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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스토리] 정의당 고은실 당선인, 지체장애로 장애인들 위한 삶
제주 첫 발달장애인치료소 설립 ...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제 시작이다"

 

소아마비가 찾아온 건 갓 돌이 지난 두살 때였다. 그 이후로 55년, 장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머무르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이의 장애까지 안고 살아왔다.

 

고은실 정의당 제주도의회 비례대표 당선인(56).

 

그의 삶은 평생 투쟁의 연속이었다. 장애와의 투쟁이자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과의 투쟁이었다.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다짐한 발달장애인 아이들의 삶을 위해서도 그녀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 '투사'의 삶을 살았다.

 

그 시작은 1984년 대학 진학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했다.

 

고 당선인은 “당시에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부모는 아이들이 뭔가 안정적인 일을 하면서 살기를 원했어요.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었겠죠. 하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고 그 시절을 회상했다.

 

어린시절부터 특수교육과에 가고 싶었던 그는 "제가 장애인이니 장애인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었죠. 하지만 크면서 그 생각이 더 확고하게 자리잡았습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졸업을 하고 나니 일할 곳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장애인들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특수교육과에 진학을 했지만 정작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졸업은 했지만 막상 장애인이다보니 갈 학교가 없었죠.” 그가 마주한 현실이었다.

 

일할 곳을 찾아 해메던 그는 마침내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아가의 집' 문을 두드리게 됐다. 1988년 2월부터 그곳에서 생활교사로 일을 했다. 하지만 그 생활은 1년만에 끝났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더 적극적으로 장애인들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팍에 스며들었다. "당시에는 겁이 없었습니다. 그냥 발달장애인들의 삶을 통째로 책임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죠. 유아에서 무덤까지 이 시기에는 어떤 것들이 필요하고 저 시기에는 어떤 것들이 필요하고, 그러한 것들을 통째로 책임지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바람은 1989년 5월 제주 최초의 발달장애인사설치료소 설립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다솜발달장애인대안학교가 그것이다.

 

그 치료소의 설립 이후 30년, 그녀의 삶의 중심에는 이 시설에서 함께하는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의 목표는 이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지역 사회에서 함께 어울려 살게 하는 것, 그것이다. 함께 사는 것, 이 목표를 위해 그녀는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했다”고 말했다.

 

“어떤 것들이 중심이 돼야 하는가하는 점을 늘 고민했어요. 발달장애인사설치료소를 만들면서 함께 시작한 아이들의 통학을 준비해야 한다고 해서 어린이집도 8년 정도 운영을 했죠.”

 

 

“그 속에서 발달장애인 친구들과 비장애인 친구들이 함께 자라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필요하다면 뭐든 다 했죠”라는게 그의 강변이다.

 

이 친구들과 함께 1주일이 넘게 제주도 순례를 하기도 했다. 합숙은 기본이었다. 이들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노력에 노력을 더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이 성장하자 이젠 일터가 필요했다.

 

“지금 함께 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이가 되면서 책임지기 힘든 부분들이 생겨나게 됐어요. 하지만 이 역시도 해결하고 싶었죠. 그래서 제조업 허가를 받았습니다. 일터를 만든 거죠.”

 

그는 발달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비누나 화장품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판로가 마땅치 않았다. "지금은 휴업상태입니다.” 그래도 그는 웃는다. 비록 휴업상태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다.

 

그의 도전은 결국 정치로 이어졌다. 인연은 제주도 출신 이영석 정의당 중앙당 장애인위원장과의 인연이다. 그의 권유가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의 정치입문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냈지만 시큰둥한 지역사회의 반응에 기인한 바도 크다. 제주장애인연맹의 임원직을 역임하면서도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 우리 기관처럼 발달장애인들을 평생 책임지고자 하는 기관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때문에 이에 대한 지원 방법도 미비한 수준이죠. 결국 이 아이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싸워서 이 아이들의 삶을 보장받게 만들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정치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의 정치입문 동기다.

 

그의 첫 도전은 지난 2014년 지방선거였다. 하지만 고배를 마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선거운동 기간 중 전동휠체어를 타고 ‘정당투표는 정의당’ 이라는 피켓을 들고 매일 거리로 나갔다. 뿐만 아니라 함께 정의당 비례대표로 나선 김우용・김경은 후보 역시 청년들을 상대로 거리인터뷰에 나서는 등의 이색적인 선거운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화음앙상블이라고 관현악단 연습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이 저에게 와서 먼저 명함을 달라고 요청했을 때는 정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노력의 결과는 수치로 나타났다. 도민들이 마음을 열어준 것이다. 6.13선거 개표 결과 정의당 제주도당은 11.8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4만553표였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6.1%의 정당득표율을 얻었던 것에 비해 두 배에 가까운 득표를 이뤄냈다.

 

 

그리고 정의당은 어엿하게 '1호 도의원'을 배출했다. 제주도의회에서 비례대표 1석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정의당 제주도당 창당 이후 첫 원내 진입이었다.

 

그가 정의당 제주도당 첫 원내진입의 주인공이다.

 

“장애인 쪽에 오래 몸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장애인 관련 분야에 가장 먼저 눈이 갑니다.” 도의원으로서의 포부를 물어보는 질문에 고 당선인은 이렇게 답했다.

 

“제주도의 장애인 복지 시설 등은 대부분 제주시나 서귀포시에 몰려 있어요. 동쪽과 서쪽에는 아무 것도 없죠. 먼저 이런 격차를 해소하고 싶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의 시선은 다른 제주도의 현안들에도 드리우고 있다. 장애인을 넘어 농민과 청년, 소외계층, 중소상공인 등이다.

 

 ‘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싸우면서 올라왔다. 그러기에 세상의 시선이 닿지 않는 낮은 곳이 더욱 잘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이제 출발선에 섰다. 앞으로의 4년, 힘 없고 약한 이들에게 그가 내밀 '희망의 빛'이 서서히 기다려지는 때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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