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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13)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사기․은본기』에 융(娀) 씨이며 간적(簡狄)이란 이름의 여자가 현조(玄鳥)의 알을 삼킨 후 설(契)을 낳았다는 기록이 있다. 『시․상송․현조』에 “하늘이 현조에게 명하여 내려가 상(商)을 낳도록 하였다[天命玄鳥,降而生商]”라 하였다. 이처럼 모두 상(商)족은 여자가 현조의 알을 삼킨 후 상족의 시조인 설을 낳았다고 한다. 전설은 실증할 수 없는 것으로 믿을 수 없다.

 

商족은 중국 역사서에 황하 중하류에서 활동하던 오랜 부족이라는 설이 이미 확정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상족이 도대체 어디에서 기원했는가하는 문제는 아직까지 역사학계의 논쟁의 중심에 있다.

 

현대 商대의 역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문헌자료와 고고학 발굴을 근거로 상족이 夏(하)나라를 멸망시킨, 즉 상왕 성탕(成湯)이 상나라를 건립한 후 처음 단계의 활동 범위는 지금 하남(河南)의 낙양(洛陽), 정주(鄭州), 안양(安陽) 일대 곧 현재의 황하 중류에 집중됐다는 것은 이미 확정지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라를 멸망시키기 이전에 상족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학자들마다 자신의 학설을 가지고 상족의 기원을 서방, 동방, 북방, 산서(山西) 등으로 재각각 주장하고 있다.

 

이런 학설 중 ‘서방설’을 먼저 보자. 한나라와 진(晋)나라 때에 사마천(司馬遷), 허신(許愼), 정현(鄭玄), 황보밀(皇甫謐), 서광(徐廣) 등은 상족이 중국의 서쪽에서 기원하였다고 하였다. 사마천은 『사기․육국표서』증 “누군가가 말하기를 ‘동방은 만물이 처음 나는 곳이며, 서방은 만물이 성숙하는 곳이다’라 했다. 무릇 먼저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반드시 동남에서 일어나고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는 곳은 언제나 서북이다. 그러므로 우는 서강에서 일어났고 탕은 박에서 일어났으며 주 왕조는 풍호(豐鎬)로 은을 정벌했고 진나라의 제왕들은 옹주에서 일어났으며 한나라가 일어난 곳은 촉한이었다.”라고 하여 夏(하), 商(상), 周(주) 모두 중국의 서쪽에서 기원하였다고 보았다.

 

『사기․은본기』에서는 상탕(商湯)이 “처음 박(亳)에 거하다 선왕을 쫓아 거했다.”라 하였다. 후에 ‘亳(박)’의 구체적인 지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확정하였다. 허신은 『설문해자』에서 ‘박은 경조(京兆) 두릉정(杜陵亭)’라고 하였고, 『사기․육국표』‘집운’에서는 서광의 말을 인용하여 “경조 두현(杜縣)에 박정(亳亭)이 있다”라고 하여 ‘亳’이 중국의 서쪽지역이라 하였다. 『사기․은본기』에 상족의 선조인 契(설)의 봉지가 ‘商’이었다고 한다. 정현이 말하길 “상은 태화지양이다”이라 하였고 진나라 황보밀은 “상락은 상이 맞다”라고 하였다. ‘商’이든 ‘亳’이든 그들이 정한 위치는 현재의 섬서(陝西)성으로 바로 관중(關中)평원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상족 ‘서방 기원설’이다.

