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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회] 포제의 3신위 ... 마을 모든 것은 천신, 농작물은 포신, 바다는 해신이 관장

 

제주선인들의 민간신앙은 무속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남성들이 주관하는 유교식 제의인 포제와, 심방이 주도하는 무속식 제의인 당굿이 그것이다.

 

당굿은 남녀 모두 하나가 되어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던 공동의 축제였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유교제법(儒敎祭法)이 보급됨에 따라 남성들이 당굿에 참여하지 않고 따로 포제를 지내게 된다.

 

포제(酺祭)란 정월과 유월에 지내는 동제로, 이삿제·거릿제·천제·산천제·마을제·포신제 등으로 불린다. 마을 사람들의 불상사 예방, 오곡의 풍성, 농사의 풍년과 축산의 번성, 바다에서의 풍어, 자손의 창성을 위해 포제단에 치성을 드린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쌀을 모은 제물인 성미(誠米)를 올렸으나, 지금은 마을공동자금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본향당제가 낮에 지내는 것에 반하여 포제는 고사와 같이 고요한 한밤중에 제를 지낸다.

 

 

포제단은 사람과 사물에게 재해를 주는 포신에게, 액을 막고 복을 줄 것을 빌던 제단이다. 서울과 제주도 두 곳에 있었는데, 서울에서는 제단을 별도로 만들지 않고 마보단(馬步壇)에서 지냈다 한다.

 

1768년(영조 44년) 호남지방에 충재(蟲災)가 들어서 포제를 지낼 것을 명하였으며, 충재가 들었으나 포제를 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백을 문책한 기록도 있다.

 

포신(酺神)은 재해를 내리는 신이므로, 포신에게 재해를 내리지 말기를 바라는 제의가 바로 포제의 원래 취지이기도 하다.

 

포젯동산이란 지명에서 보듯, 원래 해신제와 포신제를 함께 지내기 위해 마을 높은 곳에 제단을 마련하였었다. 이후 마을 갯가로 옮겨 포제단을 마련한 것으로 추정된다.

 

산신제·동포제·갯포제 등으로 불려 지기도 하는데, 포제의 대상 신위는 천신·포신·해신 등이다. 3신위 중 천신은 마을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이고, 포신은 농작물을 관장하는 신이며, 해신은 바다를 관장하는 신이다.

 

포제는 농업과 어업에서의 풍요와 풍어와 함께 마을의 안녕과 화합을 염원하는 제의이다. 포제는 조선시대 이후 마을 설촌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여겨지며, 매해 설 지나 첫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을 택하여 자시(子時)에 지낸다.

 

12명이던 제관은 요즘은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집례(執禮), 대축(大祝), 알자(謁者), 찬자(贊者), 전사관(典祀官) 등 모두 8명으로 구성된다.

 

제사를 지낼 때 길흉을 예측하는 여러 징조들이 있는데, 말이나 꿩의 소리가 들리면 길조라 여기고, 개·소·닭소리가 들리면 흉조라 여겼다.

 

유교식 마을제인 포제는, 마을의 자치와 관련하여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요를 빌고 집안마다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것에서 보듯, 당신앙이 변형된 것으로 여겨진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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