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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세평] 사회 이슈를 삼키는 소용돌이 ... 국가 대 시민사회 '고지전'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휘몰아치고 있다. 정치적 갈등을 넘어 전국의 모든 단체나 개인들이 입장을 밝히면서 국민적 이슈가 됐다. 소용돌이다. 

 

그러나 혼란이 아니다. 명확한 전선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 좌우의 논리가 아닌 국가 대 시민사회의 전선이다. 또 하나의 역사적 결절점을 보는 듯 하다.

 

뜬금 없지만 무협지 이야기다.

무협지를 읽었던 사람들이라면 소림파나 무당파 등 수많은 당파들과 '비급'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게다. 중요한 비급을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는 이야기와 정파와 사파를 나누며 싸우는 이야기, 정의를 지키기 위해 무림맹을 결성하는 이야기 등 대체로 이야기의 구조는 비슷하다.

이 무림의 이야기에는 각종 분파와 함께 표국이라는 조직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들은 돈을 받고 물건을 어느 곳이든 배달해주는 서비스 업체다. 육로든 수로든 상관없이 안전하게 운반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고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호위를 위해 신출내기 무사의 등용문이나 첫 직장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택배서비스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무림의 각 분파와 표국 등 이들 조직이 활성화되려면 조건상 2가지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

하나는 상업이 발달하고 민간 단체들이 자립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터전이 광범위하게 활성화되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그 같은 민간의 영역에 관군들이 들이닥쳐 훼방을 놓거나 영역을 침해하지 않는 조건이다. 그런 이유로 무협지에서 관은 강호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정치권력의 영향력이 없거나 민간영역의 자율성이 광범위하게 인정되어  그 나름의 규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국가권력이 바뀌는 격랑의 시대를 제외하고 이들은 그래서 정치와 무관하게 존재하도록 설정돼 있다.

설사 이것이 이야기에 불과할지라도 어느 정도 현실에 존재했어야만 가능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반면, 우리나라는 중요한 상업과  사회조직이 늘 정치를 향하는 사회였다. 힘을 쓰는 조직은 당대 권력과 연계되어 있다. 필요시에는 관군이 질서를 유지하고 개입하는 구조다. 국가권력이 일반인들의 생활에 언제든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인지 무협지와 같은 이야기 구조가 성립이 안된다.

 

대신 우리 사회의 시민사회는 국가권력과 자주 부딪힌다. 국가 권력의 광범위한 영향력과 이로 부터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때로는 타협하며 때로는 극단적인 형태로 갈등하는 구조가 이상하지 않다.

 

정부수립 이후에는 정치적 민주화 과정을 통해 시민사회의 영역이 국가권력의 일방통행 구조를 뒤집거나 최소한 견제하는 형태로 자신의 존재를 확대해왔다.

4.19혁명은 물론 6.29선언 등과 같이 시민 사회의 힘이 권력구조를 변화시킨 예가 있다.

 

시민사회의 힘이 커지면서  광우병 사태처럼 대립 양상이 좀 더 확대된 경우가 많아졌다. 예전에는 권력의 결정에 따라 수긍하고 넘어갔음직한 정책적 이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권력의 일방통행을 견제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시민사회의 힘이 그만큼 광범위해지고 강대해졌음을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중인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이런 측면에서 시민사회와 권력의 대립이라는 첨단의 구조에 서 있다.

국정화 추진측은 ‘올바른 역사’라는 이름으로 명분을 주장하고 야당은 '친일과 유신'의 프레임으로 이를 반대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국정화 교과서 문제는 ‘무림’의 자율적 질서에 의해 각 분파가 정통성을 주장하던 관계를 관이 개입하면서 분파를 통합한 ‘무림맹’을 창설하려는 현상과 비슷해 보인다. 관이 개입하지 않기로 한 조건을 부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국가권력에 의해 독점의 구조로 되돌아가려 한다는 점에서 갈등의 휘발성은 매우 강하다.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정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박 대통령은 국회연설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이 말이 맞다. 지금의 국정화 논란은 역사 교사서를 둘러싼 여야의 정쟁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국가 권력이 수많은 희생과 노력으로 시민사회가 얻어온 주요 고지 중 하나를 다시 탈환하려 한다는 점에서 고지전과 같다.

1967년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점령하면서 시리아는 커다란 데미지를 입었다. 영토를 빼앗겼다는 군사적  패배는 물론 시리아 영토 뿐 아니라 이스라엘도 한눈에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전략적 요충지를 빼앗겼다는 점에서 이후 시리아는 운신이 크게 위축되는 매우 치명적인 불리함에 서게 됐다.

지금의 '역사교과서' 논란은 정신적으로 골란고원의 역할을 한다. ‘역사 서술의 주체’를 국가와  시민사회 어느 쪽에서 담당하느냐에  따라 각 영역의 정당성과 주도권이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내용면에서는  좌우의 진영논리에 빠질 수도 있고 독재.반독재의 프레임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관이 개입하지 않기로 한 무림의 영역, 즉 시민에게 돌려준 자율성을 권력이 다시 빼앗으려는 시도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국정교과서 문제는 기존의 정쟁과 성격이 매우 다르다.

암묵적으로 서로가 인정한 영역의 경계선을 침해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를 더 큰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의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현 정부의 포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시민들과 전면적인 갈등을 감수하는 듯하다. 그 파장의 진폭이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얼마나 많은 관심사를 삼킬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제이누리=이재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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