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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버린 어느 하루의 필름 같은 16번의 수업

 

 

알퐁스 도데의 단편 소설, 마지막 수업처럼 오늘은 우리의 마지막 수업일이다. 소설 속에서 프란츠는 여느 때처럼 공부보다 뛰어놀기를 좋아하는 기분으로 학교에 간다. 그런데 교실에는 이상스레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뜻밖에 동네 어른들도 교실에 와 앉아 계신다.

 

선생님이 ‘우리의 모국어로 공부할 수 있는 수업은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말에, 프란츠는 마음 깊이 ’자신이 프랑스어를 소홀히 배운 것‘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한다. 그러한 아이의 마음을 읽으신 선생님이, "너는 이미 네 마음속으로 너를 반성하고 있구나. 나는 그걸로 만족한단다."라고 오히려 아이를 위로해 주신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 저 멀리 교회당 종탑에서 그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선생님은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시고, 칠판에다 글을 쓰기 시작한다 .“Viva La France!(프랑스 만세!)”라고.

 

우리의 마지막 수업은 시험으로 이루어졌다. 졸업 후 인턴으로 보내기 위한 최소한의 해녀 역량 테스트인 셈이다. 혹여 ‘기본도 안 된 학생을 보냈다’는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해녀학교의 명예가 바다에서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 선생님의 얼굴에는 문어가 내뱉는 먹물이 튀리라. 그래서 우리는 엄격하게 졸업시험을 치러야만 하는 것이다.

 

교감선생님의 입에서 ‘첫 번째 테스트는 흑조부터 시작한다’고 하였을 때만 해도, 나는 내심 ‘역시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도다.’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파도가 다소 일렁이는 테스트 장소에 우리 네 명을 집결시키고 선생님이 ‘시작’ 사인을 주었다.

 

일제히 바닷속으로 잠수해 들어가라는 신호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발을 치켜들고서 머리를 물속으로 처박는 순간, 수경에 물이 가득 들어왔다. 다시 올라와서 수경을 고쳐 쓰고 2차 시도를 했는데, 이번에는 왠지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터질 것처럼 눌렸다. 더 들어가다가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러지? 다시 수경을 고쳐 쓰고 3차 시도를 하였으나, 겨우 바닥에 손이 닿는 순간, 음식물이 역류해 나와서 그냥 솟구쳐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시험에 대비해서 에너지원이라며 애써 구겨 넣은 계란후라이가 문제였다. 졸업시험이니 ‘잘 먹고 잘 하자’는 우가 화를 불러일으킨 셈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물질을 타고났어.’ 하면서 물질연습에 게을렀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물고기나 쫓아다니며 허투루 보냈던 게 가슴 치도록 후회가 되지만, 이제 와서 어쩌랴. 이게 마지막 수업인 것을.

 

하지만, 시험 후에 다시 만난 고은희 선생님과의 물질은 다시 재미있고 즐거웠다. 선생님이 발견해서 나에게 보여주신 문어는 바위 틈 다소 평평한 곳에서 기분 좋게 붙어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내 호갱이를 들고 다시 들어간 선생님 손에 그 놈은 정신없이 잡혀 와서, 죽어라 매를 맞고 추우∼욱 하니 늘어졌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문어의 불운은 곧 우리들의 행운이었다. 행운은 겹친다고 했는가? 우리 조가 발견한 문어를 선생님이 다시 호갱이로 잡아올리셨다. 그래서 우리는 문어 2개를 수확하면서, 진짜 해녀수업을 화려하게 마무리할 수가 있었다. 마지막 수업에 걸맞은 선물이요 훈련이었다.

 

선생님은 ‘너무 욕심 부리지 마라, 조금은 쉬면서 숨을 돌린 후 들어가라, 소라는 바위틈이나 바위들이 겹치는 틈바구니에 숨어있다’는 등 당신의 노하우를 부지런히 전수해 주셨다. 선생님과 함께 호흡을 맞추니, 다시 물질이 가능해졌다. 물속에 들어가서 소라도 잡고.... 그러나 자꾸 음식물이 역류해 나와서 힘들게 하였다.

 

선생님은 물질하기 전에는 아주 조금 먹는다고... 많이 먹으면 물질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다음부턴 아침 일찍 조금 먹고 위를 가볍게 하라고 충고해 주셨다. 그래서 해녀 노동요에도 ‘삼시 굶엉 요 물질 해영’이라고 소리하는구나.

 

마지막 수업을 기념해서 학생들이 준비한 간식과 촛불 얹은 케이크를 두고 교장선생님과 함께 졸업축하 노래를 불렀다. 졸업식은 간소하게 할 계획이라니, 미리 이런 작은 해프닝들을 벌여두는 거다. 우리가 보낸 16번의 수업들을 회상해 본다. 마치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버린 어느 하루의 필름과 같다.

 

아쉽지만 감사한 것은, 해녀다운 물질, 수업다운 공부, 우정어린 시간들이 우리 모두에게 수여된 졸업선물이란 사실이다.

 

마지막 수업의 프란츠처럼, 내 생애 마지막 학교의 마지막 수업을 되새겨 본다. 이 시간, 시계는 자정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가는데, 내 마음은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가만히 멈춰서 있다. “Viva La Haenyeo !", 수업이여 안녕!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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