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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철의 파워人터뷰] 제주도지사 선거 나선 새누리당 원희룡 전 국회의원
"'아주 오래된 미래'의 시대 열어야 ...작은 공동체 탓 큰 공동체 부정은 곤란"

 

‘제주의 자존심’이라고 한다. ‘제주의 자부심’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가 있었기에 고작 말이나 키우는 제주가 아니라 ‘어엿한 인재를 배출한 제주’란 소리도 나왔다. ‘대입 학력고사 전국 수석, 사법고시 전체 수석’이란 타이틀 하나로 그는 그렇게 제주의 자존을 세웠다.

 

제주인이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길도 그는 과감히 걸었다. 서울대 법학과를 다니던 그는 한때 노동운동의 길에 뛰어들어 제주인의 걱정(?)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더니 사법고시에 합격, 잘 나가던 검사직을 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사복을 벗고 정치에 입문했다. 그것도 서울의 ‘교육1번지’인 서울 양천갑을 근거지로 떡하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내리 3선을 하더니만 여당 내 ‘소장 개혁파의 원조’란 닉네임도 꿰찼다. 서울시장 후보로 꾸준히 이름을 올렸고, 여당 사무총장·최고위원을 지내며 차기 대선 주자로도 꼽혔다.

 

제주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원희룡 전 국회의원(50).

 

제주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치고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것도 그가 처음이고, 여권의 최고위원 자리에 오른 것도 그가 처음이다. 물론 대권 주자로 거명된 것 역시 그가 처음이다.

 

그는 2012년 6월부터 1년간 유럽과 중국에서 머물렀다. 2011년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40대 젊은 당 대표’에 도전했다가 4위로 최고위원에 선출되는 데 그친 이후 선택이다.

 

그렇게 칩거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심심찮게 그가 제주도지사 후보감(?)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서울시장감이지 무슨 소리냐”는 반박이 지속됐고, 본인도 손사래를 쳤다. 심지어 제주 몇몇 인사들이 그를 북경으로 찾아가 ‘제주지사 출마’를 권유했지만 그에게서 돌아온 답은 ‘난 아니다’였다.

 

연말과 연초를 거치며 여권 내부에서 다른 기류가 감지됐다. 이름하여 ‘중진차출론’. 여권의 선거전략·기획그룹에서 그의 이름이 남경필·정몽준과 한 세트로 거론됐다. 필승카드란 명분이 여권이 종용이었고, 그는 고뇌했다. “회유와 설득, 종용을 뛰어 넘어 압박으로까지 다가왔다”는 고백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하지만 2월, 그리고 3월로 접어들면서 그의 ‘라디오 정치’는 조금씩 강도와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고 급기야 ‘100% 여론조사 경선’ 수용을 전제로 한 ‘출마’의사로 변화했다.

 

제주도지사 선거판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돌연 등장한 전폭기의 출현 앞에 거함 우근민 현직 지사는 ‘경선 불수용’ 카드를 내던지고 고뇌의 길로 접어 들었다. 야권은 선거전략 전면 수정에 나섰고, 그의 출마기자회견에 때맞춰 ‘야권 단일대오’란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어머니, 원희룡입니다. 제 전부를 바치겠습니다

 

그는 지난 16일 출마를 공식선언했다. 제주시 관덕정 광장 무대에 오른 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알려면 제주를 보라”고 선언했다. 그가 양손으로 치켜 든 카드엔 “어머니, 원희룡입니다. 제 전부를 바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명절인사 드리러 오지 않았다. 이제 제주를 다시 일으켜 세우러 왔다. 일하러 왔다”고 그는 말했다. “제 가슴이 물으면 하늘이 대답하고 제주도민이 결정할 것”이라고 외쳤다. “제주의 발전을 입증, 대한민국의 변화를 이끌어내겠다”고 호소했다.

 

“강한 제주를 만들어가는 봄이 이제 제주에 왔다”고 단언한 원희룡 전 의원.

 

“하지만 강한 제주는 나 혼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2인3각 경주하듯 저의 발목을 엮어 함께 우리 제주도를 만들어야 한다. 강한 제주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손을 잡을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오래된 미래-.’ 가슴에 품었던 제주의 비전도 풀어놓았다. “세계 유명 관광지 어느 곳도 전통이 숨 쉬는 곳에서 문명의 교류를 시작한다”며 옛 제주역사의 중심무대 관덕정을 출마선언 장소로 선택한 그는 “보란 듯이 동북아 최고의, 대한민국만의 제주도를 실현시키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대한민국의 1%가 제주도라고 하지만 미국의 0.1%인 아칸소가 어엿한 대통령을 배출한 신화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다”며 제주도지사를 발판으로 한 ‘대망론’도 그는 숨기지 않았다. “그게 우리 제주도민의 꿈이고 하늘의 뜻이라면 가야할 운명”이라는 것.

 

지난 17일 오후 3시 1시간여 동안 원희룡 전 의원을 <제이누리> 회의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전문.
 

