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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142)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금병매金甁梅』는 중국 고대 가정생활을 제재로 한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북송北宋 시기 윤리가 무너진 배경아래 욕망이 넘쳐나는 어두운 사회 현상을 묘사하고 있다. 명明대에 세상에 나온 후 그 소설이 구비하고 있는 예술적 가치를 모든 사람이 인정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욕망을 너무 상세하게 해부함으로써 후세 사람들은 ‘음서淫書’로 치부했다. 대다수 사람들은 『금병매』 속에는 건전하지도 적극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여긴다.

 

사실 근 400여 년 동안 중국 고대 ‘사대기서四大奇書’라는 영예를 안고 있는 소설이 『금병매』다. 그런데 ‘음탕한 책’이라는 오명도 함께 쓰고 있다. 평가가 이처럼 극과 극을 달리는 소설은 어쩌면 『금병매』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금병매』를 어떻게 보고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까?

 

 

 

 

『금병매』는 중국 현실사회와 가정생활을 주제로 한 최초의 장편소설로 평가받는다. 이 소설 이전에 중국의 구소설은 역사소설과 신마소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유명한 것은 『삼국연의三國演義』, 『수호전水滸傳』, 『서유기西遊記』 로 중국 소설 발전에 거대한 공헌을 했다. 『금병매』는 이들 소설과는 다르다. 비록 『수호전』의 “무송武松이 형수를 죽이다”는 짧은 한 단락의 이야기에서 비롯됐지만 북송 사회 전체의 표상을 전형적으로 묘사하면서 작자가 처한 명대 중엽 이후의 암담한 사회상을 진실 되게 반영하고 있다. 현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전형적인 사회소설이다.

 

일상 가정생활에서 제재를 골라 전형적인 봉건 토호 가정을 대표로 해 먹고 자는 일상생활, 결혼과 장례 의례, 사회 교류, 처첩 투쟁, 그리고 흥망성쇠와 기회포착 등 다반사를 묘사하면서 중국 장편소설 제재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그러나 『금병매』가 서문경西門慶의 무절제한 성욕 탐닉, 무리를 이루는 처첩, 밖에서의 간악한 아녀자 농간, 창녀 희롱 등에 대해 독자들 앞에 대담하게 묘사하면서 그가 대표하는 당시의 인물들이 표출하는 욕망을 진솔하게 진술하고 있다. 아름다움과 추악함 사이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흑색소설黑色小說(느와르 소설)’에 대해 사람들의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간다.

 

『금병매』가 막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음탕’과 ‘높은 수준의 기서’라는 두 가지 판이한 평가를 받았다. 이런 평가는 400여 년 동안 이 소설을 따라다녔다. 『금병매』를 호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명사이거나 담력이 있고 식견이 있는 부류였다. 악평하는 사람들은 도학자에서부터 유학자, 대문호를 포함하고 있어 대다수를 차지한다.

 

『금병매』가 세상에 선을 보이자 세상 사람들을 놀래게 했다. 당시 문인 학사들의 찬탄贊嘆과 경악驚愕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놀라면서도” “기뻐하기도” 했고 “기이하다”고 하면서도 “솔직하다” 평하면서 그 소설을 다투어 읽었다. 당시 공안파公安派 영수 원굉도袁宏道는 『상정觴政』에서 『금병매』와 『수호전』을 같이 결합해 자신이 “단지 몇 권을 읽었을 뿐인데 지극히 기이하고 솔직하다”고 했다. 공안파의 또 다른 중요 인물 원중도袁中道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서 “『금병매』를 어디서 얻을 수 있냐? 베개를 베고 누워 대략 훑어보니 꽃구름이 가득한 게 매승枚乘의 『칠발七發』보다도 대단하다. 후반부는 어디에서 베낄 수 있을까? 어디에서 바꿀 수 있지? 한 번 봤으면 싶다”고 그 소설을 평가하며 “자질구레함 속에 연파가 가득하니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친구의 평가를 빌어 “최근에 금병매라는 소설이 한 편 있는데 지극히 걸작이다”라고 했다. 이렇듯 소설이 아직 책으로 인쇄되기도 전에 당시의 문단을 뒤흔들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금병매』에 대해 가장 전면적이고 영향력이 있으며 대담한 평가는 책이 만들어진 동시대의 사람 사조제謝肇制의 관점이다. 만력萬曆 진사 사조제는 그의 『금병매발跋』에서 “그중 조야의 정무, 관과 개인의 접견, 집안의 중매, 시중의 자질구레한 이야기, 남편의 세력을 등에 업고 이익을 도모하는 행태, 감탄하나 뒤에서 비웃는 일, 음란하고 퇴폐적인 일, 베갯머리 말, 청장년의 고지식한 주견, 미녀들의 알력과 다툼, 매춘 고객에 알랑거림, 노비들의 아부하며 쏟아내는 말 등 모든 상황이 다 있고 솔직하다”고 평가하면서 『금병매』를 최고의 걸작이라고 했다. 그는 또 “자질구레하고 음탕한 것” 이외에 예술상 “사람마다 재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있고, “형상이 각각”이라 “중심을 축으로 서로 닮은” 『수호전』보다도 우수하다고 했다. 이런 평론은 상세한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심덕부沈德符다. 당시 심덕부는 『금병매』를 인쇄하는 친구에게 “이런 책은 출판하려는 사람이 분명 있게 마련이오. 그러나 출판해 시중에 뿌려지면 사람들의 마음을 망쳐 훗날 처음 누가 잘못하기 시작했는지 따져 묻게 될 텐데 무슨 말로 대처하려 하시오?”라고 하면서 아예 칼로 조각을 내 땅에 묻어버리라고 권하고 있다. 그는 “사람 마음을 망친다”고 『금병매』를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종이 위에 꽃구름이 가득하다”고 평가했었던 원중도도 스스로 모순에 빠졌다. “이 책은 음탕하다. 명교에 뜻을 둔 자가 어찌 신기함에 힘을 쏟아 우둔함으로 민속을 좀먹게 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했다. 원중도는 『금병매』가 참신하기는 하지만 ‘음탕’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싫어했다.

