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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제주] 제주출신 '이방익 표류기' 꺼내 든 권무일 작가, 그가 사는 이야기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그다. 제주도에 터 잡은지 어느 덧 14년이다. 농사를 지으며 시작했던 제주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틈틈이 글을 썼다. 제주의 문화와 역사,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의 글의 일관된 주제로 자리잡게 됐다. 그렇게 지금까지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제주살이 14년째인 소설가 권무일-.

 

권 작가는 넉넉지 못한 형편에 어린시절을 보냈다. 어머니는 사기 그릇을 팔아 힘들게 생계를 이어갔다. 공부를 꿈꾼다는 것은 사치였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고향인 화성에서 도망치듯 인천으로 나왔다. 공부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학교 교실에서 잠을 자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고교 졸업 후 3년간 대입에 매달렸고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생이이라고 별 수는 없었다.가정교사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했다. 행정대학원에 입학 후에는 강의실에서 쪽잠을 자며 공부를 했다. 그때 인생의 반려자인 아내를 만났다.

 

그 시절 행정대학원을 나오면 갈 곳은 국영기업과 공무원이었다. ‘쥐꼬리’ 봉급인 공무원보단 국영기업을 선택했다. 포항제철(현재 포스코)이 생길 때였다. 1971년 포항제철에 입사를 하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 생활도 2년만에 끝났다.

 

현대건설로 직장을 옮겼다. 사막의 열풍을 따라 중동에도 다녀왔다. 2년간 모래바람을 맞아가며 일했다. 한국에선 어린 두 아이와 아내가 그를 응원했다.

 

그후 기업의 대표와 임원을 지냈다. 예순이 넘도록 산업의 역군으로 뛰었다. 그리고 은퇴 했다. 그런데 하고보니 할줄 아는 게 없었다. 비슷한 처지 친구들과 밤낮을 술로 지새웠다. 그렇게 몇달을 보냈다.

 

그러다 그의 머릿속에 제주가 떠올랐다. 제주의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은퇴하면 제주에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었다. 무작정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모슬포에 자리를 잡았다. 가족은 서울에 두고 서다.

 

서울살이 시절에 따놓은 부동산 중개인 자격증으로 부동산 업소를 차렸다. 좀 되는가 싶었지만 점차 일감도 줄고 성미와도 맞지 않았다. 돈벌이도 되지 않았다. 먹고 살아야 했기에 돈을 빌려 과수원 땅을 샀다. 그리고 그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빌린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2천평 규모의 귤농사를 시작했다. 농약도 쓰지 않고 혼자서 농사를 짓자니 힘에 부쳤다. 저녁이면 혼자 있는 시간이 일상이었다. 사색과 명상이 깊어졌고 언제부턴가 그 사색을 글로 정리하며 힘듦과 외로움을 달랬다.

 

 

이왕 글을 쓸거면 제주에 대한 글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 대해 공부를 해나갔다. 알면 알수록 제주도는 새로웠다. 제주 4.3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제주의 역사를 처음부터 공부했다. 마을마다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와 전설, 그리고 제주의 많은 인물들에 대해 공부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인물들 중에 김만덕과 김만일이 있었다.

 

제주도에 내려온지 4년째 일이다. 계간 문예지 <문학과 의식>에 단편 소설 ‘해피의 고백’을 실으며 소설가로 등단했다. 그 후 사재를 털어 굶어 죽어가는 제주 사람들을 살려낸 김만덕의 일대기를 소설 ‘의녀 김만덕’으로 펴냈다. 제주말(馬)을 통해 제주 사람들이 삶을 그러낸 ‘헌마공신 김만일과 말 이야기’라는 소설도 펴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달에는 조선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중국의 강남을 돌아보고 돌아온 제주 출신 무관(武官) 이방익의 이야기를 다룬 ‘이방익 표류기’를 펴냈다. 이방익은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나갔다 풍랑을 만나 중국으로 표류한 이다. 중국 사람들의 환대 속에서 중국의 강남을 여행하고 조선으로 돌아온 인물이다.

