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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세 가보세, 을미적 미적거리면 병신돼 못가리"[발행인칼럼] 120년 전 갑오경장과 갑오농민혁명이 알려주는 미래
양성철 발행.편집인  |  j1950@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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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1.02  11: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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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성철/ 발행.편집인
갑오년-. 역사의 교훈이 옷깃을 여미며 다가오는 새해다. 갑오경장과 갑오년에 벌어진 동학농민혁명이 떠오른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지만 그 교훈은 서로 다르게 다가온다. 음미할 이유가 있다.

먼저 갑오년에 벌어진 동학농민혁명.

1894년 여름의 일이다. 정부와 전주화약을 맺은 동학 농민군이 삼남 지방 각처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개혁을 추진하던 무렵, 농민들 사이에 “갑오세(甲午歲) 갑오세 을미적(乙未賊) 을미적거리면 병신(丙申)되어 못 가리”라는 노래가 떠돌았다. 문자대로 풀 수 없는 비문(非文)의 노래다.

그러나 누구나 그 뜻을 알았다. “갑오년에는 성공했으나 을미년(1895년)에 왜적이 공격할 것이니 병신년(1896년) 이전에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예언적 의미와 “이왕 난리를 일으켰으니 서울까지 가보자, 미적 미적대다가는 병신 되어 못 간다”는 선동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었다.

동학 농민운동은 병신년이 되기 전에 진압됐다. 임오군란을 진압한다고 청나라 군대를 끌어온 그 대가로 이번엔 동학농민군이 일본군들의 총부리에 스러졌다. 당시 1500만 조선 인구 중 100만명이 거사에 참여했고, 그 가운데 30만명이 세상을 등졌다. 바로 갑오년의 일이다.

그 이야기를 다룬 민족극이 1986년 민족극의 새 지평을 열었던 아리랑 극단의 ‘갑오세 가보세’다. 문화부 장관을 지낸 김명곤 전 국립극장장의 대표작품이다.

   
▲ 갑오동학농민혁명 기록화
이제 갑오경장이다.

1894년 7월 27일부터 1895년 8월까지 조선 정부에서 전개한 제도개혁 운동이자 ‘갑오개혁’이라고도 불렀다. 내각의 변화에 따라 1차 갑오개혁, 2차 갑오개혁, 후에 을미개혁(3차 갑오개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개혁은 외세, 그것도 일본의 준동에 의해 벌어진 외삽(外揷)적 개혁이었다. 갑오경장 초기 흥선대원군과 이준용은 명성황후 폐서 시도에 착수했다. 흥선대원군은 이원긍을 오토리 일본 공사에게 보내 명성황후 폐서의 취지가 담긴 문건을 제시하고 동의를 구했다. 이준용도 오토리 공사를 설득하기 위해 일본 공사관을 두차례 방문했다. 주요 개혁으로는 신분제(인신매매, 노비제)의 폐지, 조혼 금지, 과부의 개가 허용, 고문과 연좌법 폐지 등이었다.

그러나 개혁방향에 불만을 품은 일본 측과 고종·명성황후 등의 공격으로 박영효가 일본으로 망명, 개혁은 약화되고 김홍집 내각에 의해 개혁이 이어졌지만 사실상 명성황후 시해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 후 내각 요인들이 살해당하며 개혁은 종결됐다. “거문고의 줄을 팽팽하게 고쳐 맨다”는 경장(更張)의 의미로 끝난 사연이다.

동학혁명과 갑오경장은 엇갈린 듯 보이지만 악연이었다. 동학농민군의 우두머리 전봉준의 사형을 집행한 이는 서광범이다. 지금의 직책으로 치면 법무부 장관이다. 김옥균과 한 무리가 돼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한 시절 ‘역적’이었다. 동학농민군의 토벌대로 일본군을 따라 되돌아온 인물들의 상당수는 타락한 갑신년의 개화파들이다. 물론 그후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을 참살한 이는 조병갑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전봉준이 살던 전라도 고부 고을의 군수였다. 탐욕과 부패로 얼룩졌던 벼슬아치의 대명사로 불리던 이다.

애초에 일본세력에 떠밀려 벌인 갑오경장은 무위로 끝났고 그후 일본세력을 견제해야 했던 고종은 그런 개혁을 무효화해야 했다. 게다가 1895년 명성황후가 을미사변으로 어이 없는 죽임을 당한 후 이듬해인 1896년 임금은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의 수모를 겪었다. 물론 김홍집을 비롯해 갑오개혁의 주동자들은 결국 몰살됐다.

   
 
한국정치학계에서, 사학계에서 동학혁명과 갑오경장은 한국근대민주주의론의 핵심주제다. 한국 근대화 과정의 주요소재지만 두 사안은 다르게 평가받는다. 내발적·내생적 주체 근대화 과정이 동학농민혁명이었다면 갑오경장은 외생적·외삽적 근대화과정으로 불린다.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현세에 던져주는 교훈은 그 의미가 다르다. 갑오경장 후 일본의 세력은 한반도에서 더욱 공고화됐고,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난 후 민중의 삶은 더 처참하게 변해버렸다. 민족의 명운을 걸고 나섰던 농민군은 실패했어도 민중의 지지를 얻었지만 갑오경장을 주도했던 엘리트 위정세력은 그렇지 못했다.

60갑자(甲子)를 두 번 넘겨 120년이 지난 오늘-. 한반도엔 지금도 민족의 명운을 가르는 일이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다. 여전히 국제관계의 틈바구니에서 ‘자존’의 논리와 ‘외세의존’의 논리는 국제정치 환경에서 한반도의 생존을 가르는 대척점에 서 있다.

그 틈바구니에 낀 제주지만, 과거 바라보던 북방이 아닌 태평양을 응시하는 제주의 미래는 어느 길로 가야 할까? 더욱이 올해는 그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치’가 난무할 ‘선거의 해’다. 2014년 우리의 선택은 무엇일까? 누가 우리의 자존을 지키며 개혁을 완수할 것인지, 과연 우리 도민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가 무척 궁금하다.

“갑오세 갑오세/ 을미적 을미적거리면/ 병신되어 못 가리.”

120년 전 농민들이 불렀던 노래가 다시 귓전을 때린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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