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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헌 변호사의 법률 칼럼

초임검사 시절.

황 할머니 사건 이야기다.

 

일제시대 인텔리겐차 또는 일본 늙은 게이샤 분위기를 풍기며 한 손에 사탕 하나 쥐고 나를 찾아왔다.

 

이미 대전지검에서는 유명하신 분. 수십년 전부터 고소와 진정을 반복하면서 40년 전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생떼'를 쓰시던 분이다.

 

늘 서울에서 대전까지 기차를 타고 찾아 왔다.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달달한 사탕하나 손에 쥐던 모습이 생생하다. 세월깊은 미소로 사탕하나 건네면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는 나로서는 불편한 웃음으로 사탕 하나 받아 입에 넣었다.

 

몇 번을 반복하다가 문득 '도대체 무슨 사건이길래 40년이나 지나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되어 어찌할 방법이 없는 사건에 저토록 많은 세월을 쏟으시는가, 혹시 너무나도 억울한 그 무엇이 숨어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대화를 시도했다.

황 할머니의 하소연은 '40년 전에 동네 사람들에게 땅을 빼앗겼고 이를 해결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했지만 번번히 기각을 당해 그 과정에서 딸 하나를 잃었다. 그래서 평생을 매달렸고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는 눈을 감을 수 없다. 평생에 한(恨)이다.'라는 이야기...

 

고민을 하다가 할머니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한 번 소환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의 관계자들을 소환하는 것 자체가 '월권적 행위'다 싶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평생 '한'이고 인생을 걸고 있으니 한번쯤 응어리 일부라도 털어내드리고 싶고 약간의 호기심도 발동해 '월권'하기로 했다.

 

어느 날 검사 집무실에서 사건 관계자인 할아버지 두 분과 황 할머니가 만났다. 일단 대화라도 나누시라고 잠깐 일어서서 집무실을 나서려는 찰나 할아버지의 비명소리와 황 할머니의 고함소리가 뒤엉켜 들리고 할아버지는 거의 도망가다시피 하는 것이 아닌가..

 

아차! 나의 실수..

 

결국 아무런 대화도 없었고 힘겹게 떼어놓은 다음 할아버지 두분은 돌려보내드렸다. 그리고 남은 황 할머니와 쓴웃음을 지으며 마주했다. '왜 그러셨어요?' '감정이 북받쳐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날 이후 황할머니를 만나지 않았다.

 

법적인 해결 방법이 전혀 없는 사건에 감성을 버무려서 '인간적으로' 어떻게 한번 해보자.. 하는 생각은 옳지 않다. 법조인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아야 한다. 사건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법조인이 아니라 당사자가 되어 사건을 감성적으로 처리하려고 달려든다. 그리고 그 결과에 너무 많이 감정이 매달리게 되고 그러면 힘이든다.

 

위 교훈을 얻었지만...

 

아직도 나는 '사건에서 한발 떨어지기'를 머리속에 되뇌이고 있으니 천상 나는 법조인으로서 '자격미달'이다.

 

☞ 구자헌은?= 제주시 출생, 오현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나와 1997년 사법시험(39회)에 합격해 2000년 사법연수원(29기)을 수료했다. 2005년까지 대전ㆍ대구(상주)ㆍ인천ㆍ부산 동부지청 등에서 검사로 재직했다. 이후 부산,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11년 봄 제주에서 법률사무소 부경을 개업했다. 제주도규제개혁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초임검사 시절 선불금을 갈취했다며 사기죄로 고소당한 탈매춘 여성들에 대해 우리나라 사법사상 처음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려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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