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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14) 우연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미래

 

정신분석에서는 성격 형성을 유년기 양육 환경과 관련해서 설명한다. 인과 관계처럼 설명하는 것이다. 정신분석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사회 통념이기도 하다. “잔정이라고는 요만큼도 없고 매우 엄격하기만 했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쟤가 부모 사랑을 못 받아서 성격이...” “반장님. 사이코패스로 추정되는 범인의 어린 시절 환경을 조사해 봤는데요. 아버지가...”

 

유년기에 경험한 부모, 자식 간의 상호작용이 그의 인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는 것이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 신경증이나 특히 성격 장애에 대한 관점은 흔히 크게 ‘갈등모형’과 ‘결핍모형’으로 나뉜다. 대표적 갈등모형은 <프로이트 학파>다. 인간의 무의식은 갈등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자아의 방어기제를 통해 갈등을 타협한다는 것이다. 그 타협이 어떤 증상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을 신경증이라고 부른다. 타협을 위한 방어기제가 비교적 적응적이라서 일상으로 정착되었다면 그것을 성격이라고 부르는데, 원시적인 방어기제가 주로 나타나는 경우를 성격 장애라고 한다.

 

고전적인 예로 4-6세 오이디푸스 시기(엄청난 갈등이다)에 부모가 제공하는 양육 환경 혹은 태도에 따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해결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 그것은 향후 (어른이 될) 아이의 성격이나 정신적 모습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결핍 모형은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 (이상적으로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결핍되었기 때문에 신경증이나 특히 성격 장애가 생긴다는 이론이다. <대상관계이론>도 유명한 분석가나 학파에 따라 다양하게 나눌 수 있겠지만 대개 결핍 모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결핍 모형의 대표는 코허트의 <자기심리학>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심리학>은 특히 ‘자기애 성격장애’를 설명하고 분석하는 중요한 이론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거칠고 단순하게 말하면 아주 어린 시절에 마땅히 있어야 할 ‘자기대상’이 아이에게 ‘결핍’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자라면서도 보충 혹은 보상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 ‘자기애 장애’가 된 것이다. 자기심리학 정신치료는 이걸 전제로 진행한다. 심리 관찰도구면서 동시에 치료방법이 될 수 있다는 공감(empathy)은 코허트 덕분에 정신치료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따듯하게 느껴지는 이론이고 치료적이(라고 믿고 있)다.

 

자기애 장애에 대한 중요한 자기심리학 주제는 자긍심, 혹은 자존심이다. 자긍심 형성에 부모의 역할이 강조된다. 이런 부분에 대한 부모 교육용 책과 프로그램(대부분 상업적인 목적을 가진 것들이지만)들은 지천으로 깔렸다. “댁의 자녀를 자긍심 있는 아이로 키우려면...” 부모가 바짝 정신 차리고 제대로 된 양육 방법을 모르면 아이들이 문제 성격을 가진 어른이 되게 생겼다.

 

말이 길어졌다. 학파를 떠나 양육과 인성에 대한 정신분석의 관점들(혹은 올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키우기 위한 각종 부모 교육 프로그램)은 바꿔 말하면 성격장애 책임을 부재했거나, 바람직한 양육 방법을 몰랐거나, 심지어 유해했던 부모에게 돌리는 결과를 낳기도 할 것이다. “그러게, 다 부모가 잘못 키운 탓이지..” 그러나, 이런 것은 어떤가.

 

<해리스는 우리가 자녀를 형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최근의 것이고 편협한가를 지적하면서 1950년대 인도의 외진 마을에 사는 한 여자의 말을 인용했다. 자식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내 바람과는 상관없이 그건 아이의 운명에 달려 있다.” -『빈 서판』, 스티븐 핑거, 사이언스 북스, p695>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거는 어린 시절 부모의 양육 방식, 태도와 자식의 인성 형성은 (인과 관계는커녕) 상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유전적 요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환경의 영향도 해리스의 주장을 빌려 부모의 양육 방식이나 태도가 아닌 ‘또래 집단’에서 찾는다. (사회화와 인성 발달은 같은 것이 아니며, 또래 집단이 사회화를 설명한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인성 발달을 설명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사회화’(사회생활에 필요한 규범과 기술의 습득)는 부모의 양육이 아닌 또래 집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경우도 여전히 유전적 요인은 무시할 수 없지만 ‘우연’에 여지를 남긴다. 또래 집단에서의 적소 채우기(어느 아이가 어떤 또래 집단에서 어느 적소를 채우는가)는 대체로 우연의 문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연은 ‘엄격히 예정된 길이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미래라는 의미’에서 운명이라고 말한다.

 

나를 가르친 선생님들이 들으시면 공부와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성격 장애 정신치료를 할 때 더 이상 유년기 양육 환경이나 기억에서만 해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정신치료 효과는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 유년기 기억에 대한 해석으로 생기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다시 말해 양육 환경과 유년기 기억은 환자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참고 자료는 될 수 있어도 환자의 삶을 결정한 주된 요인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무리 엄격한 정신분석가라고 할지라도 유전적 요인이나 다른 요인들을 무시하며 양육 결정론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양육 결정론(양육 환경이 인성을 결정한다는 생각. 결국 프로이트의 Psychic Determination과 그 맥을 같이 한다.)은 사회적 통념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치료에 오랫동안 큰 의심 없이 받아들여진 생각이었다. 임상을 하는 나 자신 경험에 대한 해석도 그에 맞춰 왔던 탓인지 스티븐 핑거의 주장은 좀 놀랍게 느껴졌다. 정신치료의 의미에 대해서도 비록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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