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2)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남녀가 결합하여 부부를 이루는 것이 결혼이다. 『소아․아행기야』에 “혼인한 까닭에 너의 집으로 갔었네(婚姻之故,言就爾居)”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원시사회에는 혼인의 형식이 군혼(미개시대)과 대우혼(야만시대) 두 가지가 있었다. 역사가 주(周)대로 발전하면서 동성끼리는 결혼할 수 없었고 당(唐)나라에 와서 동성금혼(同姓禁婚)이 법률로 정해졌다.

 

고대 중국사회에서 혼인의 금기는 바로 “동성끼리 결혼하지 않는다”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성인 사람은 혈연관계에 있든 없든 멀든 가깝든 일률적으로 결혼을 할 수 없었다. 이런 금지 규정은 주(周)나라 때 세워졌다. 『위서․고조기』에 기록에 따르면 하(夏)나라와 은상(殷商)시기에는 동성 간에도 결혼할 수 있었으나 주나라가 시작되자 동성 간에는 결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금지는 주나라에서 시작하여 대대로 전승되었다. 예교로 선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唐)나라에 와서는 법률 조문으로 금지하였다. 당나라 법률, 예를 들어 『당률․호혼』규정에 따르면 동성 간에 결혼한 사람은 3년 징역에 처했다. 송(宋)나라에서는 당나라 규정을 답습했고 원(元)나라 때에는 약간 변형은 됐으나 역시 형벌에 처했으며 명청(明淸) 시기에도 동성 간에 결혼을 하면 벌금과 더불어 이혼 명령이 떨어졌다.

 

 

그렇다면 주나라 때 동성 간에 결혼을 금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기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먼저 유전 요인을 가지고서 설명해 보자. 이 관점은 동성 간에 결혼을 금지하는 것은 근친 번식이 가져오는 불리한 요인을 피하기 위해서다. 주나라 사람들은 동성 간의 혼인이 불임이나 기형아 출산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자손 번성에 불리하고 종족 자질을 높이기 위해서 동성 간에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 규정을 만들었다고 본다. 여기에 관한 기록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춘주․희공20년』과 『국어․진어』의 기록에 따르면 동성인 여자를 처로 둘 수 없고 그렇지 않으면 불임이나 기형아를 낳게 됨으로 첩을 들일 때도 반드시 상대의 성씨를 확인해서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남녀 쌍방의 성씨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의례였다.

 

이와는 다른 관점이 있다. 종법(宗法)을 이유로 동성 간의 혼인을 금했다고 본다. 종법 원칙에서 부권 중심의 종족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동성 간에 결혼을 금했다는 것이다. 주대 사회의 기본 조직은 종법이다. 따라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질서가 완비된 종법제도가 성행했다. 당시에 동일 조상의 후손들은 그 선조의 혈연관계의 친소에 따라 엄격한 존비, 귀천의 등급이 형성돼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위에 따라 상응하는 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향유했다. 이렇듯 모든 사회의 통치 질서는 혈연관계에 따라 존비의 계급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질서를 유지하지 위해 주나라 때는 계통적 조치를 취했다.

 

동성 간에 혼인을 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은 바로 혼인 제도의 질서를 표현한 것이다. 왜냐하면 동성 간 결혼은 친형제 자매 이외의 적과 장, 친자와 서, 유, 소자 사이에 통혼을 하면 혼인을 맺고 나서 부부의 배분이 같아지고 따라서 동성 내부에 기존에 존재했었던 적서(嫡庶), 장유, 친소, 존비의 질서가 혼란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의 등급 질서가 혼란에 빠진다.

반대로 다른 성씨 사이에 통혼이 이루어지면 두 성씨 사이의 적서, 장유, 친소가 상응하여 같은 성씨 내의 고유한 적서, 장유, 친소 질서가 허물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다른 성씨 사이에 통혼한 후 두 성씨 간에는 혼인관계로 인한 우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서로 지지하고 서로 의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예기․교특성』에 혼인은 인류가 끊임없이 생겨나[생생불식(生生不息)] 만대유전할 수 있다고 하였다. 다른 성씨 사이의 통혼은 동서 내부의 기존 등급을 보호하고 성씨 사이에 서로 의지할 수 있었다.

