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62회]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전염병으로 죽는 생병 ... '지게송장'

 

고향집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버스정류소의 이름은 금산목이다. 금산목이란 이름의 유래는 조금 높은 곳인 이 동산에 신성한 할망당이 있어, 함부로 다니지 말라는 데서 온 듯하다.

 

금산목 서쪽은 월정리 해변이고, 그 사이에 있는 모래밭 지경을 일컬어 ‘토롱을 했던 생병터’라 전해진다. 토롱은 시신을 가매장한다는 뜻인 제주어다.

 

시신을 놓고 고구마를 저장하기 위해 감저눌 눌듯이 주위를 람지로 빙빙 두른 다음, 가운데는 ‘주젱이’를 덮고 나서 손으로 모래를 덮는 방법으로 토롱한 무덤을 생병막(生病幕)이라 하며, 이와 같이 토롱했던 곳을 생병터라 한다.

 

아무 탈도 없던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전염병인 돌림병으로 죽는 것을 생병이라 했다. 생병터는 주로 콜레라 전염으로 죽은 사람들을 가매장했던 데서 생긴 이름이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콜레라를 호연개 또는 호영개라고 불렀다. 1920년 경신년 호역차단 대참사와, 1946년의 호열자 사건 등 도내에서는 두 차례에 걸친 콜레라 전염으로 희생자가 많이 생겼었다.

 

1920년 7월 발생한 대참사는 같은 해 11월까지 도내 환자 수가 1만 명에 육박했고, 사망자가 5000 명에 가까웠다. 1920년 7월 21일 구좌면 김녕리에서 발생한 콜레라는 곧 이웃마을로 번져갔다. 우리 마을 영장집(장례 치르는 집)에 다녀간 이웃마을 한동리 사람과 그 가족들이 전염된 것을 시작으로 이웃집으로 번져, 섬 전체의 교통과 주민들의 출입을 통제했을 정도로 확산이 컸다.

 

동아일보 1920년 9월 26일자 지방통신에 따르면, ‘제주도의 괴질 창궐’이란 제목으로 ‘본도 20여 만 인구 중 생존자의 공포는 형언하기 어려운데 9월 7일 현재 경찰서 조사에 의하면 전도의 환자 및 사망자 수는 다음과 같으나 각 리의 교통 차단이 엄중하므로 정확한 조사인지는 미지수이다. 구좌면 환자 4591명, 사망 2027명…’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봄에는 육지에서 콜레라가 번지기 시작했는데, 6월 초에 북제주군 애월면 애월리에서 첫 희생자가 생겼다. 육지에서 귀향한 40대의 남자가 신열이 나고 구토를 하다가 숨졌다. 그 다음날에는 우리마을인 구좌면 행원리인 어등개에서 2명이 감염되었다.

 

며칠 뒤에는 대정면 일과리인 날웨에서 환자가 발생하였다. 삽시간에 콜레라가 만연해도 미군정청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고작해야 환자들을 한곳에 집단으로 수용하도록 독려하고 환자가 사용했던 물품과 시체를 화장하도록 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미 24군단의 G-2보고서에 따르면 8월 말까지 제주에서는 369명이 호열자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후 새로운 환자만 424명이 발생한 것으로 미루어 실제 사망자는 훨씬 많았다 한다.

 

설사와 구토를 동반하는 병인 콜레라에 감염되면, 이웃마을과의 왕래를 차단하고, 환자가 있는 집은 올레에 돌담을 쌓아 사람 출입을 막았다. 이웃집에서 물을 올레에 놓아두면 콜레라 감염 된 집에서 그 물을 가져다 식수로 사용하였다. 콜레라로 상을 당한 집에서는 음식 장만도 못하게 했다.

 

콜레라로 죽은 사람은 ‘지게송장’이 대부분이었다. 지게송장이란 정식 장례절차도 치루지 않고 지게로 운반하는 주검을 말한다. 해방을 맞아 강제징집에서 돌아온 나의 삼촌도 이병으로 돌아가셨다. 이러한 주검들이 임시 묻혀졌던 곳이 생병터이다. 훗날 가족들에 의해 이곳 시신들은 다른 곳으로 모셔지기도 했던 제주의 아픈 세월이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