 

▶ 제주로 오셨다. 먼저 한 말씀 주시라.

“고민이 많았다. 갈까 말까의 고민이 아니라 제주도를 위해서 잘할 수 있는냐?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게 뭘까? 마음의 준비와 기초적인 자세를 갖추는데 시간이 걸렸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운명을 거부할 수 없는 것처럼 제주도를 위해서 일하기로 한 이상 제 모든 것을 바쳐서 일 할 것이다. 그리고 서울에 나가서 성취의 길을 가는 사람들, 고향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미묘한 마음들을 알고 있다. 크게 걱정 안하셔도 저는 아주 낮은 자세로 도민들의 마음속에 있는 한과 꿈을 충분히 스폰지처럼 빨아들일 생각이다. 그 힘으로 도민들을 대신해서 일하는 거지 내가 일하니까 도민들이 따라오라는 마인드가 아니다. 지켜봐주시고 필요하면 질책도 많이 부탁드린다.”

 

▶ 16일 출마기자회견장에서 ‘명절인사가 아니라 일하러 왔다’고 말했다. 어떤 마음인가?

 

“사실 서울에서 12년 동안 국회의원을 했다. 제주출신으로 최고위원 하고, 당대표· 대선후보 도전했다. 사실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제주의 자존심이라는 많은 분들의 기대를 제가 속한 서울에서 펼치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제주도와는 역할분담이라고 생각했다. 현안에 대해서 일일이 참여하거나 제주도 분 일을 돌아보는 그런 일은 제가 서울 일에 충실히 하는 것이 제주의 힘을 더욱 더 확장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자제하기도 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뻔히 안타까운 일임에도 지켜보고 했던 부분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의 바람과 제가 서울에서 볼 때의 바람들이 서로 다른 것들이 벌어졌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안타깝다. 하지만 지금은 일을 하러 왔기 때문에 지금 제주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사실 저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되는 상황이다. 고향 땅을 밟는 느낌을 누구는 금의환향으로 아는데 저는 지겟짐을 몇 트럭 짊어지고 내리는 기분이었다.”

 

지겟짐 몇 트럭 짊어지고 내린 기분이었다

 

▶ 우 지사가 두문불출 상태다. ‘100% 여론조사 경선’에 대한 불만이고 탈당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생각인가?

 

“우 지사님에 대해서는 제가 출마선언문에서 준비를 하고 가지 않았는가? 경선규칙이 정해지고 나서 현재는 최대의 고민이다. 최대의 괴로움이고, 그 마음을 나름대로 꽉꽉 눌러서 절제된 표현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현재시점에서는 더하고 뺄 것이 없다.” (원 전 의원은 16일 출마회견장에서 우 지사에 대해 ‘도민공동정부의 협력자 중 한 분으로 모시고 싶다’며 우 지사와의 인연을 강조했다)

 

▶ 지난해 중앙일보 등 언론 인터뷰에선 ‘제주지사 출마는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연말과 연초를 거쳐 시일이 흐르면서 정치적 수사가 계속 바뀌더니만 결국 출마를 택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나?

 

“계속 바뀌기 보단 한 번 바뀌었다. 여지를 열겠다고 한번 바뀐 것이고, 여지가 없다에서 여지가 열린 그 한 번의 바뀜이 의미 있는 변화이지 다른 것들이 계속 바뀌었다는 건 어떻게 보면 언론의 지나치게 민감한 시각이라고 본다. 여지를 연 이상은 제가 이것을 불출마선언을 할 것이냐 출마할 것이냐는 또 다른 고비로 해서 정리가 되는 거지 그 중간과정에서 제가 기술을 부린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과대평가다. 어떻게 보면 언론의 속성을 무시하고 저를 모욕하는 것이다.”

 

▶ 왜 변화가 있었나?

 

“우선 당에서 그동안 여러 차례 비공식적으로 얘기가 있었다. 작년 6월쯤 당에서는 서울시장에 출마하라고 하고 제주도에서는 누구라 말씀드릴 순 없지만 제주도지사로 오라는 거다. 둘 다 거절했다. 당 최고위원들이 북경에 오는 경우가 많다. 올해 지방선거를 고민하는 팀들이 경기권을 젊은 벨트로 내세우자는 식으로, 대비책 그림을 그리면서 저에게 거의 1순위로 제안을 했다. 그런데 계속 단호하게 거절을 하자 지난해 말 쯤 부터는 정몽준 대표가 거론됐다. 서울시장 제안은 저한테 계속 여러 차례 있었으나 제주지사 제안은 한번 하고 난 뒤 그후 없었다.

