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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아프리카 서신

제가 살고 있는 동부 아프리카는 어림짐작이지만 200개 이상의 다양한 부족들이 광활한 대지위에 어울려 사는 곳입니다. 장거리 달리기 선수를 많이 배출하는 케냐를 비롯해 희대의 독재자 이디아민이 통치했던 우간다, 킬리만자로 산이 있는 탄자니아, 인종학살의 참혹함을 경험한 르완다, 탕가니카 호수 주변의 조용한 은둔과 고립의 나라 브룬디 등 5개국이 자리잡은 곳입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고 싶어 이 곳을 찾아 사파리 공원에 들어가 보면 오히려 동물이 우리를 구경한다는 것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현지 주민들 특히 꼬마들이 여러분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외치는 단어를 듣게 되실 겁니다. ‘무중구!’

 

아무런 편견이나 악의 없이 그냥 외국인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얼마 전 이 곳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봉사단원으로 파견한 한 청년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가 한동안 제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보통 이 곳 사람들이 우리를 무중구라고 부르는데 시골에서 현지 주민에게 무중구가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까 ‘차를 타고 오는 사람’ 이라는 것입니다. 차와 사람을 묶어서 함께 지칭해 무중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죠.

 

그것 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렇죠. 저 같은 외국인들은 이런 곳에 살면서 특히나 시골로 다니면 걸어 다니지 않고 반드시 차를 몰고 가지요. 그러니 무중구는 언제나 ‘차와 그리고 그 굴러다니는 쇳덩어리와 함께 나타나는 사람’ 이라는 이 사람들의 머릿속의 개념정리가 정확한 것입니다. 저희를 이렇게 보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는 나타나서 말도 하기 전에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무중구라는 말의 어원을 찾아보면서 더욱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무중구라는 스와힐리어 단어는 ‘the aimless wanderer (목적없이 방황하는 자)’ 라는 뜻에서 유래합니다. 탐험가(Explorer)로서 즉, 미지의 아프리카 대륙을 탐험하러 온 유럽인들을 보고 붙인 단어입니다. 그러나 그 무중구는 이후 그 뜻을 바꾸어 ‘persons who take away‘ 즉 약탈자라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식민지 개척시대 탐욕적인 유럽인들의 모습이 연상이 가시죠.

 

그게 나중에는 ‘약탈자’의 의미는 탈색되어지고, ‘하양 사람’(the white)이라는 뜻을 가지면서 외국인들을 총칭하는 말로 정착되어 동아프리카 일대로 퍼져나간 셈입니다.

 

이제는 저희같이 별로 스스로 희다고 생각하지 않는 동양인들에게도 ‘무중구’ 라고 불러서 백인만이 아니라 외국인이라는 뜻으로 정착이 된 것입니다. 한국사람은 탐험과 약탈 그리고 흰색피부와 상관이 없는데 졸지에 아프리카 아픈 역사의 유산을 물려받은 셈입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속에서나 타인의 머리 속에 생긴 이미지와 개념들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하고 변화하고 어쩌면 사멸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배우게 됩니다.

 

 

동물을 보러 왔다지만 동물이 나를 구경하고 있는 아프리카 대초원 위에 서 보시면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함께 호흡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새삼 느낀답니다.

 

세계를 향한다는 말은 내가 아닌 타인들을 향해서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며, 아프리카처럼 인간과 자연이 아름답게 섞여 살듯이 우리의 머리 속에 더 이상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구분이 없어지고, 더 이상 나와 남이 구분되지 않는 그런 경지에 이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요? 무중구! 아프리카에서 하나를 깨우칩니다.

 

☞이상훈은?=연세대 정외과를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 국제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해외원조협의회 연구위원으로 우간다·아프가니스탄·르완다에서 국제구호기금 지역(보급)책임자를 맡으며 10여년간 생활하고 있다. 현재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주민을 돕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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