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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철의 파워人터뷰] 제주지사 출마하는 고희범 민주당 제주도당 위원장
"도민의 아픔 도외시하는 도지사는 무자격···지난 선거 후 철저한 반성"

 

2010년 그는 혜성처럼 등장했다.

 

40년 전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기자생활을 하며 ‘제주’란 이름만 나오면 그는 득달처럼 덤벼들었다. 고향 제주가 힘들고, 고향 제주가 뭍사람들의 논리로 찬밥대접을 받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그다. 서슬 퍼런 공안정권 시절에도 아랑곳없이 금기시됐던 4·3의 문제를 고작 30대 중반의 나이로 세상의 이슈로 꺼내들었던 그다. 대학물(?)을 먹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제주출신 대학생들에겐 언제나 맏형이었고, 고향 제주의 미래를 같이 짊어질 동지였던 그다. 그렇기에 제주출신으론 처음 중앙언론사의 사장 자리까지 오른 그가 서울에선 제주인의 자랑이었고 영광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혜성처럼 나타났다고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그의 생각과 달리 아예 그를 몰라보는 이도 많았다.

 

그 역시도 제주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조차도 뒤늦게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2010년 선거판에서 힘겹게 야권단일화를 끌어낸 민주당 후보였지만 황당하게도 정작 민주당 지지층은 그를 외면했다. 간판만 민주당일 뿐 시간이 흐를 수록 그는 통합진보당과 민주노동당이 배출한 후보로 전락했고 결국 그는 패했다.

 

분루를 삼켰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좌절하는 그가 아니었다. 40년 언론계에서 쌓은 내공과 전문성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고향을 떠난 40년 세월만큼의 간극을 단 몇 개월만에 도민들이 메워줄 수도 없다는 것도 깨우쳤다. 오히려 ‘서울토박이’처럼 살아온 지난 세월에 아랑곳없이 그 정도라도 지지표를 던진 도민들이 있다는 게 눈물나도록 고마웠다.

 

그는 ‘제주 다시보기’에 고개를 돌렸다. ‘제주 다시 알기’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첫 선거에서의 실패는 그를 제대로 서게 만드는 ‘교훈’으로 뒤바뀌고 있었다. 걷고 또 걷고, 만나고 또 만났다. 낙선의 쓴 잔을 들이마시고 거침없이 제주 전역을 돌았다. 170여개 마을을 3년6개월여간 훑었다. ‘다시 보기’와 ‘다시 알기’로 시작한 대장정은 이제 ‘제주 깊이보기’란 이름으로 진화했다. 그를 좋아하는 이들과 ‘재미’를 곁들여 이어간 그 행보는 오는 21일 어엿한 책으로 나와 도민들을 만난다.

 

어색하고 낯설었던 정치판이지만 그것 마저도 이제 익숙해졌다. 돌연 등장한 도지사 후보가 아니라 민주당 제주도당위원장이란 직책을 맡아 현실정치에 한 축이 됐다.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시스템도 익혔다. 물론 테크닉도 늘었다. 우연찮게 만나는 이들에게 내밀던 손은 스스로도 어정쩡했지만 이젠 과감히 맞잡는다. 그가 내밀던 손에 쭈뼛쭈뼛하던 도민들도 이젠 먼저 악수를 청하기 일쑤다. 이제 그는 4년 전 고희범이 아니다.

 

그러나 애초 그가 도지사 선거에 나서도록 만든 ‘분노’와 ‘슬픔’은 더 커졌다. “제주사회를 이렇게 도륙내는 구조와 현실이 개탄스럽고 안타까웠다”며 나섰던 4년 전에 비해 더 황당하고 어이없는 현실을 목도하는 그로선 자괴감까지 밀려온다. 한동주 전 서귀포시장의 발언으로 촉발된 ‘한동주 게이트’에 이르러선 “도백이 도민들을 줄 세우려다 터진 일”이라며 격하게 분노한다. “언제나 정실인사 파문을 몰고 온 우근민 지사와 한 전 시장의 내면적 거래는 일방의 진술로 끝날 일이 아니라 엄연히 상대방이 있다는 것”이라며 ‘몸통’을 겨냥한 검찰의 수사를 주시하고 있다.

 

“민주당은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하는 내 삶의 가치이기에 찾은 선택”이란 그는 “지사가 일찌감치 당원모집이나 하면서 정당행을 구걸하는 모습이 역겹다”고 일갈했다. “내년 선거를 겨냥한 치졸한 작태와 선거과열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내년 1월 하순이 그의 도지사 선거전 공식행보라고 예고했다. 물론 민주당 도당위원장 자리도 임기(내년 1월말) 이전에 내려놓을 생각이다.

 

‘제주판 3김’이란 통칭엔 거북하다. “공과(功過)를 살펴야 한다. 신구범 전 지사만큼 제주를 사랑하는 비전과 열정을 갖춘 분을 그런 식으로 싸잡아 말하는 건 곤란하다”며 향후 연대의 가능성도 열어뒀다.