 

서울시장 건은 끝까지 거절했기 때문에 정몽준 쪽으로 넘어간 것이고, 저는 어차피 12년 동안에 서울에서의 의정활동을 마감하면서 어떻게 다시 원희룡 다운 정치를 할 것인가 하는 그런 암중모색의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이 최소 2~3년은 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회는 올 것이고 국민과 하늘이 기회를 안주면 그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젊은 나이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거절을 했다. 그런데 제가 출마 여지를 열게 된 건 설 지나고 2월 10일 전후다. 제 생일이 2월 14일인데 태어난 날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때 여러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졌다. 하나는 당에서 비공개로 이야기 하다가 공개로 때려 버렸다는 거다. 나는 처음에는 공개로 때리니까 공개로 ‘나를 압박하지 말라. 불쾌하다’고 던졌던 거다. 당의 압력은 아무것도 아닌데, 나에게 애정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개혁정치라는 것 때문에 새누리당이라는 풍토에서 계속 벽에 부딪히는데 갖고 있는 장점을 살려서 베이스캠프를 갖고 거기서 업적을 세워서 그쪽으로 가는 게 나쁘지 않다’는 뜻을 아주 강권하다시피 했다.

 

당장 제 주변 목사님부터, 제 인생 멘토에 해당하는 분들이 강하게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열어 보자라고 하더라. 제주도 분들과는 의논을 하면 소문이 나기에 말할 수 없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제주도 언론 인터뷰는 매몰찰 정도로 거부를 했다. 제주사회에선 남의 얘기가 빨리 전파되는 것을 알기에 그렇다. 그러다가 당과도 심각하게 얘기를 하게 됐는데 당의 얘기는 ‘새누리당을 탈당할 것이 아니라면 당에 인정도 받아야하고 선거 때 필요한 사람이란 걸 인정 받아야 앞으로 큰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하더라. 재·보궐 선거에서 국회의원 한 석으로 들어오는 것은 당에 대한 기여도는 아니지 않느냐, 제주가 그동안 국회의원 한번 제대로 당선되지 못했고, 새누리당 간판 달고 도지사 된 적이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역할을 해주면 원희룡에 대한 새누리당의 당원들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란 소리다. 그런 부분을 나름대로는 많이 권유하면서 한편으로는 당이 어려울 때 외면해 놓고 필요할 때 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듣기에 따라 압박도 있었다.”

 

 

▶ 원희룡은 제주의 간판이자 타이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란 시각이 있다. 떠밀리듯 나오는 건 유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수 있다. 제주도만 해도 이조 말까지만해도 육지로 가려면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나갈 수 있는 유배와 고립의 섬 아닌가? 그러나 지금은 육지가 중심이고 제주가 변방이 아니다. 동북아 전체가 열려있고 문화와 생태 등 이런 가치들이 개방의 시대이기 때문에 제주가 왜 육지의 허가를 받아서 왔다 갔다를 해야 하는가? 오히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제주의 가치가 제2의 싱가포르를 본뜨는 게 아니라 동북아의 하나뿐인 제주를 얼마든지 펼쳐나갈 수 있다. 제주도는 그 자체로 엉켜있어서 편 가르기와 서로가 서로를 발목을 잡고 있어서 가능성을 못 살리고 있는데 ‘원희룡 당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주장하는 개혁과 마인드가 가짜가 아니고 진짜라면 할 수 있을 것이고 제주도가 유리한 점은 경기도지사 보다는 경기도지사 정도의 힘과 비전을 가지고 경기도의 어느 한 시·군을 가지고 모델을 만든다면 그것은 성과를 낼 수 있지 않느냐. 미국이라는 3억 5천만의 인구에서 아칸소가 가진 비중은 0.1% 수준밖에 안 된다. 그것에 비하면 제주는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지금 제주가 기로에 서 있는 문제, 중국의 성장, 대한민국이 과거에 제조업 위주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동북아에 던질 수 있는 메시지’란 조언이다.

 

단순히 비판과 대결을 통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창조와 책임을 통해서 얼마든지 전 국민을 향한 능력을 평가 받을 수 있는 그런 무대가 될 수 있다. 대신 이게 유배가 될지, 아니면 절묘한 기회가 될지는 하기 나름이다. 결국은 원희룡을 살리고 죽이고는 제주도민이 결정하는 것이다. 제주도민이 죽으라면 죽어야지 별 수 있겠나? 제주도민이 자 한번 해봐라 하면 그걸 가지고 해보는 거다. 국민들이 위임하면 하는 게 정치지 제한된 트랙에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대한민국의 아칸소가 충분히 제주일 수 있다

 

▶ 신구범 전 지사가 바로 이 인터뷰 자리에서 원희룡 전 의원이 제주지사 본선에 나서면 본인은 접겠다고 했다. 연초 서울서 열린 제주도민 신년하례회에서 직접 원 전 의원에게 권유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말한다.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떠밀리듯 나온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건데 어떻게 생각하나?

