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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의 제육볶음(4)...제주도와 육지가 버무려져 더 맛깔스런 볶음

겨울이 지나 봄이 온 듯 한데 여전히 눈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아는 자연을 깨버리는 자연의 반전,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또 온난화 등등 하늘의 노여움이 아닌가, 하늘을 보며 우려하고 걱정합니다. 지난해 11월 5일 제이누리 창간기념식장을 찾아가던 때에는 제주관측사상 11월 최고의 기온을 기록했다는 뉴스를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넘어오는 시외버스 안에서 땀을 닦으며 들었습니다.

 

 제주도 3년차인 내게 제주 밖 다른 이들로부터 제주도에서 가장 좋은 곳을 물어오면 생각할 것도 없이 ‘하늘’이라 했던 나도 요즘 같은 하늘론 고개를 갸웃하게 합니다. 사실 지난 해 10월 초 거의 두 주 가까이 내 눈도 내 입도 쩌억 벌어져 헤벌쭉한 광대이게 한 하늘에 미쳐 하늘 따라 방황을 했더랬습니다. 이 방황은 부산함을 전제로 한 동중정의 행태로서가 아니라 부동의 그 자리에서 마주하는 정중동의 사색으로 이끌어준 마음여행이었습니다.

 

 미국영화에선가, ‘창조주가 있다면 아마도 창조주는 화가일 것이다’라던 대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하늘은 색으로든 형으로든 참으로 변화무쌍하면서도 전혀 동요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창조주의 손으로 수 천만 호 짜리 초대형화폭의 하늘에 그려대는 붓질을 보고 있자면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팅은 어린애들의 물총장난보다도 못하단 생각도 들게 합니다. 하늘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여자였습니다. 이런 여자는 교태를 부리지 않아도 내 몸 스스로 좋아죽겠는 걸 어쩌란 말이냐, 유혹하지 않아도 내 가슴 스스로 미쳐 날뛰는 걸 또 어쩌란 말이냐, 봐 달라 눈짓 한번 안 줘도 내 눈 스스로 꽂혀 내 눈 빠지게 하는 걸 또한 어쩌란 말이냐, 하늘이 좋아죽겠고 미쳐 날뛰게 하고 꽂혀 눈 빠지게 했었습니다.

 

 몸살로 달뜨고 몸살로 앓게 하던 그런 여자들이 그렇듯 해가 훌쩍 서산으로 넘어가버리고 나면 마음은 허전해서 한없이 섭섭해집니다. 마음은 허술해서 가없이 서운합니다. 기다림을 가르쳐준 여자와 같은 하늘이기에 또 다음 날을 고대했건만 그런 여자가 그렇듯이 하늘도 내 속을 작작 썩이더니 허허 태우기만 합니다. ‘미워 미워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오히려 더 흠씬 빠져들게 하는··· 한 달 가까이 구름 한 점 없든가 구름 잔뜩 낀 하늘로 제 본새를 드러내지 않고 하늘로 하늘을 닫아 숨어있습니다. 여자가 여자로 닫아걸고 숨듯이.

 

 오늘도 어제처럼 거푸 바람맞은 나는 우중충한 하늘에서 시슬리(19세기에 살던 화가)의 칙칙한 겨울 하늘을 보고 돌아섭니다. 바람을 맞고 나면 끄적끄적 메모장 위의 시인이 괜스리 되듯이, 기도 안 차게 색 바랜 스케치북을 무심코 꺼내 놓습니다. 몇 줄 끄적이며 시인 되어 그녀를 더듬듯이, 붓을 홀리며 화가가 되어 하늘을 다시 안아봅니다. 아무리 흉내를 내봐도 창조주의 붓질솜씨를 어찌 닮기조차야 하겠느냐 만은, 창조주가 썼을 각종 화려수려한 색깔의 물감 대신 오로지 단색 하나로 일편단심을 찍어갑니다. 우연의 일편단심, 제주도에서의 하늘은 내게 우연이었고 행운이 되어주었습니다. 하늘을 보고자 제주도에 입도한 나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자연은 가끔 바보를 만든다. 하지만 젠체하는 바보들은 모두 사람이 만든다.”

 

 사람을 피해 제주도로 온 나는 역시 사람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자연을 찾아왔다 했지만 그런 게 아니었나 봅니다. 자연이 만든 바보가 되면 좋으련만··· 아프다던 나도 아프게 했다던 너도 모두 젠체하는 바보였던 것 같습니다. 영국의 수필가 J. 애디슨의 말로 되새겨본 나는 바보가 아닌 얼뜨기며 아둔패기였습니다. 이런 나를 보듬어주고 감싸 안아준 게 바로 하늘이었습니다. 바다를 찾아가 허허롭게 사람을 잊고자 하려니 바다보다 더 넓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람으로 빈 마음이 하늘로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필연이 아닌 우연은 없다합니다. 우연처럼 필연으로 끌려가는 게 삶이 아닌가, 싶기도 하며 나는 제주도 하늘과의 조우는 인연이며 행운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벅찬 이 하늘을 두 손 뼘 안에 그리려니 다 마뜩치가 않았는데, 이러다가 마신 커피 한 잔, 인간관계의 얼뜨기에 그림엔 더욱 아둔패기인 내가 우연히 흘린 커피 한 방울이 또 우연을 필연인 듯이 나를 이끌어줍니다.

 

 그래, 커피로 그려보는 거야. 그리고 나니 그럴듯해보였습니다. 사람은 요망해서, 하늘을 향해 이런 말을 지껄이고 말았습니다. ‘향은 내가 낼 수 있었지요?’ 커피향내 나는 그림을 그렸다고 뽐내보고 설레발치는 것이었지요. 하늘은 여전히 대꾸조차 않더니 조만간 바다 비린내로 내 코언저리 뺨을 한 싸대기 후려치고 갑니다. 하늘 앞에, 자연 앞에 왈짜자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늘 앞엔 감히 내놓지 못하고 사람 사는 이곳에 슬쩍 끼워 넣어 166센티 짜리의 이 좁은 어깨폼을 좀 펴서 잡아 보려듭니다. 하며 하는 말, “여러분도 하늘 많이 보고 사세요!” 이 말을 하면서 어깨가 절로 펴집니다. 초라떼는 일인 줄 알면서 복작거릴 사람 사는 저자거리려니 얕잡아 흐린 날, 궂은 하늘이 계속 되는 날, 여러분과 커피하늘, 한라산 위 커피노을을 함께 보고자 합니다. 자연이 만든 바보가 되어보자고 여러분의 손을 슬며시 잡아봅니다.

 

 흐린 어느 날에도 하늘로의 방황을 함께 하자며···. 하늘의 가르침은 사람에게로 다시 향하라는 눈길이었습니다. 하늘같은 그런 여자, 그런 사람이 아니어도···.

 

  

 

 

   
 
오동명은?

 

=서울 출생. 경희대 경제학과를 나와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한국기자상과 민주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으로 세상읽기]·[부모로 산다는 것]·[신문소습격사건]·[일본자전거여행] 등 다수의 책을 냈다.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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