 

청대 초기에는 사조제 등의 평론을 계승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 중국 백화단편소설집 『두붕한화豆棚閑話』에 “소설 한 항목에 『수호전』과 같은 특이한 것이 있는데 읽기에 나쁘다고 하는 사람은 호걸들을 도적으로 오해한 데서 오는 것이고 ; 『서문전西門傳』과 같은 것을 읽기에 나쁘다고 하는 사람들은 풍류를 음탕하다 오해한 데서 오는 것이다. 그간에 세상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점이 있다. 어떤 이는 반면만 보거나 틈새만 엿봐 쾌락적이고 음탕하다고 하는데 그중에 슬픔과 쓸쓸함이 스며있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고발’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금병매』를 보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풍류’를 음탕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고 세상 사람들에게 소설의 ‘경고’하고 있는 장점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팽성彭城 사람 장죽파張竹坡의 평점評點도 청대 초기에 『금병매』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장죽파는 역사의 각도에서 평가했다. 『금병매독법』에서 그는 “무릇 사람들이 『금병』을 음서라고 하는데 그 음란한 곳만 봤기 때문이다. 내가 그 책을 보기에는 순수한 사공史公의 문자다”라고 했다. 『금병매』를 역사서로 보고 있다. 이는 그의 독특한 관점과 대담함에 따른 최고의 평가다.

 

이와 반대로 청대 초기에 『금병매』를 음서로 보는 사람도 많았다. 일대의 문호 포송령蒲松齡도 ‘음사淫史’라 했다. 건륭乾隆시기 장편소설가 이록원李綠園도 ‘회음지서誨淫之書’라 평했다. 명대 두 가지 인식을 기초로 강희康熙 시기에 여전히 상반된 관점으로 발전했다. 예술 가치와 ‘경계세인警戒世人’의 각도에서 『금병매』를 인정풍속도人情風俗圖로 보고 그 예술 수법을 긍정하는 부류가 있었고 ; 『금병매』중 음탕한 묘사에 의견을 보이는 데서 출발하여 ‘회음誨淫’, ‘음사淫史’라 폄하하는 부류가 있었다.

 

장죽파는 이런 상황에 대해 “『금병매』는 비극일진저. 비극은 본래 사람들에게 이상하다 느끼게 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음란을 묘사한 부분만 생각한다. 바로 『금병매』를 오해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 위해 그는 ‘사필史筆’이라 평가한 것을 기초로 또다시 ‘지경止儆’, ‘징권懲勸’과 같은 관점을 내놨다. 나중에 강희 때 유정기劉廷璣의 ‘지음설止淫說’(『재원잡지在園雜誌』), 광서光緖 때 오옥요吳沃堯의 ‘징음설懲淫說’ (『잡설雜說』) 등은 모두 장죽파의 의견에서 발전된 것이다.