 

“최근까지도 그런 발언을 하신지 몰랐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과분한, 저에 대한 기대다. 한편으론 감사하면서 한편으론 큰 무게로 받아들이고 있다.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신구범 지사님께서는 정치적 영향력도 뛰어나시고 나름 소신파 아니신가? 나쁘게 말하면 고집 세다고 들을 정도로 자기 색깔이 강하시기 때문에 나름대로 저와 진행되는 부분에서 판단하는 게 있으시면 그걸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제가 원래 바랐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소멸시효니 하는 것에 부담 갖지 마시고, 당당히 경쟁하고 꾸짖으실 건 꾸짖으시면서 누가 되는 제주의 역량 아니겠는가? 저는 다 제주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삼다수는 물론 제주의 먹거리와 관련해서 신 지사님의 ‘두뇌의 발자국’이라고나 할까? 그 분의 가슴과 머리로 일궈냈던 땀자국들이 남아 있는게 중요한 거다. 지금의 신지사님에 대해서 제가 이렇다 저렇다 할 건 아니다.”

 

 

▶ 출마선언 기자회견장에서 우근민 지사에게 도민공동정부의 협력자로 모시겠다고 했다. 일부에선 구태정치인과 야합하려는 시도냐고 비판이 불거지고 있다.

 

“구태정치를 안하면 되는 것이지 구태정치인이라는 딱지가 있는가? 사람은 마음이 바뀌고 그 사람과 연결된 이해관계와 행동방식이 바뀌면 새사람이 된다. 우리 국민들이 낡은 전통에 묶여있고 만약에 구정치에 속한 사람들이 다 없어져야 한다면 우리 국민도 구정치 속에 속해 있던 게 아닌가? 그렇다고 국민을 수입해 올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마음, 어떤 관계,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의 문제다. 예를 들어 우 지사님, 김 지사님, 신 지사님이 계신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예우하고 어떻게 참여와 협력을 할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더 하고 많이 중지를 모을 생각이다. 저는 가능한 부분에서는 그분들이 가진 역량을 더 강한 제주, 하나 된 제주를 위해서 쓸 수 있도록 충분히 공간을 마련해 드리고, 그 부분을 뒷받침 하면서 제가 중간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면 저는 제가 직접 다 관리해야하는 역할은 줄이면서도 일은 더 많이 할 수 있으므로 성과를 더 잘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야권에선 서울에서 무얼 했나? 강정마을 문제 등 제주의 아픔엔 귀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선 서울시민이라고 하다가 지금은 ‘제주의 아들’이라고 하는 걸 놓고 정체성도 거론하는데···.

 

“저는 민주당의 비판에 대해서 일일이 답하는 게 중요하기 보다는 그 속에 담겨있는 도민들의 비판과 도민들의 걱정, 이 부분을 중시한다. 예를 들어서 그동안 뭐했냐는 문제다. 사실 제주의 아들이라는 자존심을 가지고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정치의 벽을 뚫기 위해서 온몸을 던져서 12년 동안 해왔다. 그리고 제주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어떤 부분은 제가 도와드린 것도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뻔히 보면서도 관여할 수 없었던 부분도 있었다. 그걸 일일이 얘기하는 것 보다는 예를 들어 4·3 관련해서 뭘 했느냐는 장정언 이사장님께 여쭤봐 주셨으면 한다. 강정마을 문제는 문정인 교수님께 물어봐 주시면 좋겠다. FTA나 제주 예산 딸 때 뭐했냐 이런 건 제주도청 공무원한테 물어봐달라. 그리고 기획재정부 공무원에게도 물어봐달라. 제 입으로는 말하기 그렇기 때문에 답하지 않겠다. 그리고 김만덕 나눔쌀 쌓기 관련해서는 양원찬 후보한테 말씀해 주시라. 저랑 같이 고민하고, 저랑 같이 협력하고, 저랑 같이 역할 분담을 해서, 물밑에서든 표면에서든 움직였던 사람들한테 물어봐 주셔야지 제가 그걸 가지고 드러내놓고 자랑하지 않았다고 해서 ‘한 게 무어냐’고 하는 건 조금 더 알아보고 얘기해주시면 제가 그걸 놓고 진지하게 얘기해 보겠다.

 

그렇다고 제가 한 게 많다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큰 틀에서는 나름대로 제주 출신이라는 약한 배경을 가지고 중요무대를 돌파하는 것을 제 모든 것을 걸고 했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당연히 부족했을 수밖에 없고, 그런 점에서는 한 게 뭐냐는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하자면 ‘미안합니다’이다. 제가 제주현안을 위해 매달리지 않고 중앙무대에 감히 도전했던 것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제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저는 최선을 다했다. 서울시장 선거 얘기하는데 제가 대학때 서울 가서 30년 가까이 서울 살고 서울시장 하려고 오세훈 서울시장을 내가 잡아보기 위해서 나경원 의원에게 정말 피 토하는 양보를 했다. 사실 정치적 위기도 많이 맞았다. 그런 부분에서 어떤 제주도민 분들은 도시락 싸고 다니면서 도와주신 분들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열렬한 자기 고향의 지지를 받는, 거기서 물심양면으로 많은 지지를 받는 다른 후보들이 사실 너무 부러웠다. 그런 마음은 어떤 저의 소외이기도 하다.