 

인터뷰 말미-. 그는 102세를 일기로 지난해 세상을 떠난 어머니 얘기로 이어가다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언제나 어머니는 막내가 잘 되는 것만 바랐다. 어머니의 등을 주무르는 막내아들에게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은 언제나 ‘됐다. 고맙다. 어서 가라'는 것이었다. 그말이 너무나 듣고 싶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내년 지사선거에 나서는 고희범 민주당 제주도당 위원장을 17일 오후 4시30분 <제이누리> 회의실에서 1시간 30분간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가?

“출판기념회 준비 하느라 바쁘게 나날을 보내고 있다. 21일 토요일 오후 2시 제주시 라마다프라자 호텔에서 ‘고희범의 제주 깊이 보기-이것이 제주다’ 출판기념회를 연다. 많은 도민들이 와주셨으면 감사하겠다.”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 후 제주 곳곳을 돌아보셨다. 책 내용이 그걸 담고 있는가?

 

“2010년 선거가 끝난 다음에 내가 제주도를 잘 몰랐다는 걸 알았다. 제주 역시 고희범을 몰랐다. 그것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했다. 나를 사로 잡은 질문들이 있었다. 제주의 미래비전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제주가 갖고 있는 가치를 바탕으로 미래비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세계가 주목하는 보물섬 제주의 가치가 무엇인가? 과연 우리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2010년 7월부터 제주의 역사·문화·환경과 관련된 곳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걸 기행문 형식으로 3년 반 동안 정리하다보니 책 한권이 됐다. 거기에 더불어 마을을 돌아봤다. ‘현장에서 길을 찾다’를 주제로 근 1년 걸렸다. 제주도내 읍·면 지역 172개 리 단위 마을 거의 대부분을 돌았다. 제주도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꿈을 갖고 있고, 제주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공부한, 정말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건 두달쯤 후에 보고서 형식으로 책을 낼 계획이다.”

 

나도, 제주도 서로를 몰랐다. 반성에서 새로 시작했다

 

►20살에 고향 제주를 떠나 대학진학으로 서울에 갔다가 2010년 선거 직전인 2009년 제주로 내려 왔다. 40년 만에 돌아와 도지사 선거에 나갔다. 내려온지 1년도 채 안됐다. 당시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있는가?

 

“참으로 무모한 결정이었다. 고향 떠난지 40년이 지난 후에 선거 1년도 채 안남기고 내려와서 도지사 하겠다고 표를 달라고 했으니 도민들이 보기에도 황당했을 것 같다. 왜 그런 무모한 결정을 했느냐고 하면 두 가지다.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분노와 슬픔 때문이었다. 서울에 살면서도 제주사회문제협의회를 만들었다. 제주출신으로 서울 사는 분들과 함께 고향의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도 하고 연구도 하고, 또 우리가 힘을 합쳐서 할 수 있는 것에는 힘도 보태자며 1987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현기영·김명식 선생, 강창일 의원을 비롯해 대학생·회사원·교사·대학원생 등이 모여 다양하게 제주도 문제에 대해서 고민도 하고 그랬다. 그런 고민에 대한 결과다.”

 

►그 중에서도 4·3 문제에 상당히 열의를 보인 걸로 아는데···.

 

“우리들 생각의 중심엔 4·3이 놓여 있었다. 4·3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제주도가 한발짝도 미래로 나갈 수 없다는 그런 무거운 마음이었다. 그 때문에 4·3 40주기가 되는 1988년 4월에는 처음으로 공개행사로 서울에서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여성백인회관에서 했는데 300여명이 모였다. 예상 밖이었다. 그래서 경찰도, 정보기관도 상당히 많이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질지 하는 긴장감 속에 행사를 치렀다. 그 후 4·3 50주년을 맞으면서 50주년 기념사업추진 범국민위원회를 전국의 명망가들을 중심으로 조직하고, 특별법 제정운동을 시작했다. 범국민위원회 명의를 제주4·3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추진 범국민위원회로 바꾸고 바로 시작했다. 이어 재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범국민위 대표로 참여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하늘에다 대고 잔 주먹질을 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거구나.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힘이 없으면 안되는 거구나를 느꼈다. 시간이 흘렀다. 제주의 문제들을 보면서 안타깝고 답답하고, 분노하게 되고, 슬퍼지게 됐다. 결국 내가 해야 겠다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무모하게 선거에 도전하게 되는 결정을 하게 됐다.”

 

►결국 분노와 슬픔에서 도지사 선거에 나섰다는 얘기로 귀착된다. 어떤 점이 분노와 슬픔을 낳게 만들었나?

 

“도지사가 된다고 하는 것은 제주도를 어떤 의미에서든지 지금보다 나은 세상으로 만들고, 도민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게 목적이다. 그런데 도지사가 되는 것 자체가 목적인 현실을 많이 목격했다. 길들이 있는데, 해결해야 되는 문제들이 있는데 넘어간다. 갈등은 어디든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얼마나 경제적으로, 효율적으로 그 갈등을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리더십의 중요한 책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도외시되거나 방기되고, 그래서 갈등을 더 부추겼다. 그런 일들이 나를 힘겹게 만들었다. 그런 분노와 슬픔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도지사가 돼서 해결하겠다는 마음으로 나섰다.”

 

►분노와 슬픔을 덜어내고자 꼭 민주당으로 나섰어야 했나?