 

1900년대 중반까지 뭍지방에서는 이방익이  쓴 가사문학 ‘표해가’와 ‘표해록’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정작 고향인 제주도에서는 그의 이야기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작가는 이 이방익이라는 인물을 통해 다시 한번 제주 사람들, 더 나아가 제주 문화와 역사를 돌아본다.

 

- 이번에 제주 출신 무관 이방익의 이야기를 다룬 ‘이방익 표류기’를 펴냈는데, 이전 책들과는 달리 이번 책은 소설이 아니라 평설이다. 평설로 펴낸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소설은 아무래도 픽션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이번 책은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논픽션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평설은 일반적인 평론이나 비평문에 비해 형식도 자유로워 평설의 방향으로 나갔다. 또 이방익은 조선으로 돌아온 후 ‘표해가’ 등의 가사문학을 남겼는데 내용을 해설하며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었다. 그러려면 소설보다는 평설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사실 김만덕과 김만일의 이야기도 인문학적으로 쓰고 싶었지만 자료가 부족해 상상력을 더해 소설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방익의 경우는 그보다 자료가 많아 평설로 낼 수 있었다.

 

- 김만덕, 김만일에 비해 자료가 많았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방익이란 사람도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자료를 구하는 일도 그렇게 쉽진 않았을 것 같다.

 

사실 제주 사람들 중에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정작 제주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김만덕도 이름이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잘 알지 못했다. 이방익도 마찬가지다.

 

제주 문화와 역사, 사람들을 공부하며 탐라국 역사를 다룬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관련 자료를 찾던 중 곁가지로 빠지게 됐다. 우연히 김석익의 ‘탐라기년’을 읽다가 이방익을 접했고 조선왕조실록과 일성록, 승정원일기 등에서 그에 대한 자료를 찾았다. 이후 최남선이 발행한 ‘청춘’ 창간호에서 이방익의 가사를 접하게 됐다. 이 가사를 중심으로 자료를 구하러 다녔다.

 

제주도에는 관련 자료들이 매우 드물었고 국립중앙도서관에 관련 자료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국문학적 자료였다. 역사학적 자료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특히 이방익이 다녀온 중국에 대한 자료가 부족했다. 그래서 중국문헌을 찾아보기도 했다. 중국문헌을 찾아보는데는 중국문학을 공부한 아내의 도움이 컸다.

 

-이방익은 어떤 인물인가?

 

이방익은 당시 정조임금을 흥분시킨 몇 안 되는 제주 사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고려 시대 이후로 중국의 강남 지방을 가본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중국의 강남에 대해 시도 쓰고 그림도 그렸는데 이는 중국 사람들이 남긴 자료를 가지고 간접적으로 이룬 것이다. 하지만 이방익은 표류과정을 통해 이를 직접 보고 왔다. 정조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방익을 자신의 개혁정치의 모델과도 같은 역할로 봤다. 만약 정조가 좀 더 오래 살고 이방익도 오래 살았다면 이방익의 이름도 더욱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박지원과 유득공같은 당대의 실학자들은 이방익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방익이 강남의 많은 곳을 둘러보고 왔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지 못했다. 이방익이 무관 출신이고 또 타국에 표류를 했는데 고국으로 바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여행을 하다 왔다는 것이 이해가 잘 안 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방익과 관련된 자료들을 접하면서 이방익의 표류 이후 중국 강남 지방 여행이 사실이라는 점에 확신을 갖게 됐다. 

 

-앞으로의 집필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탐라국의 역사를 다루고 싶다. 하지만 관련된 자료가 거의 없다. 아예 없다고 봐도 좋다.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몇 줄이 고작이다. 제주에 탐라국이 있었을 당시의 세계 정세와 지정학적인 탐구를 통해서라도 제주의 역사를 상상력으로 재건할 욕심도 있는데 쉽진 않다.

 

한편으론 새로운 제주 사람들을 발굴해내고 싶다. 제주가 낳은 인물들을 제주 사람들이 계속 발굴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이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키우고 제주도의 자존심을 높일 수 있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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