 

서울시민? 저는 제주출신 서울시민이라고 했다. 서울시민은 팔도에서 모인 게 서울시민이다. 저는 제주출신으로서 제일 순박하고, 제가 섬 출신이지만 ‘다보스포럼에 리더로 선출되었던 그 비전을 가지고 서울을 바꿔보겠다. 오세훈 시장의 겉멋내기 디자인 시장이 아니라 내가 서민의 아픔을 아우르고 서울의 속살을 키우는 시장이 되겠다. 그리고 그 당시 시장을 대권에 도전하는 나름대로의 관문으로 모두가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제주출신이 서울에 도전하자’는 마음으로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것이다. 만약에 제주출신이 서울시장에 도전하면서 내가 서울의 시민이라고 얘기하는 게 제주의 정체성에 어긋난다고 한다면 죄송하다. 그게 죄라면, 그게 고향을 부인하는 것이라면 죄송하다.”

 

제주출신이 서울에서 도전한 게 죄라면 죄송하다

 

▶ 늘 수석이 꼬리표다.

 

“대입 학력고사와 사법고시 수석 한 건데 제가 단기간에 지식적인 것을 하는 데는 조금 훈련된 기술 같은 게 있다. 그런데 인생을 공부 갖고 해결되는 것은 10분의 1도 안되더라. 대신 그 수석이란 타이틀은 한번 우려먹기 좋은 게 있다. 우리사회가 학벌사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있다. 공부 1등은 학교 때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각자의 인생 일등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공부 일등 한 것으로 우려먹는, 꽉 막힌 자기만 아는 우등생이기 보다는 공부 1등 한 게 죄가 아니라고 한다면 제 나름대로 더 많은 사람들과 호흡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함께 끌어안고 가는게 제 나름의 인생이다. 그 수많은 인생 1등을 만드는데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인생을 가려고 한다.”

 

▶ 그런 분이 왜 큰 무대가 아닌 제주도 도지사를 굳이 택했나?

 

“출마선언문에서도 얘기했지만 크기만을 얘기하면 제주도가 작다. 근데 가치와 미래의 가능성을 본다면, 제주가 미래의 열려있는 성장 가능성을 본다면 제주도가 가장 큰 곳일 수도 있다. 제가 그것을 현실화 해내면, 서울에서 계속 도전을 안 했었으면 도전을 안했겠지만 많이 했지 않았는가? 세력이 약해서 당내에서든 서울시장에서든 일단 한 번의 좌절을 맛 본 상황인데 만약에 이게 끊임없는 무한도전이라고 한다면 제주를 통한 대한민국의 도전이 어쩌면 마감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더 빠른 시작일 수도 있다. 그런 부분들을 저와 함께 고민하고 저의 정치인으로서의 꿈에 대해서 모든 것을 올인 해서 돕는 사람들의 몇 달간에 걸친 고뇌 끝에 나름대로 합의에 이른 것이다. 제주 가는 것을 반대했던 분들도 마지막에는 대체로 동의를 하셨다. 매우 진보적이고 매우 근본주의적인 분들도 동의를 해서 한번 만들어보자고 합의했다. 제가 수 백번,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밤을 고민한 문제다.”

 

▶ 출마회견장에서도 얘기가 나왔지만 이번 도지사에 당선돼도 4년 임기를 채우겠는가란 회의적 시각이 있다. 아마 2017년 대선 가도에서 원 전 의원이 어떤 형식으로든 나설 것이라고 보는 것 같은데...

 

“당선된다면 4년 임기는 무조건 채우겠다. 그 질문은 책임감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 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말씀 드릴 수 있다. 그 이상에 대한 문제를 물어본다면 지금은 질문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건 하늘의 몫이다. 계획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지만 시간표를 당기고 늘리고 하는 것은 하늘의 몫이고 구체적으로는 본인이 결정할 문제다.”

 

제주에서의 도전은 마감이 아니라 더 빠른 시작

 

▶ 출마선언 무대로 관덕정을 택했다. 하지만 그곳에선 조선조 제주인의 장두라든지 변방에서 제주의 한을 대변했던 이들이 효수됐던 곳으로 중앙정치권의 전횡이 장소라고 폄하하는 시각이 있다.

 

“그런 시각이 있을 줄은 생각을 못했다. 미리 지적을 해주셨으면 우리가 반영을 했을 텐데···.(웃음) 저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한다. 그렇게 따지면 파리의 콩코드 광장은 하루에 3천명이 사형을 당한 곳 아닌가? 거기에 전 세계 관광객이 와서 왜 그렇게 열광을 하는가? 그래서 역사는 아픔도 있고, 죽음도 있고, 거기서 기적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지나간 역사는 불씨가 꺼져서 재가 되면서 나름대로 이끼가 끼고 한줌의 재로 남아서 그 자체가 좋든 싫든 우리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는 역사를 끄집어내면서 현재의 관념과 현재의 세력을 편 가르는 것처럼 파렴치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천박한 역사의 접근이다.