 

“나는 민주당하고 친숙했다. 물론 언론계에 있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또 내가 직접 정치에 나설 것으로 생각도 안하고 있었을 때도, 민주당 사람들하고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냈다. 정강정책과 한반도 평화문제를 비롯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란 점 등이 나와 맞았다. 그래서 민주당을 선택했다.”

 

►오해의 시선이 있다. 민주당 행 자체가 한겨레신문에 오랜 세월 몸 담았던 이의 한계라고 보는 이도 있다.

 

“그것을 한계라고 본다는 건 적당하지 않은 표현인 것 같다. 내가 살아온 삶이나 생각하는 바와 가치,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아서 그런 것이지 그걸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추구하는 가치가 민주당의 이념과 같은 것이었다.”

 

►2010년 혜성처럼 등장해 민주당 후보가 됐다. 야권단일 후보로까지 부상했다. 그런데 당시 선거에서 정작 민주당 후보가 아닌 것 같은 상황이 곳곳에서 노출됐다.

 

“간단히 얘기하면 민주당원들의 생각에 민주당 후보가 당선가능성이 좀 있고, 지지율이 20%만 됐어도 조금만 더 밀면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 텐데 10% 언저리에서 왔다 갔다 하고 올라갈 생각을 안하니 이러다 한나라당 후보가 도지사가 되는거 아니냐는 염려를 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또 도민들도 그랬을 것 같다. 도민들도 제 생각을 들어보니 ‘괜찮은데 그러려면 진작 내려와서 검질(김)도 메고 그랬어야지. 시간도 얼마 안 남기고 와서 도지사 하겠다고 하는 거냐’고 화를 낼 법도 했다. 선거 끝나고 난 뒤 나로선 도민들한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밖에 없었다. 원망 같은 것이 있었으면 내가 상당히 상처를 크게 받았을 거고, 그러면 내 삶이 피폐했을 것 같은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18.3%에 이른 지지를 보내준 분들이 더 없이 고맙다. 비즈니스로 치면 고희범이 사업계획서를 갖고 왔는데 보니까 사업 안되겠더라. 헌데 생각이 괜찮고, 돈을 떼어먹을 생각이 없는 놈 같고 그러니 내 돈을 줄 테니 사업 잘 해보고 실패해도 돈 안돌려 받겠다. 사업 잘 해봐라는 마음으로 밀어준 것이다. 돈을 돌려받지 않을 생각으로 내게 돈을 준 분들이다. 떨어질 줄 알면서 찍어준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 다른 도민들도 이러다 한나라당 도지사 나오는 거 아니냐는 생각에 민주당과 관계도 있었고, 유력한 후보인 차라리 무소속이 되는 게 낫겠다란 생각으로 기다리다 지난 2010년 그런 선택을 했다고 판단한다. 다 고맙고 미안한 생각 밖에 안 든다. 그래서 나도 속이 편했고, 행복했고, 생각지 못한 사랑에 감사했다.”

 

2010년 선거 끝나고 도민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뿐이었다

 

► 2010년 선거 후 3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지금도 여론조사에서 강력한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차범위에서 왔다 갔다 한다. 선거구도가 짜여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7~8명을 늘어놓고 하는 설문조사 결과다. 거기에서 어떤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지금 지지도를 단순 비교하는 건 상식이 아니다. 최근 리서치뷰의 여론조사에선 내가 1등 한 적도 있다. 눈에 띄게 1강으로 부각되지 않았을 뿐 1등도 하고 2·3등도 하고 그런다.”

 

► 요즘 제주가 전국적 망신이다. 한마디로 막가고 있다는 비판도 듣는다. ‘한동주 게이트’가 이슈의 한복판인데 어떻게 보는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게 제주도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동안 공무원 줄세우기와 도민 편가르기 같은 나쁜 관행이 그냥 공공연한 비밀처럼 돌아다니다가 드러나 버린 것이다. 도민으로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도민들에게 정말로 죄송한 일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실패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그건 우리에게 약이 되는 거다. 이번 일이 공무원 줄세우기, 도민 편가르기, 공무원 선거개입과 같은 관행을 근절시키는 계기가 된다면 오히려 우리에게 전화위복이 될 수 있겠다. 국정원의 대선 선거개입 문제가 전국적인 논란거리가 돼서 공무원들의 선거개입을 막기 위한 법안도 논의중인데 최근 벌어진 일들이 제주도의 공무원 선거개입 문제를 차단하는 좋은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동주 전 시장은 검찰의 소환을 앞두고 처음 문제를 보도한 언론에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면 안되는 거다. ‘우근민 지사를 도와달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얘기한 것 중에 일부만 보도했다’고 주장했다고 들었다. ‘내가 도지사 되면 네가 서귀포시장 더 해라’는 얘기를 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 나는 누구고, 너는 누구인가? 서귀포시장 자리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도지사 밖에 더 있는가? 게다가 도지사가 그 동안의 인사와 관련해 정말 적재적소, 능력에 맞는 인사를 했다고 언론으로부터 평가를 받고 있는가? 정실인사·선거공신인사, 그런 식의 평가만 받았다. 그런 것들이 정황증거다. 충분히 한동주 전 시장의 ‘내면적 거래’라고 한 그 표현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래서 도민들이 다 같이 공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건 도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 민주당 도당이 우근민 지사와 한동주 전 시장을 같이 고발했다. 한 전 시장을 '깃털'로 보고 '몸통'에 표적을 두는 것 같은데···.

