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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의 제주해녀와 삶(16)] 첫날, “허천디 보지말앙 바당 아랠 봐사주게”

 제주해녀가 세계를 품었다. 유네스코에 의해 당당히 ‘제주해녀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제주와 대한민국의 쾌거다. 하지만 해녀는 아직도 우리의 시선에선 그저 물질이나 하며 생계를 꾸린 제주의 독특한 전통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엄연히 삶이 있고, 애환이 깃든 가족·가정사가 있으며 저승길 문턱을 오가며 가슴에 파묻은 눈물이 있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심연의 바다에서 제주사(史)를 일궈온 해녀의 삶, 그리고 그 인생사 이야기들을 연속기획연재 형식으로 허정옥 교수가 풀어낸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그는 서귀포 법환해녀학교 과정을 마치고 그의 어머니가 해왔던 해녀의 삶을 오롯이 되살리고자 스스로도 물에 뛰어들고 있다. / 편집자 주

 

 

법환좀녀마을 해녀학교를 수료한 후 해녀가 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거주지 어촌계의 동의하에 인턴십을 하게 되었다. 인턴십이란 어촌계가 지정해 준 멘토의 지도하에 바다현장에서 4개월간 매주 3시간씩 물질실습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과정을 마친 후 멘토의 의견을 듣고 어촌계원들이 받아주면 해녀가 되는 것이다.

 

다만 만장일치여야 하므로 실제로는 쉽지 않은 조건이다. 졸업생 28명 중 12명이 선발된 인턴십 명단에, 다행히 내 이름도 들어 있었다. 대학입시 이래로 처음 느껴보는 긴장 어린 기쁨이었다.

 

내가 사는 보목동은 해녀가 많기로 소문난 마을이다. 어촌계에 소속된 해녀가 100명에 가깝다. 마을 전체를 구성하는 1천 가구의 10%가 해녀 어머니를 두고 있단 얘기다. 이중섭 화백이 그려서 유명해진 ‘섶섬이 보이는 풍경’의 포구는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항구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보목포구가 우리나라 100대 미포(美浦) 중 하나임을 자랑한다. 황순원의 소설 ‘비바리’또한 보목바다에서 벌어지는 어린 해녀의 사랑 얘기다. 지금은 12년째 지속되고 있는 자리돔축제 덕택에 서귀포를 대표하는 축제의 마을이 되었다.

 

과거에 서귀읍 소재지 사람들은 구석져 보이는 보목동을 ‘고막곳’이라 불렀고, 자리를 팔러 다니는 마을 사람들을 ‘촌사람’으로 얕보는 경향도 있었다. 덕택에 개발이 덜 되어서 비교적 자연마을의 원형을 간직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런 세상사의 새옹지마인가?

 

어촌계의 해녀회장이 생각하는 멘토의 기준은 ‘기량이 뛰어나서 물질을 잘 가르칠 수 있고, 감귤철에도 물질실습을 충실히 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 기준을 통과해서 최종적으로 선발된 나의 멘토 선생님은 첫눈에도 강인함이 느껴지는 전형적인 제주해녀였다.

 

