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37화] 일제강점기 제주지역 물가와 임금

 

본도(本島)는 교통불편(交通不便)의 관계상(關係上) 자연 상업도 미비부진(微微不振)하더니 근래(近來) 해륙교통기관(海陸交通機關)이 완비(完備)와 대판직항로(大阪直航路)가 개통(開通)된 이래(以來) 제주성내(濟州城內)를 중심(中心)으로 각지(各地)에 상업(商業)이 점차 은성(漸次 殷盛)하야 활기(活氣)를 정(呈)하고 남선(南鮮)의 유수(有數)한 상업지대(商業地帶)로 굴지(屈指)케 되엿다. 이출품(利出品)은 수산물(水産物)을 위주(爲主)로 면화(棉花) 관물(冠物) 추용(椎茸) 우피(牛皮) 양말등(洋襪等)인바 연액(年額) 백만원 내외에 달(達)하며 이입품(移入品)은 백미(白米) 맥분(麥粉) 면사포(綿紗布) 인촌(燐寸) 석유 기타 잡화 등인바 연액(年額)이 역백만원(亦百萬圓)에 달(達)한다고 한다(동아일보 1926년 10월 27일).

 

1915년 정미(精米) 1석(石)의 가격은 경성지역에서는 상 12.68엔, 중 12.19엔, 하 11.67엔이며 목포에서는 상 12.35엔, 중 12.04엔, 하 11.60엔으로 제주도는 이보다 30% 정도 비쌌다. 이는 제주도의 쌀(水稻) 생산량이 아주 적어 그 대부분을 타 지역으로부터 수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18년 정미 1석의 가격은 다르게 나타난다. 경성은 상 31.42엔, 중 30.27엔 하 28.99엔이고 목포는 상 31.45엔, 중 30.05엔, 하 30.58엔으로 제주도 31엔과 별 차이가 없다. 1915년과 1918년을 비교하였을 때 불과 3년 사이에 2배 가까이 미가가 상승하였지만 1918년에 와서 목포 등지와 별 차이가 없는 것은 유통비용이 3년 사이에 대폭 감소하였음을 말하여 준다.

 

유통비용이 감소는 운반선박 즉 해상교통의 발달과 소비증가로 인한 물동량 증가에 기인한다고 짐작할 수 있다. 1923년 경성 정미 1석가는 상 38.6엔, 하 35.25엔 이고 목포는 상 38.66엔, 중 38.21엔, 하 36.86엔이다. 오히려 제주도는 33엔으로 낮게 나타났고 있지만 그 이유는 확실치 않다.

 

대맥(大麥)인 경우는 정미와 다르게 나타난다. 1915년 경성 상 3.91엔, 중 3.60엔, 하 3.31엔, 목포 상 3.14엔, 중 2.87엔, 하 2.66엔이다. 제주도는 4.80엔으로 정미에 비해서 차이가 적게 나고 있지만 여전히 비싸다.

 

1918년 대맥의 가격은 경성 상 9.30엔 중 8.55엔, 하 7.82엔 목포 상 8.13엔, 중 7.59엔 하 7.09엔이다. 제주도는 11엔으로 1915년 보다 2.5배가량 증가했고 여전히 비싸다. 1925년 경성 10.06엔 목포 상 10.80엔, 중 9.64엔, 하 8.71엔으로 제주 15.50엔과 차이가 더욱 벌어진다. 대맥(大麥)은 제주농업의 주요 재배작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가 비싼 까닭은 다른 정치적 상황과 연계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될 뿐 현재로선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한다.

 

대두(大豆)는 1915년 경성 5.87엔 목포 6.41엔, 제주 7엔으로 제주도가 다소 비싸지만 1918년 경성 14.50, 목포 14.00, 제주 8엔으로 제주지역이 대폭 저렴하다. 이 현상은 1923년에도 이어진다. 1923년 경성 18.72엔, 목포 17.91엔 제주 12.50엔으로 30% 가량 제주도가 저렴하다. 이상에서 볼 때 농산물 중 수입품은 육지가격 변화에 비례하고 농산물은 제주지역 농사의 풍흉(豐凶)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소비(所費)가 늘 초과(超過)하는 도민(島民)의 경제생활(經濟生活)이 대단비참(大端悲慘)하게 될 날이 잇슬것입니다. 불경기시기(不景氣時期)이니까 물가감하운동(物價減下運動)을 이르킵시다(동아일보 1931년 01월 28일).

