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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철의 파워人터뷰] '안철수 신당' 간판 내 건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
"시대상황이 날 다시 불러 내 ... 원희룡, 제주지사 본선 나오면 난 접는다"

 

 

한편의 드라마다. 격동의 현장에서 그가 맞닥뜨렸던 격정의 스토리가 그의 삶을 채웠다. 굽이굽이 마다 모질 디 모진 인연을 만났고, 성공과 환희가 있었지만 회한과 분노가 치솟기도 했다. 제주의 성공신화를 거침없이 써 나갔던 그였고, 그랬기에 그의 실패와 좌절에 가슴 졸이며 눈물을 흘렸던 도민들이 수두룩하다.

 

 

<제이누리>가 제주현대사를 살아간 인물들의 첫 회고기록인 ‘격동의 현장-남기고 싶은 이야기’ 연재의 첫 주자를 그로 결정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

 

제주의 영광과 환희의 순간마다 그 중심에 그가 있었지만 그의 삶은 돌이켜보면 굴곡이다. 급전직하 추락하기도 했지만 기사회생도 반복했다. 골칫덩이 ‘X차’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일약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스타’이기도 했다.

 

1993년 말 관선 제주도지사로 부임할 때부터 그는 화젯감이었다. 육군사관학교에 진학, 장교의 꿈을 꾸던 ‘생도대장’이 사관학교 4년 시절 중퇴, ‘사랑’을 택한 그의 사연이 그랬다. 아이를 얻자 부양의 의무로 공부에 매달린 지 6개월만에 행정고시에 합격한 수재인데다 행정고시 출신 제1호 제주도 사무관 임용자란 그의 공직입문 스토리도 기록이었다. 게다가 농림수산부 고위관료 시절엔 서슬 퍼런 ‘6공의 황태자’ 박철언에 맞서는 기백을 보이다가 추방되듯 미국으로 쫓겨났던 그의 일화에 이르러선 그의 강직과 도전정신에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굴곡 많았던 한편의 드라마 ... 제주의 영광과 환희의 중심에 있던 신구범

 

그는 1995년 민선 1기 6·27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나오고서도 “나는 제주도민당의 후보”라고 주창,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것도 집권여당이 내세운 거함인 전임 지사 우근민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그리고 그는

1998년 6월 말 퇴임까지 관선 1년3개월과 민선 1기 3년의 임기를 다 합쳐 고작 4년3개월을 재임했다. 하지만 시간에 비해 그의 작품은 화려했다.

 

 

“제주의 물을 파는 신선달이 되겠다”는 선거공약 대로 그는 공기업을 만들어 ‘제주삼다수’를 시장에 내놔 돌풍을 일으켰다.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유치 실패를 기회로 만들어 제주국제컨벤션센터를 건립하더니 지자체론 처음으로 복권사업에 뛰어들어 제주도 효자수익의 근원인 관광복권을 발행했다. 세계 섬들의 유엔(UN)을 주창하며 동북아 섬관광정책포럼을 창설한 그의 머리에서 내친 김에 나온 역작이 ‘제1회 세계섬문화축제’다.

 

1관(3.3kg)에 고작 1000원도 못 건지던 감귤을 품질위주 유통 시스템으로 개편한 감귤생산조정제 역시 농업전문가 다운 그의 작품이었다. 현재의 감귤생산유통명령제의 모태다. 출중한 아이디어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예산이 모자라 계획된 도로공사가 미뤄지는 판에 일본 노무라증권을 찾아가 듣도 보도 못한 ‘사무라이 본드’(일본 채권)란 싼 이자 돈을 빌려와 척척 공사를 벌였다. 돈이 말라 허덕대던 구제금융(IMF) 외환위기 시절에 이르러 그 돈의 진가는 더 빛을 발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환희와 영광만을 안겨준 게 아니었다. 파란만장한 삶이 바로 그의 앞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1998년 현직이라는 유리한 고지에 오르고서도 집권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우근민 후보에게 어이없는 일격을 당했다. 그리고 그는 훗날 스스로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경선 불복’의 길을 걸었다. 결과는 낙선. 그후 축협중앙회장이 된 그는 정부의 농·축협 통합에 맞서다가 국회할복사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2002년엔 현직 우근민 지사와 제3라운드 대결을 벌였지만 가해자도 아닌 그가 오히려 황당한 ‘성희롱’ 역풍을 맞고 고꾸라졌다. 제주도 공직사회는 물론 사회 각계 전반에 우-신 갈등이 증폭됐고, 검찰 등 사법기관과 지리한 논쟁을 벌이던 ‘은혜마을 30억 출연’은 법원의 각급심에서 유·무죄를 오가다 2007년 그를 영어(囹圄)의 몸이 되게 만들었다.

 

친환경농업회사 법인인 (주)삼무(무농약·무항생제·무화학비료)를 만들고, 전시판매장인 삼무힐랜드를 건립하며 재기의 나날을 불태우던 그였지만 기업은 그의 옥살이와 함께 공중으로 사라졌고, 공들여 지은 건물은 주인이 바뀌었다.

 

그가 다시 등장했다. 지난해 8월 <삼다수하르방, 길을 묻다>란 책을 들고 다시 도민들 앞에 나타난 그는 그 시기를 전후로 알듯 모를듯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더니 급기야 9월 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칠십을 넘긴 나이지만 그는 “꿈은 유효하다. 도민들과 나눴던 꿈을 다시 펼치고 싶다”며 분연히 일어섰다.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이들을 향해선 “주전자에 물이 가득 차면 물은 저절로 꼭지로 나온다”며 ‘대안부재론’을 말했다.

