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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30)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합종연횡(合從連衡)은 전국시대 각국이 채용한 외교와 정치 책략이다. ‘합종(合縱[從])’은 한(韓)나라와 위(魏)나라가 힘을 합쳐 진(秦)나라와 제(齊)나라에 대항했던 것처럼 약소국가끼리 연합하여 공동으로 강국에 대응하는 책략이고 ‘연횡(連橫)’은 약소국가가 강대국에 붙어 자국을 보호하는 것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는 제후(諸侯)들이 할거하여 분쟁하고 있었다. 강국은 영토를 확대하기 위해 강토를 빼앗았고 약소국가는 그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위해 각국과의 외교적 수단을 강구하였다. 중국 역사상 다양한 전략전술을 강구하던 시기였다. 진나라가 흥기하자 각 나라와 진나라를 둘러싼 외교적 주장이 등장하였는데 이것이 ‘합종’과 ‘연횡’이다.

 

다시 말해 이른바 ‘합종’이란 여러 약소국가들이 합쳐 강국에 대항하는 것이고 ‘연횡’이란 강국을 섬기면서 여러 약소국가를 공략하는 것이다. 이런 전략은 ‘종횡가’들에 의해 운용되었다. 그들은 ‘합종’과 ‘연횡’을 위해 각 나라로 유세를 떠났으며 책략을 세웠다. 약소국가가 연합하여야 생존할 수 있다거나 강대국을 섬겨야만 존속할 수 있다고 나름대로의 주장을 펼쳤다. 각 나라의 군주가 자신의 관점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기 위해 그들은 경험을 인용하여 당시 상황을 증명하거나 서로 변론을 하고 더 나아가 교묘한 말로 속이기까지 하였다. 그렇다면 ‘합종’과 ‘연횡’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합종’과 ‘연횡’은 특정한 대상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각 나라마다 구체적인 정치 형세에 따라 자신들의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합종’은 한나라, 조(趙)나라, 위나라 등 비교적 약소국가들이 연합을 하여 제나라, 진나라 등 강국에 대항하는 것이고, ‘연횡’은 약소국가들이 진나라나 제나라 등 강국과 연합하여 다른 나라를 치는 것이다. 각 나라는 합종연횡을 패권을 차지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외사를 잘하면 크게는 왕을 칭할 수 있고 적게는 안돈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실제 정치투쟁 중 ‘종횡’과 ‘연횡’은 병용되었다. ‘합종’이 승리하면 ‘연횡’을 하고 ‘연횡’에 장애가 생기면 ‘합종’으로 바꾸는 등 변화무쌍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수단을 동원하고 심지어 농간을 부리는 ‘종횡가’들이 계책을 마련하고 중개 역할을 하면서 ‘한 번 성을 내면 제후들이 두려워했고 가만있으면 천하가 조용한’ 상황을 초래했다. 장의(張儀)와 소진(蘇秦)이 여러 ‘종횡가’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장의를 먼저 보자. 장의(?-전 310)는 위나라 사람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귀곡자(鬼谷子)를 스승으로 삼아 종횡․패합(捭闔)의 술을 배웠다고 하였다. 장의는 특히 연횡의 술에 능했다. 기원전 329년 장의는 진나라의 혜왕에게 유세하여 재상이 되었다. 그는 진나라와 한나라, 위나라의 연합을 도와 황하의 요충지를 영향력 아래에 두게 하였다.

 

기원전 322년 장의는 위나라로 건너가 혜왕에게 “진나라와 한나라, 위나라가 힘을 합쳐 제나라와 초(楚)나라를 치자”고 유세를 하자 위왕은 장의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장의의 목적이 “위나라로 하여금 먼저 진나라를 섬기게 하여 다른 제후들이 따르게 만들자”는 것에 있음을 모르고 진나라와 위나라 등과 연횡을 하면서 진나라의 힘을 키우게 되었다. 그러나 제, 초, 연(燕), 조, 한 등 5개 나라가 ‘합종’의 책략을 채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였다. 기원전 319년에 위나라는 장의를 쫓아 반대로 한, 조 등 나라가 ‘합종’하여 진나라에 대항하였다. 기원전 318년 제, 초, 연, 조, 한 등 5개 나라가 연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실제 출병한 나라는 한, 조, 위 3국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진나라에 패배한다.

