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권혁성의 캘리포니안 드림(5)

 오늘 저녁에 아내와 동네 마켓을 들렀다가 한국 소주 아홉병이 나란히 진열된 걸 봤습니다.

 

 참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냉큼 사진을 찍어 놓았습니다.

 

 흔히 미국사람들이 Grocery라고 부르는 제법 큰 규모의 식품점(한국식으로 하자면 마트)에 그것도 주로 백인들이 주고객인 마켓의 입구에서 발견한 고국의 소주. 누가 차게 해서 마시는 게 더 맛있다고 귀띔이라도 해줬는지 냉장고에 가지런히 눕혀져 있습니다. 미국 술들은 다 세워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소주병만 누워 있습니다. 시간이 됐으면 매니저한테 왜 뉘어놨냐고 물어 봤을텐데 그걸 못했습니다.

 

 

저는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한류의 힘'을 여기서까지 보여주는 듯해서 은근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미국에도 이제 꽤 알려진 (비록 중국설로 불리우지만) 음력설날 팔려고 내놓은 건지, 아니면 미국에서 1년중 하루 맥주소비량이 가장 많은 슈퍼볼게임(Super Bowl Game)을 코앞에 두고 내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국의 소주가 미국에서 제법 인정받고 있는 듯 합니다.

 

 예전에는 Trader Joe's 같은 곳에서 갈비 양념장을 병에 넣어 파는 걸 본적이 있는데 이젠 뭐가 들어올까요?

 

 미국에 처음으로 들어온 한류(韓流)의 원조는 19세기말의 보따리 인삼 장수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 조상님들 참 대단한 분들입니다. 상투 틀고 바지 저고리입고 등·봇짐 지고 말도 안 통하는 미국을 돌아다니며 고려인삼을 팔러 다녔다는 게 지금도 참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후 한 세기가량이 지나서 두 번째 한류가 들어왔는데 바로 태권도 입니다. 오래전에 미국으로 온 선배사범들이 '코리안 가라데'라고 간판을 달고 시작한 태권도가 이젠 미국 상·하의원 들이 의사당에서 한국말과 예절로 수련을 하는 무술이 되었습니다.

 

 이후에 '원더걸스'가 들어 오는데 다시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노래와 춤을 즐긴다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잘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좀 슬픈 얘기를 해 볼까요?

 

 미국에서 제일 큰 책방이 반스 앤 노블스(Barnes and Nobles) 체인점입니다. 그런데 그 큰 서점에 한국말 책이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태국말 책도 봤지만 한국어 교본은 없습니다. 제가 태권도를 가르치던 미국 제자가 책방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어렵사리 찾아다 준 게 1960년대에 미국정부에서 발행한 손바닥만한 회화책입니다. 한국으로 발령받아가는 주한미군들을 위해 만든 응급처치용 및 생존용 회화책입니다. 물론 찾는 사람이 없으니 공급이 없는 것이겠죠. 참 서글픈 일입니다.

 

 

몇 해전에 외교관으로 미국에 나와 있던 한국인 친구에게도 했던 말입니다만 이건 한국 정부의 무능내지는 안일함 외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왜  민간부문에서는 잘되는 일들이 정부차원에서는 안 될까요?

 

 미국 사람들도 '삼성'의 핸드폰과 TV, '현대'의 자동차에 대한 인지도는 상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꽤 높습니다. 그렇지만 그 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한국은 일본어나 중국어를 쓰고 그네들의 글자를 사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무지를 비웃기 전에 우리는 한류를 지속적으로 가능케 할 문화 인프라에 관한 국가 차원의 장기적이고도 체계적인 계획과 투자를 얼마나 해왔을까요?

 

 우리는 세계에 인삼을 팔고, 소주를 팔고, 한국말로 노래를 하고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는 훌륭한 민족입니다. 언젠가는 여기 소주병이 누워 있지 않고, 서 있을 때가 오겠지요.

 

 새 해에는 우리 모두 조금만 더 멀리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권혁성은?=경북 영일 출생. 백령도에서 해병대 하사관으로 복무했다. 포스코 경영기획실에 잠시 일하다 태권도(6단) 실력만 믿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짝퉁’ 티셔츠 배달로 벌이에 나섰던 미국생활이 17년을 훌쩍 넘었다. 현재는 캘리포니아 어바인에서 선라이즈 태권무도관의 관장·사범을 한다. 합기도와 용천검도(5단) 등 무술실력은 물론 사막에서 사격, 그리고 부기(Boogie)보딩을 즐기는 만능스포츠맨이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