 

“독선과 오만은 이미 버렸다. 나의 정치는 화합이다”란 그는 그래선지 영원한 맞수 우 지사를 향해서도 “언제든 손을 내밀 준비가 돼 있다”며 화해의 뜻을 보였다. 김태환 전 지사를 놓고선 “언제든 술 한잔 기울이고 싶은 친구”라며 시대를 함께 짊어진 동지적 애정을 보였다. “결국 우리(신구범-우근민-김태환)가 우리 시대를 책임지고 마무리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던 그는 “그러나 원희룡 전 의원이 시대의 주역으로 나선다면 굳이 나여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그가 나선다면 난 접겠다”고 잘라 말했다. 제주를 위한다면 자신보다 원 전 의원이 제주에 더 필요한 인물이란 이유에서다.

 

"내 가슴에 달린 훈장은 제주 ...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간다"

 

그는 이제 ‘안철수 신당’을 선택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새정치의 전선에 참여한다”는 말로 그의 이름을 딴 신바람과 안철수의 안풍(安風)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란 기대를 안고 있다.

 

“내 가슴에 달린 훈장은 제주.” “안일한 불의의 길보단 험난한 정의의 길을 걷겠다”는 신조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는 신구범 전 제주지사. 그를 지난 15일 오후 4시 <제이누리> 회의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직후인 17일 그가 안철수 신당행을 공표, 입당을 앞둔 시점의 그의 번민과 고뇌, 심경이 인터뷰에 담겨 있다.

 

다음은 1시간 30여분 동안 나눈 그와의 대화록, 인터뷰 전문이다.

 

 

▶어떻게 지내시는가?

 

 

“정책개발로 시간을 보낸다. 최근 신공항 건설 문제를 비롯해 지금까지 4건의 정책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앞으로 10개의 아이템이 더 있다. 그런 정책을 구상하고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9월 16일 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서두른 이유라도 있나?

 

“서둔 건 전혀 아니다. 다른 후보들이 너무 재고 있는 것 아닌가? 일단 출마 의사가 있으면 가능한 한 하루라도 빨리 도민들에게 보고하는 게 도리다. 이런 저런 여건 따지고, 너무 재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다. 예컨대 우근민 지사의 경우 행보는 소위 선거를 향한 행보를 오래전부터 하고 있는데 출마선언은 하지 않는다. 선언을 먼저 하고 움직이는 게 도민에 대한 도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1995년 첫 민선 도지사를 지냈지만 그후 두 번의 실패를 겪었다. 다시 나오는 이유는 뭔가?

 

“저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꿈을 이룰 권리가 있다. 그 누구도 제약해선 안된다. 개인적으로 선거에서 한번 당선되고 두 번 낙선했다. 그러나 낙선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우리가 법을 지키는, 공명정대한 스포츠 같은 선거를 치렀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낙선 자체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다만 이번에 출마를 결심하면서 많이 고민을 했던 게 있다. 우리가 다시 하겠다고 해야 하느냐? 마침 도민들의 여론도 우근민 지사, 김태환 전 지사와 그리고 저. 그 세사람에 대한 싫증이랄까 이제 새 사람이 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들이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출마하겠다고 선언하고 의사 표시를 해도 되는 건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그건 개인적인 문제고, 지금 제주도의 상황, 특히 시대적인 상황 자체가 우리가 침묵하거나 뒤로 물러나 앉아 있으면 안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출마를 선언했다.”

 

"시대의 상황이 나를 다시 정치 일선으로 불러냈다"

 

▶ 발언을 하시면서 ‘우리’를 지칭한다. ‘우리’라면?

 

“우근민 지사와 김태환 전 지사, 그리고 저다. 김 전 지사는 우리 세 사람은 출마하지 말자는 입장이고 지금도 그런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우리가 인정하든 안하든 제주도 역사에서, 제주도민의 삶에서 우근민·김태환·신구범은 한 세대로 묶여 있다. 어떻게 보면 책임을 져도 연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한 시대를 책임졌던 세 사람이란 뜻이다.”

 

▶세 사람을 한데 묶어 부르는 ‘제주판 3김’이란 통칭에 동의한다는 소린가?

 

“난 세대교체에 동의하는 사람이다. 사실 세대교체라는 것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이다. 과거 SK야구단 김성근 감독은 한국처럼 이상한 세대교체는 없다고 했다. 주전자 물을 가지고 비유하더라. 위에서 물을 채우면 안에 있던 물은 나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을 채우지 않으면서 나가라고만 한다. 이게 대한민국의 세대교체다. 그렇게 말했다. 제 입장에서는 세대교체는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세대교체라고 해서 ‘제주판 3김’ ‘동반퇴진’과 같은 말로 특정인을 특정 그룹으로 묶는 건 안된다. 우리가 후진 사회도 아니고 안 맞는 얘기다. 수용도 못하고 동의도 못한다. 세 사람을 묶어서 가라는 것은 사회가 할 일이 아니다. 도민들과 유권자가 판단할 문제다. 세대교체에 동의하지만 너희들 세 사람이니까 안된다는 것은 동의하지 못한다. 어쨌든 관선부터 보면 22년이다. 세 사람이 도지사 했던 기간이다. 22년이라는 세월은 우리가 인정을 하든 안하든 세 사람의 시대였다고 다들 말한다. 공과(功過)를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다. 연대해서 이 시대란 책임을 우리는 져야 한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세 사람이 같이 책임을 못 지면 세 사람 중 누구라도 세 사람의 시대를 연대해서 책임지고 마무리 짓는 일들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누구도 하질 않고, 같이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래서 내가 나선 것이다.”

