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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시평] 한 다큐 사진가의 비애 ... 무지에서 촉발된 참극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나름 관덕정이 중요한 장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광복절에 그것도 ‘야스쿠니’란 단어가 등장하니 일단 눈이 돌아갔을 것이다. 게다가 일장기도 등장한다니 우선 욕부터 나왔을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15, 16일 이틀간 제주시 관덕정에서 열릴 예정이었다가 돌연 취소된 권철 사진작가의 ‘야스쿠니-군국주의의 망령’ 사진전 이야기다.

 

문제는 한 언론사의 보도에서 시작됐다. '도민사회 술렁‘ ’역사 우롱‘ ’조상님도 분개‘ 등의 표현이 사용됐다.

 

하지만 관덕정을 “3·1절 발포사건 등 중요한 항일운동 장소”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무지라면 사실 의제설정은 커녕 거론할 가치는 없었다.

 

‘3·1절 발포사건’은 해방 후인 1947년 3·1절을 맞아 관덕정에서 기념행사가 열렸지만 시위로 돌변하면서 우리 경찰과 충돌, 경찰의 발포로 수명의 사상자가 생긴 사건이다. 결국 48년 4·3사건으로 비화된 전주곡이자 도화선이었다. 우리 경찰의 발포로 벌어진 참사를 항일운동이라고 알고 있는데 무시해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의 인식으로 마구 써댄 한 기자의 기사는 그대로 그 언론사의 데스크를 통과했다. 데스크의 인식과 지시라면 더더욱 할 말이 없고, 기자의 의욕이라면 그 정도조차 데스크가 걸러내지 못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그 기사는 해당 언론사 사이트에서 이제 찾아볼 수가 없다. ‘대형 특종’이었을 텐데 어찌된 이유인지 사라졌다.

 

그렇기에 아마 그랬을 것이다.

 

정작 전시될 사진과 사진전의 의미는 몰랐지만 ‘일장기’와 ‘야스쿠니’를 운운하며 “이런 게 관덕정에 전시되도 되느냐”는 한 기자의 물음에 광복회 제주지부는 당연히 발끈했을 것이다. 필자라도 그리 물어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를 노릇이다.

 

당연히 전시회를 허용한 관계당국에 항의해야 한다. 묵과할 성질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 당국도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애초 제주도문화예술재단이 후원한다고 하길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장소사용 허가를 내줬지만 아마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배신감도 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언론에 기사가 나와 시끄러우니 서둘러 파문을 진화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서둘러 시장에게 상황을 보고했을 테고, 아마 그 분은 격노했을 것이다. 당연히 ‘시장님’은 “허가를 취소하라”고 신속히 지시를 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사진전 주최 측에 공문도 보내고 ‘불허’사유를 알린 것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당초 허가를 받은 주최 측의 반발이 만만찮았고 다른 언론들의 반발이 예상을 뛰어넘었다. 여론의 역풍도 거세게 일었다.

 

사정을 더 자세히 알아보니 광복회가 이해한, 애초 보도한 기자가 알아 낸 이야기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알고보니 사진전의 주인공인 권철(49) 작가는 1994년부터 2014년까지 20년간 일본에서 사진공부, 활동을 해온 다큐멘터리 사진가였다. 그가 10년 동안 야스쿠니 신사를 현장 취재하면서 찍은 사진기록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A급 전범들이 모여 있는 신사를 아직까지 일본 극우세력과 일부 정치인들이 참배하는 문제적 현장을 사진 속에 담았다는 것이다.

 

“욱일승천기를 펄럭이며 전범들을 추모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를 상기시켜 주고 있다”는 해석도 추후에 들었다. “백 마디 말이 아닌 찰나의 사진으로, 그것도 단편적 사진이 아니라 장기간 현장을 취재해 일본 제국주의의 실체를 담았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는 문화계 인사의 비평도 나중 알았다.

하물며 김민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야스쿠니 신사가 존재하는 한, 일본이 자행했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야스쿠니 신사가 존재하는 한 ··· 한반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모든 ‘과거사’는 미해결의 현재진행형인 상태로 ‘현대사’로서 존재한다. 그게 바로 우리들이 이 야스쿠니 신사를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이고 사명이다. 그 사명을 영혼으로 담아낸 권철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추천했다.

 

이제 시 당국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행정의 일관성’이란 말이 있잖은가? ‘취소’ 결론을 내렸으면 더 이상은 없다. ‘허가’를 시 당국이 뒤집어 ‘불허’로 바꾸는 건 쉬워도, ‘불허’를 다시 뒤집는 건 결코 안되는 일이었다.

 

결국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새기는, 저명한 한 다큐 사진가의 작품들은 관덕정이 아닌 길거리에서 제주시민들을 만났다.

 

길거리 전시회를 마무리할 즈음 16일 오후 늦게 현장에서 권 작가와 주최 측 관계자들을 만났다.

 

“북 정권을 비판하는 사진에 인공기가 나왔다면 아마 우린 종북주의자가 아니면 빨갱이로 매도됐을 것 같다.”

 

무지에서 촉발돼 ‘문화’는 커녕 ‘기계’적으로 움직인 문화행정의 결과는 한마디로 참극이다. 전체 진행과정에서 어떤 ‘게이트 키핑’(Gate keeping) 역할도 없었다. 누구도 문제를 바로잡지 않았다.

 

가슴 아픈 광복 70주년이었다. 이게 우리 제주도의 문화수준·문화행정의 현주소란 말인가?

 

철저한 성찰과 원인규명이 없다면 또 불거질 일이다. 그리되면 제주도민인게 너무도 부끄러워진다. [양성철=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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