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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세계적 이중 화산체...전란의 상처와 개발의 아픔, 그 뒤는?

 

 

 

그곳에 오르면 멀리 국토최남단 마라도가 보인다.

 

산방산이 마치 손에 잡힐 듯 곁에 있고, 우애 좋게 나란히 선 형제섬은 바로 코 앞이다. 마라도행 유람선의 선착장도 그 산 아래 포구에 있다. 산 아래 바닷가에선 낚시꾼들이 감성돔·벵애돔을 기다리고 있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으로 과거 인기리에 방영됐던 TV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촬영무대도 이 산 자락이다. 한 마디로 비경(秘境)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송악산에서 볼 수 있는 풍광이다.

해발 104m에 불과하지만 송악산은 지질학적으로도 이름 난 산이다. 120만년이란 형성사를 간직한 제주도에서 이 산은 고작 4000~5000년 전에 분출해 만들어졌다. 그것도 바닷속에서 화산폭발이 이뤄져 제주 본 섬과 몸을 합치더니 중심부의 2차 화산활동으로 ‘분화구 안에 분화구’를 갖춘 이중분화구 구조가 됐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경우이자 ‘한반도 최근세 화산’이란 별칭까지 붙었다. 지질학자들은 화산활동의 특징을 보여주는 ‘화산지질학 교과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산은 역사의 생채기마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해안절벽지대엔 15개의 인공동굴이 뻥뻥 뚫려 있고, 곳곳마다 참호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일제 강점기이던 1940년대 초 일본군이 ‘태평양 결(決) 7호 작전’이란 이름 아래 요새화에 나선 결과다. 해안포 진지였던 인공동굴은 미군함대를 향해 포탄을 안고 육탄돌진할 가미가제(神風)식 어뢰정의 은폐장소이기도 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때 일본군은 미군의 상륙루트를 이곳으로 봤고, 7만 명의 병력을 제주도에 주둔시킬 정도였다. 물론 송악산의 배후지인 드넓은 벌판 ‘알뜨르’엔 공군기지가 만들어졌다. 지금도 알뜨르엔 일제의 지하벙커·관제탑의 흔적이 남아 있고, 1m 두께가 넘는 콘크리트 항공기 격납고 23기가 널려 있다. 한국전쟁 무렵 국군의 양성소인 ‘육군 제1훈련소’가 있던 자리도 송악산 지척이다. 지금 대한민국 해병대 1개 대대가 주둔하고 있는 자리가 그곳이다.

 

 

역사의 아픔은 또 있다. 송악산 부근 섯알오름은 학살의 장소이기도 했다. 4·3사건의 광풍과 한국전쟁을 전후로 불었던 살육의 피바람은 이 산 언저리를 또 선택했다. 수많은 주민들이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 총살을 당하고 파묻힌 곳이 또 그곳이다.

그 험한 세월을 보낸 송악산은 아예 송두리째 사라질 위기도 겪었다. 10여 년 전인 1999년 12월 말 이 산의 분화구지대를 사실상 갈아 엎는 레저타운 개발사업을 제주도가 승인해줬고, 대한지질학회 등 학계와 환경단체가 반대의 목소리를 드높인 끝에 수년 만에 사업 자체가 취소됐다. ‘새천년’과 ‘밀레니엄’에 환호하며 모두가 환호할 무렵인 1999년 12월31일 이 산을 송두리째 갈아 엎는 개발계획이 제주도에 의해 승인된 뒤 벌어진 일이다. 제주개발특별법 상 절대보전지구로 지정된 산 분화구 지대인데도 어찌된 일인지 그 개발계획은 일사천리로 심의를 모두 통과했다.

 

 

 

 

 

1999년 말 승인으로 2000년 1월1일 이전이란 단 하루 차이로 사업자에겐 50억여원의 개발부담금 감면 효과까지 가져왔으니 당연히 뒷말이 무성하지 않을 리 없다. 지금 도정을 이끌고 있는 우근민 지사가 재임하던 시절의 일이다. 그 시절 그 송악산 개발사업 논란은 전국적 이슈로 불거지다 급기야 사이버 여론조작 사건으로까지 비화됐다. 인터넷 공간을 이용, 익명의 인사들이 나서 환경단체와 언론을 비방하며 ‘개발찬성’ 여론을 의도적으로 부풀린 것이다. 명예훼손 시비로 번져 찾아낸 범인은 황당(?)하게도 당시 제주도 투자진흥관 직위에 있었던 간부공무원이었다. 지난해 말 또 전국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한동주 게이트’의 주인공 한동주 전 서귀포시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산전 수전 다 겪은’ 송악산은 2010년 경에 이르러 예상치 못한 중병의 증세도 보였다. 전국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올레 걷기’ 열풍 때문이었다. 산 정상까지 탐방객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산 정상부는 맨땅을 드러냈고, 풀 조차 보기 어려울 지경에 몰렸다. 화산재 흙은 산 아래로 줄줄 흘러내렸고, 곳곳에서 뿌리를 드러낸 나무도 쉽게 만날 정도였다. 급기야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나서 올레코스를 바꾸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고, ‘정상부 출입금지’란 형식으로 그 자연은 다시 보호되는 듯 했다.

 

 

 

 

그런 그 산이 최근 다시 논란거리다. 수많은 성상을 거치며 굳건히 버텨온 송악산 자락에 이번엔 중국자본 문제가 불거졌다. 우근민 도정에서 시작된 개발논란이 또 그 도정을 만나고 다시 불거진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 시절엔 외자 4억달러 유치 운운하며 이태리 등 유럽자본을 거들먹 거렸지만 이번엔 중국자본이다. 물론 지금 제주도정에서 주장하듯 또다른 차이도 있다. 14년 전 개발계획은 전체 송악산관광지구 중 개발이 불가능한 송악산 분화구 지대로 시설을 배치한 반면 이번에는 애초 개발이 가능한 유원지 지구가 대상지란 점도 차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는 다시 일어섰고 중국자본에 종속되는 지역개발의 문제를 지적함과 아울러 그 비경을 특정 업체가 독식한다는 ‘경관 사유화’ 논리를 들이댔다. 기생화산인 송악산의 경사면을 헤짚고 들어가는 ‘산허리 자르기식 개발’이란 논리로 반대의 깃발이 분명하다. 물론 14년여 전 개발논란이 불거질 무렵 움직임과 똑같이 지역주민들의 이름으로 24일 성명과 기자회견이 나왔다. 그 때와 똑 같이 “지역의 고용창출과 경제성장, 숙원사업을 해결하고자 하는데 대안도 없는 환경단체가 왜 반대만 하느냐”는 타박이다.

 

“오랜 세월을 굳건히 버틴 산인데 이 산이 운명이 참 모질기도 하다.”

 

10여년 전 송악산개발 반대에 앞장섰던 J모(52)씨. “군사기지도, 개발의 바람도, 인간의 발길도 꿋꿋이 버텨낸 송악산인데 아마 이번에도 버티지 않을까요? 다만 그 산이 제 가치를 찾고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는 인간과 제발 평화로운 해답을 얻기를 바랄 뿐입니다.” 고뇌하듯 꺼내는 그의 말이다.

 

“살려달라”고 송악산이 외치고 있다.

 

‘선거의 광풍’까지 몰아친 2014년 우리가 찾아낼 해법은 무엇일까? 너무도 오랜 기간 송악산을 대하다보니 이번엔 또 어떤 결론으로 귀결될 지 몹시 궁금하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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