 

▶2002년 낙선 뒤 기자회견에서 “이제 꿈을 접겠다. 그동안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12년이 지나서 다시 도전하는 상황이 됐다.

 

“그때 다 내려놓은게 맞다. 하지만 제주도가 제 고향이다. 저는 제주도에 묶인 사람이다. 제주도나 도민들이 저를 어떻게 대하든 관계없다. 저는 제주도에 묶인 관계다. 지사의 직위든, 아니면 다른 자리에서든 고향하고 같이 지내고 싶고, 고향을 위해 일하고 싶다. 그러기에 정책자료를 내놓는 것이다. 친환경 운동도 하고, 기업도 만들고 그러면서 어쨌든 우리 제주도에 보탬이 되는 일을 했다. 제가 제주도와 계속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 일들을 하고 싶었고 해 왔는데 감옥에 가면서 좌절됐다. 그러나 지금 제주도의 상황은 어떤가? 제주도의 시대정신이 지금 무엇인가? 제주도의 상황이 우리 세대를 다시 불러냈다고 생각한다. 제 의사와 상관 없다. 제주도의 상황이 나를 또 정치 일선으로 불러낸 것이다.”

 

비전도 없고 지도자는 없는 제주 ... "뒷짐 질 수 없었다"

 

 

▶ 신 전 지사를 다시 불러낸 제주도의 상황은 무엇인가?

 

 

“제주도에 비전이 있는가? 지도자는 있는가? 비전도 없고 지도자도 없는 상황이다. 지금 제주도는 시대적으로 봐서 발전할 수 있는 최대의 호기를 맞고 있다. 제주도가 갖고 있는 잠재력, 제주도가 갖고 있는 가능성이 그렇다. 사실 누구도 제주도의 경제 성장 잠재력을 계산해 본 적이 없다. 우리가 발전하고 있는 게 잠재력이나 가능성에 비해 더 발전하고 있는지 덜 발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막연히 가고 있는 사회가 아니냐는 생각이다. 여기에 도정을 들여다보면, 거긴 그냥 ‘낭비 도정’이다. 모든 게 낭비다. 사람들 보면 그런 얘기를 한다. 제주도 예산이 지난해 4조원 가까이 이르는 것으로 아는데 그러면 도지사 임기 중 쓰는 돈이 15조가 넘는다. 이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경제 성장이나 발전으로 쪽으로 갈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사회에서 낭비하고 마는 수도 있다. 사람이라는 인적자원, 재정·예산 모두를 낭비하고 있다. 한동주 시장 사건에서 우리가 보고 있다. 정말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은 낭비다.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 써야 될 데 안 쓰는 것은 낭비다. 그런데 가만히 바라만 보고 뒷짐지고 점잖게만 앉아 있으면 그게 할 일인가? 비전이 없고 지도자가 없다. 뭘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난 불려 나왔다.”

 

▶신 전 지사에 대해 혜안과 비전, 미래설계는 옳지만 독선과 오만이 가득하다. 함께 아울러서 가는 리더의 역할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도민들의 지적이 맞다. 왜 우근민 지사와 내가 그렇게 맞서고 비교가 되는지 이해가 된다. 난 정책에 올인한 도지사다. 우근민 지사는 선거와 정치에 올인한 도지사다. 안 부딪치는게 이상한 것이다. 정책에 올인하다 보니 정치가 아니라 행정가로 남기를 바랐다. 정치적 고려라는 게 전혀 없었다. 도민들의 지적하는 모든 부분을 받아들인다. 제가 잘못한 부분이다. 되돌아 보면 사실 정치도 20%정도는 했어야 했는데 못했다. 아마 지금 도지사 하라면 그런 지적은 안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이번 선거에 임하면서는 과거와 달라졌다는 소린가?

 

“달라진게 아니라 보태진 것 같다. 일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보완됐다고 할까? 보태졌다고 할까? 정치적인 부분이 더 보태졌다.”

 

"독선과 오만? 과거와 다르다. 이제 정치를 보탰다"

 

 

 

▶우근민 지사와 영원한 맞수다. 한풀이로 출마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 당선되면 공직사회에 피바람이 불 것이란 우려도 있다.

 

 

“그런 우려는 전혀 안하셔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인 원한이나 이런 것 때문에 도지사 출마한다고 하면 그건 이미 자격이 없는 것이다. 도민들에 대해서는 불한당이고 무례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우근민 지사와 저는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없다. 공직사회에서, 공적인 자리에서 공적으로 만났을 뿐 개인 적으로 소주 한 잔 나눈 적이 없다. 도지사 후보로 선거에서 맞섰고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선거과정에서 부딪쳤던 일들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우근민 지사와의 관계에서 모든 사람들이 ‘공쟁이’로 생각하고 맞수로 보는 게 답답하다. 결단코 한풀이 한다는 마음으로 출마했다면 제 스스로가 자격이 없는 것이다.”

 

▶민선 1기에 무소속으로 당선돼 1998년엔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경선에 나섰다가 경선에서 물을 먹고, 2002년엔 다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했다. 마찬가지 정치철새란 비판이 있다.