 

굳이 관덕정이 아니어도 되는데 관덕정을 굳이 잡은 이유는 4·3이나 강정은 앞으로 하나하나 해결한다고 치고, 앞으로 우리에게 두고두고 근본적으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과 외래자본관계에서 제주도민의 주인 됨, 이걸 어떻게 만들 것인가이다. 그리고 제주도가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아무것도 없으면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은 사실은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우리가 주인이 되고, 우리의 자산은 무엇으로 중심을 삼을 것인가는 바로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 우리 도민이어야 한다. 우리 도민이 과거의 역사여야 하고, 우리 도민 공동체에 묻어있는 문화여야하고, 우리 도민들이 갖고 있는 한과 꿈, 어떤 인간성까지 포함된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덕정을 택한 것이다.

 

정책적으로는 유럽이나 일본·중국 등 어디에나 가면 모든 관광과 모든 경제활동의 출발은 올드 타운에서 시작한다. 파리도 콩코드광장에서 시작하지 않는가? 북경가면 천안문이다. 여기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한다. 전 세계에 어딜 가나 있는 고층빌딩들은 거기에 걸 맞는 외곽에 있다. 그러면 전 세계 관광객들이 와서 뉴욕이나 동경에 가면 더 화려하게 서 있는 그런 빌딩들이 우리의 상품은 아니지 않은가? 제가 꿈꾸는게 어떤 크루즈, 어떤 비행기가 오더라도 저는 관덕정, 동문시장, 탑동, 지하상가 구도심 그곳이 제주의 올드 타운이다. 제주의 오래된 제주의 것을 담고 있으면서 그것을 이용하고 거기서 나오는 가치, 서비스, 상품은 최첨단인,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저는 ‘가치제주 도시올레‘로 붙이려고 한다.

 

여기의 컨셉은 ’아주 오래된 미래‘다. 그러면 여기에 여기서 반드시 둘러봐야 되고, 사진을 찍어야 되고, 이런 것들이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여서 이 사람들이 여기를 거쳐서 제주도에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관덕정은 주변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저 보고 선택을 하라고 해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제주도의 과거·현재·미래를 생각하며 지목한 장소다.”

 

'아주 오래된 미래'의 시대를 열고 싶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알려면 제주를 보라”고 말했다. 그려 보는 제주에 대한 그랜드 디자인이 있는가?

 

“제주의 자연, 제주의 문화, 제주의 삶, 이 값어치를 우리가 알고 이것을 통해서 경제를 키우는데 이걸 추진하는 역량이 우리의 역량이어야 되고, 이것의 소유는 우리의 소유여야 되고, 그 열매는 도민 속으로 들어와야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제주의 친구들, 친제주파를 많이 만들면서 제주도민의 주인 역량을 끌어올리고 이것을 하나 되고 강한 제주 그리고 전 세계에 규모는 작지만 사실은 전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와 감동의 크기는 가장 큰 그런 제주가 제가 갖는 꿈이다. 그래서 구도심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현재 특정한 지역에서의 고밀도 개발, 예를 들어 녹지그룹에서 하는 것도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깊이 들여다 볼 생각이다. 그리고 제주도에 대해서 아주 애정을 갖고 있는 친 제주파들, 그리고 저도 제주 다보스포럼에 가서 제주도에 대해서 토론을 해보는데 아이디어는 이런 것이다. 제주의 큰 건물들은 제주의 랜드 마크를 닮아야 된다. 제주 랜드마크는 뭘까? 한라산과 오름이다. 다른 인공적인 것이 제주시에서 바라보는 그 웅장한 한라산, 그리고 서귀포에서 바라보는 부드럽고 어머니 젖가슴 같은 우리 한라산, 이 스카이 라인을 벗어나는 그런 랜드마크가 있을 수 있나? 저는 미학적으로 근본적으로 매우 극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뉴욕에 가서 120층짜리 건물도 가봤지만 그건 아니지 않는가?

 

모든 건물들은 한라산과 오름을 닮아야 한다. 모든 사람들을 끌어안는 힐링의 느낌을 줘야 한다. 제주도 땅 넓지 않은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 컨텐츠를 무엇으로 채울 것이냐의 문제다. 중국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니까 카지노는 있어야 하겠지만 제주도 경제권, 지리적인 핵심에 있어서는 안된다. 교통대란 어떻게 감당할 건가? 제주도 경제권 핵심에 있어야 하는 것은 제주의 가치를 전 세계로 향해서 발산하면서 끌어들이는 ‘도시올레’ 같은 게 중심에 있어야 된다.