 

 

 

 

청대 말기에는 소설비평과 이론이 성행했다. 그중 양계초梁啓超, 소만수蘇曼殊 등의 『소설총화小說叢話』와 황마서黃摩西의 『소설소화小說小話』는 당시에 영향력이 대단했다. 그들도 이따금 『금병매』를 평가했다. 『소설총화』는 그 작가를 “당시 사회 상황을 묘사해 일부분이나마 볼 수 있게……진정한 사회소설로써 음서로 봐서는 안 된다”고 평가했다. 또 “『금병매』의 명성은 『수호전』, 『홍루몽紅樓夢』에 뒤지지 않는다.” “『금병매』를 진실로 음서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오묘한 점은 결코 음란함을 묘사한 부분에 있는 것이 아니고 계급이 낮은 부녀 사회를 묘사한 책이라는 데에 있다”고 했다.

 

‘5.4’이후 노신魯迅, 정진탁鄭振鐸, 오함吳晗 등은 참신한 각도에서 『금병매』를 평가했다. 역사의 각도와 객관적 방법으로 그 소설을 연구함으로써 『금병매』의 중국문학사상 지위를 높이 평가했다. 노신은 『중국소설사략』에서 『홍루몽』을 ‘청대 인정소설人情小說’의 으뜸으로 봤고 『금병매』를 ‘명대 인정소설’의 제일로 봤다. 오함은 ‘현실주의 소설’로 평가했다. 정진탁도 “『금병매』는 위대한 사실寫實 소설이다”라고 하면서 “‘세기말’의 가장 황당한 타락한 사회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현대에 와서도 역시 예전처럼 완전히 다른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대의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1958년에 “『금병매』는 자연주의 색채가 농후한 반현실주의 작품이다”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자연주의 소설’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연주의 소설’이라는 의미 속에는 실제로는 ‘음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관점은 학술계의 대표가 됐고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중과연문연소中科硏文硏所가 1963년에 출판한 『중국문학사』에서 『금병매』를 “작품 전체에 현실 생활 중 진보적인 건전한 형상이나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사상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고 제멋대로 묘사한 부분은 “독자들을 사악한 길로 이끄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하고 “작가는 실의에 빠진 봉건 사대부일 가능성이 많다”고 평가했다. 유국은游國恩 주편의 1964년 출판된 『중국문학사』에서는 『금병매』를 ‘음예淫穢 소설’로 분류하면서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고 그 소설이 “현실의 부패와 어두운 면을 전면적으로 폭로했고 예술적인 면에서 독특한 면이 있어 소설발전사상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모순된 평가는 처해진 해당 시기 사람들의 특수한 심리상태를 반영한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에도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금병매』에 대해 포폄褒貶의 다른 관점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다. 학술계의 논쟁에서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말들이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은 『금병매』의 내용에 대해 “자연주의 경향이 전권을 관통하고 있다. 부차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1백회에 달하는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교하면서도 상세히 묘사하는 것을 꺼리지 않고 인물들의 동물적인 행위를 서술하고 있다. 만약 이것이 자연주의 작품이 아니라면 자연주의 작품이란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이어야 한다 말이냐?”고 했다. 『지로등서岐路燈序』에서 요설은姚雪垠도 『금병매』를 “한껏 음예한 행위를 묘사하는 것이 전편의 밑가락으로……음서로 보고 있다 ; 장편소설의 발전을 더 좋게 촉진하는 작용하지 못한다”라고 평가했다. 『논금병매』중 서삭방徐朔方은 “중국문학사상 자영주의 표본을 찾는다면 먼저 『금병매』를 추천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시칩존施蟄存은 『금병매』의 최초 판각본에는 음예 언어란 어떤 것도 없었다고 했다. “사실, 최초의 명대 만력 경술庚戌년의 초각본에는 지난 일을 인용해 현재의 일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이었지 저질적인 말은 없었다. 나중에 소주蘇州 서적상이 이익을 위해 대대적으로 위조하면서 저질적인 말들을 대거 집어넣으면서 역사체 소설을 설창본으로 변모시켜 사화詞話로 개명했다.

 

숭정崇禎 연간에 이르러 풍기가 더욱 나빠지면서 음란한 용어와 비천한 말들이 대대적으로 더해져 못 볼 지경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제4회 서문경과 반금련潘金蓮이 처음 왕파王婆의 집에서 간통을 하는 장면이 보이는데 『수호전』의 서법을 근거로 ‘바로 그 때 두 사람은 왕파의 집에서 허리띠를 풀고 옷을 벗어 같이 자면서 즐거움을 나눴다’처럼 가볍게 묘사했다”고 했다. 시칩존은 『금병매』 초각본이 이처럼 가볍게 터치했는데 나중에 음란 행위와 언어들이 대대적으로 첨가되면서 본래 모습을 잃었다고 보았다.

 

사람들이 화사첨족하고 지극히 저질의 영물시詠物詩들을 첨가하면서 볼만했던 소설을 볼썽사납게 만들었으니……. 그러나 내용상 표현 방식이 음란하기는 하나 그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님에. 기회가 되면 읽어보시길.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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