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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변호사의 삶, 이제 제주의 갈등을 푼다"[파워人터뷰] 강기탁 제주지사 예비후보의 여정과 도전 ... "현 도정은 갈등 행정"
"환경자원총량제 도입해 환경파괴.난개발 막아야 ... 제2공항은 전면 재검토"
권무혁 기자  |  km6512@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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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7  11: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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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2011년.

태어나고 학창시절을 보낸 옛 둥지를 떠난 지 무려 25년이 지난 후였다. 제주를 떠날 때 그는 만 18세의 앳된 소년이었다. 이별이었지만 그의 가슴엔 풍운의 꿈이 꿈틀댔다. 가족들의 얼굴에도 기쁨과 환희가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 최고 수재만 간다는 서울대에서도 최고 학부인 법학과에 당당히 합격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떠났다. 한평생 장돌뱅이의 고단한 삶으로 3남 3녀의 자식들을 키웠던 부모의 배웅을 뒤로 한 채.

하지만 25년이 흘러 그는 지친 기색으로 고향을 찾았다. 가족의 기대만큼 금의환향은 아니었다. 두 번 만에 거뜬히 사법시험에 합격해 최고 엘리트 자격을 갖추긴 했지만 그는 가난뱅이 변호사의 몰골(?)로 낙향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성공의 삶을 선택하지 않아서다.

둔덕 너머의 봄볕이 화사했던 26일 <제이누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낙향 8년차를 맞고 있는 강기탁(51) 더불어민주당 제주지사 예비후보.

호방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인 그의 공식 직함은 지난 13일부터 제주지사 예비후보자로 바뀌었다. 그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3명의 다른 예비후자들과 4파전의 공천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옛 주소에 따르면 그가 태어난 곳은 북제주군 한림읍 귀덕리. 그는 귀덕초등학교와 한림중을 거쳐 제주일고에 진학했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그의 부모는 오일장이 서는 곳이면 경운기를 끌고가 잡화류를 팔았다. 그렇게 여섯 명의 자녀들을 건사했다. 그 덕에 그는 가난한 삶이었지만 화목한 가족의 장남으로서 ‘개천에서 난 용’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섬 소년의 꿈을 펼칠 사이도 없이 엄혹한 현실의 격랑에 휘말려버렸다. 대학 새내기의 들뜬 마음으로 바라본 관악 캠퍼스는 충격 그 자체였다. 매캐한 최루탄 내음이 교정 전체에 가득했고 격렬한 구호가 난무했다. 수많은 선배들이 피를 흘렸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폭정이 극에 달했던 1986년 신입생이 본 광경이었다.

   
 

전대미문의 폭력 진압으로 1288명을 구속시킨 소위 ‘건대사태’가 그해 10월 28일에 벌어졌다. 수많은 학생과 노동자들의 분신이 잇따랐고 전기고문, 성고문 사건 등의 야만의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해 겨울의 혹한에 한 청년이 그 혹한보다 더 서늘한 냉기 속에 세상과 이별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의 대학 2년 선배인 고(故) 박종철 열사다.

질식할 것 같았던 시대 앞에서 그의 고민은 깊어졌다. 그는 “그 시절부터 일종의 부채감 같은 게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87년 6월 항쟁의 중심지였던 명동, 을지로 일대의 시위에는 적극 가담하게 됐다”고 술회한다.

부채의식 등에서 싹튼 인식이 지평을 넓히면서 그의 관심은 당시 가장 열악한 삶을 강요당했던 노동자의 삶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이끌었다. 인권 변호사로의 삶, 그것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군대 문제도 고민이었고 노동운동 쪽으로 진로를 생각하기도 했었다”며 “고민 끝에 결국에는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변호사로의 삶을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1990년엔 법과대학원에 들어갔다. 그 때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고3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면서 “그 덕분인지 두 번만에 사시를 패스했다”며 웃는다.

사시에 합격하기 이전에 결혼을 했다. 25세의 이른 나이였다. 부인 역시 동향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만나서 처음 얘기를 나눈 것은 86년 기숙사 오픈하우스 때였다.

“서울에서 처음 만난 이후 학보를 보내며 험난한 시국에서의 동지애 같은 걸 느꼈다." 그렇게 사랑을 키워갔다. 물론 숙명여대를 다니던 아내는 그 시절 열성적으로 학생운동을 했다. 결혼식은 제주에서 전통 방식으로 올렸다. 벌써 26년이 지났다. 1남1녀를 두고 있다. 그 아이들이 가족이 함께 살던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사시 합격 후 5년간의 사법연수원 및 공익법무관 생활을 거쳐 변호사에 길에 들어섰다. 1999년이었다. 돈을 버는 변호사와는 거리가 먼 선택이었다. 그런 선택에 대해 그는 “근로자가 열심히 일하고서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며 법적으로도 부지런히 일하는 자로서만 규정돼 있었다”면서 “ 그렇게 ‘근로자’로 불리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장하는 것이 사회정의다”라는 생각으로 내린 노동인권변호사의 길이었다.

