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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와 '육'지가 어우러진 더 멋지고 더 잘사는 제주가 되기를...

“불편해졌어. 올레길인가 뭔가 생긴 뒤로 우리네 마당을 빼앗긴 것 같아. 대대로 살아온 우리의 의사는 무시한 채 우리 동네 길을 마음대로 빼앗아 마치 자기네들 길인 양 법인인가 재단인가 만들어 개통식을 치루지 않나, 지 맘대로 들이니 이거야... 이런 돼먹지 못한 경우가 있겠나. 외지사람들이 다니니 옷도 맘대로 입고 나오질 못하니, 이거야.”

 

“자네도 그런가? 이미 나 있는 길에 뭔 개통식이란 말이냐고. 내가 일자무식이지만 미국땅에 엄연히 잘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건만 그걸 빼앗아 신대륙 발견이니 어쩌구 저쩌구 이것과 뭐 다른가? 뭐가 다르겠냐고? 나도 여기로 나올 땐 전처럼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나올 수가 없어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네.”

 

“그러게 말일세. 우리 같은 무지랭이보다 못하니 참. 나도 한 말 함세. 4백 년 전인가 아메리카에선 얼굴 허연 자들이 노란 얼굴들을 무시하더니 지금 제주도에선 노란 얼굴이 허연 자들 것 흉내 내 길을 작살내고 있으니···. 흉내를 내려면 제대로 좀 하든가. 짝퉁도 이런 짝퉁이 없네. 사서 들고 다니는 물건에나 짝퉁이 있는 줄 알았더니 내 동네가 이 난도질당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전이 좋았어.”

 

“하기야 우리 바다도 아닌 것을 뭐.”

 

“근데 왜 이렇게 섭섭한지 모르겠네.”

 

“그렇지? 나도 그렇다네. 나도 왠지 내 앞 마당을 잃은 듯하네.”

 

“손님을 잘 맞아야하지만 손님이 주인 행사하니 이거야 참.”

 

“태어나서부터 주인이었을 우리가 손님 같으니···”

 

“외지에서 사람들이 우리 동네를 찾아주니 반갑긴 하지 뭐.”

 

“훌쩍 지나가고 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우리 것을 너무 내놓는 것 같아. 우리끼리만 살 땐 저 낮은 담도 높았는데 이젠 저 담도 더 높여야 할 것 같아.”

 

“그렇지? 기웃거리지 않나, 함부로 카메라 들이대질 않나, 구경거리가 되어버렸으니···. 우리가 동물원 원숭이냐고! 우리가 너무 발가벗어 보이는 것 같지 않나?”

 

“하지만 기억한다지 않은가. 다들 좋다하지 않은가. 돌아가서도 말일세. 이러면 됐지, 뭘 바라겠나? 덕분에 이 동네가 심심친 않아. 그 전엔 좀 쓸쓸하긴 했지, 뭐! 우리도 구경거리 생겨 좋고.”

 

 

 집 앞 애삐리바당 바닷가를 걷는데 방파제 벽에 자전거를 걸쳐놓고 자전거처럼 기대 앉아서 두 남자는 대충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통역이라도 중간에 있어야 알아듣는 제주 사람들만의 말을 풀어(솔직히 내 생각도 덧붙여) 옮겨 본 겁니다. 제주로 옮겨온 지 1년 11개월째, 거의 2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거의 변함없이 육지사람으로 제주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주사람들이 육지사람들에 대해 배타적이라 하고, 육지사람들은 제주사람들에 대해서 폐쇄적이라고 합니다. 배타나 폐쇄나 단어만 다르지 거의 같은 말입니다. 한 마디로 자기 것만 고집하고 닫아 놓고 산다는 것이지요. 섬이라 더 그렇다고 하지만 어디 제주도만 이런가요? 우리나라 사람들 다 그렇지요. 육지사람인 나는 오히려 제주도 동네사람한테 폐쇄적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사 오자마자 없던 문부터 만들었거든요. 대문 없는 집이 너무나 어색했습니다. 양말 안 신고 구두 신은 기분이랄까. 하여튼 마구 드나드는 이웃으로 내 사생활이 조금 영향을 받기에 주인한테 얘기해 내가 나무 대문을 손수 만들어 달았습니다.

 

제주도엔 예부터 문 없이도 살았고 그럴 만큼 이웃이 서로 트고 살았던 곳입니다. 대문엔 정낭이 있지요. ‘집에 사람이 있다’ ‘외출해서 없다’ ‘곧 돌아올 것이다’ 막대기 세 개가 사람 대신 소통해주는 삶의 지혜의 문을 제주인들은 이미 가지고 있었습니다. 도둑이 없는 곳, 믿고 사는 곳에 육지인이 육지의 저자거리에서 복작대며 살던 습관으로 제주도 섬에 들어와 살려니 이 문화에 익숙지 않은 것입니다.

