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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시평] 관제탑 기능과 선제적 예방조치가 답이다

 

8만6960명 중 3명을 만났다.

 

오랜 만에 옛 정을 주고 받으며 어젯(25일) 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참고로 8만6960명은 23일부터 몰아친 폭설과 강풍으로 제주에 발이 묶였던 제주체류객 인원이다. 국토교통부가 공식 집계한 수치다.

 

대학시절 선·후배 사이인 그 네 명은 저녁을 같이 하며 아스라이 옛 추억으로 빠져 들었다. 감사의 마음도 잊지 않았다. “항공기를 타지 못한 덕(?)에 소중한 시간이 만들어졌다”며 함박 웃음꽃도 피웠다. 천재지변으로 가지 못한 상황이니 “오늘 자리는 하늘이 만들어줬다”며 천지신명에게 감사도 드렸다.

 

그 세 사람은 지난 22일 오후 제주로 왔다. 1박2일 일정이 4박5일 일정으로 뒤바뀌면서 세 사람은 애초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23일 밤께엔 월요일 출근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너무도 초라한 인간이란 존재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음과 아울러 자연의 힘을 다시 깨달았다는 ‘득도’(?)의 언사가 서슴 없이 나왔다.

 

그 제주체류객 세 명은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것”이란 마음을 다잡고 렌터카에 튼튼한 월동장구를 채우고 제주 곳곳을 돌아다녔다. 폭설로 뒤덮인 경이로운 제주의 자연도 가슴에 실컷 담았다. 내친 김에 다니면서 느꼈던 제주사(史)의 미스테리마저 꼬치꼬치 캐물으며 ‘제주 공부’에 눈빛이 빛났다.

 

헤어지는 길-. 우연히 만난 그들은 “언제인지 모르지만 여생은 제주에서 보내고 싶다”는 염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 세 명은 기상악화 사정이 풀려 25일 오후부터 펼쳐진 ‘제주공항 발 엑소더스’에서 한 켠 물러선 인물들이다. 북새통 공항 사정을 뒤로 하고 26일 항공편 귀환을 일찌감치 결정하고 제주를 만끽하는 시간을 가졌다. 타고 온 항공사가 보내 준 문자메시지와 전화 한 통으로 귀환할 대체 항공편을 애당초 확정지어 시간적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다른 장면이 있다.

 

제주에 폭설과 강풍이 몰아치던 23일 오후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일 때문에 제주로 온 또 다른 8명의 일행이 항공편 결항으로 아예 떠날 수 없는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그들 역시 8만6960명에 포함된 인원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숙소를 알아봐줬다.

 

하지만 그 일행은 모두가 숙소에서 편안한 잠자리를 보내지 못했다. 일행 중 1~2명이 윤번제로 공항 노숙신세가 됐다. 23, 24, 25일 그렇게 일행 중 일부가 돌아가며 공항 터미널에서 잠을 청했다.

 

이유는 그들이 타고 온 항공기 항공사가 공항 카운터에 선착순으로 대기한 이들을 대상으로 귀환할 항공편 좌석을 마련해줬기 때문이다. 전화로 해결되지 않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고역이었지만 공항 터미널에서 순번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언제 항공기 운항이 재개될 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그들 역시 공항 노숙신세가 그리 오래 걸릴 일일지 몰랐다. 돌이켜보면 무모했지만 그들로선 달리 방법이 없었다. 차량도 딱히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들이 만난 제주도는 그저 제주공항 청사와 터미널 뿐이었고, 수북이 쌓인 눈은 지긋지긋하기만 했다. 그나마 제주도 공무원과 제주관광공사, 일부 도민·기업 등이 나서 터미널에서 빵과 생수를 건네 줘 고마웠다.

 

지난 사흘 여 제주도는 93년만의 최저기온과 32년만의 폭설이라는 기록을 생산했다. 기록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3일여의 폭설로 9만명에 가까운 ‘의도하지 않은’ 제주체류객이 생긴 것도 사상 초유의 일이다. 9만명은 제주도 인구(64만명)의 14%에 해당하는 인구다. 1000만 서울 인구로 비교할라 치면 140만명에게 변고가 생긴 것이다.

 

 

의문이 생긴다.

 

한국공항공사는 1인당 5000원의 공항이용료를 받는다. 국내 14개 공항중 이 공항이용료 수입이 가장 많은 곳은 바로 제주국제공항이다. 지난해만도 연간 2600만명이 이용해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국내 공항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곳이다. 1300억원의 수입을 올려 연간 수백억의 흑자를 기록, 그 돈으로 적자행진을 하는 다른 지방공항을 거들어준다. 그런데 그 공항공사가 흡사 난민을 방불케 한 공항청사 아수라장 사태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제주도청과 제주관광공사 등 지역 공기업, 제주의 민간·기업이 나서 이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베푸는 동안 실제 공항이용 수입을 올린 공항공사는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왜 어떤 항공사들은 왜 터미널 선착순 대기를 고집할까? 거의 전국민이 스마트폰으로 무장하고 있는 시대에 왜 항공사의 서비스 마인드는 전근대적인 시스템에 머무르고 있는 지 모르겠다. 정작 그 항공사는 눈 앞에 보이는 선착순 대기를 말하며 뒤쪽으론 이른바 ‘힘 있고 빽 있는’ 이들에게 새치기를 상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문은 또 있다. 23일부터 2~3일간 제주에 그 어느 때보다 강추위와 폭설, 강풍이 몰아칠 것이란 점은 이미 예견됐고, 한참 전부터 기상청이 줄곧 알려온 예보다. 그런데 무작정 제주로 사람을 실어 나르고 난 뒤 그들은 과연 어떻게 돌아갈 수 있는지 아무도 준비한 바가 없다는 것인가? 국토교통부도, 항공사도, 제주도 역시 그런 생각은 안해 보는가? 금요일 기상사정이 항공기가 뜰 만하니 국토교통부는 당연히 항공기 운항허가를 내줬을 것이고, 그저 예약된 대로 항공사는 탑승객을 실어 날랐을 뿐이고, 막상 대혼란이 벌어지자 제주도정은 그 때서야 허둥지둥 헤매며 진땀을 뺐다. 예견된 상황에 대응할 ‘관제탑’이 우리 나라엔 없는가?

 

제주에 기록적 폭설과 추위가 몰아치던 시기 미국 워싱턴에도 1922년 이후 94년만의 눈폭탄으로 마비상태에 직면했다. 하지만 난리·북새통이자 아수라장이었던 제주공항과 달리 워싱턴의 로널드 레이건 공항은 한산했다. 아무리 뉴스를 뒤져봐도 공항이 아수라장이었다는 미국 발 그런 뉴스는 없다. 워싱턴시는 눈이 내리기 시작한 22일 오후보다 하루 전인 21일 미국 동부지역의 이·착륙 항공편의 운항을 중단조치했다. 워싱턴 시장이 직접 나서 ‘선제적 예방조치’를 발표했다.

 

이미 폭설이 예견된 상황에 우리 항공사들은 탑승객들에게 귀환일정의 항공편이 결항될 것이란 걸 미리 알려줄 수 없었을까? 국토교통부는 선제적으로 항공기 운항중단 조치를 내릴 순 없었을까? 제주도 역시 만일의 사태에 대비,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제주체류객들을 일거에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은 미리 확보할 수 없었을까?

 

3일여 제주에 몰아닥친 ‘눈사태’가 답을 요구하고 있다. 제주에만 해당하는 일도 아니다. 재난대응 시스템 업그레이드는 이 의문을 풀어가기 시작할 때 가능하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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