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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필의 세상훑기(4)

 


 "궁정동 하룻밤이 싫다면 나는 어떤가?”  TV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청와대 실력자가 신참 여성 연예인에게 던진 말이다. 이 드라마엔 궁정동이 자주 등장한다. 1970년대 최고 권력자는 이곳에서 여인들 술시중을 받으며 연회를 열었다.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궁정동 연회 관련 장면은 많은 면에서 실제와 싱크로율(유사성)이 높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당시 20대였던 가수 심모씨와 한 여대생 모델 신모씨가 연회에 참석했다. 국민들은 10ㆍ26사건이 나고서야 ‘궁정동’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대통령이 살해당한 것 만큼이나 궁정동 정체에 관심이 쏠렸다. 비상조치법으로 뭐든지 옭아 맬 수 있던 유신시대. 대통령 사생활을 조금이라도 언급했다간 경을 칠 수도 있지만 최고 권부에서 흘러나오는 은밀한 얘기에 쉬쉬하며 귀를 세우던 시절이다. 그런데 이젠 대놓고 드라마에서 궁정동의 여인 고르는 얘기를 한다.

 

 

 드라마에서 가수 지망생이 “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에” 궁정동에 가려고 했듯이 당시 톱스타와 연예인 지망생들이 자의ㆍ타의로 만찬에 불려 갔다. 10여년 전 김재홍 경기대 교수(전 언론인)가 공개한 중앙정보부 박선호 의전과장(10ㆍ26 관련 사형)의 법정 진술에서 그 일면이 드러났다.

 

 “이것(만찬 여인 명단)을 제가 발표하면 시민이 깜짝 놀랄 것이고, 여기에는 수십 명의 일류 연예인들이 관련돼 있습니. ··· 세상이 놀랄만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균 한 달에 각하가 열 번씩 나오는데···.”

 

 여인들을 골라 보내주는 중간책은 드라마와 같이 모 요정의 마담이었다. 당시 장충동의 김 마담이 20대 초반 연예계 신참들에게 은밀히 참석을 제의하면 대부분 응락했다. 그들은 궁정동에 다녀온 것을 은근히 으스대기도 했다.

 

 양 옆에 두 여인을 앉히는데 대개 한 사람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스타였고, 다른 하나는 연예계 신출내기였다. 술이 취하면 으레 둘 중 마음에 드는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고 한다.

 

 궁정동 만찬에는 두 번 갈 수 없었다. ‘인연’ 때문에 말썽이 생길까 청와대서 미리 차단했다. 한 여배우가 연속 ‘출연’하겠다고 해 말썽이 된 적이 있다. 그녀의 어머니가 서슬 퍼런 중앙정보부에 찾아와 “우리 아이를 좋아하시는데 당신들이 왜 가로 막는거냐”며 큰소리를 쳤다. 이처럼 ‘인연’의 위세는 대단했다. 드라마에서 가수 유채영이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싶다”며 궁정동 참석을 자청하는 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만찬은 유신 말년 자주 열렸다. 한 달에 사나흘 건너 한번 꼴이었다.  ‘소행사’ ‘대행사’로 구분했는데 소행사는 대통령 혼자, 대행사는 서너 명이 함께 하는 만찬이다. 여자를 공급하는 채홍사 역할을 맡았던 의전과장은 “이런 일을 더 이상 못하겠다”며 여러 번 사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드라마의 차수혁 처럼···.

 

 

 

 

 

지난달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를 펴낸 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거사 이유로 극에 오른 민주화 요구, 미국과의 갈등 그리고 궁정동 연회 등 최고 권부의 사생활 문란을 들었다. 작고한 서양사학자 김성식 교수는 “영원할 것 같던 로마제국이 멸망한 원인은 도덕성의 타락이었다”고 단정한 바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지나간 권력의 추악한 타락상을 보여 주는 게 옳은 일인가 생각해 봤다. 드라마를 보는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부끄러웠다. 그러나 빛이 있으니 그림자는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권력이 누리고 있는 영광 뒤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추악한 어둠의 그림자가 아니었으면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또다시 부끄러워질 것 같아 속이 쓰리다. 언제나 권력은 국민이 ‘깨어있는’ 수준에 맞춰 이익을 챙긴다. 

 

☞조한필은?=충남 천안 출생. 고려대 사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고대사를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편집부·전국부·섹션미디어팀 기자를 지냈다. 현재는 충청타임즈 부국장 겸 천안·아산 주재기자로 활동하면서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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