 

‘오래된 미래’라고 말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예를 들어서 전기자동차나 미래의 IT를 보여주는 어떤 체험관 같은 것들이 있어야 된다. 이런데 실제로 관심을 가진 세계와 대한민국의 첨단 기업들, 그런 제주도 현지의 대학들, 그 다음 여기에 기업인들이 나름대로 자기의 몫을 갖고 다 참여할 수 있는 그런 형태의 시스템을 짜서 이게 갈 수 있도록 큰 틀에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해야 될 일이 뭘까란 부분에서는 저 자신도 밤잠을 설치면서 고민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저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귀를 열고 있다. 조금 지켜봐 주시라.”

 

 

▶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지금 제주의 문제는 이것이라고 짚는다면···.

 

“핵심적으로 말해서 궨당문화 아니겠는가? 인간으로서는 자연스러운 부분인 듯하다. 내가 내 부모를 부정할 수 없고, 내 고향을 부정할 수 없고, 내 모교를 바꿀 순 없는 거 아닌가? 내가 이민을 가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일부, 이것이 확장된 게 궨당이다. 그렇기에 궨당에 대한 애착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인간적으로 당연하고 인간미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궨당이라는 범위를 벗어났을 때 매우 배타적이라는 것이다. 작은 공동체 때문에 더 큰 공동체를 부정해버리는 ‘정(情)의 문화’ 이게 가장 큰 문제다. 궨당문화와 자기 범위를 벗어나는 부분에 대해서 긍정적인 마인드 보다는 부정적이고 냉소적으로 폄하해 버리는 문화 때문에 1%의 제주가 1%의 출력도 못 내고 있다.”

 

궨당? 작은공동체 때문에 큰 공동체를 부정하는 건 문제

 

▶ 출마회견장에서 우 지사와의 인연은 얘기가 있었다. 신구범 전 지사와 김태환 전 지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선 김태환 지사님은 매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9급에서부터 공무원을 시작해서 제주시장, 도지사까지 가신 분 아닌가? 그런 부분에서는 정말 집념이 강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어렵고 열악한 여건에서 성장한 역할모델이다. 우근민 지사처럼 군인출신이거나 모시던 큰 장군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신구범 지사님처럼 행정고시 패스한 뒤 중앙부처 고위 국장하다가 들어온 것도 아니고, 바닥에서부터 올라가면서 바닥에 대해서 너무나 감정이입이 잘 될 정도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몸에 배어 있는 분이라는 게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김태환 지사님을 보면 권력의 냄새 보다는 밑바닥 냄새가 훨씬 많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김 지사님은 굉장히 두뇌와 가슴이, 어떤 정(情)이 가장 크신 분 인 것 같다. 지금 사모님이 암으로 투병하고 계시는데 매일 저녁에 가서 간병하면서 내색도 안하시는 그런 것을 보고, 또 아드님이 버무법인 지평의 변호사 하다가 지금 판사로 재직중인데 자식농사도 남부러워하는 그런 것을 하셨으면서도 자식들도 어디 가서 도지사 아들이라는 티 전혀 안내고 소박하게 제주도 돌멩이처럼 쭉 다니는걸 보면 이 분이 평소에 가정교육이나 부부관계에서나 하고 있는 무게중심이 저 위쪽 권력중심으로 가있기 보다는 훨씬 바닥과 인간적인 정에 와 있는 분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저같이 사시 일등 때문에 자칫 우등생 병폐에 빠지기 쉬운 사람은 그런 인간적인 장점을 수혈 받아야 저도 좀 더 대중정치인으로서, 그 이전에 인간으로서 좀 더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좀 더 따뜻하고 정이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제가 김 지사님의 기운을 그냥 매일 흡수를 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김 지사님을 따르는 사람을 보면 사실은 이해관계 없이 따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 결과라고 본다. 각별한 인연도 있다. 옛날에 제주선거에는 가급적 개입을 안한다는 원칙이었다. 그런데 김 지사님의 보궐선거로 2004년에 나왔을 때 그때도 중앙당에 떠밀려서 사실 왔다. 쭉 같이 다녀보니까 아침 새벽부터 해장국집도 가고 열심히 하시는데 그 점에서 놀랐다. 저는 지원유세를 할 때 약간 띄울 순 있지만 거짓말은 못한다. 그 때 제가 칭찬했던 게 뭐냐면 중앙부처 와서 예산로비 할 때 보면 밑바닥부터 고생을 해서 그런지 9급 밑바닥 공무원까지 샅샅이 훑으고 가는 부지런함이 정말 소문났다. 나는 10분의 1도 못 따라간다. 진심이다. 그런 점을 본받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신구범 지사님은 제가 특별히 인연은 없다. 하지만 신 지사님이 2002년도 6·13선거에 나갈 때 그때 우리당 후보였다. 그때 중앙당에서 이회창 총재가 저보고 지원유세를 가라고 하는데, 제가 선배님들한테 여쭤봤더니 ‘가면 안 된다. 왜 원희룡이 제주도에서 절반의 사랑만 받고 절반의 미움을 받아야 되느냐. 제주도 선거라는 게 반쪽과 반쪽의 대결이 불가피한 데 그 부분에 휘말려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그러면서 아주 강력하게 막고, 당 지도부에다가도 그런 부분에 항의하고 해서 제가 못 왔다. 이회창에 의해서 영입된 사람이 이회창 눈 밖에 난 첫 사건이 신구범 지원유세를 안 간 것 때문이다. 그래서 신구범 선거조직을 위해 뛰던 분들은 저에 대해서 조금 섭섭하고 조금 원망의 마음도 가졌더라. 그래서 약간 서운한 부분은 있었다.

