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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3) 나를 반사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정신과 전문의 이범룡 원장이 전하는 ‘담담(談談)클리닉’입니다. 도시와 산업화, 혼돈과 무질서, 사회 곳곳에 불거지는 병리현상과 난맥상을 화두로 이 원장이 세상과 소통합니다. 그의 ‘담담클리닉’을 통해 삶의 치유의 줄기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애독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의 오랜 주제입니다. “자기란 무엇인가”는 어떨까요? TV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황 끝에 어느 깊은 산사를 찾았어요. 오랜 시간 자초지종을 들은 늙은 스님이 그를 가만히 응시하며 “넌 누구냐”하고 묻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불교 사상을 잘 모릅니다만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일종의 화두(話頭)인가요?

 

자기심리학(self psychology)의 ‘자기’에 대해서 말을 해보려고 합니다. 자기심리학이란 말이 생소한 분도 있겠네요. 자기심리학은 코헛(Heinz Kohut, 1913~1981)이 창시한 분석이론 및 방법을 일컫습니다. 프로이트가 창시한 분석이론 및 방법을 정신분석이라고 하듯이 말이에요.

 

 

 

코헛은 프로이트학파의 유명한 분석가였어요. 미국 정신분석학회 회장, 국제정신분석학회 부회장을 지냈지요.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와 동료이자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정신분석학자 코헛은 자존심에 유난히 민감한 환자들을 분석하면서 점점 프로이트학파 이론과 멀어지다「자기의 분석」(1971)이란 논문 발표로 완전히 결별하여 자기심리학을 창시했어요. 코헛의 환자들은 프로이트가 만난 환자들과는 달랐어요. 프로이트가 히스테리나 강박 증상 등 고전적 신경증 환자들을 만난 반면, 코헛이 만난 환자들은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표현하기 어려운 불만족, 우울감을 토로하는 환자들이었습니다.

 

생소한 분도 계시겠지만 아무튼 자기심리학은 비의식을 다루는 임상심리학에서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있어요. 한국 정신의학은 영미(특히 미국) 교과서를 교재로 쓰기 때문에 그 영향도 있겠습니다만, 자기심리학은 한국 정신의학 교재로 사용하는 정신치료 교과서에서 일정한 분량을 가지고 소개되는 학파로 굳게 자리 잡았지요. 보통 정신분석(자아심리학), 클라인학파, 대상관계이론 그리고 자기심리학이 소개됩니다.

 

정신치료에 대한 연구는 정신발달 연구와 병행해서 이루어져왔습니다. 자기심리학은 정신발달 과정을 정신분석과는 달리 봐요. 자기심리학에서는 정신발달에 자기와 자기대상(selfobject)과의 관계가 일차적이라고 말합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욕동, 특히 성욕과 공격 욕구를 강조하며 정신발달을 설명하지만, 자기심리학에서는 그런 욕동은 근원적인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자기심리학에 따르면 프로이트의 욕동은 온전하지 못한 자기, 혹은 결함 있는 자기의 산물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자기심리학의 정신발달은 온전하게 통합된 자기를 확립하는 과정이 일차적이라고 설명합니다. 말이 조금 어렵나요?

 

좀 벗어난 이야기를 말해 볼게요. 서양철학인 현상학에 대해서는 지난 번 친구가 보내준 관련논문 한 편 일별한 것 밖에 없습니다만, ‘주체는 세계와 상호주관성을 통해 자리 잡는다’는 대목이 생각납니다. 현상학은 주체 형성 과정을 통해 주체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밝힙니다. 결국 주체는 ‘세계-내-존재’라는 겁니다. 상호주관성으로 세계와 조응하지 못하는 주체는 분열되어 버립니다. 주체가 조각조각 깨져 버린다는 이야기지요.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이와 포개질 수는 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자기심리학에서는 ‘자기’는 태어나면서 ‘자기대상’과 관계를 맺으며 발달하고 심리의 중심 구성물로 자리하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자기대상"이란 용어가 나옵니다. 자기대상(selfobject)은 자기심리학의 핵심개념입니다. 단어를 보면 ‘자기 대상’으로 띄어 쓰거나 ‘자기-대상’처럼 연결선을 긋지도 않았습니다. “자기대상” 자기와 대상이 하나의 단어로 붙어있네요. 자기면서도 대상인, 대상이면서도 자기가 바로 자기대상입니다.

 

 

 

태어나고 나와 관계하는 첫 대상이라고 하면 보통 부모겠지요. 그 중에서도 엄마를 말합니다. 나와 엄마는 ‘하나의 세계’입니다. 엄마가 있는 한 어떤 위험도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데로 엄마가 움직입니다. 원하는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나는 위대합니다. 과대자기입니다. 엄마의 눈빛은 그 위대함을 반영합니다. 확신을 줍니다. 이것을 반사(mirroring)라고 말합니다. ‘반사’라는 번역이 썩 맘에 드는 건 아닙니다. 아무튼 이 상태가 영원한 건 아니지요. 작은 좌절들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이 생기지요. 언제나 엄마가 찬양하기만 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극복 가능할 정도의 ‘적절한 좌절’입니다. 이런 과정으로 과대자기는 내재화되며 통합되고 견고해집니다. 생물학 나이로는 길게 봐서 3세까지 과정이 이렇다고 합니다. 이 과대자기는 인간이 포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근원이자 동력이 됩니다.

 

시기적으로는 잇달아 이어진다고 말합니다만, 어떤 위험에도 흔들리지 않고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상적 부모원상'도 적절하고 작은 좌절들을 거치며 내재화와 통합의 과정을 겪습니다. 이 이상적 부모원상(idealized parent imago)은 자아이상의 근원이자 동력이 됩니다. 이상과 가치라는 형태로 내재화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기 속에는 과대자기와 이상적 부모원상이란 두 극(pole)이 있습니다.

 

“자기대상”이란 나를 반사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통칭합니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든든한 사람(들)이지요. 코헛은 사람이 성장하면서 자기대상에 대한 욕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 지속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신체적 생존을 위해 산소를 필요로 하듯이 정서적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대상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너 괜찮아” 정서적 생존이란 최소한의 자존감을 유지한 자기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평생을 통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하고 공감을 얻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자기대상은 특정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자기를 인정하고 감싸주는 든든한 환경(혹은 기능)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코헛에 따르면 성숙 혹은 성장은 원시적인 자기대상에서 좀 더 성숙하고 적절한 자기대상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가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자기애 성격장애는 여전히 원시적인 자기대상에게서 자기를 확인하려는데 머물러 있다고 보는 겁니다. 정서적 생존을 위해 더욱 필사적으로 말이지요. 대략이나마 "자기대상" 개념이 설명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앞으로도 틈틈히 관련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재미없나요?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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