 

“내면적 거래에 한쪽 당사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발언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면적 거래에 상대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면적 거래의 두 당사자를 고발한 것이다. 한 사람은 공무원 선거개입을 금하고 있는 선거법 위반에 해당되고, 자리를 제시하면서 선거를 돕도록 한 사람은 매수죄에 해당된다. 그렇기에 두 사람을 고발한 것이다.”

 

►검찰의 수사는 공정하게, 제대로 할 것이라 보는가?

 

“압수수색도 하고 컴퓨터 하드디스크도 복원해서 분석하고 있다고 들었다. 지금 하고 있는 걸 보면 잘하리라 생각한다.”

 

내면 거래라면 상대방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낙선 후 3년 6개월이 지났다. 그때는 혜성처럼 등장한 후보였지만 지금은 민주당 도당위원장이다. 제주 정치권의 한 축인 책임자다. 그런데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였던 분노와 슬픔은 더 커진 것 같다. 결국 도당 위원장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 못한 것 아닌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 민주당이 도의회에서 다수당인데 다수당으로서 잘 못한 거 많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책임이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도의회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주제가 있다. 재선충 사태도 마찬가지다. 재선충 얘기가 처음 도의회에서 나왔을 때 집행부는 왜곡·축소해서 감추기에만 급급했다. 도에서 제대로 실상을 공개하고 대안을 제대로 만들어 제시하지 않았다. 과거에 어떤 도의원을 지낸 분의 얘기를 들었는데 한번하고 다시는 안할 생각을 했다고 한다. 백날 소리 질러봐야 집행부가 하지 않는다. 무력감에 사로잡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 지금도 마찬가지다. 도의원들이 답답해 미친다. 집행부가 안하고 버티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민주당이 대선에서는 졌지만 도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는 오히려 대통령보다 도지사가, 도의회가 더 큰 몫을 차지한다. 민주당이 반드시 이번 지방선거 이겨야 제주도민의 삶과 제주도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 기여할 수 있다.”

 

►도의원들이 많이 분노하고 있다고 하고, 집행부하고 일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현직 지사는 관선 2번 민선 3번을 거친 5선 관록의 도지사다. 왜 그리 됐나?

 

“소통의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일의 우선 순위나 관심이 도민들의 기대하고 있는 도지사의 역할과 동떨어진 것 아닌가란 생각이다.”

 

►한동주 게이트도 문제지만 지난 번엔 재선충 방제작업 중 숨진 분의 영결식 당일 도지사의 골프라운딩 파문이 불거졌다.

 

“도지사는 도민을 행복하게 만들어 줘야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도민이 아파하는 일이, 단 한사람이라고 해도 또는 정말 억울하다고 하는 도민이 한사람이라도 있다고 하면 가슴 아파야 하는 것 아닌가? 그냥 보상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 아니라 도민을 아끼고 사랑하고, 도민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런 일이 안 일어났다. 도지사는 그래야 한다. 그냥 아무 책임도 권한도 없는 그냥 보통사람이면 그러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지만 도지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 도지사에 나서 민주당 후보가 되려면 경선을 거쳐야 하는데 물망에 오르는 김우남 국회의원과 박희수 도의회 의장과는 경선 관련 논의를 한 적이 있나?

 

“그런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 공식적으로 출마선언을 하지 않은 마당이다. 그러다보니 새누리당에는 후보가 많은데 민주당은 후보가 없는 거냐고 말하는 분도 있다. 새누리당 처럼 내년 지방선거에 너무 몰입해 조기과열 시키는 거는 바람직하지 않다.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선거체제로 가면 된다. 올해 말이나 신년 초에 발표해도 충분하다. 김우남 의원은 국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말산업 관련 법안도 만들고, 최우수 국감 의원에 선정되는 등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 일 제대로 안하면서 선거전에 벌써부터 뛰어 들었다고 생각해 보라. 박희수 의장은 ‘연말까지 출마 문제에 대해 얘기하지 않겠다. 도의회 의장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대단히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도지사가 해야 될 일 안하면서 당원모집하고. 정당정치까지 왜곡시키고, 현안 도외시하고, 입당구걸하고 하는 장면을 보기가 안쓰럽다. 민주당의 도지사 후보감은 많다. 어떤 분들이라도 제주도에 대한 사랑과 제주에 대한 미래 비전을 갖고 당내에서 깨끗하게 경선을 치르고 그 과정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민주당의 경제민주화·보편적복지 같은 가치를 중심에 두고 각자가 가진 제주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면서 도민들의 판단을 받으면 민주당 후보가 누가 되든 강한 후보가 될 수 있다. 본선에 가서도 경쟁력 있는 후보가 될 것이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

 

►공식 출마선언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민주당 도당도 당원이 3만5000명이나 된다. 경선을 앞둔 고지전이 벌어진 것 같은데···.