 

“인정 못한다. 조건이 나쁜 쪽으로 날아가는 철새도 있나? 조건이 좋은 곳, 양지를 좇아 가는 게 철새가 아닌가? 정치철새도 마찬가지다. 무소속이나 야당에 있다가 여당으로 가면 확실한 철새지만 내 경우에는 항상 야당 쪽에 있었다. 그게 왜 철새인가? 다만 우리나라인 경우 정당을 옮겨 다니는 걸 갖고 철새라고 하는 데 저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은 양당제도이면서 공화당이나 민주당 노선이 명확하게 구별된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보면 박근혜 후보가 마치 진보세력 비슷했다. 개인적인 이해에 따라서 정당을 옮겨 다닐 수는 있지만, 옮겨 다닌 것 자체가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심지어 영국의 처칠 총리도 정당을 세 번 옮겼다. 자기 정치적인 소신이나 그 당시 자신의 미션에 따라서 필요하면 옮겨 다닐 수 있다고 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건이 나쁜 쪽으로 옮겨 가는 게 진짜 정치 철새인가? 그건 바보 같은 철새다.”

 

▶현재 무소속 신분이다. 무소속을 고수할 건가?(이하 세 번의 문답은 그가 17일 안철수 신당행을 발표하기 이전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질문과 답이다)

 

“그전에 바보 철새를 한 번 더 한 적이 있다. 문국현씨의 창조한국당에 간 적이 있다. 사실 그건 감옥생활의 경험 때문에 갔다. 정말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 그 사람들을 위해서 목소리라도 내야 하는 게 내가 할 일이다. 감옥 갔다 온 사람이 할 일이다. 창조한국당 문국현씨의 제안을 받고 가서 거기 대선 후보가 되고 싶었다. 당선을 떠나서, 내 개인적인 꿈이었다. 그래서 바보 철새가 된 적이 있다. 지금도 필요하면 바보철새가 될 생각이다. 꼭 무소속을 고수할 생각은 없다. 당을 선택할 수도 있다."

 

▶선택할 정당과 입당시기는?

 

“미안한 얘기지만 정의당은 현실적으로 안된다. 다른 당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 바보 철새가 될 준비는 돼 있다. 입당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제 스타일이 일단 어떤 판단이 서면 이것저것 재질 않는다. 속전속결 아니겠나”

 

▶안철수 신당에서 제의가 온다면···.

 

“관심을 가져 준다면 굉장히 고마운 것이다. 그러나 가게 되면 제발로 간다. 경선도 필요하면 한다. 다만 새정치가 뭐냐는 것이다. 신당의 지도부 그룹에서 중앙당이 후보들을 낙점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 나왔다. 잘못된 것이다. 새정치를 하겠다면 누구든지 순수하게 당원이 돼서 그 사람이 자기 노력에 의해서 후보가 되면 되는 것 아닌가?”

 

"새정치 뜻 맞아 속전속결 결심... 바보철새라도 상관 없다"

 

 

▶정책선거를 주도하는 것 같다. 그러나 도민들은 아직도 신구범이 현실 정치를 모르고 있다. 그게 과연 득표에 도움이 되겠는가란 의문을 갖는다.

 

 

“사실 제가 젊은 나이가 아니다. 이 나이에 다시 정치를 한다고 했을 땐 제가 하고 싶어 하는 내용이나 스타일이 있다. 하나는 이번 선거를 아주 즐겁게 치르고 싶다. 즐겁게 치를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정책선거다. 선관위에 가보면 정책선거 하자고 표어는 붙어 있다. 그러나 한 번도 정책선거를 하지 못한다. 대선도 마찬가지다. 제 꿈이다. 선거는 정책 중심으로 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꾸준히 정책을 내 놓아야한다. 지금도 정책 개발하고 있지만 앞으로 10가지 아이템을 더 내놓을 생각이다. 또 하나는 ‘궨당문화’를 얘기하는데 궨당문화는 나쁜 게 아니다. 정치인들에 의해 오염된 것 뿐이다. 그걸 벗겨내고 싶다. 그래야 선거가 재밌지 않겠나? 예컨대 문상과 결혼 피로연의 경우 저는 친척이나 친구가 아니면 가질 않는다. 제 주위 사람들은 많은 불평을 한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정책선거와 오염된 궨당문화를 제자리로 돌려 놓는 것 그 두 가지로 즐거운 선거를 치르고 싶다.”

 

▶‘즐거운 선거’를 치르는 건 좋지만 낙선하면 무슨 의미인가?

 

“아니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제주도 정치사회에 남길 수 있는 게 무엇인가? 낙선이 두려워서 못한다? 표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한다? 저는 그것을 사양한다.”

 

▶지지카페가 등장하고 모바일 앱이 알려지는 등 상당히 신구범 캠프가 조직화가 잘 돼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도민들께 굉장히 감사하다. 현직을 떠난 지 15년 됐다. 저는 현직이 아니다. 우 지사나 김우남 의원도 다 현직이다. 고희범 위원장도 현직 도당위원장이다. 현직도 아니고, 당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보면 도민들에 대해 고마움을 안 가질 수가 없다. 고마운 마음에 제가 표현하길 ‘도민의 조직’이라고 표현한다. 더욱이 제 주변에 과거와는 다르게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온다. 어떤 사람들은 오해한다. 신구범이 만들었다고 한다. 반대다. 자기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거다. 제가 관여하지 않는다. 그냥 뒤늦게 카페에다가 회원 등록도 해 준다. 재밌어서 그렇다. ‘구범아 놀자’란 카페도 있는데 제 나이에는 이게 뭔 소린가 싶다. 하지만 자기들이 재미있게 하고 싶다는데 어떡하겠는가?”

