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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5)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작업을 맡았다. 그가 번역.정리한 내용으로 <중국, 중국인> 새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상아(嫦娥)가 달로 달아난 전설은 대략 기원전 2500년 전에 생겼다고 본다. 이 속에는 상아와 예(羿)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학자들은 애정이란 일부일처제 아래에서 생겨난 것으로 문명사회에서나 있는 감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원시인류에게는 애정이 없었다는 말인가?

 

“세상에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기에 사람에게 생사를 같이 하게 하는가(問世間情爲何物,直敎人生死相許)”라는 시구처럼 애정이 가지고 있는 마력은 사람들을 경탄하게 한다. 사람들은 애정을 갈망하고 사랑을 찬미하면서 견딜 수 없어 목숨까지 버리게 만든다. 그렇다면 사랑, 곧 애정이란 언제부터 인류에게 있었던 것인가?

 

인류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대답을 내놨다. 모건(Thomas Hunt Morgan)은 『고대사회』에서 애정의 유래에 대해 탐구 했다. 그는 인류사회가 야만(野蠻), 몽매(蒙昧), 그리고 문명(文明)의 3단계가 있다고 보고 애정은 문명사회에서야 비로소 생긴 감정이라고 했다. 문명시대 이전에는 인류는 아직 애정이란 무엇인지 이해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인류는 동물과 같이 편리나 필요에 의해 짝을 찾는다. 생물학자들은 동물도 감정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모건은 ‘야만인은 애정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야만인은 감정을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모건의 결론은 고전적이고 영향력이 가장 큰 해석이 되었다. 많은 사회학자들은 그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있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나 엥겔스도 원시사회에는 애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엥겔스는 대략 유럽의 중세기가 돼서야 애정이라는 게 생겼다고 본다. 중세기 이전에는 개인의 애욕을 얘기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중세의 기사 및 낭만적 사조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남녀의 결혼이 부모에 의해 결정되었고 근본적으로 연애의 자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세에 기사들이 출현한 이후 기사들이 귀족의 젊은 여자들을 거리낌 없이 추구하게 됨으로써 애정에 매혹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것이 애정의 유래에 대한 유일한 해석인가?

 

모건의 결론은 미주 인디언의 원시부족에 대한 조사에서 얻은 것이다. 진실이기는 하지만 결국은 지구의 한 모퉁이를 대표하는 것일 뿐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와 다른 증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일까?

 

학자들은 중국에 현존하고 있는 아주 오래된 소수민족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다가 모건과는 다른 결론을 도출해 냈다. 예를 들어 두위팅(杜玉亭)의 연구가 그것이다. 윈난(雲南)의 지눠(基諾), 나시(納西)족, 쓰촨의 이(彛)족, 그리고 하니(哈尼)족, 다이(傣)족과 같은 오래된 민족의 혼인에 대해 연구를 하였다. 이런 민족의 발전 정도를 보면 모건이 얘기한 문명시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들의 애정은 이미 문명인이 상상하기 힘든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예로부터 윈난 시솽반나(西雙版納) 징홍(景洪)현 산악지구에 터를 잡고 살아왔던 지눠족의 경우를 보자. 그들의 인구는 약 12,000명이다. 두위팅의 연구에 따르면 지눠족의 애정 과정은 3단계로 나뉜다고 한다.
‘바퍄오(巴漂)’, ‘바바오(巴寶)’, ‘바러(巴勒)’가 그것이다. 애정의 초기, 즉 ‘바퍄오’ 단계는 여성이 비교적 주동적이다. 여성들은 자신이 마음에 둔 남자에게 몰래 선물을 주며 추파를 던지면서 용감하게 상대를 탐색한다. 일반적으로 서로 정을 느끼면 애정은 비밀스런 모색에서 공개적인 행동으로 옮기는데 이 단계가 ‘바바오’이다. ‘바퍄오’ 시기보다는 남성이 더 주동적이 되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여성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며 검증을 하면서 적극적인 추구자가 된다.

