을 죽일 정도의 상상도 할 수 없는 매우 추운 겨울의 발원지였다. 그러기에 배를 타고 외부로 진출하는 데 많은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고대에 약간 선선했던 기후는 서기 800~1200년에 따뜻한 기후로 바뀌었다. 기후학적으로 후빙기의 기후최적기에 비하면 덜 따뜻했지만 이 시기를 기후학자들은 ‘중세의 온난기’ 또는 ‘제2의 기후최적기’라고 부른다. 이 기간은 지구가 8000년 만에 처음 맞는 가장 따뜻한 시기였으며 특히 북대서양 지역에서는 과거 2000년 동안 가장 온난한 시대이기도 했다. 나무 연륜, 화분, 빙핵, 해저 퇴적물과 사료, 고기록 등의 분석을 통해 이 시기의 온난함이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과학자 슈나이더(S. H. Schneider)가 제시한 증거에 따르면 그린란드나 아이슬란드에서는 목축이나 농업이 가능했었다. 빙하가 후퇴하고 그린란드의 기온이 현재보다 약 4℃도 더 따뜻했기 때문에 바이킹들이 바다를 건너와 밭을 갈거나 목장을 만들고 마을을 세워 정착 생활을 했으며 일부는 아메리카 대륙까지 건너갔다.

그 동안 날씨로 인해 움츠리고 살았던 바이킹은 온화해진 날씨로 전성기를 맞게 된다. 사회학자들은 그들의 기술 발전이나 모험주의가 바이킹을 역사로 불러냈다고 하지만 바이킹의 정복과 탐험은 전적으로 온화하고 안정적인 기후가 찾아오면서 가능해졌다.

중세 온난기로 접어들기 시작한 서기 800년경 북유럽의 기후가 온화해지면서 현재의 노르웨이 지역 사람들이 활동하기 적합한 날씨로 변했다. 북해로 몰아치던 폭풍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남쪽으로 밀려 내려오던 해빙(海氷)도 현격히 줄어들었다. 끔찍한 기상 상태에서도 항해를 하곤 했던 바이킹들에게 빙하가 없는 조용한 바다는 그야말로 자기집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때부터 바이킹의 해양 탐험, 유럽 해안을 약탈하는 등 바이킹의 해적 행위에 관한 난폭한 이야기가 나오게 됐다. 이것을 혹자는 ‘바이킹 시대(Viking Age)’라고 부른다. 그들은 덴마크 등 유럽 지역의 침탈은 물론 유럽 내륙, 프랑스 북부지역, 영국까지 침략해 유럽인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13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기후 최적기’라 불렸던 온난기가 물러가면서 유럽 북부에서는 저기압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시작했으며 점차 습하고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린란드에 정착했던 바이킹들은 얼음이라고는 전혀 없던 뱃길에 여기저기 해빙(海氷)이 나타나고 부둣가가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런 기후변화로 인해 바이킹의 해적 문명도 그린란드에 고립되기 시작했다. 14세기 중엽에 이르러 기후는 더욱 춥고 혹독해졌으며 그린란드는 살기 힘든 곳이 됐다. 기후가 추워지면서 농작물 재배가 어려워졌으며 바다에 얼음이 증가하면서 바다표범과 해마도 감소했다.

약 3세기 동안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민족, 항해술과 전투 능력이 뛰어난 해적의 선조, 그린란드와 북극의 섬들을 발견하고 개척하며 북미대륙까지 진출했던 민족, 번개의 신 ‘토르’와 지혜의 신 ‘오딘’을 숭상하고 햇빛의 신 ‘프레이르’를 사랑했던 민족, 그들이 이루었던 바이킹 문명은 기후의 온난화 시점에서부터 시작해 소빙기로 접어드는 1200년대까지 유럽의 역사를 찬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해 15세기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한 위대한 문명의 영광과 몰락, 즉 역사는 기후와 날씨가 만든 것임을 보여준다.

 

반기성은?=충북 충주출생.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공군 기상장교로 입대, 30년간 기상예보장교 생활을 했다. 군기상부대인 공군73기상전대장을 역임하고 공군 예비역대령으로 전역했다. ‘야전 기상의 전설’로 불릴 정도로 기상예보에 탁월한 독보적 존재였다. 한국기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군에서 전역 후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위원을 맡아 연세대 대기과학과에서 항공기상학, 대기분석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기상종합솔루션회사인 케이웨더에서 예보센터장, 기상사업본부장, 기후산업연구소장 등도 맡아 일하고 있다. 국방부 기후연구위원, 기상청 정책자문위원과 삼성경제연구소, 조선일보, 국방일보, 스포츠서울 및 제이누리의 날씨 전문위원이다. 기상예보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표창,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날씨를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외 12권이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