 

▶‘응답하라! 1995’란 카페도 지지카페로 있던데···.

 

“정경호 대변인 아들이 카페지기다. 이 친구들이 ‘응답하라 1994’ 드라마에서 카페명칭을 따왔다고 하더라. 1995년 민선 첫 선거에서 내가 당선된 과거가 있기에 그래서 1995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선관위가 그것을 썼다. 선관위에 들어가보면 ‘응답하라! 1995’란 표어가 나온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1995년생이 첫 투표에 나선다. 투표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데 우리와 맞아 떨어졌다.”

 

▶지난해 말 정책연석회의 문제 갖고 김경택 새누리당 고문과 불협화음이 들렸다. 지금 이런 인터뷰 자리에서 김 고문은 이유를 불문하고 사과를 하던데···.

 

“만들어진 불협화음이다. 서로 의사소통과정에서 잘 매치가 안 된 것이다. 피차가 오해한 것 같다. 저도 나중에 알았다. 세 개 정도의 경로가 있다보니 혼선이 올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연석회의 동기는 굉장히 아름다운 것이다. 중국자본문제, 중국관광문제 등을 출마선언 한 사람들끼리 한번 얘기를 해 보자고 한 것이고 모두 다 취지에 동의했다. 전화를 직접 했다. 다 같이 얘기해 보자 해서 다 취지에 흔쾌히 동의했는데 이상하게 그런 일이 있었다. 제가 오히려 김경택 후보에게 미안한 거다. 발의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중간 과정이 어떻게 됐든 결과가 그렇게 돼서 사람들에게 안 좋게 비춰졌을 것이다. 나만 마이너스 된 게 아니라 김경택 교수도 마이너스가 됐다. 그런 면에서 김경택 후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 후 행사장에서 만나게 되면 전보다 더 잘해주게 됐다. 오해는 이미 사라졌다.”

 

 

 

▶야인시절 친환경농업회사인 삼무를 운영할 때 다단계 회사인 제이유(JU)와 관련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있다. 신 전 지사에게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제주도 친환경 농업을 유통을 통해서 발전시켜 보자는 꿈이 있었다. 시장 확보를 위해 노력을 했지만 안됐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당시 서울시장을 지냈던 박세직 전 88올림픽 조직위원장이 제이유란 다단계 회사의 고문이었다. 그 분을 만났을 때 “여기와 손 잡아라. 인구 40만~50만 도시 소비인구를 잡은 건데 그러면 유통경로와 소비지는 확보한 것”이란 제안이다. 그래서 손 잡았다. 우리는 물건을 팔기 위해 손을 잡았지 다단계 사업을 하기 위해 손 잡은 게 아니다. 그런데 삼무도 12억의 대금을 못 받았다. 나중 알고 보니 결국은 비난을 받을 만한 곳이었다. 피해자가 많았다. 당시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을 김재윤 의원을 통해서 만났다. 서민이 피해를 본다. 법 개정을 해서라도 서민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노력을 하다가 김근태 의장은 의장직을 그만뒀고, 나도 감옥에 갔다. 그래서 그 일을 못 끝냈다. 지금도 나 때문에 피해를 보신 분들이 있다면 사과하고 배상이라도 해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저는 단 한 사람도 제이유에 사업자가 가입을 권유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제 주변에도 돈 있는 친구들이 있다. 제가 거기와 관계를 맺자 그 친구들도 하겠다고 했다. 저는 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장사를 하기 위해서 한 거다. 그 사업을 우리가 하는 게 아니다.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구범이라는 사람이 거기하고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믿을 수 있지 않겠느냐 해서 하신 분들이 있다고 한다면 저로선 아주 죄송스럽다. 그러나 항간에서 악의적으로 소문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제가 권유해서 구체적으로 피해를 보신 분이 있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

 

▶나이도 들었고 초야에서 원로 역할을 하시지 왜 직접 나서느냐는 비판이 있다.

 

“그렇다면 젊은 사람들은 누구인지 묻고 싶다. 제가 보기엔 젊은 사람은 없다. 저는 도민들이 ‘원희룡 의원 지사해라’ 그러면 저는 도울 수 있다. 김태환 지사도 그런 얘기 한 걸로 알고 있다. 지사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경험에 비춰보면 중앙 정치권과 정부 각 부처에 관계를 가지고 있을 때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도민을 위해 정말 필요한 조건들이다. 그런데 이런 조건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단지 나이 차이가 있다는 것으로 너는 되고 너는 안되고 하는 것은 진짜로 제주사회가 후퇴하는 것이다. 역사를 보면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40대 초반에 대통령에 취임했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엔 레이건이 70을 넘겨 대통령을 했다. 누가 지도자가 될 것인가는 시대적인 상황과 관련해 생각을 해야지 나이가 기준이 된다면 그 사회야 말로 불행한 사회다.”

 

▶그렇다면 원희룡 전 의원이 공식 도지사 후보로 나선다면 어쩔 셈인가?

 

“안한다. 도지사 후보로 나서지 않겠다.”

 

▶원 전 의원을 돕겠다는 것인가?