단발머리 파마, 가무잡잡한 안색, 꾹 다문 입술, 바지런한 걸음은 그야말로 멘토의 카리스마를 강하게 내뿜는 면모였다. 선생님의 얼굴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는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안녕하시우꽈? 선생님. 이 바쁜 가을철에 제 멘토가 돼주셔서, 정말 고맙수다예!” “선생님은 무신. 그냥 펜안허게 ‘언니’랜 부르라. 이름은 오인순이여만은.” “예, 선생님! 제 이름은 허정옥이우다. 아직은 제가 해녀학교 소속이고, 보목마을 인턴으로 교육을 받는 거니까 ‘선생님’이랜 부르쿠다 예!” “게민, 경 허곡(그러면 그렇게 하고)! 경헌디, 무사 물질은 배우젠 햄시니(그런데, 왜 물질은 배우려고 하느냐)?” “중학교 때까지 저도 대포 바당서 물질을 해신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할 수 어시 그만둬수다게(하는 수 없이 그만 뒀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목동에 이사 오고 보니 바다가 마당처럼 늘 펼쳐져 있고, 삼춘들이 호이 호이 하면서 물질하는 걸 보게 돼서, 너무나 해녀가 하고 싶어진 겁니다. 때마침 법환동에 해녀학교가 생겼기에 얼른 달려가서 입학을 해수다. 경헌디 이상하게도 물질을 해보니까, 옛날에 하던 느낌이 그대로 되살아나서 너무나 기분이 좋고, 재미도 나고, 가슴이 시원한 거우다. 실은 그동안 몸이 안 좋아서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었는데, 물질을 시작한 후로는 밥도 잘 먹게 되고,,,,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열심히 배워서 정말로 훌륭한 해녀학생이 되어보쿠다 예!” “게민, 경 해보주(그러면 그렇게 해보자)! 여기 태왁이영 허리에 찰 납벨트여. 나 팔자에 어신 선생이 되고 보니 떨리기도 하고, 학생에게 잘 해주고 싶기도 해서 내가 직접 만들어 본 거여”
보기보다 가슴이 따뜻하고 다정다감하신 나의 멘토는 구좌에서 시집 온 타고난 해녀였다.

 

보목동과 같은 어촌에서는 물질을 잘하는 사람이 최고의 신부감이다. 구좌읍 평대리에서 인물 좋고 물질 잘하기로 소문난 처녀를 시아버지가 직접 찾아가서 새각시(색시)로 구해왔다. 그리고 시집 온 며느리에게 태왁과 망사리를 손수 만들어 주었다 멘토와 함께 처음으로 물질을 나가던 2015년 9월 9일, 나의 해녀인턴 물질 실습일지에는 ‘날씨는 청명하고, 파도는 잔잔하며, 바람은 거의 없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야말로 물질하기 좋은 날씨다. 드디어 멘토 선생님이 손수 만들어준 테왁을 해녀들이 물질하러 나가는 포구에 띄웠다. 허리에는 선생님이 가늠해서 매달아준 연철(납덩이)을 7 키로 정도 찼다.

 

4미리짜리 고무옷과 체중을 고려해서 숨비질이 가능하도록 계산한 무게다. 고무의 부력 때문에 납을 매달지 않으면 몸이 물 위에 둥둥 떠서 잠수가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물안개가 서리지 않도록 쑥으로 정성스레 수경을 닦았다. 해안가에 돋아나 있는 수많은 풀들 중에서 유독 쑥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이 효능을 해녀들은 어떻게 알아냈을까?

 

드디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섶섬을 향하여 힘차게 오리발을 내차려는 순간, 선생님이 조용히 태왁을 붙드셨다. 그리고는 테왁 밑에 드리워진 망사리를 위로 올리는 거였다. 그래야 추진력이 더 생길뿐 아니라, ‘이 빈 망사리에 소망 일게 해줍서“라는 염원을 담게 된단다.

 

물질이란 단지 팔다리를 먼저 움직여서 남보다 더 잡으려는 경쟁이 아니라 대자연의 섭리 안에서 자신의 최선이 머정(운)으로 이어져 가는 경주이리라.

 

막 해가 떠오르는 아침바다는 경건함을 발산할 정도로 고요하고 깊었다. 멘토선생님은 이렇게 아침에 시작하는 물질을 ‘안물질’이라고 하였다. 포구를 벗어나니 수평선은 아득하고 하늘은 공활한데, 바다새들이 끼룩거리며 고요를 깨트렸다. 우선 해녀들이 공동물질하는 바다로 나가서 지형과 조류, 식생 등을 관찰해보기로 하였다.

 

마침 어장으로 나가는 작은 배 위로 갈매기가 장난치듯 날아올랐다. 망망대해를 향해 무한히 나아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때, 선생님이 낮은 목소리로 수업을 시작하셨다. “허천디 보지말앙 바당 아랠 봐사주게.” 다른 데 보지 말고 바다 밑에 무엇이 있나 살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멘토의 물질 이야기는 전체 인턴십 수업의 서론이 되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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