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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134)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건문제(建文帝 : 1377-?) 주윤문(朱允炆),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손자다. 1398년에 즉위했다. 건문 원년(1399) 7월 연왕(燕王) 주체(朱棣)가 북평(北平)에서 기병해 4년 후 남경을 함락시킨 이후 건문제의 행방이 묘연하다. 출가해 승려가 됐다고 하기도 하고 황궁에서 불에 타 죽었다고 하기도 하는데 실증하지 못하고 있다.

 

명(明) 성조(成祖)는 주원장의 넷째 아들 연왕 주체다. 주원장이 죽은 후 막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북방에서 웅거하고 있었다. 나중에 ‘청군측(淸君側, 군왕의 곁을 깨끗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기병해 남정하는데 이것이 역사상 유명한 ‘정난지역(靖難之役)’이다. 3여 년의 전쟁 끝에 자기 조카 건문제 주윤문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일약 명 왕조의 제3대 황제 자리에 오른다. 주체의 통치는 명 왕조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후의 ‘인선지치(仁宣之治)’의 기초를 닦았다.

 

역사상 영향력이 있는 군주가 정권을 탈취해 권좌에 오름으로써 정통사상을 갖고 있는 역사가들에게 “부끄럽게 만인의 위에 앉았다”고 조소받거나 “연나라 도적이 찬위했다”고 꾸짖음을 당한다. 이른바 ‘반역’이다. 그렇다면 당시 남경이 함락될 때 건문제는 어디에 있었을까?

 

 

 

 

이 모호한 문제에 대해 수백 년 이래 사학계에서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해 일치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당시 황궁에 큰불이 나 건문제와 황후가 7세의 태자와 함께 불에 뛰어들어 자진했다고 말한다. 주체가 궁에 진입한 후 건문제를 체포하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잿더미 속에 손상돼 완전하지 않은, 얼굴이 다 타버린 시체 한 구를 찾아냈다. 그가 건문제라고 주체에게 고했다.

 

영락(永樂) 연간 찬수한 『실록』에 건문제가 “이미 불에 타 숨졌다”고 기록하고 있고 청(淸)대에 『명사』를 편찬한 사관들도 건문제가 불에 타 숨졌다는 것을 정론으로 여겼다. 『명사․공민제본기』중 “도성이 함락됐다. 궁중에 불이 나 황제의 행방을 몰랐다. 연왕은 사자를 보내 황제의 시체를 재에서 꺼내 8일이 지나 임신에 매장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은 건문제가 화재로 사망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건문제가 칼을 빼들어 자진하려 할 때 한림편수(翰林編修) 정제(程濟) 등이 때마침 찾아와 지하도로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다른 설도 있다.

 

건문제가 머리를 깎아 승려로 변장한 후 지하도로 성을 빠져나가 전남(滇南)으로 몸을 피해 운남(雲南) 사자산(獅子山) 정속선사(正續禪寺)에서 승이 됐다고 한다. 절 내 대웅보전의 기둥에 “승이 황제가 되고 황제 역시 승이 되니, 수십 년 의발이 서로 전해져 정각이 여전히 옛 황각이로다. 숙부는 조카를 저버렸으나 조카는 숙부를 저버리지 않았네. 팔천 리를 짚신으로 걸었으니 사자산은 연산보다 높구나”라는 대련이 있다. 황각이란 황각사로 주원장이 승려로 있던 절을 말하고 숙부가 조카를 저버렸다는 것은 주체가 조카 건문제의 황위를 찬탈한 것을 말한다. 이 대련은 옛사람들이 건문제가 승려가 됐다는 것을 굳게 믿고 동정심을 발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카를 죽이고 황위에 오른 명 성조는 늘 해외로 빠져 나간 건문제를 걱정했다고 한다. 언젠가는 돌아와 자신에게 황위를 돌려 달라고 하면 그의 사직과 강산이 허망해질 수 있다는 걱정을 했다고. 그래서 주체는 사람들을 보내 건문제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정화(鄭和)를 해양으로 보낸 것도 해외로 도망갔다고 민간에 퍼져 있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전한다.

 

정화가 처음 서양으로 갔다가 돌아온 그해 10월 주체에게 보고를 했다. 주체는 듣고서도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계속해서 찾으라고 명했다. 동시에 급사중(給事中) 호담(胡淡) 등에게 명해 중국 내 각지에서 건문제를 찾으라고 했다. 이는 만족스런 결과를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주체가 건문제의 행방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정화를 해외로 보내 건문제를 찾게 했다는 것도 가능한 일이지 않나 싶기도 하고.

 

역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주체는 남경의 황궁에서 무고한 궁녀들조차 주살했다고 한다. 건문제 때의 대신 모대방(茅大芳)이 “숨어 있는 연왕의 최근 소식 어떤가? 장군의 뜻이 없어지지 않았다고 들었소만. 설사 화룡이 치축을 뒤집는다 해도 철마가 천하를 건너게 하지 마소”라는 시를 지어 회남수장(淮南守將) 매은(梅殷)에게 보낸 적이 있은데 이를 빌미로 온 집안이 참수 당했다. 방효유(方孝孺), 제태(齊泰), 황자징(黃子澄) 등 충효사상을 가진 대신 중에 적게는 1족이 멸하고 많게는 10족이 멸족 당했다.

 

살인이 난무하니 “마을이 텅텅 비었다.” 유배당한 자 또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제태의 누나와 생질의 며느리, 왕자징의 누이 네 명, 매일 밤낮으로 20여 명의 남자들에게 윤간을…… 성은을 바라는 상소를 올리자 그대로 행하라 하며 ‘알아서 하게 해!’라고 했다.” 해를 입어 죽은 부녀자가 있으면 주체는 “문밖으로 끌고 나가 개의 먹이로 주라! 그대로 행하라.”라고 명했다. 그 잔인함과 흉악함이 극에 달했고 연루된 자만도 수만을 헤아린다. 그야말로 미증유의 포악이다.

 

 

 

 

명 성조가 된 주체가 왜 그렇게 했을까? 그것은 건문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건문제에게 충성을 다했던 대신들이 안팎에서 서로 호응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근을 철저히 없애 버렸다. 싹을 잘라 버린 것이다. “일 천을 잘못 죽이는 한이 있어도 절대 하나를 놓치지 않는다”라는 속셈으로 83세의 노인과 젖먹이까지도 주살해 버렸다. 만력(萬曆) 13년(1585), 200년이 흐른 후 주체의 자손인 주익균(朱翊鈞) 때에 이르러서야 방효유와 관련돼 유배당한 자의 후예 1300여 명을 석방했다.

 

명 성조 주체에게는 생사를 알 길이 없던 건문제란 영원한 마음의 병이었다. 건문제가 권토중래해 자신에게 황위를 내놓으라면 어떻게……. 봉건 전제 군주제의 참상이 그대로 투영된 사건이다.

 

태조 주원장은 지하에서 알고나 있을까? 자기의 후손이 골육상쟁을 벌여 천고의 악명을 떨치고 있다는 것을.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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