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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시평] 스피드에서 '슬로'로 간 역발상이 만든 제주의 아이콘

 

10년여 전인 2007년 5월로 기억한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던 중앙언론사 재직시절이다. 잠시나마의 서울근무를 마치고 다시 제주가 근무지가 된 무렵 친한 벗이었던 제주도의 한 간부공무원이 말을 건넸다.

 

“어떤 언론인 출신이 지원을 요청하는데 무슨 제주도를 빙 둘러서 걷는 길을 만들겠다”며 도의 지원을 요청하더라는 것이다. 무릎을 쳤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란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가 도와줄 돈 역시 고작 3000만원이었다. 물론 그 친구 역시 젊고, 관광분야에 전문가였기에 마음은 이미 도울 채비를 하고 있던 터였다.

 

이유가 있었다. 사실 200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한국의 관광산업은 한계를 노정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배운 이른바 ‘깃발관광’은 그 수명을 다했다. 전국 곳곳마다 관광객이 떼지어 다니는 풍경은 고루했다. 물론 제주 역시 ‘한국관광의 1번지’였지만 제주행 관광객 패턴은 해가 갈수록 가족·개별관광객 패턴으로 급속히 이전하던 때였다.

 

세상이 그렇게 변해갈 진대 ‘걷기’로 방향을 틀자는 생각은 당연히 신선할 수 밖에 없었다. ‘스피드’에 지칠 대로 지친 현대인들에게 ‘슬로관광’은 당연히 매력일 수 밖에 없었다. ‘느림의 미학’이 별 게 아니었다. 더욱이 그 즈음 제주만이 아니라 전국은 급속도로 뚫리는 고속도로와 철도에 더해 KTX란 신교통수단 등이 일상화된 시점이었다. 제주만을 놓고 보더라도 뻥뻥 뚫린 길로 신속히 이동은 가능했지만 그만큼 ‘건너 뛰는’ 비경과 명소, 감춰진 문화의 현장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마을 곳곳에서 관광객을 만날 특산물 역시 주마간산 차량행렬에 관광객을 만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선 이가 제주가 배출한 언론인이었고, 그 역시 언론 일을 접고 저 멀리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걷고 또 걸으며 캐낸 고민의 결과물이었으니 걸작의 짐작이 갔다. 그것도 간판은 ‘올레’였으니 무릎을 칠 노릇이었다.

 

사실 ‘올레’는 집으로 가는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사투리다. 집으로 가는 골목-. 4·3사건이란 참혹한 현대사의 비극을 간직한 제주에서 1940~50년대 올레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부모들은 “올레 나가지 말라”고 아이들을 단속했다. 집 밖에서 놀다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던 때였기 때문이다.

 

거꾸로 60~80년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올레 나강(나가서) 놀라”고 가르쳤다. 근대화·산업화의 열기가 한창일 때 직장과 가사일로 바쁜 제주의 부모들은 아이들과 놀아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올레에서 친구를 사귀었고, 세상의 눈을 떠가는 정보를 깨치기 시작했다. 물론 올레 너머로 난 ‘신작로’ 길을 지나는 관광버스 행렬은 아이들에게 신기한 장면들이었다. 그 시절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올레 밖 바깥 사람들이었을 뿐이었다.

 

그 올레가 2007년부터 ‘신드롬’을 몰고 오더니 이제 10년의 세월을 만났다. 무려 770만명이 제주도 곳곳을 도는 425km 길을 걸었다. 어엿한 ‘역사’가 된 것이다. 게다가 그저 자연이 보여준 경관가치만에 불과했던 제주관광에 이젠 뚜렷한 ‘아이콘’이다. 여기에 더불어 올레를 걷고, 제주이주를 선택했고, 그리고 제주에 터잡고 살도록 만든 강력한 흡인력을 보여준 것 역시 ‘올레’다.

 

‘올레’를 밟은 사람은 달라진다. ‘간세다리’(게으른 사람)의 마음으로 제주 땅을 걷다 보면 생각도 달라진다. 바람이 몰아칠 때 ‘곶자왈(천연원시림지대)’을 만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오름(기생화산)’을 곁에 끼고 지나다 보면 스스로를 어느덧 잊게 되더란다. 입소문이 꼬리를 물다 보니 ‘올레 걷기’ 열풍은 제주의 관광패턴까지 뒤바꿔 놓고 있다.

 

그 ‘올레’는 이렇듯 3000만원으로 시작했다. 한 언론인의 끝없는 고민과 상상의 끝이 찾아낸 종착점이자 출발점이었다. 이방의 세계와 만나 고향과의 접합점을 일궈낸 산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올레’는 예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배워온 여행문화의 선진지였던 일본 규수에, 저 멀리 몽골에, 그리고 부러웠던 스위스 등지에까지 행복한 ‘여행상품’으로 수출까지 됐다.

 

머리에 땀이 날 정도로 중화학공업 역군의 시대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과 등을 줄줄이 외우던 시절이 있었다.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자고 나면 쫙쫙 깔리던 아스팔트 길을 보며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희망하던 때가 있었다. 높이 높이 솟는 고층건물을 보며 마냥 국위선양을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우리 한국이, 제주가 가질 자부심은 사실 ‘올레’를 알아볼 줄 아는 시선이다. 지혜다. 그걸 간파하는 지방정부의 수장이 있어야, 그걸 찾아낸 선지적 인물이 있어야, 그걸 북돋우는 사람들이 있어야 일이 된다. 그렇게 ‘된 일’이 10년이라니 스스로 감개가 무량하다. 우리 제주의 보물이자 금자탑이다. 물론 우리 선인들이 지금껏 지켜온 역사와 자연이 있었기에 오늘의 보물이 있었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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