“젊은 사람들이 하라는 거다. 제가 돕든 안 돕든 상관없이 우리는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선택될 수 있도록 본선 출마를 접겠다. 새누리당 후보가 경선을 통해서 특정이 됐는데 그 특정된 후보가 원희룡 전 의원이 된다면 우리는 기회를 줘야 한다. 새누리당 후보로 원희룡 전 의원이 확정된다면 그때는 접겠다.”

 

"원희룡 전 의원 후보 확정되면 난 접는다"

 

▶그러는 이유라도 있나?

 

“적어도 지사를 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도지사의 조건이 있다. 나이와 몇 번했냐는 재임기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적어도 제주도지사의 조건들은 김태환·우근민 그리고 저 역시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기준에 합당하는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원희룡 전 의원과 같은 후보가 나와서 도지사 하면 참 좋겠다.”

 

▶관선·민선을 거쳐 4년3개월 재임하며 수많은 작품을 쏟아냈다. 지금 꿈꾸는 작품이 있다면 힌트만이라도 알려달라.

 

“제주도의 잠재력이라든지 발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 사실은 대단한 땅이다. 제가 경남지사 같으면 삼다수 만들 수 있었겠는가? 문제는 도지사나 지도자들이 제주도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제가 보기엔 아직도 제주도는 무궁무진하다. 아주 쉽게 말하면 물과 바람만 갖고서도 제주도는 먹고 살 수 있다. 앞으로 정책 발표할 기회가 올 텐데 엄청난 잠재력이다. 우린 개발만 했지 키우지 못했다. 제주도지사가 돼서 키우는 역할만 하더라도 제주도에 엄청난 부를 창출할 수 있다. 더불어 우리가 자본이 없다고 한다. 사실은 토종자본을 만들 수 있는 모든 준비는 다 돼 있는 곳이다. 하지만 실제로 자본을 못 만들고 있다. 자본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싶다.”

 

 

 

▶잘했는데 두 번이나 선택을 못 받았다. 시대를 잘못 만난 것인가?

 

 

“아니다. 시대를 못 만 난게 아니다. 문제는 나에게 있다. 행정만 했지 정치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도민들의 선택은 정치다. 제가 부족했다. 제가 부족한 부분을 도민들이 정확히 평가한 것이다.”

 

▶정책과 행정만 추구하다 이제 정치가 얹어졌다는 말씀을 하신다. 신구범의 정치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화합이다. 제주사회 갈등의 중심에는 우근민과 신구범이 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갈등은 어느 사회든 존재하지만 이 갈등을 발전의 동인으로 우리가 만들어 내지 못한 제주사회의 잘못들이 있다. 이것을 발전의 동력으로 만들어 내는 게 저는 화합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지사가 되면 우선 공무원들을 해방시키겠다. 정치로부터 100% 해방시키겠다. 자기 능력이나 기회에 따라 공무원들이 맘 놓고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런 일을 해야 화합이 가능하다. 또 제주도 사회를 불안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싶다. 뭐 하나 하려고 해도 정치적인 시각에서 보면서 이런저런 태클이 들어온다. 관변 단체를 포함해서 많은 건전한 사회단체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결국 도의 눈치를 보게 된다. 제가 하는 얘기가 그거다. 김태환 전 지사나 신구범 전 지사를 어느 시민사회단체에서 불러본 적이 있는가? 전직 지사를 이렇게 안 부르고, 전직 지사 얘기를 이렇게 안 듣는 사회도 있는가? 불안해서 그렇다. 이 불안을 걷어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제주도가 발전한다. 공무원들을 풀어주고, 불안을 거어내면 제주사회에 갈등이 있어도 그 갈등을 녹여내고 발전할 수 있는 틀이 되는 것이다.”

 

신구범의 정치는 화합의 정치

 

▶우 지사는 1만여명을 거느리고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최근 벌어진 ‘한동주 게이트’도 그렇고 관가가 선거판에 올인하는 것 같은데···.

 

“그걸 바꾸겠다고 하는 거다. 우 지사가 다시 되면 그런 행태를 계속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되면 모든 걸 풀고 버리겠다.”

 

▶조직적 동원시스템을 버리면 선거승리가 가능하겠나?

 

“가능하다. 내 꿈을 갖고 하겠다. 예를 들어 지사는 짧게 했지만 전결규정에 보면 공무원 6급 이하 인사는 부지사 전결사항이다. 제가 지사로 재임할 때 김태환 전 지사가 부지사였다. 모든 권한을 다 넘겼다. 6급 이하 인사는 쳐다 보지도 않았다. 아주 쉽다. 규정대로 가면 이런 문제 다 풀 수 있다. 결국은 화합할 수 있도록 풀어내고 걷어내고 다 하겠다.”

 

▶오랜 야인생활인데 신구범을 추종하는 소위 ‘신도’들이 있다고 들었다. ‘신구범의 전선’엔 언제나 같이 가는 ‘계백 결사대’와 같다고 하더라. 그런 세력을 두는 비결이 있는가?

 

“비결은 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소위 인생관이다. 공무원이라면 공직관이다. 제가 아니고 그 사람들이다. 그 분들이 추구하는 비전이고 이상이다. 그게 비결이다.”

 

▶1999년 축협중앙회장 시절 국회할복사건의 주역이다. 무모하다거나 과격하다는 평을 듣는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게 무모한 건가? 그렇게 지적하시는 분들은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아서 그렇다. 아마 그런 상황에 있었으면 대부분 저하고 똑같이 했을 거다. 정치권의 총체적인 배신이었다. 배신 앞에서 농민단체의 수장으로써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난 책임을 지기 위한 행동을 했을 뿐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어느 누구도 똑같이 행동 했을 것이다.”