 

“어느 당 처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름을 도용당했다거나 당비를 대거 대납하면서까지 입당시킨 경우는 없다. 다 본인의 동의에 따라서 입당한 당원들이다. 당원수야 새누리당 만큼은 아니지만 괜찮은 당원이 많이 확보가 됐다.”

 

►선거에 출마하려면 도당 위원장을 사퇴해야 하는 것으로 아는데 언제 사퇴하나?

 

“도당 위원장은 선거 120일 전, 즉 1월 말 정도에 사퇴해야 한다. 법정시한이고 당헌당규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다 일찍 그만 둘 생각이다. 차기 도당위원장 선출 문제를 세 분 국회의원과 논의하고 지방선거를 준비한다. 도의원 선거까지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도록 제대로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차질이 없도록 조금 일찍 사퇴하려고 생각 중이다.”

 

임기 이전인 내년 1월 하순 도당위원장 사퇴한다. 승리를 향한 걸음이다

 

► 김우남 의원도 여론조사서 강세다. 새누리당엔 양원찬 재외도민총연합회장도 가세했다. 슬슬 세대교체 논리와 ‘제주판 3김 청산’ 등이 말이 나오고 있는데···.

 

“세대교체란 표현에는 우선 나이가 많으니 선거에 출마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얼마나 미래 비전에 대한 열정과 꿈이 있는가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굳이 세대라는 말을 붙인다면 ‘세대교체’라는 말보다 ‘세대동행’이란 말이 오히려 지금 시대정신에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머리가 흰 사람한테는 지혜를 구하고, 머리가 검은 사람한테는 의리를 구한다. 역사발전을 위해서 이런 게 필요하다. 나이 든 세대가 제외되고 젊은 사람들로만 어떤 일을 꾸릴 때 과연 역사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가엔 의문을 갖고 있다. 다만 제주도에 필요한 리더십은 21세기에 필요한 시대정신을 바로 읽고 시대 정신에 맞는 리더십이다. 또 하나는 통합의 리더십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공무원 사회와 도민사회가 분열되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통합돼서 화합의 정치를 해야 제주도가 앞으로 힘차게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리더십이 필요하다.”

 

►‘제주판 3김’으로 전·현직 지사를 통칭하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 말씀 하시는 걸 보면 우근민 지사와 김태환 전 지사에 비해 신구범 전 지사와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신 지사의 경우 다른 두분과 다르게 보인다. 김태환 전 지사도 불출마 선언을 해서 도민들에게 박수를 받았고 나 역시 박수를 친다. 그 분이 특별자치도 완성에 대한 꿈도 강했고 지지자들의 기대도 컸는데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상당한 용단이다. 신 전 지사는 지금도 끊임없이 제주의 미래 비전에 대해 고민하고, 끊임없이 대안을 제시하고, 연구하시는 분이다. 세분이 도지사를 했던 22년 동안 신 전 지사가 맡았던 기간은 4년 몇 개월로 알고 있다. 그 기간에 그분이 이룩한 일들을 보면 대단한 일들을 했다. 삼다수·컨벤션센터 등이다. 물론 뜻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오히려 도민들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했지만 당시 그분이 제시했던 방향은 맞는 것이다. 제대로 추진됐으면 피해가 생기지도 않았을 거고 효과가 상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쉽다. 도로를 만드는데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본 돈을 얻어와서 그 일을 했다.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 당시로서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탁월한 방식이었다. 그 분이 생각하는 제주도의 미래 비전이나 열정을 상당히 존경하고 배우고 싶은 게 많다. 제주도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도 비슷하고 그래서 좀 다른 분이다란 생각 때문에 그 분을 높이 평가한다.”

 

►향후 정치적 연대의 길을 열어둔 것 까지는 아니다란 소린가?

 

“신 전 지사께서 강하게 출마의욕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아직 뭐라 말할 입장이 아니다. 그 분이 그런 얘기도 하신 적이 있다. ‘후배를 키워야지라고 하는데 누구는 키워서 컸나 자기가 커야지’라고 하셨다. 맞는 말씀이다. 능력 있고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후보 있다면 붙자 이거다. 그게 맞다. 그래서 붙어야 될 것 같다(웃음). 세상 일은 모른다. 가능성은 열려 있다. 단정할 수 없다. 그분과 TV토론에서도 붙어보고 싶다. 배울게 많은 분이다.”

 

신 전 지사와의 연대?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서울살이 하면서 무던히 제주의 문제를 자꾸 세상에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고향 제주에 대해 뭉클함을 느끼는가?