 

 

세 번째 관점은 윤리적 요인이다. 이 관점은 실질적으로는 종법제도의 원칙에서 연역돼 윤리 관념을 붙인 것이다. 즉 동성 간에 결혼을 하지 않는 목적은 명분을 확실히 하는데 있고 근친상간과 같은 윤리 도덕을 위배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고 본다. 『예기․대전』에 동성 간에 혼인을 하지 않는 것은 가장 근본이 되는 예법이라 기술돼 있다. 즉 인륜을 유지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백호통․성명』에 따르면 사람들은 성씨가 있는 까닭에 이른바 동성 간에 서로 우애하고 친근하며 서로 보살피고 상을 당함에 서로 슬퍼하게 되는 것으로 이는 인류가 동물과 구별되는 것 중 하나라 하였다. 동성 간에 혼인을 하지 않는 것은 인륜을 중시하게 하고 비도덕적인 것을 방지함으로써 짐승과 같은 짓을 피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런 관점은 『백호통․가취』에도 보인다. 『통전』에는 동성 간에 혼인을 하지 않는 이유를 얘기하면서 앞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데 동성 혼인은 금수의 행위로 마땅히 두절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와는 또 다른 관점이 있다. ‘이류(異類) 상생’의 미신적 관점에서 출발한 것으로 다른 성씨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면 재난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어․진어』에 따르면 다른 성씨 사이에 통혼을 하면 남녀가 서로 의지하도록 만들어 백성의 생계가 편안하게 된다고 하였다. 만약에 동성 간에 결혼을 하면 남녀가 상극하여 신령에 위배됨으로써 재화(災禍)가 뒤따른다고 하였다. 동성 간의 결혼을 피하는 것은 재앙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외에 동성 간에 결혼을 금지하는 것은 정치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주 왕조는 다른 성씨 부족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동성 간에 혼인하지 말라는 제도를 제정했다고 본다. 주나라는 원래 소국으로 상(商)나라를 대신해 천하를 통치하게 된 후 군사력이 빈약하여 동방의 여러 부족을 진압하기에 부족하였기 때문에 두 가지 수단을 가지고 통치를 공고히 했다. 하나는 동성을 제후로 봉하여 주 왕실의 변강으로 삼았다. 다른 하나는 다른 성씨의 방국(邦國)과 혼인을 통해 인척 관계를 맺음으로써 다른 성씨 사이의 정치, 군사 연맹을 유지할 수 있고 다른 성씨에 대한 통치를 강화할 수 있었다.

『예기집설』에 하나라 상나라 이전에 동성 결혼을 허락하였고 주공이 무왕을 도와 천하를 얻은 후 땅을 물색해 신농, 황제, 요, 순, 우, 탕의 자손을 공후로 봉했으며 희(姬)성[주 왕실의 성]을 가진 자손을 그들과 혼인하여 주나라가 천하를 다스리는데 공고히 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이런 까닭에 동성 금혼의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등위지(鄧偉志)는 『중국 가정의 연변』에서 주나라 통치자들이 동성 금혼 제도를 만든 것은 혼인을 통해 인척관계를 맺으려는 속셈에서 비롯됐다고 하였다. 인친관계를 맺음으로써 천자와 제후, 제후와 대부, 그리고 사대부 사이에 얽히고설킨 관계를 맺고 거미줄 같이 엮어지게 만들어 천자의 한 집안의 천하[가천하(家天下)]를 구성했다. 이처럼 주나라 왕은 혼인을 통해 인척관계를 만들어 전국을 통치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보았다.

 

미신적 관점을 제외하면 위에서 기술한 관점은 나름대로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러나 주나라 사람들이 동성 금혼의 제도를 제정할 때 과연 어떤 이유에서 비롯됐을까? 동성 금혼 제도를 만든 원인은 하나일까 아니면 여러 가지일까? 이러한 문제는 확실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다. 그래서 주나라에서부터 시작돼 대대로 전승되어온 동성혼인 금지 조항에 대해 어떻게 생겨났을까 하는 문제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23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중국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