 

근대에 와서 많은 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하여 상족은 동방에서 기원했다는 설을 주장하였다. 왕국유(王國維)는 상족의 초기 거주지인 ‘商’과 ‘亳’은 결코 고대의 관중이 아니고 현재 하남의 상구(商丘)와 산동의 조현(曹縣)이라고 논증하였다. 정산(丁山)은 상나라가 현재 하북성 동부에서 발해만 일대에서 발상하였다고 고증하였다.[「관당집림(觀堂集林)」권12] 정산과 왕국유의 주장에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모두 ‘동방 기원설’을 지지하고 있다. 이후 서중서(徐中舒), 부사년(傅斯年)은 20세기 30년대에 상족이 동방에서 기원하였다는 고증을 발표하여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였다.[「상주사료고증(商周史料考證)」]

 

최근 왕옥철(王玉哲)은 『역사연구』에 「상족의 기원지망 시탐(商族來源地望試探)」을 발표하였는데 토템 신앙에 있어 ‘상’과 ‘박’은 지리위치는 대문구문화, 용산문화 등 고고학 발굴의 자료를 가지고 동방에서 기원하였다고 고증을 하였으며 처음 단계는 산동성일 가능성이 많고 나중에 서북지역으로 옮겨 하북성의 중부로 옮겼다고 보았다. 하나라 말기에 집중적으로 하북성 남부와 산동성 서부에 거주하면서 나중에 하나라를 멸하고 상 왕조를 건립했다고 하였다.

김경방(金景芳)은 몇 년 전에 상商의 발상지는 북방이라 제기 했다. 그는 주로 『순자荀子․성상成相』과 『세본世本』의 설을 인용해 상세히 고증했다. 『순자․성상』에 “설현왕(契玄王)이 소명(昭明)을 낳고, 후에 지석(砥石)에 거주하다가 商으로 천도했다. 14세에, 천을(天乙)에 이르니 이가 곧 성탕(成湯)이다”라고 하였고; 『세본』에 “설(契)이 번(番)에 거하다”, “소명(昭明)이 지석(砥石)에 거하다”라고 기재되어있다. 여기에 나오는 ‘番’과 ‘砥石’ 두 곳은 동서에서 기하였다는 설과는 틀린 지명이다.

 

김경방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番’은 역사서에 자주 보이는 ‘亳’으로 비록 현재 어느 지역에 해당하는지 확정은 지을 수 없지만 북방에 속하며 옛날 연(燕)나라 땅이라 하였다. 또 契(설)의 아들 昭明(소명)이 거주한 砥石(지석)은 바로 현재 遼水(요수)의 발원지이니, 바로 지금의 내몽골 Ju Ud League(昭乌达盟[昭盟, 현 赤峰 지역)의 Hexigten Banner(克什克腾旗[克旗])의 백분산(白岔山)이라 하였다. 이러한 자료에 근거하여 그는 탕이 상 왕조를 건립하기 이전에 상나라 사람들의 중심 거주지는 그때까지 현재 하남 중부까지 도달하지 못했고 이는 곧 현재 나남 중부 ‘상대 선공 시대의 문화’ 혹은 ‘상대 조기 이전의 상문화’가 있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외에 추형(鄒衡)의 “商(상)족이 산서성에서 기원했다”라는 설이 있다. 이 설은 비록 김경방(金景芳)의 ‘북방설’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지역상으로 본다면 ‘북방설’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商(상)족의 기원에 대한 설은 각기 달라 하나로 결론 내리기가 무척 어렵다. 이 문제의 원인은 문헌으로 논증할 수 있는 역사 사실이 너무 부족하다는데 있다. 게다가 상족이 이주하기를 즐겨서 ‘전8 후5’의 설이 있을 정도다. 곧 상 왕조 건국 이전에 이미 8차례 옮겼고 나라를 세운 후에도 5차 례 천도했다. ‘전8 이주’에 대해 황보밀은 “역사에 실전되어 상세히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상족의 기원이 어디인가에 대한 문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존하는 역사문헌, 전설, 그리고 기존의 고고학 발굴을 근거로 하여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할 수밖에 없다.

 

각각의 학설은 다른 역사 사료를 근거로 하여 논증하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상족이 각각 다른 지역에서 기원했다는 상이한 학설도 자연스런 것으로 상족 기원의 문제가 장기적으로 의견만 분분할 뿐 아직까지도 쉽게 결정되지는 않고 수수께끼로 남아있다는 것이 그리 이상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중국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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