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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 ... 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수수께끼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작업을 맡았다. 그가 번역.정리한 내용으로 <중국, 중국인> 새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인종(人種)은 종족(種族)이라 하기도 한다. 체질 형태 상 공동유전의 특징(예를 들어 피부색, 털색, 눈 색, 혈액형 등)을 갖춘 무리를 말한다. 이런 특징에 근거하여 세계인류를 크게 황인(몽골 Mongoloids)종, 흑인(니그로 Negro)종, 백인(유로파 Europa)종으로 나눈다.

 

중국인은 몽골인종에 속한다. 각 인종 사이에는 구별이 되기는 하지만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한 인종에서 점점 다음 인종으로 바뀌어 가는 과도기 현상이 있다. 이는 인류의 각 인종 사이에 공통의 조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으로 인류를 세 인종으로 나누는데 중국인은 어디에 속할까? 인류학자들이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의 인종은 모두 기원이 같은 동일종이라 한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5만 년 전 인류의 체질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단계로 발전했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세 인종이 기본적으로 형성됐다고 한다.

 

인류학자들의 분류에 따르면 현재 중국인은 몽골인종의 동아시아 유형과 남아시아 유형에 속한다. 몽골인종의 주요 특징은 체형과 피부색이 중간 정도이고 두발은 곧고 굳으며 체모와 머리카락은 비교적 적고, 얼굴은 편평하며 코 너비는 중간 정도이고 콧마루가 낮으며 입술 두께는 중간 정도이고 눈꺼풀은 거의 다 몽고주름(내안각췌피內眼角贅皮)을 가지고 있고 윗눈꺼풀에 지방질이 많아 두툼하며 가늘고 길게 째진 모양의 황인종 특유의 몽고안(蒙古眼)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높은 눈언저리, 삽모양 앞니, 툭 불거진 광대뼈, 편평한 안면골을 가진다는 특징이 있다.

 

중국 문명은 구석기 말기와 신석기 시대에 출현하였다. 중국 내에서 발견된 인골화석은 모두 원시 몽골인종에 속하고 호모 사피엔스이니, 중국의 호모 사피엔스가 중국인의 직계 조상이라 할 것이다.

 

베이징 서남쪽 주구점(周口店) 용골(龍骨)산 정상에 북경 직립인이 발견된 제1지점 바로 옆에서 산정동인(山頂洞人)화석이 발견되었는데 그중 두개골 3점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인류학자인 바이덴라이히(Weidenreich)가 측량을 해보니 남성 두개골은 유럽 인종의 화석과 닮았으면서 외형은 오히려 원시 몽골인종을 닮았고; 한 여성 두개골은 멜라네시아 유형을 닮았으며; 또 다른 여성 두개골은 에스키모인과 닮았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희한한 추측을 내놓았다. 산정동인은 외지에서 이동해온 주민으로 원래 현지에 거주하던 몽골인종의 공격을 받아 멸종한 것으로 현재 중국인의 체질 특징과 그들하고는 직접적인 승계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학자들이 다시 산정동인의 두개골을 연구한 결과 바이덴라이히는 너무 차이만을 강조했을 뿐 공통성을 헤아리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실제 3점의 두개골은 원시 몽골인종을 대표하는 것으로 중국인, 에스키모인, 미주 인디언과 특별히 닮았으며 상술한 인종의 공통 조상이었음을 밝혀냈다. 산정동인은 중국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 속하며 그들의 뇌 용량은 1300-1500밀리리터로 현대인 뇌 용량의 변이 범위내로 발달정도가 현대인과 근접했음을 할 수 있다.

 

기원전 5000년에서 기원전 3000년 신석기 중기에 중국의 북방에는 앙소(仰韶)문화가 출현하였다. 주로 섬서(陝西) 관중, 하남(河南)의 대부분, 산서(山西) 남부, 하북(河北) 북부와 감숙(甘肅), 청해(靑海) 오르도스(Ordos)지역에 분포해있다. 현재까지 1천여가 넘는 유적지가 발견됐는데 중국 문명의 초기 핵심 지역을 덮고 있어 중원 대부분의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중국문명의 근간으로 보고 있다. 앙소문화의 주민은 몽골인종의 동아시아 유형이 주체이고 중아시아, 남아시아 요소도 포함하고 있는 동아시아 몽골인종의 주요 유적이다. 이 시기의 고대인은 이미 대규모의 촌락을 이뤄 정착생활을 하였다. 

 

 

앙소문화의 각 유적 중 강채(姜寨) 촌락 유적이 가장 온전하게 발굴되었다. 강채유적은 기원전 4600년에서 기원전 3690년에 건립됐는데 섬서성 임동(臨潼)현 성북에 있다. 면적은 5500평방미터이고 원형으로 폭과 깊이가 모두 2미터가 넘는 해자가 촌 주위를 에워싸고 있으며 촌 중앙에는 광장이 있었다. 촌락은 씨족을 중심으로 조직돼 있고 5개의 집합체에 100여 채의 가옥으로 구성돼 있었다. 씨족마다 커다란 공공주택을 두고 이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가옥들이 둘러싸 있었다. 가옥은 지혈(地穴), 반지혈(半地穴), 평지에 움집을 짓는 3가지 종류가 있었으며 여러 개의 방이 있는 가옥도 유행했다. 한 가족은 노모가 중심이었고 가족은 중방에서 거주를 했으며, 가임연력의 여성은 작은 방에서 남자를 맞았고 성년 남자는 평상시 공공주택에 거주하는 전형적인 모계 씨족사회였다.

이 시기 농업은 고도로 발달돼 있었다. 앙소문화는 주로 황하 유역에 분포하였는데 기후가 건조하고 강수량이 비교적 적었으나 비가 여름에 집중돼 내건성 작물이 생장하기에 유리하였다. 더욱이 황토는 바람에 날려 와 쌓인 것으로 토양의 조직이 균일하고 성기어 좋은 보수, 급수 성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천연의 비옥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조건은 곡물 수확을 높여줬다. 원시농업의 출현은 인류가 자연을 개조하여 얻은 결과였다. 문명의 탄생은 농업의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앙소문화는 중국문명의 기초를 세웠다고 할 것이다. 앙소문화 시기에 생활했던 고대인들은 중국인들의 선조임이 틀림없다고 한다.

 

인류학자들은 중국인의 인종 특징이 동아시아 중위도의 지리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중간 정도의 체격을 가졌고 중간 피부색은 중위도의 일조와 온도에 어울리며 몽고안과 높지 않은 코는 어쩌면 중아시아 한랭하면서 풍사가 많은 기후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중국인의 인종 구성은 단순하지 않다. 단일민족이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황하 하류의 대문구(大汶口)문화 거주민들은 폴리네시아의 요소가 있고, 하모도(河姆渡)문화와 광동(廣東)에서 발견된 인골화석들은 분명하게 오스트레일리아 흑색인종의 성분을 갖고 있다. 상(商)대 은허(殷墟)에서 발견된 두골은 여러 다른 종족들이 포함돼있다. 따라서 석기시대 이전에 인류는 장기적이면서 대규모로 이동을 하였고 유사(有史)시대에서야 지역성을 띤 민족이 형성되면서 인류의 생활이 비로소 상대적으로 안정되었다고 할 것이다.

결국 중국 민족이 독립적으로 일체를 이루게 된 것은 중국 문명의 형성 과정 중에서 여러 요소가 융합되면서 가능했다. 중국 민족이 형성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성분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중국, 중국인 3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국립 중국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종문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는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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