 

이 시기에 검증을 견뎌내지 못하거나 마음이 변하면 애정은 바람처럼 사라진다. 서로 헤어진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바바오’ 단계를 지나면 사랑하는 연인은 ‘바러’(혹은 ‘바리(巴里)’) 단계로 접어든다. 그들은 거침없이 동거하고 일반 가정과 같은 생활을 꾸려 나가면서 쌍방이 서로 사랑하는 성애의 쾌락을 향유한다. 쌍방의 부모는 이런 연애 과정에 있는 자식들을 간섭할 수 없다. 더욱이 자식들에게 스스로 애인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사랑의 쓴 맛과 단 맛을 체험하게 한다. 연애 중 최종적인 결합은 편리함과 필요에 기초를 두지 않고 자유스러우며 솔직한 것이 중세 기사들이 슬며시 하는 애정보다도 숭고하고 완벽했을 것이다.

이 지눠족의 예는 대표적이라 하겠다. 이들의 역사는 오래되었고 이런 예스러운 풍속은 비교적 완전하게 보존돼 왔다. 지눠족의 결혼풍속의 연구를 통해 선사시대 인류의 혼인관계를 추측하고 근원을 캐는 방법은 모건의 방법과 같다. 학술계가 인정하는 연구 방법이다. 두위팅은 지눠족의 애정 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 모건 등이 “원시사회에는 애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렇다면 애정은 원시사회 어느 시기부터 발생하였을까?
두위팅은 모건이 제시한 명사인 ‘푸날루아(punalua)가정 시대’를 채용하였다. 모건은 이 용어로 원시사회시기 씨족 내부 혈연관계를 피하지 않고 통혼하는 가정 형태를 형용하였다. 하와이 토착민들은 외부에 알려지기 이전에 실제적으로 혈연을 따지지 않고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가 결혼할 수 있는 푸날루아가정 식의 풍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두위팅은 지눠족의 연가인 『바스(巴什)』를 주목하였다. ‘바스’의 노래가사는 사람들이 고대 씨족 내부의 혈족통혼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현존하는 지눠족 사람들이 직접 푸날루아 식의 혈족혼을 적지 않게 경험을 했었다는 것에도 주목하였다. 이런 혼인들도 3단계를 거치고 똑 같이 자유스럽고 솔직하게 진행됨으로써 애정의 특징을 갖추고 있었다. 이것을 근거로 두위팅은 푸날루아가정 시기에 애정이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두위팅은 또 다른 예로 파두어자이(巴朵寨)를 들었다. 지난 세기 50년대에 이 씨족은 마을은 족내혼이 성행했고 지눠족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애정의 3단계를 갖췄다고 한다. 이것도 푸날루아가정 시대의 애정이 있었음을 실증한다고 했다.

 

지눠족의 연구는 학자들이 인류 애정 기원에 대해 새로운 토론을 야기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아직도 원시사회시기에 애정이 존재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리샤오동(李小東)은 애정이 결코 인류가 생기면서 있었다고 보지 않는다. 애정은 ‘인류가 일정한 단계까지 발전하고서 생긴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은 어린시기에 성애가 무엇인지를 이해하지만 이것이 인류가 원시시대에 애정이 생겼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리샤오동는 애정이란 바로 일부일처제라는 사회가 전제돼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더 나아가 일부일처 이전에 인류는 군혼(群婚), 대우혼(對偶婚)을 하였다라고 하였다. 이때는 남녀지간의 결합은 안정적이지 않았지만 광범위하게 행해졌다고 본다. 즉 애정의 배타적인 본질과 도무지 맞지 않는 것으로 애정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일처제는 언제 생겨난 것일까?

 

농경지의 완전한 사유화와 동시에 진행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는 또 사회계급, 특히 노예계급의 발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원시사회에는 애정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샤오동의 표준에서 본다면 엥겔스가 말한 중세 기사의 사랑도 어쩌면 애정이라고 할 수 없다. 기사들과 토지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행한 애정행각도 다른 사람의 가정을 해체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애정이 원시사회에서 기원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다르다. 단지 민족학자들의 구체적인 실증이 있었고 고전학자들이 이론으로 탐구했다는 것은 그 배후에 우리 인류가 애정에 대한 갈망과 아름다운 상상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국립 중국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종문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는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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