 

연도별 물가를 비교하여 보면 대두를 제외하고 1915년과 1918년 사이에 보통 2배 이상 올랐다. 1918년과 1923년 사이에는 앞서 보다 상승폭이 작았지만 공산품인 일본주(酒) 가격이 대폭 상승했다. 전반적으로 제주도 물가는 육지지역에 비해 대부분 높았으며 매년 상승폭도 컸다.

 

 

가계비(家計費) 구성에 있어 쌀 소비현황을 보면, 1933년 도내 쌀생산량 2만4810석(그 중 1만234석은 水稻)에 이입미 1만1234석을 합치면 3만6044석을 도내에서 소비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 농촌의 임노동에는 일시고용과 연고용이 있다. 연고(年雇)는 무전민(無田民)의 자녀 중 미혼의 성인남자를 대상으로 하여 일년에서 수년(數年) 동안 고용에 의해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고, 일고(日雇)는 제초, 수확 등의 농경작업과 가사노동의 필요시 이루어지며 주로 중간지대에서 발생한다. 이외에 수공업자를 일시적으로 고용하여 생활용구를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제주지역 농촌의 1일 기준 품삯은 수공업자 전문직일 경우 현물로 대맥(大麥), 조 2되 그 외에는 조곡 1되가 기준이다. 제주농업은 대체로 자가(自家)노동으로 이루어졌으나, 그 과정에서 부족한 노동력은 현물로 주는 형태의 일시고용으로 보충했다.

 

그러나 현금으로 지급할 경우 남녀 간 차이를 보이는데, 예를 들면 1930년대 중반 남자는 60전과 식사와 주류가 제공되고 여자는 40~50전과 식사를 제공한다. 이에 반해 일반노동자들의 임금은 1929년을 기준으로 대공(大工)은 1원, 석공(石工)과 토공(土工)은 1원 20전, 잡역부(雜役夫)는 60전이며 지역마다 20전 정도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위 표에서 보면, 전문직이 아닌 단순직인 경우에도 일본인과 제주도민의 임금은 보통 2~3배 정도의 차이가 나고 있다. 세탁이나 양복 같은 경우는 4~5배 차이가 나기도 하였다. 이 시기가 일제강점기 초기였기 때문에 그 격차는 더욱 컸다.

 

육지에서도 일제강점기 중기까지도 이 격차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육지의 경우 1931년 기준으로 볼 때 조선인 대부분이 미숙련 노동자로 숙련노동자에 비해 2배 정도의 저임금을 받았고 동일한 직종 간에도 2배 이상의 임금격차가 났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자본투입의 증가에 따라 노동생산성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실질임금이 증가하며, 실질임금이 증가는 식민지 본국과의 임금격차를 얼마간 해소시켜 생활수준의 향상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다. 그러나 후자의 문제, 즉 노동력의 해외유출에 의한 상대적인 노동력 공급의 감소로 임금상승하고, 이는 실질임금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는 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대대적으로 이루어 졌던 농촌노동력의 이동은 제주도내 임금 상승을 자극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증거는 많지 않다. 이것은 당시 제주도 농촌에 임고(任雇)가 그리 활발하게 발생하지 않았고 도일(渡日) 농촌노동력 대부분이 유휴노동력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제주읍과 같은 도회지역에서의 임금상승이 나타났다고 하지만 그 규모가 아주 적었다. 따라서 노동력 이주로 인한 제주도내 임금상승과 그로 인한 실질 임금상승과 생활수준의 변화 가능성은 미약하다.

 

오히려 일제강점기 제주농촌의 생활수준 변화는 도일의 증가에 따른 제주도내로의 송금 증가와 환금작물의 재배 확대로 인한 농촌지역의 현금 보유량 증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제주대 사범대를 나왔으나 교단에 서지 않고 동국대에서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2011) 학위를 받았다. 제주도 경제특보에 이어 지금은 지역산업육성 및 기업지원 전담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겸임교수로 대학,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등이 있으며『문화콘텐츠기술과 제주관광산업의 융복합화연구』(2010),『제주형 첨단제조업 발굴 및 산업별 육성전략연구』(2013),『제주자원기반 융복합산업화 기획연구』(2011) 등 보고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