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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해녀학교가 펼쳐준 인생 퍼레이드 ... TV에 나오다

 

영화를 찍는 사이에 겹치기로 TV에 출연하는 호사가 생겼다. KBS ‘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프로그램이 해녀학교 졸업생들의 인턴십 취재를 제안해 온 것이다. 제주해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제고하고, 법환 해녀학교를 전국적으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이 점을 받아들인 학교가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독려해서 3 팀을 선정하였다.

 

먼저 대한민국에 아침을 알리는 일출봉과 가까워서 자연스럽게 이목을 끌 수 있는 성산읍 신풍리의 인턴 3인방이 뽑혔다. 이들은 입학 때부터 활달하고 씩씩해서 어촌계가 키우는 차세대 해녀로 알려진 인재들이었다. 토박이 신순이가 육지에서 온 향규와 미현이를 보듬고서 우정을 자랑하는 드림팀이기도 하였다. 특히 유명 미대를 나와서 바다를 그리며 물질을 배워가는 미현이의 물질담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 하였다.

 

그리고 남원에 있는 망장포에서 최연소 해녀 인턴으로 영입된 소현이가 빼어난 미모와 실력으로 이목을 끌었다. 스쿠버 다이빙으로 단련된 소영이는 벌써 프로해녀의 기질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 그녀는 해녀학교에서 나와 같이 흙조를 이룰 때에도 발군의 실력을 빛내던 스타였다. 게다가 한 동네에 사는 해남(남자해녀)이 소현이의 동료로서 함께 뱃물질을 하고 있어서 방송의 스토리에 이색적인 재미를 더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보목동에서 맨토와 일대일로 착실하게 물질실습을 하는 내가 전형적인 예비해녀로 픽업되었다. 사실은 어머니가 해녀출신이라서 ‘해녀 모녀의 일상’이라는 소재가 얘깃거리가 된다고 여겨졌다. 촬영 중에도 어머니는 숨비소리를 지르고 물질을 직접 시연해 보이면서 ‘물질의 현장’을 실감나게 하였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첫날, 출연진들은 법환 해녀학교에 모여서 학교수업의 추억과 인턴십 경험담을 나누었다. 둘째 날에는 각자의 바다 현장에서 현지해녀들과 함께 물질실습을 해보였다. 그리고 셋째 날에는 집에서의 일상과 해녀가 되고 싶은 소회 등을 솔직하게 나누었다.

 

촬영팀은 각 팀들의 바다 환경과 물질 특성, 인턴들의 개인 역량에 따라서 방송 내용과 시간을 구성했다.나의 방송분은 멘토해녀와 함께 물질을 하고, 잡은 소라를 멘토가 구워주고, 스쿠터(해녀들이 물질하러 갈 때 타는 오토바이) 연습을 하고, 인턴 일지를 쓰고, 어머니의 물질 코치를 받는 등으로 다양하게 짜여졌다. 다큐멘터리가 뜻하는 바 ‘허구가 아닌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현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영화’가 무엇인지를 절감케 하는 3일이었다.

 

일상을 깨트리는 분주함과 소란함을 견디면서 자기를 솔직히 보여주는 정직과 헌신이 요구됐다. 자기 집이 영화 현장이 돼서 카메라가 들이닥치고 이것저것 부지런히 찍어대고 삶의 순간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모습들을 상상해 보라. 다소 부담스럽지만 이왕 하는 일이니 열심을 다했는데..., 결국 최종적으로 방송에 나온 분량은 5분에 불과했다. 매우 비효율적인 작업이었다.

 

 

3 팀을 취재한 방송 분량에서 공통적인 부분을 빼다 보니, 멘토가 소라를 손수 구워서 인턴에게 주는 모습, 망실이가 가득하도록 소라를 부지런히 잡아 올리는 광경, 운 좋게 포획한 전복과 문어를 자랑스레 흔드는 장면 등은 아예 화면에 나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방송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 다큐 3일이 전파를 타고 나간 후, 30년 전 친구가 소식을 전해 왔다. 육지에 사는 지인들이 어쩌다가 해녀가 되었는지, 너무 위험하지는 않은지, 살아가는 게 어려운지 등 안부를 물어오기도 했다. 사실 프라이버시가 노출되는 게 싫다면서 방송출연을 거절한 동기들을 떠올리게 하는 불편함도 느껴졌다.

 

그러나 우리가 방송에 나감으로써 법환좀녀마을 해녀학교가 갑자기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기대 이상의 소득이었다. 전국 방방곡곡으로 해녀학교가 알려지고 해녀인턴들이 소개되면서 제주해녀의 역사와 문화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처럼 보였다. 특히 30-40대 젊은 인턴들이 각종 신문과 잡지 등에 소개되면서 제주해녀문화에 불어 닥칠 신바람의 물결이 예감되기도 하였다.

 

사실 갓 이주해 들어온 육지 출신 신규해녀들은 다양한 직업경력, 혁신적인 물질관, 남다른 생활문화 등을 통해 제주도의 전통적인 해녀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들은 바야흐로 제주해녀역사에 전환기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전령들과 같았다. 요컨대 제주해녀를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방송처럼 효과적인 대국민 광고는 없었다.

 

어쨌든 우리들의 방송출연은 뜻밖의 경험이자 보람 있는 도전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그 덕택에 제주문화예술재단이 발간하는 월간지, ‘삶과 문화’라는 계간지에 해녀 글을 쓰는 필진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제주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을 제치고 제주해녀문화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장소에 특별 초대를 받다니....

 

그 제 3의 장소에서 1년간 해녀물질의 경험담을 쓰는 동안, 나는 마치 제주해녀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듯한 시간과 지위를 누렸다. 그것은 해녀학교 졸업생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였다. 우스개를 하자면, 학교를 다니는 동안 반장을 했으니, ‘한 번 반장은 영원한 반장’으로 살아가라고 내게 완장을 붙여주는 것 같았다.

 

한편, 지난 해 말에 제주해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제주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해녀를 주목했다. 그 바람에 제주의 한 방송사가 진행하는 ‘행복한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제의를 받게 되었다.

 

해녀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인턴 해녀의 삶이 주제였고, 유명 요리사가 차려준 밥상은 평생을 물질로 2남7여를 키워낸 어머니에게 올려진 선물이었다. 이 방송 덕택에 멘토와 함께 보목포구에서 다시 물질을 해보는 기회가 주어졌다. 오랜만에 맛보는 물질의 기쁨이 그야말로 감격으로 다가왔다. 인턴십을 마치고도 해녀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라도 물질을 해볼 수 있다면 다행스런 행복이 아니랴.

 

아, 이렇게 해녀학교 졸업생에게 주어지는 특전은 고맙고 반가운 것이지만, 정작 이 모든 행사들이 해녀가 되고 싶은 갈망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정식 해녀가 되어서 저 바다를 마음껏 유영할 수 있다면, 어머니처럼 호이 호오이 숨비소리를 시원하게 내지를 수 있다면, 솔직히 영화나 T.V, 잡지가 무에 그리 대단할까.

 

해녀는 그 삶 자체가 영화요, 드라마요, 스토리인 것을.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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