 

“1991년 제주개발특별법 반대 운동이 벌어졌을 때의 일이다. 제주사회문제협의회 회원, 재경제주학우회 학생들과 국회 앞에서 시위를 했다. 현수막과 유인물 다 준비하고 펼치고, 낭독하고 그러다가 다 잡혀갔다. 나도 잡혀갔다. 그런데 언론에 있는 사람이 경찰서에 잡혀가 있으니 경찰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경찰이 나에게 ‘당신은 좀 나가라’고 말했다. 내가 ‘그런게 어딨냐? 다 같이 나가야 된다’고 맞섰다. 그런데 당시 제주출신 국회의원 한분이 오셨다. 대학생들이 있었는데 다음날 기말고사를 치러야 되는 학생들이 있는 걸 알고 자기가 보증을 서 줄테니 내보라고 얘기를 했다. 고마워 할 일이지만 ‘국회에서 제대로 일을 해야지. 여기서 사람 빼주는 일이 국회의원이 할 일이냐?’는 마음에 해당 학생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너 오늘 꼭 나가야 되냐? 안나가면 어떻게 되냐?’ 묻자 ‘재시험 보면 된다’고 하길래 나가지 말라고 했다. 그리곤 그 국회의원에게 ‘여기 와서 이상한 생색내지 말고 국회에 가서 일 똑바로 하라’고 쫒아냈다. 4·3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미국 유학 가려던 친구, 영국 유학 가려던 친구, 대학원 진학 앞두고 있던 친구들이 그 계획을 모두 연기했다. 미국 유학 가려던 친구는 특별법 제정 후 유학을 떠나 지금 미국 정부의 보건관련 분야 연구원으로 있다. 영국에 가려던 박찬식이란 친구는 그 후에 영국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지금 대학 강단에 섰다. 제주가 고향이 아닌 육지 친구가 와서 우리 일을 도운 적도 있다. 그 친구 역시 지금 사업가로 성공했다. 4·3 영령들이 축복해서 그런 것 같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땅이 제주다.”

 

► 4·3이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된 주제인 듯하다.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안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3만에 해당되는 제주의 가족들이 정말 억울하게 살았다.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죽임을 당한 것만도 억울한데 그 후에 아무것도 못했다. 연좌제에 묶여서 그랬다. 한겨레신문에 있을 때 제주에 취재를 온 적이 있는데 4.3관련해 당시 관련자들을 만나면서 내 경우로 상상해 보니 억울해서 무슨 짓을 저질렀을 것 같았다. 너무 억울한 것이다. 억울하면 안된다. 억울한 것을 풀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서귀포 강정문제도 마찬가지다.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해야겠다고 동의해야 손해도 감수한다. 더 큰 물질적 보상이 주어진다고 해도 억울하면 안되는 거다.”

 

►현실은 개탄스러울 지 몰라도 미래를 그려보는 제주의 꿈이 있나?

 

“정말 내가 제주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것을 탐방을 다니면서, 마을을 돌아보면서 실감했다. 제주는 정말 보물섬이다. 제주도가 있는 지도를 거꾸로 돌려놔보면 제주도의 지정학적 가치가 보인다. 제주도 위치는 대한민국의 남쪽 끝에 붙어있는 외로운 섬이 아니고 동북아의 중심이다. 그러니까 제국시대 냉전시대 주변국들의 탐욕의 대상이 됐던 것이다. 그래서 제주의 역사가 수난의 역사였던 거다. 그러나 달라졌다. 시대가 달라졌다. 동북아의 중심이다. 제주도의 환경은 또 얼마나 척박했나? 파도 파도 돌이다. 여러 곳의 돌담 밭담을 보면 아기자기하고 그림이야 좋지만 그 밭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천형같은 것이다. 암반을 깨서 밭을 일구고 그렇게 나온 돌로 밭담을 쌓았는데 그게 이제 문화유산에 등재된다는 소식이 있다. 흑룡만리라고 부른다. 그 척박하고 농사도 지을 수 없고 가축이라도 들어가면 갇혀서 죽는 곶자왈을 보자. 옛날 장비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버려졌던 땅이다. 이게 한대부터 난대까지 식물이 자라는 생태보고다. 지하수 저장탱크다. 이젠 훼손하지 않고 걷는 길 만들어 놓아 힐링의 메카가 됐다. 이런 것들이 유네스코 3관왕이 된 비결이다. 얼마나 우리한테 큰 복인가? 제주도의 환경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유네스코 3관왕이기 때문이 아니고, 외지 사람들이 그 환경이 아름다워 보러 오기 때문이 아니고 우리와 우리 세대의 먹거리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것이다.”

 

“언제 제주도의 물이 기름보다 비싸게 팔릴 것이라고 생각했나? 물은 지켜야 한다. 그러려면 친환경 농업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친환경 농업 비율이 전남은 30%인데 제주는 3%다. 판로가 없고 일한만큼 돈이 안생기니까 그렇다. 한·중FTA를 생각해야 한다. 어마어마한 중국시장에서 비싼 제주산 친환경 농산품이 불티나게 팔릴 것이다. 그걸 위해 삼다수 팔아 번돈 친환경농업에 좀 투자해서 일정기간 소득보전 해주면 왜 우리가 갈 길이 없는가? 제주도에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하게 인구가 늘었다. 그런데 높은 자리, 높은 연봉 이런 것 다 포기하고, 각박한 경쟁사회에서 살기 싫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내려오는 사람들이다. 제주에 특별한 근거가 없는데도 몰려오고 있다. 이게 21세기의 시대정신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과거 경쟁·성장·건설의 가치로 표현되던 시대와 달리 환경·복지·문화·교육 이런 것들이 상당히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에 맞는 땅이 제주도다. 여기야 말로 미래의 땅이다.”