 

습관은 무서워서 동화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로 집에 처박혀 글만 쓰고 있는지라 오전에도 술이 잔뜩 취해 소주 내놓으라고 하는 특별난 제주사람을 이웃으로 두고 있어 대문을 꼭 닫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가까운 이웃에겐 이해해주시라고 하고서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네요. 육지인인 내가 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거지요. 그러나 육지인들이 오히려 제주도민들에게 이런 말들을 서슴없이 해댑니다. 그래도 나는 차츰 여기 도민, 주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며칠 여행으로 잠깐 오고 가는 사람들은 어떨까, 이 점에 주시하고도 삽니다. 아직 제주도에선 서울촌놈으로 섣불리 함부로 이러쿵 저러쿵 얘기할 계제가 못됩니다. 서울사람도 제주사람도 모두 한국인인 것을. 또 제주도를 찾는 외국인 역시 같은 사람들인 것을. 뭘 그리 따질 일이 있겠어요? 입장 바꿔 생각하고 이해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섬의, 그것도 그 가장자리 작은 마을로 오일장 정보지 보고 들고 와서 살고 있는 나는 감히 코스모폴리탄, 세계주의, 인류애를 생각합니다. 적어도 육지인인들이 ‘섬 것들’이라든가 제주인들이 ‘육지 것들’ 이런 말들은 하지 않기를 소원하면서 말입니다. 말은 요상해서 말처럼 되게 만들거든요. 그 말 뒤에 배타적이라느니 폐쇄적이란 설명을 꼭 추가해서 더 배타적이고 폐쇄적으로 고착시킵니다. 나눠서 좋은 것은 마음뿐입니다. 편가름의 나눔은 분단이며 분열이며 분절이며, 바로 너를 찢는 일이요, 내가 찢겨지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상처 받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동명의 제육볶음>은 앞으로 이런 얘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많이 엿듣고 새겨듣고 그리고 내 나름 소화해서 조금만 얘기할까 합니다. 나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아 아직 제육볶음을 따로 시켜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음식은 음식을 젓가락으로 뒤져 그 맛도 알아보고 들어간 게 뭔지도 알아야겠지만 난 국어사전을 찾아서야 제육볶음에 무엇이 섞인 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돼지 ‘저’자를 써서 처음엔 저육볶음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부추 등 양념을 넣어 볶아 돼지고기의 냄새를 향이 강한 부추라는 채소로 없애고 돼지의 기름기로 인한 느끼한 맛도 부추가 흡수해 줄일 수 있는, 두 가지가 버무려진 맛의 조화, 영양의 배합, 바로 볶음으로써 더 맛을 낸 음식입니다. 허허, 쩝쩝, 입맛을 다시는군요.

 

요리 얘기인 줄 알고 들어온 미식가들이 있을 것 같아 뜸을 그만 들여야 될 것 같습니다. 제육볶음의 ‘제’는 여기선 ‘제주도’이며 ‘육’은 ‘육지’를 의미합니다. 술 마시다가 옆 자리에서 맛있게 먹고 있는 음식을 보고 앞 사람에게 “저거 뭐야?” 물으니 제육볶음이라기에 문득 떠올려 차용하게 되었습니다. 훔쳐온 거나 다름없으니 도용이라고 해야 옳겠습니다. 훔친 도둑질이 조금은 정상참작 되려면 훔친 걸 제대로 사용해야겠지요. 그러니 제주도와 육지가 어우러진 더 멋지고 더 아름답고 더 살기 좋은 곳이기를 바라는 도둑심보가 먼저 듭니다.

 

요리 찾아 여기 들어온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요리만큼이나 좀 재미있게 써보려고 노력할 테니 실망 마시고 들러주세요. 맛은 느끼게 해줄 양으로 써보려하니까요. 감칠맛에 톡톡 쏘는 맛깔스런 글, 이것도 맛이려니 요리축에 끼지 않겠나, 이리 저 혼자 맘대로 생각해 봅니다.

 

글과 함께 그림이 한 장 따라갑니다. 내가 제주도의 색이라고 본 검은 색으로 주로 그리되 한 두 색을 넣은 변죽 또는 어줍 담채화쯤 될 것입니다. 서툴러 어줍어도 나름 의미를 부여해보면 이 그림 또한 볶음을 상징합니다. 하나만으로써가 아니라 둘과 셋으로 어우러져 각각의 멋을 제대로 살리면서도 공히 조화하는 그림이길 바라며 그려볼까 합니다. 글에선 맛을, 그림에선 멋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진정한 맛과 참 멋의 제주도를 소망하면서...

 

글도 그림도 그저 섞여 뒤죽박죽되거나 그냥 볶아져 이도저도 아닌, 제육볶음이 아니라 돼지죽이 되지 않도록 애써 요리해볼 양입니다. 이 정도로 첫 인사를 대신합니다.

 

☞오동명은?=서울 출생. 경희대 경제학과를 나와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한국기자상과 민주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으로 세상읽기]·[부모로 산다는 것]·[신문소습격사건]·[일본자전거여행] 등 다수의 책을 냈다.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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