그는 그해 <전태일 평전>을 직접 펴내며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개척했던 고(故) 조영래 변호사의 뜻을 기려 문을 연 ‘시민종합법률사무소’에 문을 두드렸다. 그게 그의 변호사 생활 첫 출발이었다. 

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노동위원회 소속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전개했다.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을 느낀 변론을 묻자 “기업들이 교묘하게 법을 악용해 편법으로 파견노동자의 권익을 무시했던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공방에서 이긴 일”을 꼽았다.

그는 “당시 이 문제는 뜨거운 쟁점이었고 화두가 됐을 정도로 사회적인 관심사였다”며 “불법으로 파견했으면서도 파견이 아니라 도급이라며 기업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지만 결국 우리가 이겼다”고 그때의 기억을 들려준다.

당시 14명의 대법관은 만장일치로 “적용된다”고 판시하여 논란을 잠재우고 파견근로자(비정규직)를 보호하는 데 손을 들어주었다. 비정규직 보호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를 받으며 <한겨레 21>의 ‘2008 올해의 판결’로 선정됐다.

   
 

12년간의 인권변호사의 생활, 어려움은 없었을까? “언제부턴가 실체를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뭔가 고갈된다는 느낌을 받았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다”면서 “고향으로 내려가 제주 숲길을 걸으며 위로받고 충전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결정적인 것은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대학 2년 시절인 87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진 마당에 어머니는 자식들을 다 키워내고 줄곧 혼자 제주에 사셨다. "어느 해인가 친척 분들이 많이 돌아가신 적이 있었다”면서 “그때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혹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냐는 생각이 들어 무섭기도 하고 마음이 너무 짠했다”고 했다.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었다. 25년의 서울생활(12년의 노동인권변호사의 삶)을 접고 고향제주로 내려왔다. 어머니는 지금 큰아들, 큰며느리와 함께 어릴적 귀덕리 집에서 8년째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치유'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또다른 현실이 고향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고향에 내려온 지 한 달도 안 돼 강정에서 큰일이 벌어지는 걸 알게 됐다. 수많은 사람이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고 전국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강정기지 반대운동을 지원하러 제주에 내려왔다. 아름다운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이 큰 상처를 입는 걸 목격하게 됐다. 공권력이 또다시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강정사건을 지켜보면서 “국책 사업 같은 공공 정책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면서 “뻣뻣한 절차적 민주주의 형식만 갖춘 채 주민들에게 수용만을 강요하는 행정당국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가 치밀어올랐다”고 얘기한다.

결국 참을 수 없었다. 강정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범죄인이 아니란 말입니다. 아름다운 강정마을을 사랑한 죄 밖에는 없단 말입니다. 마을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같이 지키려는 마음밖엔 없단 말입니다"라는 강정주민들의 절규를 외면할 수 없어서였다.

아무 일도 못한 채 일주일 내내 강정마을 사건 변호에 매달릴 때도 여러 번 있었다. 긴 시간이었다. 그런 생활을 3년 넘게 매달렸고 그 과정에서 240여명의 변론을 맡게 됐다. 그는 “그런 경험을 통해 새로운 소명의식 같은 게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그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주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선 갈등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할 도지사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인권변호사 활동에서 체득한 인권과 민권의 소중한 가치를 밑천 삼아 제주를 지키고 청정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도지사에 도전하게 됐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인터뷰 끝자락에 최근 랜딩카지노 이전 허가 문제를 끄집어냈다. “카지노 규모가 7배로 늘어나는 사실상의 신규 건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시간을 갖고 도민들의 의견을 묻는 등의 검토를 하지 않은 채 법적으로 어쩔 수 없다며 불쑥 허가를 하는 행위는 참으로 무책임하다”며 “도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행정소송을 불사하고서라도 제주를 지켜야 했다”면서 원희룡 지사에 대한 정면 비판을 숨기지 않았다.

제2공항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1시간 20여분간 그와 나눈 대화록, 인터뷰 내용을 싣는다.

선출직 선거 경험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제주지사 선거에 나설 생각을 했나?

“강정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많은 걸 느꼈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국가 공공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공권력이 주민들에게 치유하기 힘든 깊은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 정부의 일방적 집행 추진에서 발생하는 파괴적 결과를 수없이 목격했다. 그런데 도정의 책임자가 이를 방치하거나 갈등조정자의 역할을 방기하며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도지사는 자격이 없다. 오랜 기간 동안 인권변호사의 경험을 통해 민권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기에 제주 현안에 대한 갈등관리 능력이 있다고 자신한다. 촛불로 만든 이 나라 국민들의 열망 역시 궤를 같이 한다고 믿는다. 그런 정치적 명령을 받들기로 결심했다. 좋은 삶, 좋은 제주를 만들기 위해 출마하게 됐다."