 

*** 그는 인터뷰 후 나중 전화를 걸어와 제주에 대한 꿈을 물어본 질문에 다음의 답변도 더 넣어주기를 희망했다. 그가 전화로 추가한 답변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말이 있다. 장애인들의 통행불편을덜어주는 건축설계 등의 디자인을 총칭한다. 하지만 진짜 유니버설 디자인은 장애인과 여성·노인·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들이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사회 전체를 보편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이다. 약자가 편하면 모두가 편한 디자인이다. 제주사회를 그렇게 디자인 하고 싶다. 더불어 문화가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제주도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보물섬이다. 국내외 문화예술인들의 관심 역시 많다. 시대 흐름과 전국적 관심, 그런 가치를 활용해 제주도를 문화융성의 땅으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제주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보물섬...동북아의 중심이다

 

►제주의 가치와 자원을 알아본다고 이해한다. 그런데 그런 꿈을 실현할 이가 왜 고희범이어야 하는가?

 

“21세기 시대정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미래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 최근에 전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게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가져야 할 덕목 중 중요한 세가지를 꼽았다. 첫째가 청렴이고, 둘째는 추진력, 셋째는 통합의 리더십을 들었다. 거기에 내가 좀 적절하지 않은가? 청렴의 문제다. 제주도지사는 권력이 하도 막강해서 뒷주머니 찰 생각하면 엄청나게 돈 챙길 수 있는 자리다. 그런 생각 안하고 일만 하려고 작정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무지 많은 자리다. 그렇게 살아 왔다. 그래서 돈이 많지 않다. 하지만 돈은 벌어봤다. 한겨레신문사 나와 한국에너지재단 사무총장하면서 세계에너지총회를 유치했다. 1년동안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고 남아공·덴마크·한국 셋이 붙었는데 압도적으로 이겼다. 한국이 별다른 에너지 자원이 없는데 해냈다. ‘에너지를 우리가 어떻게 활용해 왔는지 우리도 보여주고 당신들에게서도 배우겠다. 회의도 엄청나게 편하게 해주겠다’고 설득을 해서 압도적으로 이겼다. 지난 10월 13일 대구서 5일 동안 6400명이 등록. 역대 에너지 총회 참석자 최고기록을 깨뜨렸다.”

 

►민선 1~5기 재임한 지사들이 비전창출형, 또는 갈등관리형 리더란 평을 듣고 있다. 물론 오히려 갈등유발형 리더란 경우도 있었는데 스스로는 어떤 유형이길 원하나?

 

“제주의 미래비전을 창출하는 리더가 되길 소망한다. 소통을 통한 혁신과 통합의 리더십을 지닌 리더란 말을 듣고 싶다.”

 

 

►대학에서 이탈리어과를 전공했다.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지금껏 이탈리아에 두 번 갔다 왔다. 기자시절인 1980년대 중반 3개월 네덜란드에 머무를 일이 있을 때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또 에너지재단 사무총장 시절 에너지총회 유치 문제로 이탈리아를 찾은 적 있다. 선택한 이유는 별 거 아니다. 그 시절 전기 대학입학과정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다. 후기 대학으로 한국외대를 선택했는데 독일어과를 선택하려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태리 말이 좋아 보여서 이탈리어과를 선택했다. 그 때 어떤 인연으로 외대 교수님도 만났는데 그 분도 이태리 말 하는 사람도 적고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거라고 추천해서 그냥 그렇게 원서에 적었다. 정작 이태리어는 이태리 갔을때 길 찾는데 써 먹었다. 나도 놀랐다. 그때 딱 두 번 써먹은 것 하고 ‘칸초네’라는 이태리 노래 부를 때 써먹은 게 다다(웃음).”

 

►기독교 신앙이 삶이 한 부분인 것 같다. 직장생활 도중엔 신학대학에서 석사과정도 밟았는데···.

 

“아버지가 기독교 장로이다 보니 자연스레 내 종교도 기독교가 됐다. 하지만 CBS에 들어간 건 당시 가장 진실보도와 가까운 뉴스보도를 하던 곳이 그곳이라서 들어갔다. 아버지는 오히려 반대했다. 기자를 하겠다고 했더니 왜 그 직업이냐고 아버님은 반대했다. 신학대학은 직장에 다니던 시절 스스로가 소진되는 것 같아서 공부를 좀 할까 하는 마음에 선택한 것이다. 사회학을 할까? 역사를 할까? 그러다가 언론통폐합 파문 시기였는데 CBS에 오시는 신학대학 교수 중 양심적인 얘기하는 분들이 많았다. 특히 한신대 신학과 교수들이 그랬다. 그 분들에게 물었는데 신학 재밌다. 목사가 될 생각이 없어도 공부할 만한 분야라고 추천했다. 그래서 갔다. 소진되는 기분이라 뭘 좀 채우고 싶어 공부했을 뿐이다. 그 땐 신학이었는데 지금 같았으면 종교학을 공부할 걸이란 생각이 든다.”

 

►선친께선 오래 전 타계하셨지만 모친이 지난해 돌아가신 걸로 안다. 102세를 누리셨는데 효자라는 소문을 들었다.

