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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44) 불의에 대한 책임자는 '사고하는' 행위자

 

어린아이의 죽음이나 생계 수단의 대량 파괴 같은 불의의 장면을 목격했을 때는 사람들로 하여금 비난할 대상을 찾도록 하는 뭔가 특별한 것이 존재하는 듯하다. 우린 이런 충동을 가리켜 ‘쌍의 완성’이라고 부른다.

 

(...) 부도덕의 전형적인 사례는 행위자와 수동자의 ‘완전한 쌍’을 이룬다. 살인, 절도, 학대, 사기 등에는 모두 사고하는 행위자와 그의 행위로 인해 해를 입는 상처 받기 쉬운 감수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때로 불의의 정도가 아주 심한 경우에는 명백한 도덕적 행위자가 없는데도 우리의 부도덕 탐지기에 시동이 걸린다. (...) 너무나 끔찍한 일이기 때문에 그 사건을 불운이라고 치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끔찍한 일을 사악한 존재의 행위로 이해한다. 불의에 대한 이런 지각을 바탕으로 이원적인 도덕적 틀이 작동하게 되는데, 이 틀은 현재 마음을 가진 존재가 둘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즉 고통을 입은 도덕적 수동자만 있고 책임을 물을 도덕적 행위자가 없기 때문에 불완전한 상태다. 이때 이 쌍을 ‘완성’하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은 행위자 역할을 맡을 사고하는 행위자를 찾게 된다.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중에서

 

‘쌍의 완성’은 이 책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위한 중요한 개념이다. 이러한 인간의 인지 특성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는 ‘카니자 삼각형’(Kanizsa Triangle)을 소개했다.

 

 

시각적 완성을 통해 흰색 삼각형을 보게 되는 것처럼, ‘쌍의 완성’을 통해 고통받는 수동자를 위해 책임질 행위자를 보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제2의 삼각형(흰색 삼각형)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여전히 말하기 조심스럽고 단언할 수도 없지만, 한때 횡횡했던 “세월호 음모론”도 이런 심리적 과정이 작동했다고 믿는다. 의도, 책임, 행위 능력을 갖춘 진짜 도덕적 행위자(가해자)가 나타나야 쌍의 완성은 실현되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중세 시대 마녀를 거론한다면, 독자들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쓴 힘없는 도덕적 수동자를 연상할 것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쌍의 완성’을 실현하려는 인간의 마음과 어울리지 않는 사례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저항감을 느낄 것이다. 심지어 혹시 지금 박근혜가 마녀사냥 당했다는 이야기냐고 다짜고짜 내게 화를 낼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니 잠시 숨을 고르고 들어보시라.

 

마녀. 힘없는 도덕적 수동자? 중세 당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 애꿎은 사람들에게 발생한 불의는 명백했고 피해 정도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 생겼다.

 

누군가 행위자(가해자) 역할을 맡을 사고하는 행위자를 찾게 된다. 조금이라도 사건이나 상황과 연관성을 갖는 누구라야 한다. 아무리 직접적 연관성이 있다고 해도 의도가 모호한 동물이나 의도가 없는 천재지변은 쌍의 한 쪽에 설 수가 없다.

 

그래서 저 '사악한' 마녀를 가해자로 지목했고 ‘쌍의 완성’은 실현됐다. 다수의 '선량한' 사람이 비로소 편안해졌다. 공리주의 관점에서 정의는 실현됐다. 책에 나왔다시피 심지어 중세 프랑스에선 돼지를 ‘재판해서’ 사형에 처하기도 한 이유도 불의에 대한 책임자는 ‘사고하는’ 행위자여야 했기 때문이다. "자,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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