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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시평] 설문대할망전시관 착공 유감 ... 세계적 명소 의지 꺾지 말자

 

제주는 독특한 창조신화를 보유한 땅이다. 삼라만상이 만들어진 제주 형성사가 곧 천지창조의 이야기를 설파한다. 게다가 여느 곳과 달리 창조주는 여신이다. ‘설문대할망’이란 거대 여신(女神)이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신화다. 모르는 이도 있을 것 같아 부언하면 ‘할망’은 ‘할머니’의 제주어다.

 

선문대할망, 설명두할망, 설명뒤할망, 세명뒤할망, 세명주할망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전해지는 설화다. 『탐라지(耽羅誌)』<담수계편>에는 설만두고(雪慢頭姑)라고도 표기돼 있다. 또 18세기 풍랑을 만나 저 멀리 지금의 오키나와인 류쿠(琉球)국까지 표류했던 장한철(張漢喆)이 지은 <표해록(漂海錄)>에는 사람들이 한라산을 보고 살려달라고 비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선마고(詵麻姑)다. 마고에 빌었다는 의미로 선문대할망이 한자 선마고로 표기된 것이다. 제주에서는 묻혀 죽은 노파라는 뜻에서 `매고(埋姑)할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설화와 함께 마고와 비교되는 할망으로 전해진다.

 

제주 창조신화는 그저 설문대할망이 세상의 창조주였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이라는 설화가 있다. 500명이나 되는 장군들은 바로 설문대할망의 아들들이다.

 

거대여신에 걸맞게 설문대할망은 키가 엄청나게 커서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한 발은 성산일출봉에, 또 한발은 현재 제주시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걸쳐졌다. 팔은 한라산 꼭대기를 짚고 서서 발로 관탈섬에 걸친 빨래를 문질러 빨았다고 한다.

368개로 1995년 제주도의 종합조사 결과 확인된 제주의 기생화산, 즉 오름(側火山)은 설문대할망이 제주를 만들기 위해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를 때 치마의 터진 구멍으로 조금씩 새 나가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마지막으로 날라다 부은 것이 한라산이 됐다는 이야기다.

그 설문대할망은 500명의 아들들에게 죽을 끓여주다 그만 발을 헛디뎌 죽에 빠지고 말았다. 저녁에 돌아 온 형제들은 잘 익은 죽을 먹으며 오늘따라 유난히 맛있다며 아우성이었다. 막내아들만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해 죽을 먹지 않았다. 죽을 다 먹고나서 솥 안에 사람의 뼈를 발견하자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됐다. 어머니의 살을 먹은 형제들과는 같이 살 수 없다며 막내아들은 서귀포 삼매봉 앞바다로 내려가 슬피 울다 외돌개가 되었다. 나머지 형제들은 그 자리에 늘어서서 한없이 울다 지쳐 몸이 굳으면서 기암괴석의 군상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 바위들을 '오백장군' 또는 '오백나한(羅漢)'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곳을 '영실'이라고하고 바위들은 '영실기암'이라고 한다.

 

단군신화와 박혁거세(朴赫居世) 신화 등이 익숙하다면 제주의 설문대할망 창조신화는 이렇듯 많은 점에서 다르다. 창조주 여신의 이야기가 그렇고,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제주섬 탄생사를 망라한 것도 그렇고, 어머니와 자식 간의 애틋함을 설파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여느 지방은 물론 세계 어느 곳 설화와도 다른 독특한 점이 있다. 그래서 제주인에게 그 신화는 자부심이었고, 세계인들이 주목한 스토리텔링의 소재였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1998년 어느 날 지금은 고인이 된 신철주 당시 북제주군수와 백운철 탐라목석원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1970·80년대 허니문관광이 한창이던 무렵 ‘갑돌이와 갑순이’ 스토리로 신혼관광객이 꼭 찾는 탐라목석원의 주인인 백 원장은 평생을 걸려 모은 1만4000여점의 제주자연석·민구류의 기증을 결심했다. 물론 언제나 ‘1등’을 추구해 온 신철주 군수는 당시 군의 마크까지 ‘1등’을 매단 인물답게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이미 그 시절 기초단체가 아닌 광역자치단체인 제주도까지 찾아가 ‘제주돌문화와 신화’가 오롯이 담긴 매머드 테마파크 구상을 들이댄 백 원장은 타박만 들은 터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잡은 손은 말 그대로 ‘대역사’를 꿈꿨고, 그 실행은 착착되는 듯 했다. 신 군수가 급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2006년 4개 시·군이 폐지되는 비운을 겼었지만 ‘설문대할망’ 창조주의 신화를 세계적인 테마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은 그래도 조천읍 교래리 30만평의 땅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1999년 6월 착공, 628억원을 들여 돌문화전시관과 갤러리, 전통초가 등을 갖추는 1단계 사업을 끝내고 2006년 6월 문을 연 제주돌문화공원이 19일 제2단계사업의 핵심인 설문대할망전시관의 첫 삽을 떴다.

