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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4)무언가 걸린거 처럼 답답한 목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정신과 전문의 이범룡 원장이 전하는 ‘담담(談談)클리닉’입니다. 도시와 산업화, 혼돈과 무질서, 사회 곳곳에 불거지는 병리현상과 난맥상을 화두로 이 원장이 세상과 소통합니다. 그의 ‘담담클리닉’을 통해 삶의 치유의 줄기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애독 바랍니다. / 편집자 주

 

 

60대 부인이다. 며칠 전부터 ‘목이 걸어졌다’고 할까 목에 무언가 걸려있는 것처럼 답답하다고 한다. 음식을 삼킬 때 특히 불편하다. 침 삼킬 때도 자꾸 걸린다. 이따가 이비인후과 검사를 해 볼 생각이라고 한다. 신경정신과를 찾은 이유는 요새 잠을 못자서다. 슬쩍 넘어가는 말처럼 아무래도 요즘 ‘신경 쓸 일’이 있어서 잠을 못자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슬쩍 넘어가는 말이 중요하다.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이 분은 ‘신경 쓸 일’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진료실에 왔다고 봐야 한다. 당연히 불면증은 부차적이다. 돗자리 깔듯 앞서 이야기한 목 문제도 아마 검사에서 이상 없을 가능성이 높다. 지나친 단정일까.

 

'신경 쓸 일'이 뭔지 말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이런 경우 대게 머뭇거린다. ‘신경 쓸 일’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왔으면서 말이다. 아이들 다 키우고 시집, 장가보낸 이 나이에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말하기 남사스럽다고 한다. 이 고개만 넘으면 활발하게 터져 나올 게다.

 

히스테리구(Globus hystericus)라는 용어가 있다. 구(Globus)는 덩어리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목에 덩어리가 들어찬 느낌을 의미한다. 용어에서 알다시피 이것도 히스테리(hysterie) 증상의 하나로 본다. 히스테리는 자궁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hyster가 어원이다. 브로이어, 프로이트가 <히스테리 연구(1895)>를 발표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히스테리는 자궁의 문제로 생긴 증상이라고 보았다. 여성에서만 생기는 증상이라고 믿었다.

 

다른 히스테리 증상들처럼 ‘히스테리구’도 오랜 역사가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동시대를 살던 ‘의사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자궁이 전신을 돌아다닌다고 생각했다. 너무 웃지 말자. ‘히스테리구’는 돌아다니는 자궁이 목 부위에 압력을 가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판단했다.

 

​​

 

남편이 작년부터 배드민턴 동우회에서 알게 된 여자와 친해졌다. 물론 남편과 함께 동우회 활동을 하는 부인도 잘 아는 사람이다. 동우회 간부들이라서 관련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남편이 ‘그 여자’와 통화할 때나 만날 때마다 신경 쓰인다. 남편은 펄쩍 뛰며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한다. 부인도 불륜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어느 날 남편이 솔직히 그 여자가 편하다고 말했다. 친구처럼 생각이 든다고도 말했다. 부인은 내게 그런 감정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것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만큼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다. 부인 말마따나 굽이굽이 세상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가. 하지만 부인은 남편의 말을 듣는 순간 ‘목이 메어왔다.’

 

이 부인과 다른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스트레스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말하겠나 아니면 신경병, 전환 장애를 설명하겠는가. 우린 시집, 장가간 아이들 양육했던 지난 과거를 이야기했다. 부인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다는 사실도 이야기했다. 누구나 한번 주어진 소중한 인생이다. 부부는 어쩌면 짧은 인생 우연히 만나 같이 길을 걸어간다. 때로 그는 내가 보지 않는 다른 풍경도 볼 것이다. 나 역시 그가 보지 않는 풍경도 보게 된다. 언제나 같은 곳만 보면서 걸어가는 건 아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조금은 쓸쓸하다. 조금은 쓸쓸하지만 그게 인생이다.

 

부인은 이야기 도중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부인도 그렇게 생각한다. 스스로가 아닌 선생님에게 듣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맙다고 했다. 면담이 끝나 진료실을 나가면서 그러고 보니 목이 편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부인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비인후과를 찾아갔을까?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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