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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시평] 국사교과서 국정화 유감 ... "역사는 진정 기록자의 마음인가?"

 

 

 

1980년대 이야기다. 대입시험을 준비하느라 여느 고3생 처럼 여념이 없었다. 공부해야 할 과목이 많았지만 그 시절 국사과목이 유독 재미가 있었다. TV드라마에 나오던 사극을 떠올리며 정말 흥미진진하게 국사책을 탐독했다. 나름 성적도 좋았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했다. 서슬 퍼런 공안정권이 집권할 때였다. 대학가는 연일 집회·시위로 시끄러웠다. 하지만 솔직히 내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보단 태어나 처음으로 밟은 서울 땅이 나에게 던져준 충격이 더 관심사였다. 지금 세대들은 우스운 얘기지만 정말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강’(江)을 처음 만났다. 나고 자란 제주섬에선 강을 볼 일이 없었다. 물론 기차가 그리 길고 큰 지 처음 알았다. 더욱이 서울역 앞에 우뚝 선 초고층 빌딩들을 올려보며 초라한 스스로를 알았다.

 

모든 게 어리둥절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래도 대학생 아닌가? 대학 동기들은 물론 함께 서울로 진학한 ‘제주촌놈’들과 어울릴라 치면 단연 그 시절 정국(政局)이 화제가 됐다. 함께 눈물을 흘리며 “민주주의여 만세~”란 노래도 불렀다. 하지만 감성만으로 그칠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명색이 대학생인데 ‘지적 수준’을 높여야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우위를 뽐낼 수 있었다. 그 시절 우리네 20대는 완력만이 아니라 지식수준을 갖고서도 ‘도토리 키재기’에 도전했다.

 

우리네 시절 웬만한 대학생은 거의 읽어본 책이 바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다. 이 책을 읽지 않고 먼저 이 책을 읽은 친구·선배와 대화에 끼면 여지 없이 무너진다. ‘무식의 극치’를 드러내게 된다. 따분했지만 읽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읽다보니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정말 무식한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고교시절 교실과 책상에서 탐독했던 ‘국사’ 지식과는 영 딴판인 정도가 아니었다. 흥미진진하다 못해 우리 현대사의 드라마가 바로 책장을 넘길 때마다 펼쳐졌다. 솔직히 “유레카!”였다. 고교 시절 국사 공부를 하다 “왜 그랬을까?”란 풀리지 않던 의문이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란 책으로 거의 풀렸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전 5권까지 발간됐다. 1980·90년대 한국현대사 논쟁의 불을 지피는 정도가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새바람을 불러 일으킨 기폭제였다.

 

 

그 책이 나오기 전까지 다분히 ‘냉전적’이고 ‘친일적’인 식민사관에 그쳤던 한국근·현대사 서술이 새로운 활로를 찾았다. 진보적 소장학자들이 대거 집필에 가담(?)했던 기록물로 다분히 ‘냉전적 사고’에 맞서 ‘수정주의’로 접근했기에 일부분은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대학시절 돈을 털어 산 책들 중 일부는 ‘폐기처분’이란 방법으로 이별(?)했지만 이 책은 아직도 소장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내 ‘역사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가꿔준 자양분인데다 ‘역사적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정치학자이자 역사가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Carr-1892~1982)가 있다. 영국의 외교관으로 활동했고 웨일스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강의한 교수였고, <타임스>지 부편집인을 지냈으며 국제연합(UN)의 세계인권선언 기초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가 그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남긴 명언이 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역사상 기록은 기록자의 마음으로 왜곡되고 굴절된 것”이다.

 

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뜨겁다. 우리 중·고교생들에게 가르칠 역사를 지금의 정부가 단일화, 하나의 교재로 쓰겠다는 것이다. 논란이 뜨겁지만 이걸 보수와 진보의 대결구도로 분석하는 시각에 찬성하기 어렵다. 그보단 사실(事實·Fact)의 기록을 전제하지 않고 오로지 ‘기록자의 마음’이 더 강한 ‘사실(史實)’에 더 몰골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안쓰럽다. 그 지점에서 ‘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기 보단 그동안 힘겨이 버텨오며 일궈낸 민주주의란 열매가 다시 ‘전체주의’적 담론에 맞닥뜨렸다는 게 더 맞는 소리다.

 

자칫 또 왜곡된 ‘국사’ 교과서로 역사를 탐독한 내 아들이 또 대학생이 돼 “유레카”를 외칠까 걱정스럽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거늘 장성한 아들과 역사를 놓고 ‘대화’하지 못하는 날이 올까봐 두렵기도 하다.

 

 

 

 

 

주의·주장을 가려서 들을 나이가 되면 문제 없지만 그렇지 않은 청소년기에 특정의 이데올로기적 해석과 주의·주장에 빠질 수도 있다. 장성한 뒤 알고 있던 역사적 지식에 대해 혼돈과 ‘아노미’를 겪게 된다면 아비로선 답답할 노릇이다. 오랜 세월을 거쳐 ‘4·3특별법’이 만들어지고 4·3을 “군·경토벌대와 무장대의 교전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 당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일을 그저 단순히 “공산폭도들이 일으킨 무장폭동”으로만 알고 있다가 뒤늦게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렸던 게 우리의 청춘이었다.

 

 

음식도 골고루 먹어야 하는 것처럼 역사에 대한 이해와 해석도 골고루 살피고 공부해야 한다. 사실 ‘역사’에 대한 해석과 기록은 어느 것도 “이게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단 하나의 교재로 ‘국사’를 탐독하라는 정부의 국정화 방침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국사 국정화’에 시일을 보내는 것보단 우리 미래세대들에게 더 다양한 방법으로, 더 다양한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시간을 거꾸로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양성철=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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