 

“효자 아니다. 어머님 속을 제일 썩인 아들이다. 어머니 얼굴이 고우셨다. 큰아들은 좀 어려웠던 모양이다. 난 막내니까 좀 편하셨을 것이고. .(이 대목에서 그는 눈물을 보였다) 내가 찾아가면 어머니가 얘기하고 싶어하던 게 많았다. 옛날 얘기하고 싶어 하셨고 들어드리면 기분 좋아하셨다. 나중에 연세가 드니까 말씀도 줄어들고 묻는 말씀에 그저 너무 길지 않게 대답하시는 정도였다. 간직하고 싶어 녹음도 해뒀는데 좀 웃긴다. 어머니는 다리 주물러 드리는 거, 팔이나 어깨 주물러 드리는 걸 좋아하셨다. 형님집에 계셨는데 내가 일주일에 한 두번 가서 주물러 드리면 ‘시원하다. 고맙다. 됐다. 이제 됐다. 그만 가라’고 말씀 하시면 얼른 뛰어 나오고 그랬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그게 엄청난 칭찬이었다는 걸 알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일주일 후 관성적으로 어머니 다리 주물러 드리러 형님네 집으로 가다가 차를 돌린 적이 있다. 내가 그 말을 즐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떠올리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미안하고 슬프고 그런 것이다.”

 

어머니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미안하고...

 

►여러 사람들이 하는 얘기다. 지금 거론되는 제주도지사 후보 중 고희범 만큼 SNS 공간에서 소통에 능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소통기획가’란 평도 나오는데···.

 

“소통을 제가 좋아한다. 남들 얘기 듣는 걸 좋아한다. 내가 하고 있는 생각에 대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그러다보니 페이스북 같은 경우 친구가 꽉 차서 5000명에 육박한다. 재미있는 일이다. 남들 올려놓은 사진도 보고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기상천외한 생각들도 보고, 마을 돌때 이야기들을 하나씩 올리고 있는데 거기에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붙는다. 소통하면 내가 얻는 게 더 많다. 잃는 것은 없다. 그러니 소통에 재미가 붙는다.”

 

► 내년은 제주도민에게 어떤 해가 되길 원하는가?

 

“제주도가 이제 변해야 한다. 정말 변해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해야 되는, 어쩌면 약간 불편할 수도 있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조금 다른 방식의 그런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썩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일지라도 제주도는 변화해야 된다. 지금까지 익숙해져 있던 나쁜 것에서 떠나야 한다. 또 새로운 것에 대해서 도전해 보는 것 역시 바탕은 마련됐기 때문에 우리가 자세만 제대로 가지면 갈 수 있는 그 길로 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내가 거들겠다. 제주의 변화를 위해서 함께 가자란 말씀을 드리고 싶다. 어쨌거나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도민들게 부끄럽고 죄송하다. 그러나 누구의 책임을 묻는 것 보다는 마음을 모아서 우리에게 산적해 있는 이 문제들을 힘을 모아서 해결해 나가는 데에 지혜도 모으고 마음도 모으고 해야 할 때다. 그런 데에 마음을 쏟아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린다.”

 

 

 

☞고희범은?
 = 전 한겨레신문 사장, 전 한국에너지재단 사무총장, 현 민주당 제주도당 위원장

 

학력

1963. 02. 제주북초등학교 졸업
1966. 02. 오현중학교 졸업
1969. 02. 오현고등학교 졸업
1969. 03.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 입학
1973. 02.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 졸업
1982. 03. 한신대학 신학대학원 입학
1985. 02. 한신대학 신학대학원 졸업(신학석사)

 

경력

 

1975. 10. ~ 1980. 11. CBS (사회부, 문화부, 정치부 기자)
1980. 12. ~ 1981. 04. KBS (외신부 기자)
1981. 04. ~ 1988. 03. CBS (사회부 차장)
1988. 04. ~ 2003. 02 한겨레신문사 (사회부 정치부 국제부 부장, 출판국장, 편집부국장, 광고국장, 논설위원)
2003. 03. ~ 2005. 03.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 사장
2005. 03. ~ 2007. 03. 한겨레신문사 고문
2005. 03. ~ 2008. 03.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
1995. 02. ~ 1997. 05. 제주사회문제협의회 회장 (현 고문)
1997. 03. ~ 1999. 03. 제주4.3 50주년기념사업추진 범국민위 운영위원장
1999. 03. ~ 2001. 04. 제주4.3 진상규명 명예회복추진 범국민위 운영위원장
2005. 03. ~ 현재 윤이상평화재단 이사
2006. 01. ~ 2008. 01. 제주4.3연구소 이사장 (현 이사)
2006. 11. ~ 2009. 03. 한국에너지재단 사무총장
2007. 01. ~ 현재 제주4.3 진상규명 명예회복추진 범국민위 공동대표
2007. 03. ~ 2009. 03.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
2007. 05. ~ 2009. 08. 제주금융포럼 회장 (현 고문)
2009. 04. 민주당 공천심사위원

 

학위논문 
커뮤니케이션 구조에 대한 윤리적 고찰 (1985년 한신대 신학대학원)
 

 

수상경력
제1회 가톨릭 언론대상 (1988년 한국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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