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23일 역사적 규명 토론회 ... 용머리해안설, 신도리 해안가설 등 지리적 재정리

 

17세기 한반도와 제주도의 존재를 최초로 전 세계에 알렸던 '하멜표류기'의 핸드릭 하멜 일행은 제주 어느곳에 다다랐을까?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는 하멜 일행의 최초 제주 표착지에 대해 전문가와 학자들이 모여 토론회를 열었다.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스포츠위원회(위원장 안창남)와 농수축경제위원회(위원장 박원철)는 23일 도의회 의사당 소회의실서 '하멜 표착지에 대한 역사적 규명 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는 조선 숙종 때 이익태 제주목사가 쓴 '지영록(知瀛錄)'이 1997년 일반에 소개가 되면서 하멜 일행이 제주에 표착했다는 지리적 근거를 역사적으로 규명키 위해 마련된 자리다.

 

토론회에는 이용훈 하멜표착지 규명 추진위원장, 채바다 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 이윤형 한라일보 교육체육부 부장, 윤봉택 서귀포시 문화재담당 등이 참석했다.

 

토론회에서는 그동안 정설로 알려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용머리해안 뿐만 아니라 ▲서귀포 향토사학자 김태능씨가 주장한 중문 해수욕장설 ▲70년대 미국 콜롬비아대 레드야드 교수가 주장한 모슬포해안가설 ▲소설가이자 기자 강준식씨가 주장하는 서건도 서쪽 강정인근설 ▲신동규 강원대 역사학과 교수의 수월봉 밑 해안가설 ▲채바다 한국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과 김동전 제주대 사학과 교수가 주장하는 신도2리 해안가설 ▲고광민 학예연구사의 대정읍 일과리설 등 다앙한 주장들이  잇따라 제기됐다.

 

 

더불어 최초표착지 위치로 분분한 각 지역의 입장, 각 언론의 시각과 행정지원적인 측면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토론회에서는 정설로 알려진 사계리 용머리 해안설의 오류와 문화 행정의 방관적 태도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토론회 주제발표자인 오창명 제주국제대 교수는 “새로운 사료의 발굴로 하멜표착지에 대한 여러 논의들이 생겨 행정에서는 역사적 규명과 함께 이를 재정리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허창옥 농수축경제위원회 부위원장은 “일각에서는 정확한 위치 논쟁은 학계의 몫이라고 하지만, 지역주민들의 위치 비정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을 때는 나름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이에 대해 행정과 학계에서는 지역적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의 역할을 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정설로 알려진 하멜표착지는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용머리 해안으로 현지엔 하멜표류 기념비와 하멜 일행이 타고 온 스페르베르호를 본뜬 상선이 용머리 해안에 세워져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 일행은 1653년(조선 효종 4)  8월 동인도회사 소속 무역선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가다가 제주도 해역 부근서 뜻 밖의 풍랑을 만나 제주도 해안가에 표착했다. 하멜을 포함한 일행 64명 가운데 풍랑으로 28명이 사망하고 36명이 표류하다 제주도 해안가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들은 제주와 서울 등지의 병영으로 끌려가 13년 간 지내다 21명이 병사했고, 15명은 탈출하거나 본국으로 송환됐다. '하멜표류기'는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유럽인의 첫 ‘조선 보고서’다. [제이누리=강남욱 기자]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