 

 

 

 

 

"신구범의 신도? 그들의 인생관이자 그들이 비전"

 

 

▶그런 이미지 때문에 제주도의 수장이 된다면 중앙정부와 자꾸 충돌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있다.

 

“관선, 민선지사 다 합쳐 4년3개월 지사로 재임했다. 그렇게 충돌했으면 재임 중 한 일들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중앙정부는 상당히 논리적이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면 그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충돌하지 않는다. 근데 솔직히 저는 그렇다. 그 후 제주도정이 충돌이라도 해 봤는가? 중앙정부와 4년 동안 제가 일한 게 증거다. 중앙정부와 어떤 관계로 갔기 때문에 그렇게 해 낼 수 있었는지 이유다. 특히 일본에 가서 ‘사무라이 본드’(일본 채권)을 발행, 일본 돈을 갖고 온 것도 예다. 당시 우리나라 규정상 못하게 돼 있었던 것이다. 일본도 반대하고, 청와대도 반대한 것을 김영삼 대통령과 독대해서 풀었다. 그 이후 이 제도가 모든 자치단체에 허용됐다. 자치단체는 각종 기·자재 말고 현찰은 못 갖고 오게 돼 있었다. 기업들도 현찰을 1억 달러 이상 못 갖고 오게 돼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2억 달러를 갖고 왔다. 일화 200억 엔 규모다. 중앙정부와 충돌해서 가져올 수 있었겠는가? 규정까지 고쳐가면서 그랬다. 묻고 싶다. 그렇다면 내 후임 도정이 충돌은 해 봤는가?”

 

▶우근민 지사와 김태환 전 지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아내 말에 쇼크를 받았다. 우리는 지사할 때 열심히 하고 잘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왜 도민들은 우리를 이해 못해주냐는 마음이었다. 내가 도지사 출마한다고 하니 집에서 반대가 얼마나 심했겠는가? 그런데 아내가 마음을 바꿔 먹기 시작했다. 사은 사실은 우리가 도민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잘못이 있었다. 그런 말을 나에게 건넸다. 충격이었다. 마찬가지로 우근민 지사를 틀렸다고만 생각했지 우 지사를 이해하려고 하지 못했다. 우근민 지사가 됐든, 김태환 지사가 됐든 이제는 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국회의원, 도지사하던 사람들은 임기가 끝나거나 낙선하면 다 서울로 간다. 그러나 김태환 지사는 여기 남았다. 나이가 더 들어서 소주나 한잔하자고 할 친구는 김태환 지사다. 김태환 지사는 정치적인 관계를 떠나서 영원히 친구로 남을 생각이다.”

 

▶ 우 지사와 화해할 의사가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본 선거운동에 들어가기 전에 화해를 요청할 생각이다. 우 지사가 만약 새누리당 후보가 된다면 축하해 주고, 낙마하더라도 위로해 주고 화해할 예정이다.”

 

▶원희룡 전 의원이 일을 맡겨주고 싶은 후배인가?

 

“넘겨주고 싶은 후배는 아니다. 그러나 그런 수준의 사람들이 후보가 된다면 우리는 기꺼이 접겠다는 것이다.”

 

▶만약 민주당에서 고희범 도당위원장이 도지사 후보가 된다면 어쩔 생각인가?

 

“선의의 경쟁이 불가피한 것 아닌가?”

 

▶그동안의 발언을 놓고 보면 신구범 전 지사와 고희범 도당 위원장의 연합·연대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이 있는데···.

 

“우리 서로가 합쳐질 가능성은 특정 정당이든 무소속이든 공식적인 본선 후보가 되기 이전에 있다. 그래야 가능하다. 후보가 된 후에 합친다면 고희범 후보도 그 당에 대한 책임이 있고, 저도 그렇고 가능성은 낮다.”

 

"고희범과 연대는 공식적 본선 후보 되기 이전에 가능"

 

▶꿈 꾸는 제주에 대한 그랜드 디자인이 있다면···.

 

“하나는 사실상 국가로 가겠다는 것이다. 그게 특별자치도 완성이다. 외교·국방·사법을 빼고 모든 것을 가져오면 사실상 국가다. 특별자치도는 경제 국가다. 경제국가를 실현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완전한 생활자치를 실행하고 싶다는 것이다. 제가 읍·면·동을 기초자치구로 하자고 제안했다. 정말 주민들에 의한 생활 자치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이뤄질 때 특별자치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금도 많은 도민들이 얘기하지만 우리는 돈이 없다고 한다. 토종자본을 꼭 만들고 싶다. 제주도 경제규모가 GDP 11조 수준인데, 11조 정도의 GDP를 운영할 수 있는 토종자본을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한다는 거고 만들고 싶다. 가능성이 있다. 그걸 꼭 하고 싶다. 세 번째는 민선 1기에 주창했듯 섬유엔(UN)을 만드는 것이다. 세계섬문화축제를 부활시키고 전세계 섬 네트워크를 만들어 제주국제컨벤션센터가 섬유엔 본부가 되는 것을 꿈 꾸고 있다.”

 

 

 

▶ 신구범 전 지사에게 고향 제주는 무엇인가?

