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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시평] 이중창에 가로 막힌 청춘 ... 안팎으로 갇힌 강정마을의 비극

28살의 청춘이었다. 아내는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해군사관학교를 64기로 나와 장교로 복무하며 어엿한 대위 계급장을 달았다. 제주방어사령부 정훈과장이란 보직을 받아 제주에 내려온 지도 근 한 달.

 

한 달 만에 그 청춘은 비상출동 명령으로 서귀포로 향했다. 8년여를 끌어오는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현장.

 

기지조성 공사가 한창이건만 군 관사 공사현장 앞을 차지한 농성천막장이 ‘과제’였다.

 

그로선 국방부와 해군본부의 명을 받은 처지.

 

지난달 31일 국방부 장관 명의의 행정대집행 계획에 따라 오전부터 그는 서귀포 강정마을 현장을 지켰다. 100여명의 용역 등 1000여명의 인력이 동원돼 ‘해군기지 반대’를 외치던 농성천막과 망루는 모두 철거됐다.

 

고단했다. 해군장교로서 소임을 다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늦은 시각 그는 서귀포의 한 모텔에 투숙했다.

 

하지만 그 숙소가 그가 마지막을 맞이할 운명의 장소인지는 그도 몰랐다.

 

 

야심한 새벽 무렵 잠시 바람이라도 쐴 겸 그는 창문을 열고 숙소 베란다로 나갔다. 입춘이 다가왔지만 아직도 찬 바람이 감돌았다. 객실에 남은 온기라도 사라질까 싶어 문을 닫았다.

 

그게 화근이었다. 무심코 닫은 문은 객실 밖에서는 열려고 아무리 손을 써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은 지 얼마되지 않은 건물은 ‘첨단’을 과시하듯 객실 내부와 베란다 사이를 2중창으로 설계했다. 숙소 내부에서나 문을 열 수 있지, 밖에서는 아예 열 수 없도록 ‘자동잠금’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도난방지 등의 이유였다.

 

하필이면 휴대전화기도 손에 쥐어있지 않아 도움을 요청할 길도 없었다.

 

막막한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는데 한 켠 구석에 로프가 달린 완강기가 눈에 들어왔다. 야심한 시각 고성으로 소동을 부릴 처지도 아니기에 완강기에 몸을 맡길 생각을 했다.

 

그 쯤은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찔한 바닥을 내려보며 완강기에 연결된 로프를 몸에 감고 내려오다 그만 로프가 목을 휘감았다. 급작스레 목을 짓누른 로프에 정신은 혼미했고 이내 온 몸에 기운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지난 1일 새벽 서귀포의 한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해군 장교 장모 대위 이야기다.

 

사고경위는 정확한 수사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그동안의 수사상황과 정황으로 당시 사고의 가능성을 추론해 본 것이다.

 

너무도 안타까운 죽음이다.

 

그 젊디 젊은 나이에 해군사관학교를 나온 인재가 이리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게 너무도 안쓰럽다.

 

그가 유명을 달리한 것 만큼 안쓰러운 건 그가 가야만 했던 해군기지 조성공사 현장이다.

 

8년여를 끌어온 분쟁과 갈등엔 강정마을 공동체의 아픔이 있다. 요란한 발파소리에 아예 모습을 감춘 ‘구럼비 바위’도 있다.

 

그래도 그 ‘자동잠금’ 이중문은 안에선 열 수 있지만 강정마을을 에워싼 이중문은 안팎 어느 곳에서도 열 방법이 없어 보인다.

 

어이 없이 우리의 청춘이 비명횡사하지 않는 날이, 강정마을 주민들의 그 숱한 눈물이 마를 날이 이리도 오래 걸리는가?

 

8년의 세월이 너무도 아프다.

 

탓하기 보단 이젠 서로의 입장을 존중했으면 한다. 최소한 서로 마음을 풀 여지는 남겨둬야 한다.

 

국책사업이란 명분은 ‘통 큰’ 집행보다 ‘통 큰’ 지혜와 더 잘 어울린다.

 

이젠 제발 평화로운 강정마을, 평화로운 제주시대로 넘어갔으면 좋겠다. [양성철=제이누리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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