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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회] 신들의 고향 제주도 ... 산에는 산신당, 바다에는 해신당, 마을에는 본향당

 

할망은 할머니의 제주어이다. 손자의 무슨 말이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할망이다. 나의 할머니는 나를 유일한 삶의 희망으로 삼으며, 한 많은 세월을 살다 가셨다. 제주에서 할머니는 속내의 어려움과 바람 등 뭐든지 들어주는 대상이다.

 

그래서 제주에는 신앙의 대상으로 할망당을 모셨고, 집안에 어려움이 있을 때면 수시로 할망당을 찾아가 속내에 있는 사연들을 털어놓곤 했다. 그런 사랑을 받았을 김순이 시인은 할망당을 영혼의 주민센터에 비유하기도 했다.

 

제주도는 1만8000 신이 살고 있는 신들의 고향이다. 산에는 산신당, 바다에는 해신당, 마을에는 본향당이 있다.

 

본향당이란 마을마다 있는 신당(神堂)으로, 송당 본향당·와흘 본향당·수산 본향당·월평 다라쿳당 등이 제주도민속자료로 지정된 대표적인 마을 신당이다. 제주신당 조사에 따르면 모두 554곳으로 추산되고 있다.

 

새로이 할망당을 조성하는 곳도 더러 있을 것이다. 무격신앙의 행위와 문화유산으로서의 자긍심이 혼재된 영혼의 성소로서 할망당을 조성하는 것도 영혼을 살찌게 하는 행위라 여겨진다.

 

교육청 근무 당시 업무 스트레스도 떨쳐버리고 힐링 시간도 가질 겸 주말이면 고향으로 향하곤 했다. 어느 날 마을 어귀에 있는 밭에서 작업을 하던 중 특이한 돌을 발견했다. 자연석이 아닌 인공미가 가미된 돌이라 여겨 자동차에 싣고 집에 들였다.

 

다음 주에 다시 찾아간 그곳에서 뜻밖에 다시 인공석을 보았다. 그 돌을 지난번의 돌과 이었더니 돼지 먹이 돌그릇 형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다음 주에도 필자는 나머지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보물을 만나듯 연 3주에 걸쳐 주운 인공석을 맞추어 보았더니, 영락없는 돼지먹이 그릇인 ‘돋도고리’라 하는 돌통이었다.

 

몇 년 전에는 골동품처럼 간직했던 돼지먹이 그릇인 돋도고리를 고향집에서 옮겨왔었다. 그리고 우연히 찾아낸 세 토막 난 돌통을 정원 한 구석에 가지런히 배치하였다. 조왕신이 좌정한 곳이라 여겨, 이곳저곳에 놓여있던 돌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자그마한 돌무더기가 놓인 할망당이 만들어졌다.

 

이후 집을 오가면서 이곳에 동전을 넣고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고향의 할망당과 소지가 나부끼는 여러 곳의 할망당을 연상하며 필자만의 기도처를 만든 것이다.

 

제주선인들은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중에는 자연신, 조상신, 토지신, 해신 등 많은 신들에게 끊임 없이 정성을 드리는 방법도 있었다. 이러한 세시풍속은 생산공동체와 신앙공동체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어 왔을 것이다.

 

고향마을 여자들 대부분이 해녀임에 반해, 일본에서 태어난 모친은 물질을 못한다. 우리 가족들은 바다와는 무관하게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다. 바닷가에 있던 당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곳이었던 반면, 마을 어귀인 ‘금산목’ 지경에 있는 당에는 여러 차례 들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재수 좋은 날은 횡재도 하고 진귀한 구경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릿고개 시절, 음험한 정기가 전해져오는 제단 주변에는 하얀 천이 걸려 있었고, 촛불 대신 기름심지가 타는 참기름 불도 볼 수 있었다. 가끔은 팥 없는 하얀 송편과 지전 또는 동전을 주울 수도 있었다.

 

병원도 아닌데 사람들이 이곳에서 병을 낫게 해 달라고 빌면 진짜 이루어진다고 여기기도 했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우리 마을에서는 ‘쉐당과 오분작할망당’에서 부정기적으로 제의를 행해왔었는데, 지금은 폐당된 상태이다.

 

쉐당은 마을 동구 밖 속칭 당머세라는 지경에 있었다. 이 당에는 목축과 관련된 쉐하르방과 쉐할망 부부신이 좌정해 있었다. 잃어버린 소를 찾으러 가기 전에 신발을 올려놓고 제사를 지내면 효험이 있었다고 전한다.

 

가끔 찾아갔던 오분작할망당에는 어린이들의 질병수호신이 좌정하여 어린이들의 피부병 치료를 관장했다. 마을 사람들은 어린이 몸에 피부병이 생기면 매월 7일 당으로 갔다. 심방이나 동네 삼승할망 또는 아이를 직접 데리고 가서 제를 지내곤 했다.

 

필수 준비 물은 패류의 일종인 오분작, 보말 등과 빗자루이다. 제물을 진설한 제단에 패류를 붙여둔 것은 허물로 인해 살갗에 일어나는 꺼풀을 상징하는 것이라 했다. 빗자루로 쓸듯이 어린아이의 몸에 난 허물을 낫게 해 달라고 비념하고, 제단에 붙여 둔 패류를 쓸어버림으로 서제를 마쳤다.

 

이어서 제단 위에 걸었던 창호지 한 장을 집으로 가지고 가서 그것을 태운 재에다 참기름을 살짝 칠해 아이의 허물이 돋는 살갗에 발랐다 한다. 허물이 없어진다는 믿음에서 이러한 제의가 치러졌을 것이다.

 

제주인보다 제주를 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고개가 절로 숙여 진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와 제주에 거주하는 주강현 교수 등이 그러한 분들이다.

 

그들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7’와 ‘제주기행’을 통해서 그들의 제주사랑 면면을 읽는다. 그 책들은 내가 여태 걸었던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지평을 더욱 넓혀주었다.

 

그들의 글은 제주를 떠난 사람들에게는 향수에 젖게 하고, 제주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다시 그 길을 걷게 하고, 제주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제주에 대한 호기심을 극대화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제주의 여기저기를 꽤나 돌아다닌 나는 그들을 통해 제주의 속살에 대한 선인들과의 넓고 깊은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식견을 얻은 듯 하다. 그중 하나로 제주에 산재했던 할망당에 대한 유흥준 교수의 안내이다.

 

‘절 오백 당 오백’이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제주의 마을마다 당이 산재해 있었다. 유 교수는 당 오백은 맞지만 절 오백은 잘못된 역사의식이라 한다. 글쎄다. 당과 절이 공존했고 또한 절과 당이 같은 기능을 공유했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런 그의 주장에 동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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