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이권홍의 '중국, 중국인'(62)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왕망(王莽)의 고모가 한나라 성제(成帝)의 모후로 조정의 대권을 잡고 있었다. 왕망은 그 기회를 포착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 기원전 8년 왕망은 대사마에 오르는데 그의 나이 38세 때였다.

 

성제가 죽고 애제(哀帝)가 즉위하자 새 외척인 부(傅), 정(丁) 두 집안이 득세하게 되고 대사마에 올라 득의양양하던 왕망은 1년 만에 자리에서 쫓겨났다. 남양(南陽) 신야(新野)의 봉지로 물러나 사대부들과 교류하면서 권토중래를 준비한다.

 

바로 그때 왕망의 둘째 아들인 왕획(王獲)이 노예 한 명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사회 상황으로 볼 때 주인이 노예를 죽이는 것은 그리 큰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왕망은 엄하게 비난하고 왕획에게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라며 자살을 명했다. 이른바 ‘대의멸친(大義滅親)’인 셈이다. 왕망의 이 대의멸친의 행위는 별일 아닌 것을 큰 일 인양 처리한 점이 있지만 이 일로 인해 사사로움을 버리고 대의를 추구하는 인물이라는 명성을 얻는다. 조야의 위아래에서 칭찬이 자자하자 애제는 어쩔 수 없이 왕망의 관직을 회복시킨다. 이는 왕망이 친 아들의 피를 밟고 대사마 권위를 되찾은 것이라 역사에서는 평가한다.

 

 

 

 

기원전 1년, 애제가 죽고 평제(平帝)가 즉위했다. 왕망은 평제의 모친의 위(衛) 씨 일파가 조정을 장악할 것을 염려해 먼저 손을 쓴다. 평제의 모친인 위희(衛姬)를 중산효왕후(中山孝王后)로 봉하고 평제의 외숙인 위보(衛寶), 위현(衛玄)을 관내후(關內侯)로 앉혀 중산(中山)에 머물게 하고 입경하지 못하게 했다. 대신들이 평제의 모친을 입경시켜야 한다고 할 때마다 악독하게 처벌했다. 왕망의 큰 아들 왕우(王宇)는 평제가 성장한 후 자신의 골육을 이별케 만든 것을 원망해 왕(王) 씨 일족을 멸할 것을 걱정해 계책을 세우고자 했다.

 

왕우는 자신의 스승인 오장(吳章), 사촌 형 여관(呂寬)과 상의했다. 오장은 왕망이 미신을 믿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개의 피를 왕망의 대문에 뿌리면 왕망이 두려워 할 것이고 왕망이 그 일에 마음이 흔들리면 오장이 기회를 틈타 그것은 제왕의 모친을 영접해 입경하라는 신의 뜻이라 전하여 왕망의 마음을 돌리도록 할 계책을 이야기했다. 왕우는 묘책이라 생각해 여관에게 실행하도록 했다.

 

여관은 사람이 드문 깊은 밤에 개의 피를 왕망의 대문에 뿌리고는 황급하게 자리를 떴다. 그러나 때마침 문지기가 밖에 나와 있었다. 가만히 보니 여관이 분명했다. 이상하다 싶어 횃불을 붙여 확인했다. 대문에 피가 뚝뚝 흐르면서 비리고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이 아닌가.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참지 못해 왕망에게 보고했다. 왕망은 그날 밤 여관을 심문하고 마침내 왕우의 이름을 듣게 된다.

 

왕망은 왕우에게 노기 탱천한 얼굴로 누가 주모인지를 물었다. 왕우는 전전긍긍하며 스승 오장의 이름을 말했다. 왕우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중벌을 내릴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자살로 사죄하라고 명할 줄은 몰랐다. 오장도 대중 앞에서 참수 당했다.

 

왕망은 아들 왕우에게 칼을 휘두르고 나서 살육의 칼을 위(衛) 씨 일족을 향해 휘둘렀다. 위희 이외의 위 씨 친족을 다 죽이고 나서 자기와 불화하는 왕 씨 친족들을 위 씨와 내통했다는 죄명을 씌워 하나도 남김 없이 참살했다. 왕망에 의해 죽임을 당한 조정 대신들은 몇 백에 달했다. 왕망의 ‘대의멸친’은 더욱더 명성을 얻게 됐다. 왕위의 피는 그에게 ‘재형(宰衡)’이란 영광스런 칭호를 받게 만들었고 ‘구석(九錫)’을 하사받는 대우를 받게 했다. 이후로 왕망의 영예와 존귀함을 따를 자가 없었다.

 

 

 

 

왕망은 두 아들의 피로 물든 관직의 계단을 밟고 승승장구해 8년에 유 씨 강산을 찬탈하고 신 왕조의 용좌에 앉았다. 왕망은 음모로 황제 자리를 찬탈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자신을 모방해 보좌를 찬탈하지 못하도록 방비했다. 왕망에게는 아들이 4명 있었다. 왕우와 왕획은 왕망의 명으로 죽임을 당했고 왕안(王安)은 정신이상자라 왕림(王臨)을 어쩔 수 없이 황태자 자리에 앉혔다.

 

왕망이 두 아들을 주살하자 그의 처는 피눈물을 흘렸다. 그 탓에 두 눈이 멀어 버렸다. 왕망은 왕림에게 생모를 모시라고 명했다. 처에게 원벽(原碧)이라는 시비(侍婢)가 있었는데 왕망과 사통한 적이 있었다. 왕림도 궁에 들어온 후 그녀의 미색에 반해 남몰래 정을 통했다. 사통한 후 왕림은 추악한 일이 누설돼 부친에게 주살을 당할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왕망을 죽이고 찬위할 계책을 논의했다. 왕림이 실행에 옮기기 직전 대풍이 불어와 왕로당(王路堂)이 무너진 일을 핑계 삼아 왕림의 황태자 직위를 폐하고 수도를 떠나도록 했다.

 

이듬해 소경이 된 황후가 중병을 얻자 왕림은 모친에게 편지를 썼다. “황상께서 자식들에게 너무 가혹하십니다. 큰형, 둘째 형 모두 30세 때에 자살을 명받아 죽었습니다. 저도 올해 30세가 됐습니다.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처의 병세를 보러 왔던 왕망이 편지를 보고는 진노했다. 황후가 죽자 왕망은 원벽을 심문해 왕림과 사통했다는 사실을 자백 받았다. 왕망은 집안의 추악한 일이 누설될까 염려돼 심문에 참여했던 관리들을 처형하고 왕림에게 자살을 명했다. 왕림과 그의 처는 명에 의해 자살한다.

 

황위를 위해 왕망은 자신의 아들 셋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는 잔인하고 흉악한 왕망의 본성을 잘 드러낸 사건이다.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잔혹함도 마다하지 않았던 까닭일까? 중국 최초의 개혁가라는 미명도 있지만 끝내 개혁은 실패로 돌아간다. 그리고 백성들은 봉기한다. 23년 농민봉기군에 의해 왕망의 왕조는 무너졌다. 그리고 왕망도 죽임을 당했다.

 

왕망의 머리는 잘리고 백성들은 공을 차듯 왕망의 머리를 발로 차고 다녔다. 그의 혀는 잘려 사람들이 씹어 먹었다고 전한다. 그의 거짓말이 백성들을 재난에 빠뜨렸다는 의미에서.

 

기록된 바대로라면 왕망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성공한 자에 대한 평가와 실패한 자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만약 왕망의 개혁이 성공했다면? 성군이라 평가 받는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 성공한 그는 위대한 군주가 됐지만 골육상잔의 참상은 왕망을 뛰어넘는데, 그렇다면…….<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