   
 

원희룡 지사에 대한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다. 어떤 부분을 비판하는가?

“원 지사에 대한 평가는 도민들 몫이긴 하다. 원 지사는 무엇보다 제주의 기본가치인 자연환경이 훼손당하는 걸 그대로 방치했다. 지역 현안에 대해서도 일방적 강행만을 고집했다. 더군다나 제주의 수용능력 등을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그 결과 난개발과 제2공항 갈등, 인프라 부족 등의 심각한 문제가 산적하게 됐다. 도지사 한사람의 지도력으론 해결하지 못한다. 이해관계자, 시민, 전문가들이 모여서 상호 토론해야 한다. 그것이 숙의민주주의다. 원 지사의 행동은 그것과는 거리가 먼 중앙만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피해는 참담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제주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제주의 가치를 재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사용가치가 중요한 것이지 교환가치로 제주를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제주의 사용가치는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제주도민 모두가 살고 있는 삶의 토대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자산이다. 제주를 개발해 얼마의 이익을 내고 얼마만큼의 성장을 일궈내겠다는 교환가치적 발상은 결국 제주를 망쳐놓고 있다. 이번 선거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러 관점에서 원희룡 도정을 심판해야 한다. 그리고 앞서 얘기한 대로 숙의민주주의를 정착시켜 도민들이 도의 정책들을 수용 가능할 수 있도록 도정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공약 혹은 주요 정책이 있는가?

“가장 중요한 건 난개발과 환경파괴를 막기 위한 '환경자원총량제' 도입이다. 세부적인 대안,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중이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난개발 저지, 제2공항 갈등관리를 통한 해결책 마련, 기반시설 확충을 통한 인프라 건설 세 가지를 꼽겠다. 제주엔 환경영향평가제도가 있지만 그 제도의 허점이 많아 결국 작은 개발들이 허용돼 수많은 개발들이 어지럽게 이뤄졌다. 총량제 등을 통해 강력히 난개발을 저지해야 한다. 제주 제2공항 역시 숙의를 통해 제주에 맞지 않는다고 결론이 나면 과감히 접어야 한다. 전면 재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 그리고 10년, 20년 이상을 내다보며 기반시설을 확보하는 등의 계획 없이 관광정책을 시행해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을 맞게 됐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위험하다. 패러다임을 바꿀 때다.”

   
 

민주당내 경선을 완주할 생각인가? 2년 후 총선을 겨냥한 출마선언은 아닌가?

“물론 완주할 생각이다. 어떤 상황이 연출될지는 알 수 없기에 조심스럽지만 후보자간의 연대가 필요할 경우는 상황에 맞게 대처할 생각이다. 어떤 후보를 지지한다며 사퇴하는 일을 결코 없다. 총선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것에 대해서는 정치경험이 적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도민들이 판단할 몫이다. 새로운 가치를 세우려 이 자리에 선 것이다.”

민주당 다른 후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민주당은 하나의 팀이다. 경선결과에 100% 수용할 것이며 최종 후보가 결정되면 흔쾌히 선대위에 참여할 생각이다. 내가 제주지사 후보가 되더라도 상대 후보를 선대위원장으로 모실 생각이다. 한 가지 제안이 있다면 조속한 시간 내에 도민들에게 정책을 펼쳐보이는 합동토론회를 열 것을 제안한다. 정책에 대한 상호보완과 소통을 통해 도민들과 공감하는 비전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것이 촛불정신의 지역적 완성과정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세 과시 중심에 치우친 선거운동은 낡은 방식이다.”

선거운동 비용은 어떻게 감당하나?

“가난한 후보다. 최소한 필요한 것에만 비용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돈이 더 든다고 해서 선거운동이 잘 되는 건 아니다. 제주의 미래가치를 반드시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민주당 후보들이 원 지사에 대한 비판수위를 높이며 도정 책임론을 거론한다. 하지만 정책은 총론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좋은 지적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좀 더 도민들에게 다가가는 생생한 정책들을 제시하겠다. 그렇다고 추상적으로만 지적한 건 아니다. 학습하면서 심화시키겠다.” [제이누리=권무혁 기자]

   
▲ 2011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일원으로 계룡산에 눈꽃여행을 갔을 때다. 맨 위 왼쪽에서 4번째가 강기탁 변호사다.
   
▲ 고교 졸업 후 서울대에 합격한 반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뒷줄 맨 오른쪽이 강기탁 변호사.
   
▲ 2016년 말 결혼 25주년을 기념해 아내, 두 자녀와 오사카 여행을 갔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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