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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바다만 믿고 사는 해녀 … 배신하지 않는 바다

 

해녀들과 공동물질을 하려면 어느 곳에 소라가 많은지, 전복은 주로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또한 바다 속의 지형을 탐색해서 위험한 곳과 물건이 많은 곳, 작업하기 좋은 곳을 익혀 놓아야 한다. 대체로 바다 속의 지형과 지세는 맞닿아 있는 육지와 비슷하다.

 

보목동에도 제지기 오름이 있는 곳은 그 앞바다 속에 오름같이 생긴 여(바다 밑에 있는 암반 섬)들이 폭넓게 퍼져 있다. 섬 가까이에는 조류가 세게 흐르는 지대가 있어서 섶섬 근처에서 물질을 할 때는 썰물과 밀물시 급변하는 조류에 주의해야 한다. 조류가 섬 바깥쪽으로 세게 흐를 때는 해안가로 올라가는 물 흐름과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면서 작업을 해야 한다.

 

몇 년 전에는 이 근처에서 물질하던 할망좀수가 조류에 떠밀려가 하효바다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파도가 좀 거칠어서 물에 들지 말라고 했는데도 설마 하니 들어갔다가 조류에 휩쓸린 것이다. 재작년에도 소라를 잡던 해녀가 해안가에 시신으로 떠올라서 장례를 치렀다.

 

아무리 상군해녀라도 언제 어떤 사고로 죽게 될지 모르는 게 바다의 일이다. 바다에서는 소라 하나를 더 잡으려다가 숨이 다 해서 죽기도 한다. 물숨(물속에서의 호흡)을 먹은 것이다.

 

대체로 물질할 때는 아픈 줄도 모르고 배고픈 줄도 모른다. 하지만 아차 하는 사이에 목숨이 가는 곳이 바다란 일터다. 물에서 나와야 배도 고프고 아픈데도 느껴지니, 늘 만성병을 지니고 사는 게 해녀의 일상이기도 하다.

 

“요새는 보목 바당에도 물건이 배랑 어서(별로 없다)”라는 멘토의 말에, 문득 그녀의 시아버지가 생각났다. 며느리에게 태왁을 만들어 주면서 보목바다를 누비는 상군이 되기를 바랐던 그 어부가. 어장이 황폐해지면서 어선을 운영하던 시집도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바다가 밭이던 시아버지는 집 근처의 돌랭이(작은 밭)까지 다 팔면서 끝까지 어업을 지켰다. 그러나 결국은 배도 지킬 수 없게 되었고, 그 흔한 과수원조차 없이 멘토의 물질에 기대어 살아야 했다. 하지만 바다는 그녀를 배신하지 않아서, 그 덕택에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다. 해녀인 어머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여성’이라는 대학생 딸도 물질의 가치를 인정해주니 고맙고 또 대견하다.

 

‘바당만 믿고 산거지. 해녀만큼 돈 버는 사람이 어서. 집도 바당서 온 거고. 물질 못해시민 동녀바치(거지) 되어실거라’라는 멘토는, 물에 들기 전에 지긋이 수평선을 응시한다.

 

바다에 대한 인사다. 그런 연후에 조용히 뇌선을 삼킨다. 뇌선은 물질이 일으키는 두통과 피로를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제주해녀들의 일상에서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물질 전에는 반드시 뇌선을 먹는다’는 사실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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