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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19) 진단명에 대한 고찰

기술(description)정신의학 역사에 에밀 클레펠린(Emil Kraepelin, 독일, 1856~1926)은 첫머리를 장식하는 이름이다. 그는 현재 사용하는 있는 정신의학 진단과 개념 기초를 확립한 인물로 각 정신질환을 계통적으로 분류하여 ‘근대 정신의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는다. 

 

그는 1899년 당시, 조현병(調絃病,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2011년 개명)의 증상과 경과를 밝히고 조발성 치매(Dementia Precox)라고 불렀다. 이 진단명은 이 병이 청소년처럼 비교적 이른(Precox) 생애에 발병한다는 의미다. 형태는 다양하지만 공통 증상은 환청과 망상이라고 했다. 클레펠린은 대게 장기간에 걸쳐 진행하는 병의 경과(longitudinal course)를 강조했다.

 

‘Dementia Precox’는 사실 프랑스 정신과 의사 모렐( Benedict A. Morel, 1801~1873)이 말한 <démence précoce>를 번역한 것이다. 쓸데없는 이야기겠지만 모렐은 「광기의 역사」(미셀 푸코, 나남출판)에 등장하는, 프랑스 혁명 당시 살페트리에르 병원장 필립 피넬(Philippe Pinel, 1745~1826)의 제자로 알려졌다.

 

Dementia는 현재 알츠하이머병 같은 노인성 치매와는 의미가 달랐다. Dementia는 라틴어에서 나왔는데 De(drive out of)+Ment(one's mind)+Ia(명사형 접미사)로 이루어진 용어다. 말하자면 “정신 나갔다”는 뜻이다.

 

하지만 진단명 Dementia는 나중에 등장하는 정신분열병(Schizophrenia)에 밀려나 지금은 노인성 치매를 지칭하는 용어로만 쓰인다. 라틴어 본래 의미와는 달리 한국어 치매(癡呆)는 “어리석고 어리석다”는 한자에서 나왔다.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이것도 일본 학자들이 번역한 것으로 안다. 기억력을 중심으로 인지 기능의 뚜렷한 저하 진행을 보이는 노인성 치매는 ‘정신 나갔다’(Dementia)보다는 ‘어리석고 어리석다’(癡呆)가 더 와 닿는다. 어리석다는 한자를 두 번 연속하며 진행 느낌도 있다.

 

Schizophrenia(정신분열병)라는 용어를 제창한 사람은 블로일러(Eugen Bleuler, 스위스, 1857~1939)였다. 곁길로 슬쩍 새보자. 블로일러는 프로이트와 함께 <히스테리 연구>를 쓴 브로이어(Breuer, 오스트리아, 1842~1925)와는 동명도 아니거니와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블로일러도 프로이트, 융과 인연이 깊다면 깊은 사람이다. 그는 취리히 대학 교수이자 스위스에서 가장 유명한 정신병원인 부르크휠츨리 병원장이었다. 프로이트는 당시 주류 학계에서 권위도 치료법도 인정받지 못하는 일개 개원의였다.

 

거기다 유럽에서 괄시받고 차별받던 유대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프로이트가 학계에서 인정받기는커녕 조소를 받으며 고립되어 있을 때, 그는 프로이트 정신분석에 공감하고 연구그룹을 만들었으며 <꿈의 해석>(프로이트, 1900)을 취리히 대학 교재로 삼았다. 스위스에서 전해오는 블로일러 소식에 프로이트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충분히 상상이 간다. 융과는 부르크휠츨리 병원에서 인연을 맺었다.

 

블로일러는 이 병의 경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현재(cross section) 증상에 초점을 맞췄다. 증상도 클라펠린과 달리 환청이나 망상보다는 사고, 감정, 행동 간에 분열을 강조했다. 정신분열병의 일차증상은 (흔히 블로일러의 ‘4 A'라고 불리는) 연상 이완, 감정 장애, 양가성, 자폐성이라고 주장했다.

 

정신분열병 진단을 하는데 환청이나 망상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만성적 병의 경과도 필요치 않았다. 블로일러의 정신분열병 개념은 미국에서 받아들여졌다. 이에 따라 한 때 미국은 유럽보다 정신분열병 진단이 2배 이상 증가했다.

 

이전 졸문에서 밝혔다시피 Schizophrenia는 그리스-라틴어 어원으로 Schizo(split)+Phren(원래는 가슴과 배를 나누는 횡경막을 의미했으나 마음이 그곳에 있다고 생각했는지 마음Mind을 의미하기도 했다)+Ia(명사형 접미사), “분열된 마음” “쪼개진 정신”라는 의미다.

 

여기서 잠깐.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던 횡경막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냐고? 좋은 질문이다. 막이라고는 하지만 부드럽고 평평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양은 갈매기를 닮았다. 돼지고기 굽는 식당에 가서 “여기 갈매기살 2인분 주세요.” 당신도 몇 번 먹어봤잖은가.

 

 

 

정신의학계를 미국이 주도하기 시작하며 'Schizophrenia'는 이 병을 일컫는 공통 진단명이 되었다.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세계 정신의학자들이 이 병의 증상과 경과를 관찰한 결과, 클라펠린 기술(description)이 더 옳다고 판단하였다. 1970년대 후반 미국정신의학회는 이 병을 두고 진단명은 여전히 블로일러의 ‘Schizophrenia'로 하되 그 진단기준은 대부분 클라펠린 기술을 택하고 공표했다.

 

한국도 미국정신의학회 진단명과 진단기준을 따라왔다. ‘정신분열병’이란 진단명과 진단기준이 그것이었다. 2013년 여름.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오랜 의견 수렴과 회의를 걸쳐 독자적 진단명을 공표한다.

 

조현병(調絃病)이다. 조현병 개명을 단순히 ‘정신분열병’에 들어있는 어둡고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국내용이라고 생각할 수만 없다. 조현병에 대한 영어번역은 자연스럽게 ‘Attunement Disorder’가 되기 때문이다.

 

권위 있는 세계 의학 잡지에 이미 그렇게 소개되었다. “사우스코리아는 Schizophrenia를 Attunement Disorder로 개명했다." 물론 기존 ‘정신분열병’ 대신에 ‘조현병’이 점차 사용되는 추세이긴 하나 국내에서도 Attunement Disorder는 아직까진 생소하다. 여전히 Schizophrenia가 압도적이다.

 

 

 

Attunement Disorder에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아정신과 병명으로 분명하게 자리 잡은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정신과에서 ‘Attunement’는 소아 정신발달에 있어 영아의 내면 느낌과 조응하는 어머니의 반응을 의미하는 말로 쓰여 왔다. 양육이 아이의 정서 및 인성 발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 그 용어를 사용했다.

 

Schizophrenia를 Attunement disorder라고 한다면 자칫 Schizophrenia를 생애 초기 양육환경(“아기의 내면 느낌에 어머니가 어떻게 반응했는가”)이 발병에 결정적인 병으로 (혹은 그렇게 주장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소지도 있다.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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