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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땡" 소리에 좌절하지 않은 "딩동댕"의 감동

 

아내와 함께 영화관으로 갔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동창들이 “부부동반으로 영화나 보자”고 해서 간 자리다. 그저 일에만 치여 사는 것 같아 좀 쉬고 싶었다. 게다가 영화를 보고 나면 친교의 자리도 있다니 그저 우정이나 돈독히 다질 요량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33년의 역사, 방송횟수 1650회, 본선출연자는 3만명, 예선참가자는 100만명, 방청(관람)객수는 1천만명. 딩동댕 실로폰 소리와 낯익은 배경음악(BGM), “전국~” 하면 꼭 따라 하게 되는 “노래자랑”이라는 단어. 33년 동안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어루만져준 최장수 TV 프로그램-.

 

대한민국의 원조 버라이어티라는 <전국노래자랑>을 스크린으로 만났다. TV프로그램으로선 진기한 기록을 양산했지만 도무지 마음에 끌리지도, 그렇게 기발해 보이지도 않았던 그 프로그램은 그렇듯 내게 흥미롭지 않았다. 그러나 난 영화를 보고 감동의 의미를 되새겼다. 삶의 존재이유를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가슴이 벅차오른다는 게 무엇인지를 알 것 같았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생활력 강한 아내 ‘미애’의 미용실 셔터맨 ‘봉남’은 비록 대리운전기사 노릇을 하며 미용사 시험을 앞두고 있지만 그의 꿈은 가수다. ‘노래는 필(Feel)’이라는 신조를 갖고 사는 김해시의 가수 꿈나무다. 대한민국 톱가수들의 등용문인 ‘전국노래자랑’이 김해시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부푼 가슴을 안고 아내 몰래 예선 무대에 출전해 단번에 동네 아주머니들의 인기스타가 됐다. 자신감 만큼은 최우수상감인 음치 시장 ‘주하나’, 일과 사랑을 한꺼번에 쟁취(?)하려는 산딸기 엑기스 기업의 직원 ‘동수’와 ‘현자’, 손녀 ‘보리’와 마지막 추억을 남기려는 애틋한 할아버지 ‘오영감’.

 

영화 속에서 누군가는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누군가는 회사 홍보를 위해서,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누군가는 다음 시장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위해서 노래를 부른다. 이들이 선보이는 노래와 사연에는 웃음도 있고, 슬픔도 있다. 그렇게 그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전국노래자랑>은 꿈의 무대였다. 그저 그렇게 보이는 그 무대에 서는 게 그들에겐 가슴 벅찬 도전이었다.

 

그 도전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 건 영화가 실제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참가자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서다.

 

그 수많은 이들이 갖가지 사연으로 <전국노래자랑>의 문을 두드렸다. 그저 목소리를 뽐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회사를 살리고 싶었고, 할아버지를 염려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고, 속마음을 몰라주는 이에게 사랑의 마음을 알리고 싶었고, 청년시절 품었던 가수의 꿈을 단 한번만이라도 무대에서 토해내고 싶었던 것 뿐이다.

 

그런 그들은 ‘땡’ 소리에 좌절하지 않았다. 그저 ‘딩동댕’ 소리에 그들은 울음을 쏟아냈다. 그동안 겪어온 좌절과 실패가 가슴속으로 북받쳤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명문대 교수가 최근 ‘스승의 날’을 맞아 제자들에게 편지를 띄웠다.

 

“학생들이 각종 취업, 시험에 떨어지면 ‘멘붕상태’에 이르고 스스로를 자학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며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경험하며 산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몇몇 대단히 뛰어난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유학가서 공부하고 학위를 마치고 취직을 하는 과정에 많은 실패를 안고 살아간다.

 

난 20년 전인 1993년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미국의 대학들에 지원했을 때 11개의 대학에서 모두 거절서신(rejection letter)을 받았다. 1994년 기상청 관측사상 최악의 더위를 기록할 당시 조금 더 절실하고, 진지하게 13개의 학교에 지원을 했고 단 두 곳에서 입학승인서(admission letter)를 받았다. (그나마 하나는 영어점수가 모자라 조건부 승인서(conditional admission letter)였다). 입학 후 코스웍(coursework)을 마칠 때까지 대학원 수업에서 A보다 B가 훨씬 많았다. 2년차 평가(Second year review)에서 약 30%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잘려나갈 때 난 정확히 그 경계선에 서 있었다는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 스스로의 학업에 자신이 없었기에 학위청구 논문제안서(dissertation proposal)는 남들보다 약 1년 반이 늦게 그것도 대학위원회(graduate chair)의 두번의 독촉 편지를 받고야 제출할 수 있었다. 2003년 두개의 학위논문 초고를 써 놓은 상태에서 약 43개의 학교에 지원했고, 단 두군데서 연락을 받았고, 단 한 군데 학교에서 수락의사를 받았다. 하와이 대학에 함께 임용된 동기 두 명중 한명은 더 좋은 학교로 2년만에 옮겼고, 다른 한명은 5년 만에 조기정년심사를 받아서 통과했다. 나는 6년을 꽉 채워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 학회지에 투고한 기록을 대충 살펴봤다. 시원하게 한 번에 출판허가(accpeted for publication)를 받은 것은 단 두편에 불과하다. 절반이상이 거절서신을 받았고, 약 삼분의 일이 수정 후 재제출(revise and resubmit)하란 소리였다. 저널들의 초고통과율(manuscript acceptance rate)을 보면 나는 아주 중간의 능력으로, 중간의 삶을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오늘 또 하나의 논문초고가 발송됐다. 확률상으로 한번에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20%가 안되는 것 같다.

대단히 성공한 학자가 아닌 상태에서 강단에 서는 것도 학생들에게 나름대로의 의미를 주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자위한다. 대부분의 학생들 역시 나만큼의 실패를 경험하며 살 것이기 때문이다.

취업시즌이다. 다들 기운내자!“

 

 

 

 

 

그 교수는 서울의 명문대 정치학 교수다. 미국의 명문 시카고대 출신이다. 그 역시 그 많은 실패가 있었기에 지금 그 자리에 있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의 박수소리는 뜨겁다. 우리네 평범한 이웃이 <전국노래자랑>을 무대로 펼친 도전이 있었기에 그 수많은 사연은 오롯이 우리가 이뤄내야 할 우리의 꿈이 됐다. “땡”이란 좌절이 있었기에 “딩동댕”의 환희가 있다. 실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이가 많기에 도전이 의미가 있다.

 

제주가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말들이 많다. 그러나 실패의 그림자에 안주한다면 그게 도전이겠는가? 과거의 그늘만 탓하고 있다면 새 시대가 열리겠는가? 삶의 의지를 꺾고 그저 권력에만 기생한다면 과연 그게 성공한 인생이겠는가?

 

영화 <전국노래자랑>은 우리에게 도전과 감동의 방정식을 말하고 있다. 도전이 일궈낸 성공과 희망의 가치는 무수히 많은 실패를 겪은 우리네 평범한 이웃들이 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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