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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관광진관훈의 제주근대경제사 신문읽기
일제 강점기 제주사회 실제 주인은 제주도민[65화] 제주근대경제사 연재를 마치며 ... 고 양성종 선생님의 진솔한 가르침 감사
진관훈 박사  |  adel@jejut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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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05  09: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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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회의 ‘근대’

학계의 일치된 견해는 아니지만 한국사회에서 근대는 1876년 개항으로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는 시기를 말한다(허수열, 1984). 이 견해를 따르자면, 제주사회의 근대는 개항 이후 1945년 해방까지를 포함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근대 제주의 시점은 이와 다르다. 한국사회에서 근대의 기점으로 삼고 있는 개항의 의미와 실제가 제주사회에서는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사회의 실질적 개항은 1870년대 일본 잠수기업자들의 제주어장 침탈 때부터라고 보는 것이 맞다. 제주도민들은 중앙에서의 정치적 의미의 개항보다 일본 잠수기업자들의 ‘제주어장 침탈’이 개항을 피부로 느낀 실질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870년대 일본 잠수기업자들의 제주어장 침탈사건을 제주사회 ‘근대(近代)’의 기점(起點)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울러 1945년 해방을 현대의 기점으로 삼는 것 역시 제주사(濟州史) 서술에 적합하지 않다. ‘제주 4․3’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일본과 완벽히 단절되었던 육지부와 달리 제주도는 해방 이후에도 일정기간 동안 일본과의 인적․물적 교류가 이어지고 있었다.

해방 이후 계속되었던 일본과의 밀무역(密貿易)․사무역(私貿易)과 밀항(密航)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따라서 제주사 시대구분에서는 현대의 기점을 ‘제주 4․3’이 실제적으로 종결(終結)된 1950년대 초반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본다.

제주사회의 근대는 일본 잠수기업자들의 제주어장 침탈기인 1870년대부터 ‘제주 4․3’이 모두 종결되고 한라산 금족령이 완전 해제된 1950년대 초반으로 보는 것이 순리이다. 이 시기의 제주사회는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전에서 강제적으로 자본주의적 세계경제 체제의 일부로 강제 편입되는, 말하자면 현대사회로 이행(移行)하는 과도기에 해당한다.

일제 강점기 제주사회는 식민 자본주의에 의해, 식민 자본주의를 위해 강제 개편되었다는 의미에서 식민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변방 종속지이다. 따라서 이 사회 내에는 이식(移植) 식민 자본제를 중심으로 하는 시장 자본주의적 경제요소가 병존하였으며 또 그것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제주사회 연구의 흐름

일제 강점기 한국사회에 대한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 식민지 한국의 근대적 변화를 부정하고 현재의 근대 발전을 단절적 차원에서 인식(단절적 발전)하는 ‘식민지 수탈론(收奪論)’이다. 둘째, 식민지 시기의 근대적 토대와 발전을 긍정하고 이의 현재적 연속을 긍정(긍정적 연속)하는 ‘식민지 근대화론(近代化論)’이다(서윤․정연, 2004).

그러나 이 두 가지 입장 모두 식민지 근대의 문제인식을 경제적 발전주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즉 식민지 수탈론은 근대화의 주체 여부와 양적인 지표에 의해 식민지 시기의 경제적 발전과 그것의 토대 제공이 식민지 자체의 발전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고 식민지 모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강제적 이식과 수탈의 의미로만 규정함으로써, 한국 식민지 사회에 근대화를 몰(沒)역사적으로 접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근대성의 현재적 의미를 도외시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 역시 발전이 이루어지는 전체적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몇 가지 양적인 지표에 의해 접근하는 데 몇 가지 문제가 있다. 특히 ‘발전(發展)’이란 집합적 현상을 단지 경제성장이란 측면에서만 논의함으로써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 한국에 남긴 정치적․사회적․역사적․문화적․정신적 해독(害毒)을 무시하고 있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 제주사회에 대한 연구는 이 두 가지 견해에 대한 비판적 검토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히 일제 강점기 제주사회를 ‘수탈(收奪)’과 ‘단절(斷絶)’로 매몰시켜 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일제 강점기 제주사회를 단절과 수탈로만 인식한다면 그 당시 제주사회의 주체였던 제주도민들의 생활과 경제적 성과가 제대로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는 일본이 제주사회를 무력으로 강제 통치했던 시기였지만 정작은 제주도민이 계속해서 활동하고 자존적 삶을 이어 왔던 시기이다. 따라서 식민지라는 의미보다 그 식민지 안에 살고 있는 인간사회 변화 과정이 중요하며 이를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연히 일제 강점기 제주사회의 실질적 주체는 제주도민이다. 제주도민들은 식민지 지배체제 하에서 적응하고 저항하며 그들이 가진 잠재적 역량과 저력(底力)을 발휘하여 많은 경제적 성과를 창출해 냈다.

