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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41) 질병과 질병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1894년 봄, 내가 초청받아 가기로 되어 있는 어느 무도회에 그녀가 참석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 파티에서 내 환자였던 그녀가 빠른 템포로 춤을 추며 내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후 그녀는 어느 외국인과 연애 끝에 결혼하였다 한다.”

 

마무리 단락이 감동적이라 언젠가 읽은 분들은 ‘아...’ 할 거에요. 1892년 가을 어느 날, 프로이트는 친한 동료 의사로부터 진료 의뢰를 받습니다. 환자는 양쪽 다리에 심한 통증으로 걷기도 힘든 여성이었어요. 더 심할 때는 통증과 함께 이완성 마비로 서 있을 수도 없었죠. 증상이 시작된 지는 2년도 넘었다고 해요.

 

「엘리자베트 폰 R.」양. 이 사례의 치료 과정은 『히스테리 연구』(브로이어, 프로이트 공저, 1895)에 자세히 실렸습니다. 완치.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얼마나 뿌듯했겠어요? 프로이트는 이 사례가 히스테리 사례에 대한 최초의 완전한 분석이었다고 회상하죠.

 

사용한 치료법이란 ‘병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 소재를 표면층부터 순차적으로 한 꺼풀 한 꺼풀 제거해 내는 방법인데, 우리는 이것을 매몰된 고대 도시를 발굴해 가는 기술에 비유한다'면서요. 히스테리, 요즘 진단명으론 전환장애(Conversion disorder)였습니다.

 

『가만히 끌어안다』(게리 홀츠 지음, 행성B)는 예컨대 파킨슨병이나 류마치스 관절염처럼 분명한 신체적 질병인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을 앓는 저자가 호주 원주민의 마음치유법을 통해 치유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물리학자이자 우주항공회사 설립자였던 저자는 그후 남은 인생을 전체론(Holism) 치유사로 활동했다고 하지요. 자신이 강렬한 치유경험을 했으니까요.

 

저는 그 책을 읽으며 동양철학 세계관, 융 심리학, 정신분석적 설명 등이 복합적으로 연상되더군요. 정말로 저자는 다발성 경화증이 완치, 아니 완치까지 아니더라도 뚜렷한 호전을 보인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발성 경화증의 자연 경과는 호전시기와 악화시기를 반복하면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보다는 저자의 병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 겁니다.

 

조금 더 진행해서 말해본다면 고통 아니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대하는 태도와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 거라고요. 전 그 책을 읽고 숙고해 볼 지점이 있다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아직까지도 질병에 대해 우리가 경계해야 할 편견이 있습니다. 『어느 애주가의 고백』(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스노우폭스북스)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미국 지성인 수전 손택(Susan Sontag, 소설가, 평론가, 1933-2004, 『은유로서의 질병』)은 암 연구가 걸음마 단계이던 1970년대에 여러 형태의 유방암 진단을 받습니다. 완치 가능성은 낮았지만 결국은 살아남았죠. 치료와 회복 과정에 그녀는 수없이 많은 편견과 마주해야 했다는군요.

 

가령 암이야말로 경직되고 긴장에 가득 찬 사람들이 걸리는 질병이며. 결국 심리적 불균형이 병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편견이죠. 이것은 병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환자에게 있다는 말도 됩니다.

 

실제로 수전이 야망이 강하고, 요구가 까다로우며, 거의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 그런 편견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탓이 더 컸다고 하는군요.

 

막말로 ‘다 네 마음 씀씀이나 성격이 더러워서 그런 병이 생긴 거야.’ 그런 식 아니겠습니까? 수전은 질병에 대한 대중적인 패턴을 몇 십 년 전 근거 없는 결핵에 대한 편견과 비교했다는데요. 그저 편견의 변형된 형태일 뿐, 암에 대한 편견과 결핵에 대한 편견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다는 겁니다.

 

결핵에 대한 편견은 충분한 의학적 설명과 페니실린이 병을 제압하게 되면서 사라졌죠. 덧붙여 수전은 심리적, 정신적 요인으로 인한 질병은 의지력으로 고칠 수 있다는 이론은 언제나 헛다리를 짚고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 이론이야말로 질병에 대해 당시 모두가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일 뿐이라고 강조하죠.

 

가령 우울병을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원인에 대해선 “의지력이 약하니까 우울병이 오지” 치료에 대해서도 “의지력만 있으면 우울병 치료가 안 될 게 뭐 있어” 참 답 안 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말하다보니 결이 조금씩 다른 이야기들 같네요. 저 자신도 물리주의 유물론을 토대로 하는 의사라고 생각하지만 가령 “중독”과 같은 질병에는 영혼과 영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도 있습니다.

 

『가만히 끌어안다』는 ‘명상’을 통해 새 지평을 보게 됐다는 친구L이 추천한 책이라서 의도적으로 저자에 감정이입하려고 노력하며 읽었어요.

 

제 글은 '질병과 질병에 대한 태도'에 연상을 중구난방으로 그렸지만, 혜량하여 읽으시고 잠시나마 생각해 볼 기회가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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