 

하지만 신 지사님을 높게 평가하는 건 예를 들어 삼다수라든지 아니면 국제자유도시는 우근민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김태환이다,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서 실제 제주가 세계를 향한 어떤 제2의, 과거 4·3의 상처와 아픔 속에서도 박정희 대통령때 제주가 깊은 잠을 깨서 경제건설의 심장이 뛰기 시작한 게 5·16 이후였다고 한다면 그게 국제자유도시와 특별자치도로 갈 수 있는 제주의 알맹이들, 그 아이디어와 그 사업 추진에 대한 발동을 건 부분은 신 지사님 때 이루어진 부분이 상당히 많다. 1990년대 초반에 제주특별법이 신지사님 때 다듬어지고 그 다음 국제자유도시 특별자치도로 왔다. 저는 이게 전체가 새끼줄에 세 개가 꼬여서 가는 게 제주도지 두개를 버려서 하나만 간다? 그거는 어떻게 보면 떡을 잘라버리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제가 신 지사님의 정책, 김 지사님의 바닥에 대한 친화력, 그리고 우근민 지사의 관리력 내지는 장악력, 이런 부분들이 세분 다 대한민국 다른 어떤 지역에 가서도 각자의 강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계승하고 합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 스스로 생각하는 강점과 단점이 있다면 ···.

 

“저의 강점은 생각보다는 겸손하고 남의 이야기를 스폰지처럼 잘 주고받고 하는 편에 있다. 두고 보시면 안다. 단점은 조금 앞서갈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조금 빠를 수가 있다. 우직한 분들이 같이 2인3각처럼 발도 묶고 손도 묶어서 같이 가는 그런 점에서는 많은 분들이 저를 붙잡고 가주셔야 한다. 그렇게 하면 저 혼자 치고 나가는 것은 중앙당에서 어디까지는 갈 수 있는 벽에 부딪치는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 왔을 때는 혼자 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대열을 이루어서 간다. 물론 마음이 가고 그런 점은 많이 깨져봤기 때문에 실패해 봤기 때문에 쓰라린 경우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또다른 저의 제2의 탄생이란 자세로 하겠다.”

 

▶ 이번 6·4 제주지사 선거의 시대정신을 어떻게 보나? 제주도민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줄 세우기와 편 가르기는 어떤 경우에는 상당히 눈치 보기와 두려움으로까지 변모했다. 정치적으로 파괴돼 있는 제주공동체를 하나된 제주로 다시 바꿔야 한다. 하나된 제주로 출발해 강한 제주로 갈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는 생명을 약동시키고 얼어있던 분열구조를 깨는 제주의 봄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봄소식은, 통일의 봄소식은 제주에서부터 온다’는 출발은 작을지 모르지만 이것이 연결돼 있는 무늬는 대한민국과 남북통일 동북아까지 연결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제가 그동안 정치를 하면서 추구했던 큰 꿈이 제주도에서 시작된다. 그 크기 자체는 작을지 모르지만 모든 씨앗은 작은 것 아닌가? 작은 씨앗 안에 크게 뻗어나가는 나무의 모태가 있다 그렇게 봐주시면 좋겠다. 거대한 나무를 잉태한 씨앗을 틔우는 제주의 봄이 지금 왔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 정리=김경미 기자]

 

 

 

 

 

☞원희룡은?
= 16,17,18대 국회의원, 전)새누리당 최고위원

 

학력

 

제주 제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뉴미디어.영상 석사 수료
제주대학교 명예정치학박사

 

경력

 

前 서울, 여주,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16,17,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최고위원(2011~2011)

한나라당 사무총장(2010~2011)
前 국회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前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
前 한국지식정보산업협회 회장
前 한나라당 최고위원(2004~2006)
前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
前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
前 저탄소녹색성장국민포럼 대표
前 한일의원연맹 부회장

 

상훈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런 인물대상(의정-외교통상통일부문). 2010.12.02

 

저서

 

주관식 헌법. 박영사 1998
우리들의 세기, 은행나무.2000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공저), 바오출판사, 2005
나는 써브쓰리를 꿈꾼다, 꽃삽, 2005
블러거 원희룡, 삼조출판사, 2010
사랑의 정치, 미지애드컴, 2010
무엇이 미친정치를 지배하는가, 이와우,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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