그 중심에 해녀경제를 성장시킨 제주해녀의 출가물질과 도일 제주도민들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에 사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제주해녀들의 해녀노동과 출가물질, 도일(渡日) 제주도민들의 노동과 도내 송금으로 제주경제가 어려운 시기를 견디어 냈고 현재에 도달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주도민의 도일(渡日) 노동과 제주해녀 노동(물질)의 경제적 성과와 의미를 밝혀내고, 또한 이 경제적 성과가 일제 강점기 제주경제의 선순환 구조로 변환되는 과정과 산물을 실증적으로 체계화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일제 강점기 제주경제의 유산과 경험을 되새기고 현재를 진단하여 미래 제주의 가치 있는 삶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재일 제주인 양성종

재일 제주인 故 양성종(梁聖宗) 선생님은 1939년 2월 18일 제주도 신촌에서 출생하여 10대 중반 일본 도쿄로 이주하였고 1985년 일본에서 제주사(濟州史) 연구의 기반을 닦은 탐라연구회(耽羅硏究會) 발기인이다. 재일 제주인들이 제주사 정립의 뜻을 모아 태동한 탐라연구회는 1985년 본격적인 제주도 연구를 시작했고, 1989년『제주도(濟州島)』를 창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재일 제주인 故 양성종(梁聖宗) 선생님이 생전 일본 도쿄 아리랑문화센터에서 탐라연구회 발간 ‘제주도’를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강경희, 허호준]

와세다대학교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한 선생님은 1985년 1월 창립한 탐라연구회 사무국 운영을 맡아 단체의 체제를 갖추는 일에 노력했고 역사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탐라연구회 기관지인『탐라(耽羅硏究)』에 '제주사강좌(濟州歷史講座)'를 집필해 왔다. 1988년 김태능의『제주도약사(濟州島略史)』를 일본어로 번역 출간하였으며 2012년에는 제주문화원의『제주신화집(濟州神話集)』일본어판 번역을 맡기도 했다.

양성종 선생님은 2017년 12월 29일 제주도 성묘를 일주일 앞두고 타향 일본에서 사연많은 삶을 마감했다. 올해 초 선생님 아드님께서 아버지와의 고향 방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인의 유골을 들고 신촌(新村)에 있는 선산(先山)을 찾아왔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사연이다.

이 연재를 마치며 고인을 떠올리는 것은 필자가 선생님에게 받았던 많은 도움 때문이다. 고 양성종 선생님의 사려 깊으신 배려와 진솔하신 가르침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00년대 초반 일제 강점기 제주경제 연구를 위해 수차례 일본을 방문할 때 마다 선생님이 매번 동행해 주시고 친절히 안내해 주셨다. 당시 선생님이 관리하셨던 아리랑문화센터 지하 도서관에서 며칠을 공부할 수 있게 해주시고 동경대(東京大) 도서관, 학습원대학(學習院大學) 도서관, 조선총독부 자료실, 와세다대학 도서관 등을 수시로 열람하고 자료 정리를 하게 해 주셨다.

또한 동경 부근에 거주하시는 탐라연구회 회원들이 참석하는 세미나에서 발표할 기회를 주셨으며, 『근대제주의 경제변동』(진관훈, 2004)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탐라연구(耽羅硏究)'에 연재도 하셨다.

삶의 구구한 이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선생님의 탐라사(耽羅史) 연구에 대한 열정과 의지는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매번 존경스러웠고 본받아 마땅했다. 아직까지도 제주사회에서 조차 제주학 연구로는 입에 풀칠하기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타지 일본에서의 제주사회와 탐라사를 연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2006년 사이타마시 선생님의 자택 2층 다락방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날 같이 동행한 후배 강재흥과 내가 놀란 건 엄청난 자료의 양이 아니라 그 많은 자료를 꼼꼼하게 필사하며 분류하고 재정리하는 연구자의 무모함이었다.

   
▲ 진관훈 박사.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으니 역시 군자가 아니던가(人不知不慍 不亦君子乎)”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이에서 보면, ‘위인지학(爲人之學)’ 하지 않고 ‘위기지학(爲己之學)’ 하신 선생님은 군자라 하겠다.

이러한 논어의 높고 깊은 가르침보다는, 생업(生業)에 전혀 도움이 안 되며 관련 연구자의 연구 환경 조성은 물론 후학 양성에 절대 무관심한 지금 이곳의 암담한 현실 앞에서 선생님의 공부하는 자세와 연구 열정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 그게 의문이다. <끝>

** 지금까지 진관훈 박사의 '제주군대경제사 신문읽기'를 애독해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새로운 연재물로 여러분을 만나겠습니다.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제주대 사범대를 나왔으나 교단에 서지 않고 동국대에서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2011) 학위를 받았다. 제주도 경제특보에 이어 지금은 지역산업육성 및 기업지원 전담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겸임교수로 대학,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등이 있으며『문화콘텐츠기술과 제주관광산업의 융복합화연구』(2010),『제주형 첨단제조업 발굴 및 산업별 육성전략연구』(2013),『제주자원기반 융복합산업화 기획연구』(2011) 등 보고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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