 

진나라와 대항하기 위해 제나라는 또 초나라와 결맹을 맺자 제나라와 초나라의 연맹을 깨기 위해 진나라는 장의를 초나라에 보내 유세한다. 장의는 초나라가 제나라와 약속을 끊고 봉쇄를 하면 토지 600리를 할양한다고 유혹했다. 초왕은 장의의 ‘이간지계’에 말려 제나라 왕을 욕하면서 제나라와 단교하였다. 제나라 왕은 분노하여 절개를 지키지 않고 진나라와 연맹을 맺었다. 초나라는 장의에게 약속한 600리의 토지를 할양하라 요구하였으나 장의는 거절하였다. 초왕은 대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한다. 결과는 오히려 제나라와 진나라의 연합군에 대패, 8만 여 병사가 몰살당하고 초나라의 단양(丹陽), 한중(漢中) 땅을 빼앗기게 되니 이후 초나라는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장의는 진나라의 패업을 위해 큰 공을 세웠다고 아니할 수 없다.

 

 

소진을 보자. 소진(?-전 284)은 낙양(洛陽)사람이다. 그가 정치 무대에 등장하였던 시기는 장의보다 앞선다고 여겼다. 그러나 고증에 따르면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제나라 활왕(滑王 : 기원전 300-284년)으로 이때는 장의가 세상을 떠난 지 10여 년이나 된다.

 

소진의 등장은 연나라의 힘을 빌면서 시작된다. 314년 연나라에서는 내전이 일어났다. 연왕 쾌(噲)가 왕위를 총신인 자지(子之)에게 넘겨주려 하자 귀족들이 반대를 하여 내홍에 휩싸였다. 결국 제나라는 기회를 틈타 연나라를 침공하여 자지를 죽였다. 이와 동시에 영왕 쾌도 죽으니 연나라는 큰 손실을 봤다. 설욕하기 위해 연왕은 인재를 널리 모아 제나라에 대항하려 했다. 소진은 바로 이때에 연나라 소왕(昭王)의 문하에 들어와 연왕의 심복이 되어 몰래 제나라에서 ‘반간계’ 책략을 실행하였다. 소진은 먼저 제나라에 가서 제왕의 신임을 얻었다. 기원전 293년에 제나라 활왕을 종용하여 송(宋)나라를 치게 만들어 제나라의 국력을 소모시켰다. 오래지 않아 소진은 제나라의 상국으로 임명을 받아 합종의 전술로 제나라로 하여금 조, 초, 한, 위 등의 나라와 ‘합종’하여 진나라와 대항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소득이 없이 회군한다.

기원전 286년 제나라는 출병하여 송나라를 멸망시키는데 이는 진, 초, 월(越) 등의 나라에 위기감을 갖게 만들었다. 이에 연합을 하여 제나라를 침공하고 제나라의 9개의 성을 할양 받았다. 제나라는 이때 국력을 너무 소모하여 연나라를 살필 기력이 없게 되었다. 연나라는 그 틈을 이용하여 부국강병을 도모하였다.

 

마침내 기원전 284년 연나라는 진, 한, 조, 위 등 나라와 연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하였다. 연나라는 악의(樂毅)를 장군으로 삼아 제나라의 70여 개의 성을 빼앗았고 제나라는 거의 멸망의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소진은 자신의 반간계가 발각되어 거열형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처럼 ‘합종연횡’은 전국시대 유명한 외교 정책이었다. 정치가들의 종횡, 합종, 패합의 모략을 충분히 체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진나라의 국력이 점차 증대되면서 외교 수단을 이용하여 정치의 균형을 잡으려는 조치들은 점차 실질적 효과를 얻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합종연횡’은 서서히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중국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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