 

돌문화공원이 개원한지 10년만에 이제야 가까스로 착공한 것이다. 2020년 완공이 목표다.

 

기획단계부터 ‘제주신화를 상징하는 심장부’로 일컬어진 설문대할망전시관 조성사업은 그동안 수도 없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마디로 삐걱대기 일쑤였다.

 

 

탐라의 개벽 신화와 개국을 담은 신화관, 선사시대에서 근대의 제주에 이르는 유물·유적을 집대성한 역사관, 제주 고유의 전통과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민속관 등이 이 전시관 내 핵심시설이다. 하늘 위에서 바라보면 설문대할망이 고이 누워 있는 와상(臥像) 형태가 설문대할망전시관의 기본 컨셉이다.

 

하지만 그 전시관은 정부 보단 제주도 안에서 스스로 오그라들었다. 2012년 10월 제주도 공유재산 심의위와 제주도의회 심사 과정에서 수차례 심사보류 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돌문화공원이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전시관을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규모조정과 면밀한 수익성 검토 요구 등이 뒤따랐다.

 

결국 애초 사업예산도 1227억원이었지만 300억이 싹둑 잘려 909억으로 확정됐다.

 

당초 계획은 공원 내 부지 8만1598㎡에 국비 613억원, 지방비 614억원 등 총 1천227억원을 들여 지하 4층, 지상 1층, 전체면적 3만4천42㎡ 규모였다. 다목적 공연장(수용인원 2000명), 컨벤션센터(수용인원 1000명) 등의 시설이 예정돼 있었다.

 

결국 이젠 총사업비를 909억원을 투입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건축연면적 2만4585㎡로 변했다. 지하 2개층은 사라졌고, 이제 남은 건 지하 2층 지상 2층이다.

 

예산이 잘려나가면서 누워 있는 설문대할망의 목부위는 잘려 나갔고, 야외무대로 정해진 머리 부위의 2500석 객석도 사라졌다. 설문대할망이 발을 담갔다는 물장오리의 우주공간을 형상화 한 배꼽부위 지붕도 없어졌다. 더욱이 복부 한 복판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제주의 전통민구(民具) 명품관도 새 설계도엔 없다.

 

여러 사연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2012년 제주도공유재산관리위 심의가 그렇고, 제주도의회 심의도 그렇게 규모를 줄이거나 필요성을 따져 묻는 방식으로 전체의 그림이 망가지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정부 측 기재부 심사에서 “사업성이 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 투·융자심사까지 모두 마친 일들이 제주도 안에서 뒤집히거나 변경된 것이다.

 

“제주를 대표하는 세계최고의 명소로 만들고자 했던 기획이 어정쩡한 건물을 짓는 걸로 둔갑한 셈이죠. 그래도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2020년까지 앞으로도 4년여가 더 남았으니 그래도 20년 전의 구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막판까지 노력해 봐야죠.”

 

 

백운철 원장은 2009년 8월 말 ‘허니문 1번지’ 탐라목석원의 문을 닫았다. 1972년 문을 연 뒤 37년의 역사를 정리한 것이다. 돌문화공원의 탄생으로 쇠락의 길을 걷는 걸 자초했고, 스스로도 돌문화공원의 완성에 모든 정열을 쏟아부은 결과다.

 

그는 지금도 고(故) 신철주 군수와의 18년 전 약속을 꿈꾸고 있다. “세계속의 금자탑을 반드시 이루고 말겠다”는 집념이다.

 

세계적 명성을 얻는 건축물은, 제주신화의 부활은 바로 그런 집념과 기획이 오롯이 드러날 때에만 가능하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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