 

 

“제주도는 제 삶이다. 저는 제주도를 떠날 수 없다. 다른 분들 처럼 제 삶이다. 제주도 중독자라고 표현도 하더라. 맞다. 제주도에 중독된 사람이다.”

 

▶기독교 신앙이 독실한 걸로 안다. 하지만 너무 기독교계 입장만 대변한다는 우려도 있다.

 

“그런 말 들을 때마다 기독교인으로서 굉장히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교가 자비를 중시하듯 기독교는 사랑이 전부다. 사랑이 전분데 편애하거나 편견을 갖거나 할 수 없다. 다만 개인적인 삶과 공인인 삶은 확실히 구분하겠다. 케네디 대통령이 ‘종교는 삶의 사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공직을 수행하게 되면 공인이다. 양심에 따라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다. 종교는 내 사적인 영역이다. 하나님의 종교에서 보면 종교도 개인적이지만 사적인 건 아니라고 했다. 공익을 추구한다. 그런 면에서는 어느 종교도 똑같다. 사람들이 오해를 안했으면 좋겠다. 그동안 선거를 치르면서 절을 찾아간 적이 없다. 왜 안 갔겠는가? 예를 들어 성안교회가 있는데 거의 안 간다. 거기에는 고희범 안수 집사가 있다. 그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표를 위해서 내가 거기 간다는 건 안 맞는거다. 그런 차원이지 기독교를 더하고, 불교를 뭐 어떻게 하고 하는 득표전략은 고려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과거 선거시절 절을 찾아가지 않은 건 불교신자인 우근민 후보에 대한 배려였다.”

 

▶종교적 기피란 시각은 분명 오해란 소린가?

 

“제주시내 모 사찰에 간 적이 최근 있다. 소개도 안해주더라. 모 종파의 신년하례회로 알고 아는 분이 가자고 해서 갔다. 표를 구걸하는 것 아니냐고 마뜩치 않았는데 저를 인도한 분이 그런게 아니라고 해서 갔다. 그런데 내빈 소개를 하는데 아예 소개에서 빼버렸다. 우 지사의 부인 옆에 앉았는데 아예 빼버렸다. 도의회 윤두호 의원이 사회자에게 ‘신 지사 왔는데 왜 소개 안하냐’고 애길 해도 묵살됐다. 그후 행사 끝날 때쯤 신도들 사이에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서로 옥신각신하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그러자 행사 끝내며 ‘여기 신구범 전 지사도 와 있습니다’고 말하더라. 답답하다.”

 

▶노년인데 청년 못지않은 체력을 과시한다. 비결이라도 있나?

 

“비결이라고 말할 건 없다. 그냥 편안하다. 감옥에 다녀오고 난 뒤 특히 겁을 안 먹는다. 겁나는 게 없다. 그게 건강을 지켜주는 게 아닌가 싶다. 요새 건강을 해치는 건 스트레스라고 하는데 감옥 다녀와서 두려운 거나 무서운 게 없어서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 운동은 늘 한다. 감옥에 있을 때는 살아남기 위해서 푸시업(push-up)하고 뛰고 그랬다. 지금도 운동은 매일 아침마다 한다. 집 근처 동여중 운동장 트랙을 걷고 뛰고 한다. 큰 비가 올 때를 빼곤 매일 아침 한 시간 20분 정도 땀을 뺀다.”

 

▶새해 도민들께 드리고 싶은 당부가 있다면···.

 

“지난해는 한·중 FTA 문제도 그렇고 재선충 때문에 도민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다. 그런 걸 잘 감당하시고 새해를 맞으셨다. 올해는 청마의 해라고 하니 모두 편안하고, 모든 것이 좋고, 삶을 즐기는 그런 한해가 되시길 바란다. 어떤 재난이나 재앙도 제주에 오지 않고, 도민 여러분도 더 활기차고 소득도 많아지는 그런 행복하고 즐거운 한 해가 되셨으면 좋겠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 정리=고연정 기자]

 

 

 

 

 

 

 

 

 

 

 

*신구범은?
= 전 제주도 기획관, 전 농림부 기획관리실장·농업구조조정정책국장, 주 이탈리아 대사관 농무관, 전 UN 산하 식량농업기구(FAO) 한국교체수석대표, 전 29·31대 제주도지사, 전 축협중앙회장, 현 제주생태도시연구소 이사장

 

 

<학력>
1962 오현고등학교 졸
- 1965 육군사관학교 4년 중퇴
- 1977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경제학 연수

 

<경력>
육군 하사 제대
1966.01 - [前] 제5회 행정고시 합격
1967.08 - 1974 [前] 제주도 기획담당관, 지역계획과장
1983 - [前] 농업공무원교육원 교수부장
1984 - [前] 주이탈리아 농무관
1989 - [前] 농업공무원교육원 원장
1989 - [前] 농림수산부 축산국 국장
1992 - [前] 농림수산부 농업구조정책국 국장
1993 - 1993.12 [前] 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 실장
- 1988.11 [前] UN산하식량농업기구(FAO) 한국교체수석대표
- 1991 [前] 미국 조지타운대학 객원연구원
1993.12 - 1995.03 [前] 제29대 제주도 도지사
1995.07 - 1998.06 [前] 제31대 제주도 도지사(초대민선)
1998.02 - [前] 국민회의 입당
1999.07 - 2000.06 [前] 제8대 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
2001.07 - [現] 한나라당 국책자문위원
2002.04 - 2002.06 [前] 한나라당 제주도지사후보
2005.05 - [前] 삼무 대표이사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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